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227화 (227/247)

# 22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27화

103. 하루 전(1)

“아빠! 아빠!”

두터운 카펫이 넓게 깔린 방.

뻗어오는 작디작은 아들의 손을 붙잡은 나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이게 대체…….”

현재 내가 위치한 곳은 베르트 황궁.

거기서도 내 아들인 로아의 방이다.

옆자리엔 클로이가 앉아 있었고, 김선아는 새롭게 만든 모빌을 로아의 침대 옆에 설치하는 중이었다.

로아와 놀아주다 말고 갑자기 정색을 해서 일까?

“왜 그러세요?”

클로이는 큰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물음에 자연히 김선아의 시선도 이쪽을 향했다.

나는 로아를 클로이에게 안겨주고는 아직 진정되지 않는 감정을 추스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맑은 쪽빛의 하늘과 검은 하늘이 겹쳐지고, 탁 트인 시야가 붉게 물드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경험.

잊고 싶지만,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기억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건 바로 내일의 기억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김선아와 클로이를 보며 말했다.

“시간 회귀가 사용된 것 같아.”

“네?”

길지 않은 설명.

하지만 내 말뜻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 두 사람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시간 회귀 / 1회 용 특성 / 1,000,000 포인트]

-지구를 기준으로 24시간 전으로 회귀를 한다.

-사망 시 자동으로 사용.

-이미 사용한 사람의 경우 다시는 사용할 수 없다.

그건 두 달 전 그라디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포인트 상점에 구입했던 안전장치였다.

이 말은 즉, 지금 나는 죽고 저 스킬로 인해 하루 전으로 회귀한 상태라는 것이다.

“아, 맞아.”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을 열어 스테이터스 밑의 옵션 기능을 살폈다.

그리고 그 옵션 기능에서 시간 회귀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왜, 왜요? 어쩌다가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는 클로이.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일 이블랜드의 악마들이 몬스터를 앞세워 미드랜드로 침공을 하거든.”

“하이랜드를 치는 게 아니었나요?”

“모르겠어, 워낙 초반에 죽어서.”

“…….”

나를 비롯해 미드랜드의 주요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악마종은 굳이 힘들게 바다를 건너 하이랜드로 향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편하게 미드랜드를 거쳐 라인 산맥을 넘으면 되는 일이었으니.

죽기 전에 경험했던 일을 알려주자 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미래시가 반응하지 못한 공격.

내가 눈을 뜨기 직전 이어졌던 성녀의 다급한 외침을 떠올리면 라그나베일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그라디스를 상대할 때도 이런 황당한 일은 없었어.”

라그나베일이 브람기슈를 잡아먹고 파워업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까?

하지만 단순히 파워업을 했다고 사고가속과 미래시를 뚫는 공격을 할 수 있다고 보긴 힘들다.

그라디스와의 전투가 거대한 산과 싸우는 느낌을 받긴 했어도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라그나베일의 존재감조차 느껴보지 못하고 이어진 일방적인 사망은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날을 꾸준히 준비해왔지만 결과는 속절없는 죽음.

클로이는 로아를 끌어안으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고, 김선아 역시 바짝 다가와 나를 바라보았다.

“막아내야지.”

다른 방법은 없다.

로아는 예정대로 상황을 봐서 수행자로 만들 생각이고, 내일 있을 전투를 대비해야 한다.

다만 어제처럼 평범하게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일단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겠어.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 건 사양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일 이블랜드의 침공이 시작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점.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 * *

봉봉이와 수호자들이 하루 빠르게 뮤대륙으로 소환되고.

아리엘 성녀 및 미드랜드 각국 정상들과 하이랜드를 대표해 엘프 노바, 드워프 쿠루스 장로가 긴급회의에 참여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사람들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었고, 아리엘 성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가뜩이나 무서운 악마들의 왕이 이런 변수까지 들고나오다니.”

바르토스 황제의 혼잣말에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가 슬쩍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누구 하나 내 말을 의심치 않는다.

아마도 그는 내 이야기가 진짜냐며 태클을 걸지 않는 점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심지어 자국의 위대한 대마법사 9서클의 델피로 공작도 심각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위스워드 황제의 기분을 맞춰줄 정도로 여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건, 나는 동료가 된 미드랜드 평화위원회 소속 인물들과 하이랜드의 장로, 성녀들과 대안을 찾아 고민했다.

“둘을 상대하는 것보다 한 놈을 상대하는 것이 더 위험요소가 많은 것 같죠?”

포인트 때문에 얼마 전에서야 자신의 경지를 공개하고 공작위를 받은 구미호의 연인 아르비스 공작이 물었다.

그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할 순 없지만, 그라디스 정도라면 이렇게 뜬금없이 당하진 않았겠죠.”

이미 그라디스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긍정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굳건했던 시스템을 무시했다는 것이 무섭군요.”

어떤 공격이든 미래시를 켜놓은 상태라면 맥없이 당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나는 사고 가속까지 사용한 상태가 아니던가.

그리고 함께 전멸을 당했던 특공대는 모두가 그라디스와의 전투에서 사고가속 스킬을 손에 넣었으며, 일부는 미래시까지 보유하고 있던 만큼 내 착각 같은 게 아니었다.

“혹시 브람기슈에게 라그나베일이 잡아먹으려 들 거란 사실을 알려 주는 게 어떻겠는가? 잘하면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드워프 장로 쿠루스의 의견이었다.

노바는 그런 쿠루스를 보며 그게 말이 되냐며 쓸데없는 말 말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 의견의 가능성을 따졌다.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내가 긍정하자, 쿠루스는 노바에게 거보란 듯이 턱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때.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있던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가 실소를 흘리자 회의장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얼떨결에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게 된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찌 웃음이 나지 않겠소? 브람기슈와 협상을 하겠단 뜻이 아니오.”

그에 델피로 공작이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자신의 황제를 노려보며 눈치를 주었다.

“아니, 그도 그럴 게 상대가 이블랜드의 마왕이 아닌가? 그런 존재에게 협상이란 게 가능할 리가 있나.”

지금 대륙의 위기상황이고, 뭐라도 시도해야 할 판에 지레 결론을 내리고 분위기를 이상하게 몰고 가는 게 여러모로 거슬렸다.

황제가 위스워드 제국에서 황제지, 뮤대륙 전체의 황제인 건 아니지 않나.

내가 황당하단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노바가 말했다.

“이 머저리는 뭡니까? 설마 이런 게 한 나라의 대표라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가요?”

모욕적인 언사에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며 눈을 껌뻑였고, 동석해 있던 델피로 공작과 아르비스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두 사람이 대신 사과를 하자 위스워드 황제가 버럭 성을 냈다.

“아니, 내 말이 틀렸나? 그리고 어찌 하이랜드의 특사란 존재가 그리 막말을 한단 말인가. 이는 미드랜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도 있네.”

그에 짧게 혀를 찬 내가 말했다.

“이 자리의 누가 브람기슈와의 대화가 쉽게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겠습니까? 어려운 게 당연하죠. 하지만 그냥 잠자코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이러는 것 아닙니까.”

얼마 전 포인트 때문에 델피로 공작에게 황좌를 물려줬다가 되찾는 헤프닝이 벌어져서인지, 정신 줄을 살짝 놓은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

“따로 좋은 의견이 있다면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실컷 비꼬던 인간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가 심각한 이 때에 위기감이 부족해 보이시는군요.”

위스워드 황제는 누구하나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헛웃음을 흘리곤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그의 입장에선 엄청난 수모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추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집어치우라는 듯 손을 내젓고는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브람기슈와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적절히 이어진 아르비스 공작의 화제전환.

그렇게 회의가 재개되었고, 드워프 장로 쿠루스가 말을 이었다.

“녀석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하는 게 어떨까 싶네만.”

“선물이요?”

당혹스러울 정도로 단순한 의견.

하지만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그의 말대로 상대가 혹할만한 선물이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물론, 적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상황이 거슬리지만, 죽음을 경험한 직후였기에 뭐든 최악의 상황을 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녀석은 원하는 것을 뭐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입니다. 브람기슈가 만족할만한 물건은…….”

“왜 하나 있지 않은가.”

줄만한 선물이 있지 않냐며 나를 은근히 바라보는 쿠루스.

내가 의문을 표하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오해하지 말고 듣게.”

“말씀하세요.”

“수행자 지정권을 주겠다고 하면 아무리 마왕이라도 관심을 안 가질 순…….”

-쾅!

왜 그렇게 뜸을 들이나 했는데 상상치도 못한 제안을 해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고, 성녀 옆에 있던 수호자 크리드 추기경이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황제들이 모인 자리임에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 씩씩댔다.

브람기슈를 수행자로 만들다니,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쿠루스가 단순해 보여도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는 그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녀석을 속이자는 건가요?”

“그래, 그렇지! 역시 자네는 말이 잘 통해!”

덕분에 당황했던 쿠루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는 크리드 추기경의 옷자락을 당겨 억지로 앉혔고, 움찔거렸던 쿠루스가 뒷목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일 뿐, 정말 주자는 게 아닐세. 일단 수행자 지정권을 앞세우면 충분히 브람기슈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거란 점을 집은 거지. 그럼 대화의 여건은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거짓말이라도 일단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였다.

“위험하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심이십니까?”

다소 황당한 계획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브람기슈와 라그나베일을 대립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만약 두 녀석이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 입장에선 베스트의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니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니 희박하죠.”

그야 그렇지.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게 좀 황당한 계획인가?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죠. 대화가 안 통하면 우리가 이블랜드로 들어가 선공을 취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긍정하자 대체로 판단에 따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사지가 될지도 모를 장소에 누굴 보내죠?”

일반 병사가 이블랜드를 활보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하기 일쑤.

그래서 어느 정도 강한 존재를 보내야 했는데,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면 신분도 어느 정도 받쳐줘야 했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고, 그에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내가 말했다.

“제가 가도록 하죠.”

그에 모두의 크게 놀랐다.

가장 경악한 사람은 아까 시비를 걸던 위스워드의 황제였다.

그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왜 그런 짓을 하냐는 것처럼 눈빛으로 따져댔다.

“위험합니다!”

더불어 노바가 내 호위라도 된 듯 절대 불가를 내뱉었으며, 바르토스 황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짚었다.

“죽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생길 경우 도망칠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연맹의 부회장으로 동석하고 있던 김선아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고, 그런 그녀를 병풍처럼 서 있던 청아(마리오네트)가 부축해 주었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하면 시간 정지를 사용해 도망치면 그만. 누구든 쉽게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부디 우리의 추측과 그들의 생각이 같은 범주에 속해 있길 바라야겠군.’

그렇게 내가 이블랜드로 향하는 것이 결정이 나고.

나는 아리엘 성녀에게 부탁해 신성력의 기운을 감췄다.

그리고 바로 ‘남쪽의 왕 브람기슈’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