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31화
105. 평화의 시대
[남쪽의 왕 브람기슈 레이드 결과]
1. 라그나베일 38.2%
2. 조지훈 23.3%
3. 아리엘 9.0%
4. 엘리시아 8.4%
5. 이브릴 5.6%
…….
역시 브람기슈를 처리하니 그라디스 때와 같이 레이드로 인정되었다.
다만 아까운 점이라면 크리드의 경우 그라디스의 사역마 취급을 받았는지, 따로 레이드 결과가 뜨지 않았다.
1위는 어쩔 수 없다지만 내 기여도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아무래도 영겁의 사슬로 브람기슈를 묶은 데다가 라그나베일의 전투에 도움을 준 것이 높게 평가된 모양이다.
[선택형 전설급 보상카드 1장을 획득했습니다.]
[전설급 보상카드 2장을 획득했습니다.]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 5장을 획득했습니다.]
[기여도에 따른 포인트 2,330,000을 획득했습니다.]
[3대 악을 처치하여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이로써 퀘스트 보상까지 더해 선택형 전설급 보상카드 3장에 일반 전설급 보상카드 7장, 최상급 보상카드 5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보상카드보다도, 라그나베일의 이름을 보는 순간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가만히 하늘을 올려보는 라그나베일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2차전으로 이어지는 건가?]
라그나베일을 처치하기 위해선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그와 함께 합을 맞춰 봤기 때문일까?
악마란 종족에 어울리지 않게 강직한 성격이 싫지만은 않았다.
더구나 그는 미드랜드와 하이랜드는 커녕 다른 종족에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라그나베일의 이야기에 동료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전투를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는데, 두 대천사가 날개를 활짝 편 채 라그나베일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은 포스가 대단했다.
“베일님께선 다른 영역을 침공할 생각이십니까?”
내 물음에 물어서 뭐하냐는 듯, 아리엘 성녀가 미간을 좁혔다.
[그럴 수도 있지.]
그에 나와 봉봉이를 제외한 모두가 전투태세를 보였다.
브람기슈의 저주가 사라지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부상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꾸물꾸물 뼈와 근육이 더해지며 두 번째 머리가 생성되고, 제 기능을 잃은 날개들은 벌써 회복해서 펄럭일 때마다 충격파가 만들어졌다.
이 이상 시간을 끌어 좋을 게 없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
“오늘은 이만하도록 하죠.”
하지만 나는 전투 대신 휴전을 선택했다.
이런 나를 보며 모두가 눈을 크게 떴고, 라그나베일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했다.
하늘을 가득 채운 검은 기운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붉은 눈동자 두 개.
곧 나를 향하는 눈동자는 네 개로 늘어날 테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진심인가?]
녀석은 황당함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나도 미래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은 녀석을 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과 달리 감성은 녀석을 쳐선 안 된다고 한다.
원래부터 느낌 같은 불확실한 감정을 계산에 넣지 않는 주의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그다지 정상적이라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보유 스킬인 ‘직감’에 영향은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네, 베일님께서도 별로 싸우고 싶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동료들이 있기 때문일까?
당돌한 내 대답에 라그나베일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움찔 놀란 동료들이 무기를 들어 올렸지만, 나는 그들을 다시 한 번 제지했고, 이런 내 모습에 라그나베일이 연기가 되어 흩어지더니 내 앞으로 날아와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게 공격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연기는 작게 응축되어 알의 형태가 되었고, 곧 알은 다시 연기로 흩어지며 라그나베일이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그 외견이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여서 당혹스러웠다.
“꽤나 깜찍한 모습이시군요.”
라그나베일이 변신한 인간의 외형은 10살이나 됐을까 싶은 소녀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아, 한때 키웠던 인간의 모습이다. 딱히 표본으로 삼아야 할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야.”
그런데 말투는 아저씨.
더구나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게 영락없는 중 2병 캐릭터로 보였다.
혹시 안대에 가려진 한쪽 눈이 다른 쪽 머리를 의미하는 걸까?
쌍두룡이라고 해서 ‘트윈 헤드 휴먼’으로 변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보다 나는 라그나베일이 인간 소녀를 키웠다는 점에 관심을 보였다.
“인간의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다니, 악마치곤 특이하시군요.”
“우연치 않게 이블랜드에 흘러들어온 아이에게 먹이를 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떠돌이 늑대에게 물려 죽었지. 인간은 참 약한 종족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 소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꽤나 강인하게 뇌리에 각인 되어 있는 모양이다.
라그나베일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이지만, 그의 모습과 언변이 다른 악마들과 다르다고 느껴졌는지, 모두들 표정이 누구러졌다.
단, 아리엘 성녀와 엘프 퀸 루미엘을 빼고 말이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설마 라그나베일과 손이라도 잡을 생각이세요?”
아리엘 성녀가 기겁해서 목소리를 높였으나, 나를 대신해 바르토스 황제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뭔가 이유가 있겠죠.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합시다.”
참고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원 중 수행자가 아닌 사람은 하이랜드 각국의 대표와 아리엘 성녀, 봉봉이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보낸 시간이 짧지 않아서인지 대체적으로 내 의사를 존중해주고 있었다.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나는 라그나베일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제 직감 스킬 때문인진 몰라도 라그나베일 님과 싸워선 안 된다는 기분이 강하게 듭니다.”
그에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라그나베일이 금빛이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로 관심을 표했다.
“그렇군.”
단답형의 대답이지만, 그의 대답엔 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내 생각을 긍정하는 듯한 말투였으니 말이다.
“혹시 제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까?”
그에 라그나베일은 씩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디스와 브람기슈를 처리하고 너흰 기분이 매우 좋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좋아해선 안 되지.”
내가 무슨 뜻이냐며 의아하단 표정을 짓자 그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답했다.
“재앙은 끊이지 않고 너희를 시험할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죠?”
“너희에게 가장 베스트는 얌전히 이블랜드에 처박혀 있는 3대 악과 눈싸움만 벌이는 거였다. 비록 그라디스와 브람기슈의 돌발행동으로 깨지고 말았지만, 이로 인해 되돌아올 리바운드는 무시하기 힘들 테지.”
가장 위협이 되는 강대한 적을 제거했다.
당연히 기뻐해야 마지않는 상황이고 그에 따라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마치 예언을 하듯 좋지 않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세상은 양과 음,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이는 세상이란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 법칙이며 변경이 불가능한 고정의 영역이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라그나베일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의 힘은 나를 비롯해 3대 악이란 매개체에 집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라디스와 브람기슈가 사라지면서 매개체를 잃은 막대한 음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퍼질 수밖에 없지.”
나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고,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동료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말은 3대 악 급의 존재가 다시 생길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세상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흉악범죄자가 급증하고, 강력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등. 그 힘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세상을 돌고 돌 테지.”
머리론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쉬이 납득하긴 힘들었다.
아니, 단순히 납득하기가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기껏해서 위기를 넘겼더니, 그 위기는 아직 끝이 아니란 소리였으니.
“3대 악 하나하나가 짊어진 음의 힘은 상당한 수준이지. 우리의 힘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대천사 둘이 강림해 싸워도 밀리지 않는 존재니까. 아마 1:1로는 이 위에 있는 신족들과 겨뤄도 해볼 만할 거다.”
그에 아리엘 성녀가 그럴 리가 없다면서 라그나베일을 쏘아붙였다.
“단순히 당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악의가 차오르는 걸 가이아께선 바라시지 않을 테니까요!”
신앙심에서 오는 믿음이지만, 지금은 그녀의 말이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엘 성녀의 이야기에 라그나베일은 이죽거리듯 실소를 흘렸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리고 라그나베일을 중심으로 검은 기운이 일렁이고 살 떨리게 만드는 살기에 호의적이던 나조차 무기에 절로 손이 갔다.
“내가 부상을 입었다고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로 보이던가? 브람기슈를 쓰러뜨리고 고무된 것은 알겠지만, 내가 없었다면 너흰 크리드를 부리는 브람기슈에 전멸했을 거다.”
그의 말대로 이번 승리는 어부지리였다.
그야말로 천운.
눈 앞에 있는 귀여운 소녀의 존재감을 잠시 잊은 이들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그만하시죠.”
내 제지에 라그나베일은 간단하게 힘을 거뒀다.
아무래도 그는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리엘 성녀는 비틀거렸고, 바르토스 황제가 그녀를 부축했다.
“범죄 증가 및 몬스터의 중동은 그리 무섭지 않습니다. 오히려 3대 악이란 미증유의 힘이 버겁죠.”
“긍정적인 사내로군…….”
“오래전부터 계산적이라며 인간미가 없다는 말도 들었던 사람으로서 생소한 칭찬이네요.”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저도 많이 변하긴 한 모양입니다.”
잡설은 이쯤하고 나는 가장 중요한 본론으로 넘어갔다.
“진하게 여쭙겠습니다.”
“말해라.”
“개인적으로 베일님과는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예전처럼 이블랜드를 지켜주시지 않겠습니까?”
귀찮게 쳐들어오지 말라는 말.
라그나베일은 한참 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곤 순진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아무리 상대가 악마라 해도 내뱉은 말을 쉽게 뒤집을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안도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3대 악이 내거는 조건이란 말에 나는 절로 긴장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뭐죠?”
“살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무료한 일이 많아서 말이야. 너 내가 부르면 날아와라.”
“네?”
그 말은 친구라도 하잔 뜻일까?
내가 황당하단 표정을 짓자 녀석은 내 등을 퉁퉁 두들기고는 자신의 레어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참, 마지막으로 해 줄 말이 있다.”
그런 라그나베일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우리에게 그는 잊은 게 있다는 듯 무표정하게 말했다.
“가이아를 너무 믿지 마라. 세상을 이리 설정한 것은 그녀니까.”
그리고 그는 연기에 휩싸이더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늘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검은 동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명실상부한 뮤대륙의 절대자였다.
* * *
결론적으로 내가 이블랜드로 향한 것은 정답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미드랜드에서도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며, 하이랜드와의 관계가 재확립 되면서 라인 산맥에 막혀 있던 양 진영 간의 교역이 실시 되었다.
당연하지만 하이랜드와 최대의 교역량을 자랑하는 단체는 베르트 상회였으며, 나는 어김없이 막대한 재화를 쓸어 담으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브람기슈와의 전투가 끝나고 미드랜드 시간으로 50여 일, 현실 시간으로 10일이 흘렀다.
7회차 수행자들은 이제 제법 뮤대륙에 익숙해져 자신들의 힘을 키워가는 중이며, 라그나베일의 충고를 새겨들은 미드 랜드 국가들은 사건 예방을 위해 예전보다 몬스터 퇴치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범죄에 대비해 경찰 역할을 해줄 경비병의 존재를 확충했으며, 상류층의 악행을 막기 위해 왕실 또는 황실 직속 감사팀을 확충했다.
‘꾸준히 사냥을 하고 있음에도 몬스터의 등장 주기 빨라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이루는 오우거가 발견되었습니다. 급속도로 숫자를 불리고 있어서 조치가 필요할 듯싶습니다.’
‘범죄 조직들의 준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검은 이빨이란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선 기사단을 대거 동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해도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만다고 라그나베일의 경고는 그대로 이어졌다.
그나마 발 빠른 대처 덕에 문제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일 리가 없으니 삶을 위협하는 위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