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35화
105. 평화의 시대(4)
스리랑카라니.
납치된 엘프들 입장에선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더불어 뮤대륙에 이런 규모의 지하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돌려보내 주세요.”
“오늘부터 이곳이 너희의 집이다.”
분명 지금쯤 엘븐하임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고위전사 둘이 무참히 사살되고 많은 수의 엘프들이 납치를 당했으니 말이다.
동포를 끔찍이 여기기로 유명한 엘븐하임에서 이를 얌전히 넘어갈 리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의심의 화살은 미드랜드로 향할 가능성이 컸다.
사고 지점도 문제지만, 시기가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장담컨대 이곳은 미드랜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을 납치한 무리의 모습은 인간과 차이가 컸다.
이마 사이로 길게 돋아난 뿔.
아무리 봐도 악마종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대장, 장로가 찾는데?”
“그 꼰대가 또 왜?”
“아무래도 우리의 행동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더라고.”
“쯧…….”
짧게 혀를 찬 리더가 등을 돌리자 그런 남성을 향해 동료들이 물었다.
“엘프들은 어떻게 할까?”
“너희 편한 대로 해. 그분께서도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까.”
“땡큐!”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
납치된 엘프들의 삶은 앞으로 고난의 연속일 것이란 점이다.
뿔 달린 남성들은 자신들을 상품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아악!”
그렇게 엘프들은 뿔달린 남성들에게 짐짝처럼 질질 끌려갔다.
* * *
당연하지만 아무리 조사를 거듭해도 미드랜드 수행자 중에 의심이 가는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어쌔신 마스터 데스사이즈에 의심의 화살이 쏠리긴 했지만, 결국 그도 죄가 없음이 조사과정에서 분명하게 밝혀졌다.
죄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당시 그는 미드랜드가 아닌, 이블랜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용의자들도 워낙 바쁜 인물들인 덕분에 알리바이들이 확실했다.
우리의 자체 조사를 신용하지 못한 엘븐하임에선 별도의 조사팀을 마련했는데, 나는 이들의 수사를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직접 그들의 신원을 공증해 주었다.
마치 꼬투리를 잡기 위해 미드랜드를 활보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하긴 했지만, 내가 봐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였으니, 그들의 행동을 존중했다.
덕분에 대외적으론 냉기가 흘러도 하이랜드와 미드랜드 사이의 관계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공간이동으로 자릴 벗어난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마법의 흔적이 없습니다.”
엘프들의 조사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이브릴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란 것은 분명히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선 공간이동 마법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 놓친 게 있나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나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주도면밀함은 계획된 범행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듭니다.”
주도면밀함이라고 칭하는 게 조금 뭐하긴 한데, 그 이유는 전투가 벌어졌던 땅이 완전히 증발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된 범행이란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완벽에 가깝게 우리의 시선을 따돌렸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나요?”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을 통해 전 대륙을 탐색할 생각입니다.”
“전 대륙을요?”
“예, 아마 엘븐하임에서 전격적으로 나서면 열흘이면 충분히 조사를 완료할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정령은 하이랜드 외엔 미지의 힘으로 치부되고 있다.
즉, 대비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 분명 유효한 수단이란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연맹의 고위 수행자들 위주로 먼저 조사를 해주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죠.”
“감사합니다.”
뮤대륙의 미드랜드만해도 아시아와 유럽을 더한 것보다 넓은 땅이다.
그런데 10명이 조금 넘는 인원 손실에 전대륙을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하는 엘프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정말 동포를 아낀다는 것이 뭔지 보여주는 모습이다.
“부디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네요.”
“네.”
하지만.
한 번 꼬인 일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확실합니까?”
열흘 후.
뮤대륙 전체 탐색을 완료한 엘븐하임은 발칵 뒤집혔다.
“네, 뮤대륙 어디서도 납치된 희생자들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죽임을 당한 건가요?”
“아뇨, 죽는다고 해서 엘프가 품은 정령의 기운은 며칠 만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먹고 조사를 하면 뼛조각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죠.”
뮤대륙 어디서도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엘프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문제 같군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내 의심의 화살은 하늘로 향하게 된다.
가이아의 짓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의심할 수 있는 존재는 따로 없었다.
요즘 따라 ‘대체 왜?’라는 의문을 많이 짓게 만드는 가이아의 만행.
상황이 이리되니, 가이아가 수행자들의 내부분열을 바라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지구도 정령 탐색이 가능합니까?”
“네, 문제없습니다.”
“그럼 지구에서도 탐색을 진행해보죠.”
내 제안에 이브릴은 따로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D-DAY 이후 수많은 국가가 몬스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하지만 국가가 무너졌다고 그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몰살을 당한 것은 아닌데, 인간의 적응 능력이 대단하단 것을 증명하듯 부락을 이뤄 무리 생활하는 단체가 적지 않았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스리랑카는 북쪽에 위치한 대국 인도에 가려 한국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국가지만 인구 2천만의 작지 않은 국가였다.
콜롬보는 옛 명성을 잃고 몬스터가 어슬렁대는 폐허가 되었지만, 그 속엔 많은 사람이 여전히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비, 비상! 부랑자들이 쳐들어오고 있어요!”
“뭐?”
나라가 무너지고 하루하루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환경 속에 가장 무서운 적은 몬스터가 아닌 같은 인간이었다.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뭉쳐 그나마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100명 규모의 작은 캠프는 멀리서 개떼처럼 달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곤 패닉에 빠졌다.
부랑자는 한곳에 자리를 잡지 않고 생존 캠프를 돌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단순히 구걸하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을 텐데, 이들은 대부분이 총기로 무장한 강도란 점이 큰 문제였다.
인간을 공격해 약탈하고 아녀자를 겁탈하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
그것이 바로 부랑자였다.
“누가 에리카 님을 불러와!”
“네!”
캠프 리더의 외침에 한 소년이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들의 캠프는 옛 관공서를 보강해 만들었다.
단 한 곳을 제외한 출입문은 모두 막아 둔 상태였기에 문 하나만 지키면 쉬이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약탈에 약탈을 거듭한 부랑자들의 무장 수준은 일반적인 캠프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콰아아앙!
수류탄이 연달아 날아들고 연쇄적으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씨발, 그냥 부랑자가 아니야! 약쟁이들이야!”
산 넘어 산.
몬스터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짓은 삼가야 하지만, 약에 취해 공포심을 잃은 부랑자 무리에게 상식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덕분에 오히려 방어를 하던 캠프 측 인원들이 공포에 질려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소란스럽네.”
“에리카 님!”
그렇게 밀리고 밀려 더는 희망이 없어 보이던 캠프 측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피처럼 새빨간 머리에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미인이 스포티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와중에 곳곳에서 구세주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특수한 힘으로 손쉽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초인이었다.
에리카라 불린 여인이 바로 그 초인으로 주변 캠프의 안전에 힘을 보태주는 능력자였다.
비록 그녀는 미남을 좋아해 부적절한 요구를 해왔지만, 생존을 위해 보태주는 힘에 비하면 가벼운 요구라 생각하여 대부분의 캠프에선 그녀의 의도대로 애인을 대가를 바쳤다.
그런데 그녀는 외모가 워낙 빼어나 애인을 하고 싶다고 나서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특이점이었다.
“꺼져.”
에리카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두르자 겁 없이 달려들던 부랑자 넷이 단숨에 잘게 썰린 고기덩어리가 되었다.
그에 약에 취한 상태임에도 부랑자들은 흠칫 놀라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미모는 폐허더미에서 보기 힘든 수준이었기에 엉뚱한 상상이 피어올랐고 부랑자들은 불 속으로 날아드는 나방처럼 제 몸을 불살랐다.
“욱!”
에리카가 나서니 중무장한 부랑자 수십이 정리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무참한 풍경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모두는 안도하며 에리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응? 저게 뭐야?”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건물 입구로 향했다.
그곳엔 푸른빛을 머금은 작은 새가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인가?”
“저게?”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 무슨 이상한 힘을 사용할지 알 수 없으니.”
그런 새를 보며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 속에 에리카만이 미간을 좁혔다.
“어?”
그리고 이내 그 새가 사라졌는데.
푸른빛의 새가 사라짐과 동시에 검은 제복 차림의 남성이 그곳에 나타났다.
“뭐, 뭐야?”
귀신처럼 홀연히 등장한 사내의 모습에 모두가 경계심을 표하고.
폐허가 된 도심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복장은 상당한 포스를 내뿜었다.
그는 피와 내장, 살덩어리로 엉망이 된 건물 입구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서며 말했다.
“기운을 쫓아 왔는데……. 그렇군, 너희가 범인이었나?”
검은 제복과 어울리는 차분한 흑발의 잘생긴 사내는 에리카를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에 에리카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꽤 분위기 있는데? 날 알아?”
그런데 이어진 사내의 대답은 그녀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잘 알고 있지. 아틀란티스의 용인족이잖아.”
“…….”
덕분에 에리카는 매우 크게 놀라며 경계심을 표했다.
그런데.
-핏!
“어?”
사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서늘한 느낌과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에, 에리카 님!”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한 에리카는 힘겹게 상체를 들어 올렸고, 곧 자신의 두 다리가 하체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아악!”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
에리카는 비명을 내질렀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사내는 눈 하나 까딱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여유 있게 다가왔다.
-철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에리카를 구하기 위해 총을 들었으나, 총은 쏘기도 전에 분해가 되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에리카의 배를 질끈 밟은 남성이 차갑게 물었다.
“엘프 어디에 숨겼어.”
상대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는 대사.
덕분에 창백한 인상의 에리카는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서, 설마. 수행자인가?”
“제대로 찾아왔군.”
긴말이 필요 없었다.
그런 에리카를 보며 검은 제복의 사내 지훈이 눈을 빛냈다.
지훈은 밟고 있던 그녀의 배를 짓이기듯 힘을 주었고, 오우거를 초월한 그의 힘에 제대로 힘을 못 쓰던 에리카의 모습에 변화가 생겼다.
감춰져 있던 기다란 뿔이 생겨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