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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232화 (232/247)

# 23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32화

105. 평화의 시대(2)

라그나베일의 경고에 따른 위기감과 별개로 베르트 제국이 소속된 로이아스 연방제국은 황금기를 달렸는데, 연방의 주축이자 대륙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나는 요즘 귀찮은 일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 왔어?”

이블랜드 북부.

익숙하게 간식거리를 들고 라그나베일의 레어를 찾은 나는 드워프 장인이 만든 소파와 하나가 되어 TV를 보고 있는 소녀를 발견하곤 고개를 내저었다.

“또 드라마 보십니까?”

“야 골 때린다. 얘네 왜 이렇게 웃기냐? 알고 보니 부인이 어릴 때 헤어진 친동생이었데.”

지구에서나 볼법한 장면.

현재 라그나베일은 지구의 문화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막장드라마에 하루 24시간을 둘 중 하나만 넣어 소비하고 있었다.

거실처럼 꾸며진 레어 구석엔 TV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외장하드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다른 세계의 물건은 소유주만이 사용할 수가 있다.

이는 뮤 대륙과 지구 모두에 해당되는 수행자들의 규칙으로 이 때문에 지구와 뮤대륙간의 교역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라그나베일은 너무도 쉽게 그 룰을 깨버렸다.

역시 신족에 가까운 힘을 지녀서일까?

덕분에 라그나베일은 무료함 따윈 잊고 한껏 지구의 문명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다음 편, 다음 편.”

드라마가 끝나자 그는 외장하드를 교체하고 익숙하게 리모컨을 조작해 원하는 영상을 실행했다.

라그나베일은 남다른 습득능력으로 지구의 전자제품들의 사용법을 익혔으며, 드라마가 질리면 음악을 듣거나 콘솔 게임을 즐겼다.

소녀의 모습만 빼면 완전히 백수 삼촌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런 녀석이 한때 공포의 존재로 세상을 떨게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황실 조리장이 만든 수제 감자칩이 든 바구니를 건네주었다.

“땡큐.”

막장 드라마의 영향인지 그의 말투는 더없이 한국인 같아졌다.

“햇빛을 쌔야지 건강에 좋데요.”

내 말에 그는 코웃음을 쳤다.

“라그나베일 님께서 햇빛 좀 안 쌨다고 죽겠냐.”

그건 그렇지.

미드랜드에선 한없이 칭송받는 위치에 있지만, 이블랜드로 넘어오면 방구석폐인의 보호자나 다름이 없다.

나는 라그나베일이 흥미를 보인 지구식 음식들을 티테이블에 세팅하며 그에게 과즙에 탄산을 섞은 음료를 건넸다.

“크으!”

음료를 마시며 구수한 감탄사를 내뱉는 그의 모습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야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꽤나 익숙해져서 라그나베일은 얼마든지 트집을 잡을 수 있는 내 행동에도 아무 말 않고 자기 할 일만 했다.

나는 익숙하게 1인용 소파를 차지하고는 드라마에 빠져 있는 라그나베일에게 물었다.

“이블랜드엔 별다른 일 없는 거죠?”

“응, 아마 그럴 걸?”

라그나베일이란 절대 강자가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면 미드랜드나 하이랜드 입장에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졸지에 보모가 된 나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귀찮다는 듯이 대충 답을 하는 그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이젠 익숙해진 모습이었기에 그냥 포기하고 나도 같이 드라마에 시선을 던졌다.

“응?”

그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같이 황궁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는데, 문뜩 잊은 것을 떠올리곤 라그나베일의 레어를 둘러보았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족히 1㎞는 되는 라그나베일이 머물던 레어답게 공동은 엄청난 너비를 자랑했다.

그러다 한쪽에 병풍처럼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카리아 님.”

그녀는 바로 내 충고에 따라 라그나베일이 시중을 위해 새로 들인 다크엘프였다.

내가 부르자 그녀가 어깨를 움찔 떨며 황급히 달려왔다.

지난번 브람기슈와 라그나베일의 전투에서 다크엘프를 비롯한 대부분의 작위 악마들은 브람기슈 진영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최종 승자가 브람기슈가 아닌 라그나베일이 되었으니, 이들의 처우가 고달파질 수밖에 없었다.

라그나베일은 이제 이블랜드의 유일한 패자였으니, 손 한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 한 종족의 미래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도 있었다.

덕분에 카리아란 다크엘프 여성은 라그나베일의 시중을 들면서 사소한 일에도 겁을 먹고 항상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지훈님.”

그녀는 내 앞에 고개를 깊이 숙여보이며 예의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이성엔 관심도 없으면서 라그나베일의 취향인지 그녀의 복장은 매우 노출이 심했다.

그런 절세미녀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니, 괜히 불쌍한 감정이 들어 여러모로 챙겨주고 싶었다.

비록 그녀가 악마종으로 치부된다 해도 근본적으로 엘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것 좀 드세요.”

나는 그녀에게 커팅된 케익을 접시에 담아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라그나베일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라그나베일은 내가 툭툭 건들자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고, 나는 억지로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며 음식을 입에 대는 카리아.

나는 친절하게 음료를 건네며 말했다.

“혹시 요즘 이블랜드에 이변 같은 거 없나요?”

당연하지만 겉모습에 혹해 잘 대해주는 것은 아니다.

라그나베일이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으니, 그녀로 타겟을 바꾼 것뿐이다.

현재 나는 이블랜드 패자의 친구같은 존재인지라 카리아도 내 물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뇨, 딱히….”

내가 다시 한 번 진짜 없냐며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물으니,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없는 것이라도 짜내 보겠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 이번에 종족 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흑마력이 상당히 약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의문을 표했으나, 이내 그녀의 말속에 깃든 의미를 이해하곤 턱을 짚었다.

그라디스, 브람기슈에 이어 수많은 작위 악마까지 죽었는데, 새로 태어난 아이의 힘이 오히려 평균보다 못하다?

갑자기 FA로 엄청난 양의 음의 기운이 풀린 것을 생각하면, 남아있는 악마종의 힘이 더욱 강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니, 일반적인 상식으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뜻했고, 악마왕과 귀족 악마들의 마력은 아직까지 전격적으로 풀리지 않은 것이 된다.

단순히 한 개체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순 없지만, 그녀가 이 점을 특이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알려준 내용이 아니겠는가.

나는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혹시 다크엘프 외에 다른 종족들의 사정도 비슷한가요?”

“아직 파악은 하지 않았지만, 조사해볼까요?”

당연히 조사를 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카리아는 기계적으로 반응했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앞으로 이블랜드의 정황은 방구석 폐인인 라그나베일이 아니라 그녀에게 묻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카리아에게 청탁을 겸해 다양한 음식을 앞에 놓아주었고, 그녀는 괜히 라그나베일이 거슬려 하는 것은 아닌지 눈치를 살폈다.

“와! 깨는데? 부인이 친동생인 줄 알았는데, 재산을 노리고 들어온 남이었네? 오히려 연적이랑 친자매래? 지구인들 상상력 미쳤네.”

그런데 라그나베일은 여전히 TV에만 빠져있었다.

이딴 게 한 지역의 대표를 자청해도 되는 걸까?

비록 악마라 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해가 바뀌고 우려와 달리 큰 위기 없이 시간이 흘렀다.

지구는 점점 가속도가 붙듯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는데, 각국 주요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 도시들도 확실히 자리를 잡으면서 도시 단위의 행정체제가 무리 없이 국가 단위 행정체제로 이어졌다.

아직 외곽에는 몬스터도 많고 같은 인간을 해하는 범죄집단이 단체를 이루고 있지만,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시의 경우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비록 대격변 이전의 재산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나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노동을 사용할 경우 예전처럼 무상으로 노역을 징집하지 않고 일정량의 보수를 지급했다.

이는 수행자 연맹의 권고사항이었는데, 덕분에 연맹을 중심으로 발행된 루트화가 빠르게 확산되어 서민들의 생활 속에 파고 들었다.

예전에는 이렇다 할 화폐가 없어 물물교환으로 장터가 돌아갔다면 이젠 루트화를 받고 물건을 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정부는 국가 공업사에서 제작한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을 운영했으며, 연맹에서도 천공의 성과 천공의 도시에서 제작한 다양한 물품을 판매했다.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나 싶을 때, 각국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건 바로 지훈과 수행자 연맹이 파격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수행자 연맹의 독립선언, 뉴베르트시를 중심으로 도시국가 베르트 공화국의 탄생.]

[조지훈 의장의 베르트 선언문: 세계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각국의 건전한 체제확립을 위한 감사단체를 운영할 예정이다.]

[자국에 남기로 한 수행자 227명 연맹 탈퇴. 하지만 베르트 공화국 소속으로 8천여 명의 수행자와 선행자(낙오자)가 남기로 하다.]

[주요국가 수장들은 베르트 공화국의 설립을 축하하면서도 세계를 아우르는 상위단체의 출범이 아니냐며 강한 우려를 표해.]

[전 세계 국가들이 베르트 공화국의 보호를 받는 형태가 되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몇몇 국가에 수행자가 집중되다 보니, 국가별 위기관리 능력이 지나칠 정도로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해당 국가가 잘나서라기보다 잘난 수행자들이 해당 국가에 소속된 것일 뿐 나라의 덕이 아니었다.

아직 많은 국가가 여전히 존치 여부가 불분명한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태인데, 수행자 덕을 보는 일부 국가들이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여가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에 연맹의 회장으로서 이 상황을 잠자코 지켜볼 수 없던 지훈은 결국 국가로부터 수행자 연맹을 완전히 분리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수행자들을 국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닌 등급으로 나눠 고르게 배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강력한 반발과 부딪히게 되면서 적지 않은 마찰이 발생했다.

‘착각하지 마라, 수행자들은 국가의 개가 아니다.’

결국, 분노를 터뜨린 지훈은 예전부터 제안이 끊이질 않던 수행자만을 위한 국가 설립을 총회의에서 의결을 붙여 버렸고, 전체 수행자 중 90%가 찬성을 하면서 베르트 공화국이 탄생되었다.

덕분에 기존 국가들의 꼴이 우습게 되었다.

고위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선 타국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예전엔 자국의 수행자들을 활용하면 되었지만, 이제 수행자들은 베르트 공화국 소속이 되었기에 별도의 파견 요청을 해야 했다.

가뜩이나 대단했던 연맹의 위세는 이제 하늘을 뚫을 정도였고 나라 위에 베르트 공화국이 존재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또한 베르트 공화국의 의장인 지훈을 명실상부한 황제로 치부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새로운 독재 체제의 확립이라며 베르트 공화국을 비난했다.

‘조지훈이 사람들의 목숨을 인질로 권력투쟁을 하고 있다.’

‘뮤대륙에서 황제가 되더니, 지구에서까지 황권을 확립하려 한다.’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이는 천공의 도시까지 울려 퍼지지 않는 지상의 메아리일 뿐이다.

수행자들이 등급별로 각국에 고르게 배치가 되니, 약소국들의 안정성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일부 국가 국민들이 지훈을 욕해도 그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지훈을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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