# 23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39화
107. 패권(1)
히로시의 태도에 주석은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느껴야 했다.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을 때만 해도 마법같은 영문 모를 힘을 사용하는 수행자를 더는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르트 공화국은 너희가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의 기대와 어긋난 반응을 보였다.
주석을 포함해 중국 정부 고위간부들은 어처구니없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당신 태도, 조 의장께선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때문에 주석은 이렇게 생각했다.
현장 책임자로 나온 히로시가 제대로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이어진 히로시의 말 또한 기대와 어긋났다.
“의장 각하께서 분명 성명을 내신 거로 기억하는데, 모르시나 봅니다?”
“그 허세로 가득한 엄포 말입니까?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히로시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며 짧게 혀를 찼다.
그런 히로시의 태도 하나하나가 거슬리는 중국 정부 측 인사들로 인해 접견실의 분위기는 점점 최악으로 치달았다.
“우리가 굽히고 들어올 거라 착각하신 모양인데, 지금의 상황에 대한 베르트 공화국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는 험악한 분위기에 방점을 찍는 대사를 내뱉었다.
“황당함, 귀찮음, 가소로움.”
그의 조롱에 결국 쌓이고 쌓인 주석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 쪽바리새끼가! 빵즈새끼의 위세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기는!”
그러나 히로시는 열불을 토해내는 주석의 모습에도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연인이자 부관인 진아에게 ‘저 새끼 왜 저러냐?’라는 식의 제스쳐를 취했다.
그에 주석을 따르는 경호원들이 총기를 뽑아 일제히 히로시와 진아를 겨눴다.
“외교 대사를 향해 총을 겨누다니, 완전 막장이네요.”
“막장은 네 녀석의 태도다!”
“저는 베르트 공화국의 전권 대사입니다. 그런 제게 총을 겨눴다는 뜻은 전쟁을 하겠다는 의도인 거겠죠?”
히로시가 ‘스릉’ 소리와 함께 등에 X자로 교차되 매달린 검을 뽑아 들고 진아 역시 범상치 않은 속도로 레이피어를 뽑자, 상황은 일촉즉발을 치달았다.
총기에 검으로 맞선다는 것은 만용이지만, 상대가 수행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히로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임드 수행자였고 중국 주석 역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라, 자신을 향해 검이 겨눠지니 조금이나마 이성이 돌아왔다.
‘응?’
그런데 그때.
주석은 한가지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자신이 흥분하긴 했지만, 이는 분명 히로시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고 지금의 그는 이 상황을 바라고 있던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네놈 설마, 명분을 만들려고!”
히로시는 히죽 웃으며 자그마한 카메라를 재킷 자락에서 꺼내 흔들어 보였다.
곧이어 카메라는 아공간에 수납이 되었고 주석은 완전히 그에게 놀아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베르트 공화국에게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수행자로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탄생된 것이죠. 더불어 세계의 안정과 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던 만큼, 여러분의 행동에 크나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완전히 상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고 말았다.
주석은 입술을 깨물었고 그런 그를 보며 히로시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상황파악 못 하고 우리를 적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교훈을 심어줄 필요가 있겠다고요.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세계를 향한 경고가 될 겁니다.”
“뭘 하려는 거냐.”
“뭐긴요. 방금 말했잖습니까? 전쟁이라고요.”
주석은 두 눈을 크게 부릅떴고, 히로시를 향해 권총을 겨눈 이들은 작게 손을 떨었다.
몬스터에게 인간이 핍박받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행자들의 힘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가 야욕이 없다는 거지? 결국 반발하는 세력을 찍어 눌러 독재 체제를 확립하려는 것 아니냐!”
“필요하다면 독재도 나쁘진 않겠죠. 이렇게 머릿속에 똥이 가득한 인물이 윗대가리라면요.”
베르트 공화국의 권력 침탈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소폭탄이 전쟁의 씨앗이 되는 순간이었다.
주석은 표독스럽게 히로시를 노려 보았다.
“베르트 공화국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거다. 수소폭탄은 장난감이 아니야.”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죠.”
히로시는 웃는 낯으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고, 그에 움찔한 경호원 한 명이 방아쇠를 당기면서 총탄이 날아들었다.
-팅!
그러나 총알은 히로시에게 닿지 못하고 검에서 피어오른 오러블레이드에 증발해 버렸다.
“선공 감사합니다.”
그리고 희로시의 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지고.
주석의 목에 길게 좌상이 생겼다.
하지만 주석의 목을 날리진 않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맞은 배우였으니 말이다.
-푸확!
다만 주석 이외 필요 없는 등장인물들의 목은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주석 각하!”
총소리에 제2 주석궁의 경호원들이 접견실에 들이닥쳤다.
“으악!”
그런데 그들은 탄환처럼 레이피어에서 발사되는 진아의 검격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역시 중국이라 그런가? 경호원 쪽수도 많네.”
그러나 경호원들은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다.
“그럼 다시 뵙죠.”
히로시와 진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휴대용 텔레포트 게이트를 활성화 시켰고.
-타타타탕!
주석을 보호하며 경호원들이 쏘아대는 총알을 쉴드로 튕겨내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킨 주석은 피비린내를 맡으며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그날.
중국에 파견 나가 있던 수행자가 모조리 복귀 조치 되었으며, 각국 주요 도시를 오가던 교역선인 천공의 성은 중국과의 계약을 끊어 버렸다.
또한, 국가와 도시 간 이동수단인 텔레포트 게이트가 모조리 폐쇄되면서 중국은 완전히 고립되어 버렸다.
그리고 중국 주석과 히로시의 과격한 면담이 끝나고 다음 날.
베르트 공화국은 중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충격의 개전! 베르트 공화국 vs 중국.]
[전권 대사를 향해 총기를 겨눈 중국의 만행.]
[수소폭탄을 앞세운 중국의 협박에도 베르트 공화국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아.]
[조지훈 의장: 이 일로 일반인과 수행자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베르트 공화국은 세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국가일 뿐이다.]
[전 세계의 시선이 주목되는 가운데, 중국에서 수소폭탄을 사용하려는 기미를 포착. 양국의 대립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다.]
“이 기회에 중국을 5개 이상으로 쪼개야겠네요.”
참고로 만주 일대를 북한, 남한과 함께 대한 연방으로 묶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수소폭탄의 발사 징후가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악의 선택을 하는 중국.
음속의 공격이 난무하는 전투를 치러온 우리에게 미사일이 통할 거라 보는 걸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중국의 행보에 조소를 머금은 나는 지시했다.
“모두 중국 하늘에서 요격해주죠.”
이 기회에 확실하게 베르트 공화국의 힘을 세계에 각인시켜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빠르게 해결하고 우리일 봐야죠.”
중국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한 말투.
그런데 실제로 중국과 관련된 일은 타천사 시엘라가 가져온 정보에 비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어떻게 해결을 해야 다른 국가들에게도 경각심을 심어줄지 고민을 하다 보니, 처리가 살짝 오래 걸리고 있는 것이다.
“요격 후엔 어떻게 할까요?”
중국의 거만함은 고위층의 문제가 아닌 종족 특성이다.
그래서 확실히 밟아 버려야지, 뒷일이 편했다.
“안전구역과 도시 석벽을 해제하죠.”
“네?”
내 대답에 함께 자리를 하고 있던 공화국의 의원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민간의 피해가.”
“중국에게 베르트 공화국은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왜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추후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의견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의원들은 중국의 국민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추후 베르트 공화국에 향할지 모르는 비난을 우려하는 것이었다.
“과연, 비난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내 결정을 문제 삼는 의원은 전체에 비하면 소수였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번 일로 중국에 매우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굳이 중국의 편의를 봐줄 필요도 없고, 주변의 눈치를 봐야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를 대하는 타국의 태도가 결정될 겁니다.”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당연하지만 회의는 결국 내 의견에 따르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후세는 나를 가리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며 지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수소폭탄을 갖고 위협을 해오는 적들의 편의를 봐주는 게 바보라 생각했다.
나는 인권주의자도 박애주의자도 아닌 철저한 실리주의자였으니 말이다.
* * *
[수소폭탄 10기. 발사 5분 만에 전량 요격.]
하늘을 수놓는 태양과도 같은 빛.
중국 주석은 그 빛을 바라보며 단연 최악이라 할 수 있는 결과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쉽게 요격을 한다고?”
하지만 중국에 닥친 재앙은 이제 시작이었으니.
“가, 각하! 안전구역이….”
“뭐?”
“안전구역이 해제된 모양입니다. 그리고 도시를 보호하던 석벽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군인 3만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천공의 성과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만으로 피해가 극심했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예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웨이브 시기가 아닌 게 다행이지만, 재건 중이던 도시 곳곳에서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굳이 직접 공격을 하지 않아도 생명을 위협받게 만들 수 있다.
베르트 공화국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자존심에 눈이 멀어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진 꼴이 되어버린 주석은 손톱을 질근질근 씹으며 고민에 빠졌다.
“베르트 공화국에 연락을 넣어라.”
결국 항복을 하려는 걸까?
주변 사람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주석은 아무도 예상 못 한 이야기를 꺼냈고, 이는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
-쾅!
나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에 충격을 못 이긴 책상이 두 동강이가 났고, 보고를 했던 마검사 최은우는 혼란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미친 새끼들이 수소폭탄을 한국과 미국에 숨겨 놨나고?”
“그,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무래도 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취해놓은 조치가 아닐는지.”
녀석들은 깡패 국가에서 테러리스트 국가로 전직을 선택한 모양이다.
분명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가볍게 여길 수는 없었다.
설마 우리가 아닌 다른 국가들의 국민을 인질로 삼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분노가 치솟는 비열한 수법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공격이기도 했다.
“어찌할까요?”
최은우의 물음에 이번만큼은 쉬이 답을 못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과 미국 정부는 난리가 나서 바로 연락을 취해 왔다.
기본적으로 테러에는 협상하지 않는 게 맞지만, 현재 모든 국가들은 안전구역이란 좁은 면적에 밀집 생활을 하고 있어서 수소폭탄이 터진다면 인명 피해는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수소폭탄이 만약 수도에서 터진다면 그 위력을 생각해 1천만이 넘는 시민들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중국이 사라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진짜 미친 새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