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26화
지구는 대격변 이후 마나가 세상에 퍼지면서 몇몇 원소의 성질이 변형되었다.
반도체 소재 외에도 대표적으로 우라늄, 플루토늄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인류는 최강의 병기라 할 수 있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럼 수소폭탄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애초에 수소폭탄의 기폭제가 핵인 만큼 큰 변화는 없다.
몇몇 국가에서는 수소폭탄의 기폭제를 핵이 아닌 마법으로 대용할 수 있을 거라며 연맹에 연구 협조를 요청했지만, 지훈은 현재 전력으로 상대 못 할 적에겐 수소폭탄도 무용지물이라 생각했기에 거절했다.
즉, 현재 지구의 기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탄두 중량을 높인 열압력탄 정도란 소리다.
하지만 ‘핵무기가 아닌 이상, 이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는 공격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행자들은 생각했다.
-콰아아아앙!
수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일어나는 연쇄 폭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충격파가 프리우스 왕국 이블랜드 방향 요새까지 전해져 왔다.
요새는 아무래도 규모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부분의 병력은 대마법사들이 세운 석벽 뒤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호기심에 고개를 벽 너머로 내밀었던 병사들은 충격파에 밀려 뒤로 낙하하고 말았다.
지훈이 생각지 못한 특공대의 폐해였다.
기사 수준도 안 되는 7회차 수행자들은 이번 전투에 동원되지 않았으며, 이제 겨우 익스퍼트 중급을 바라보는 6회차 수행자들은 바보처럼 입만 벌렸다.
“이게 인간의 싸움이라고?”
“그, 그러게.”
검과 마법의 세상.
꾸준히 성장해 나가면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아무리 봐도 이건 초월이란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범주를 씌우는 것 자체가 저들에게 실례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대체 회장님은 뭐지? 1회차 수행자분들 보면 마스터도 되기 힘들어 보이던데, 하이 마스터에 8서클 마법사라니.”
“그뿐이냐? 전투 마리오네트 봐봐, 저걸 매달 사 모으는 것도 대단하다. 대체 포인트를 얼마나 모으시길래.”
“포인트 때문에 황제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마석분해로도 많이 모으신다나 봐.”
“던전에서 얻을 수 있다는 히든스킬? 그걸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었어? 백금화 1개로도 겨우 50포인트 모인다던데.”
“잊었냐? 베르트 상회가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아아…….”
같은 1회차 수행자인데도 2등인 김선아, 히로시와 회장인 지훈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다.
같이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차이를 벌릴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인생 2회차란 소문이 있더라.”
누군가의 말에 농담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가.
신이 있고 악마도 실존하는데, 회귀자라고 없을까.
“그건 아닐걸. 회장님은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이것저것 대비를 많이 해놓으시는데도, 돌발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고 하니까. 이번 전투도 엘프들이 알려주기 전까지 전혀 예상 못 했다잖아. 그라디스와의 전투도 그랬고.”
“단순히 자신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어서 그런 거 아닐까?”
진지하게 거론되는 조지훈 회귀자 설.
본인이 들었다면 헛웃음을 흘릴만한 대화 내용이지만, 하늘을 가르는 공격을 보며, 모두 그럴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특공대 중 한 명이 섬광탄을 터뜨렸다.
그것이 백작위 이상 고위 악마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수행자들은 마른침을 삼켰고, 머지않아 사살을 표시하는 붉은 신호탄 터지자 다시 안도했다.
선봉으로 나선 특공대의 활약에 적군이 줄어드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하늘을 검게 채웠던 드레이크나 와이번들은 꼬리에 불을 달고 추락했으며, 바닥에 터널이라도 있는지, 강을 뚫고 나타난 몬스터와 악마종이 내디딘 땅은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분명 9서클의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지훈과 마리오네트들이 사용하는 마법의 임팩트가 더욱 강렬하고 화려했다.
회차가 낮은 수행자들은 왜 그렇게 지훈의 추종자가 많은지 납득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전투를 끝내줬으면 하지만…….”
“쉽진 않겠지.”
직접 보진 않았어도 악마들의 왕이 얼마만큼 강한지는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특공대의 활약은 군대의 부담을 덜어주지만, 이번 전쟁의 향방은 전적으로 브람기슈, 라그나베일과의 전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수행자들을 포함해 미드랜드, 하이랜드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저들의 활약을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 * *
매캐한 탄내.
시야를 가리는 연기가 구름처럼 허공을 수놓는다.
잠깐의 전투로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사살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
마음먹고 공격을 날리면 개떼처럼 몰려드는 몬스터 1만을 사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허공을 까맣게 채우던 몬스터는 대충 정리가 되었고, 간간이 달려드는 작위 악마들을 처치하며 등 뒤 요새에 자리 잡은 부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녀석은 움직였습니까?”
바삐 몬스터를 사살하며 허공에 말을 하자, 아리엘 성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뇨. 아직 그 둘은 이블랜드 깊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거리가 아니어서 퍼밀리어를 통신용으로 성녀에게 맡겨놓은 것이다.
나는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브람기슈와 라그나베일을 떠올리며 다시금 눈앞의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지금까진 순조롭다.
남아있는 보스를 생각하면, 지금 처리하는 적들은 잔몹에 지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뒤를 안전하게 해둬야 마음이 편했다.
우리가 2대 악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면 이 녀석들과 싸우는 것은 등 뒤에 있는 군대였으니 말이다.
그 군대엔 소드마스터와 7서클의 대마법사, 엘븐하임의 대정령사도 있었지만, 김선아, 정우, 인식이 등 함부로 쓰러지면 안 될 소중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쉬지 않고 몬스터 처치에 열을 올렸다.
몬스터들 입장에서 재앙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녀석들도 각자 목적이 있을 텐데, 내 손짓 한 번에 먼지가 되어 사라지니 말이다.
[베르트 폐하!]
그렇게 얼마나 몬스터를 처치했을까.
파워 부스트까지 사용했던 나는 엘릭서로 상태 이상을 회복하며, 다급한 성녀의 외침에 반응했다.
“무슨 일입니까?”
불길한 외침.
성녀는 몹시 당황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브람기슈의 신호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라그나베일의 힘이 더욱 강해진 것이…….]
“네?”
설마 라그나베일이 브람기슈를 처리하고 잡아먹기라도 했단 뜻일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악마들에게 의리를 바라는 것은 무리지만, 듣는 나도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1년 전까지만 해도 대륙을 위기에 빠뜨릴 주적은 브람기슈였는데.
만약 추측이 맞다면 황당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동급의 녀석이 그렇게 쉽게 잡아먹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라그나베일의 힘이 너무 강해져서…….]
어떻게 보면 힘이 집중된 라그나베일 하나를 처리하는 게 기존의 둘을 처리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설마 한 놈을 잡아먹었다고 두 배로 강해지진 않았겠죠?”
[그것까진 정확하게 판가름이 안 됩니다.]
결국, 부딪혀봐야 한다는 소린가?
그냥 ‘깔끔하게 하나만 잡는 것도 나쁘지 않지.’라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갑작스런 변수의 등장은 결코 유쾌하게 여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고위작위 악마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 연달아 터졌다.
고위작위 악마가 무리를 이뤄 공격해왔다는 신호.
나는 마리오네트 팀과 함께 해당지역으로 블링크를 했다.
[염귀 베르토스 공작]
[다크엘프 아르시오 공작]
[베히모스 데이커 공작]
그랜드 마스터급인 공작과 후작 작위를 가진 악마의 대거 등장.
공작 작위 다섯에 후작 작위 여덟.
무려 열셋에 달하는 그랜드 마스터급의 존재였다.
세 지역의 악마들이 연합한 것 치곤 수가 애매한 것 같은데, 내가 사전에 몇 마리 쳐냈기 때문에 그렇다.
수가 많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전설급 보상 장비인 성검 ‘어스뮤’와 ‘영겁의 사슬’.
전설급 스킬인 ‘파워 부스트’, ‘시간 정지’, ‘사고 분할’ 등으로 강화된 상태였으니.
[사고 분할 / 액티브 / LV10]
-최대 3개로 사고를 분할 할 수 있다.
-동시에 복수의 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으며, 하이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의 경우 어검과 심검의 컨트롤 가능 수량이 늘어난다.
-지속형 스킬로 꾸준히 마력을 소모한다.
‘사고 분할’은 사고 가속, 미래시, 시간 정지와 상충하는 스킬로 굉장한 효율을 발휘한다.
여기에 파워부스트와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된 템빨이 더해지게 되면, 오러를 쓰지 않고 순수 8서클 마법 하나만으로도 9서클의 마법사를 압도한다.
더불어 내가 사용하는 스킬은 마리오네트들에게도 공유가 된다.
전투 마리오네트는 8서클로 세팅이 되어 있긴 하지만, 스킬로 인해 9서클급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포인트 샵에서 판매하는 상품 중 가장 효율이 좋은 장비는 전투 마리오네트였다.
제한적이나마 주인의 능력을 계승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투 마리오네트 덕분에 단순 쪽수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나는 길게 눈 싸움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시간 정지를 사용했다.
시간 정지의 유지시간은 2초.
공작 하나를 영겁의 사슬로 포박하고, 나머지 다른 한 녀석을 공격했다.
-콰아앙!
시간 정지는 세상의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일정 범위 내 있는 상대의 생체 시간을 빼앗는 것이다.
때문에 안일하게 공격을 했다가 상대방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아티팩트를 갖고 있으면 당황하기 일쑤다.
템빨은 나의 전유물이 아니며, 더구나 이 정도 수준의 적이라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스슥!
나는 뺨을 스치는 8서클 대인 공격마법 세이크리드 데스를 피했다.
사실 공격이 튕겨져 나올 것은 미래시로 예측하고 있었다.
‘어떤 장비든 특수 기능은 횟수 제한이 있지.’
그래서 나는 미래시를 믿고 계속 공격을 퍼푸었다.
-콰콰쾅!
그리고 시간 정지가 끝남과 동시에 한 놈의 상체를 날려버리는 데 성공했다.
사고 가속과 사고 분할을 이용해 겨우 2초 만에 10번이 넘는 마법 공격을 퍼부은 나였다.
“무, 무슨?”
적들 입장에선 갑자기 동료가 이유 없이 사망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격은 나뿐만이 아니라 마리오네트도 동시다발적으로 실행했다.
“뭐냔 말이다!”
영문을 모르고 하나둘 사살되는 악마들.
비록 나와 달리 마리오네트의 공격은 시간 정지 속에서도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포심을 심어주기 충분한 공격이었다.
전투는 시작과 동시에 우리의 우위로 이어졌다.
나는 영겁의 사슬에 포박돼 바둥대는 악마를 처리하곤 시간 정지 스킬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계속 사용했다.
덕분에 전투는 상상 이상으로 쉽게 끝이 났다.
우리 쪽은 단 한 명의 손실도 없었고, 공후작위 악마들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작위 악마를 모두 처치하면 나중에 우리 퀘스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흠…….”
승리에 고무될 법도 하지만 바르토스 황제는 대뜸 이런 의문을 표했다.
경지가 경지다 보니, 이들의 퀘스트 진행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모두 최상급 퀘스트 단계까지 발을 걸치긴 했지만, 아직 고위 악마종을 상대하는 퀘스트까진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더구나 이번 전쟁에서 라그나베일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마왕이라 불릴 존재가 없어진다.
나 이외에 마왕 관련 퀘스트를 깰 수 있는 사람은 없어지는 것이다.
“대안이 있겠죠.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시스템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가이아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려봐야 소용이 없다.
라그나베일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적이라 할 수 있는 공후작 악마를 쉽게 처리해서인지, 약간의 여유가 생긴 느낌이다.
그렇게 모두 실소를 흘리며 다시 몬스터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그때.
[베르트 폐하! 라그나베일이!]
아리엘 성녀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새빨간 빛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나와 특공대는 그대로 붉은 빛에 휩싸였다.
‘뭐지? 왜 미래시가 반응을 안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