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24화
101. 조짐(2)
이번에 드래곤 하트를 섭취한 미드랜드 평화 위원회 소속 멤버는 총 5명이다.
이미 두 달 전에 그랜드마스터가 된 미드랜드의 검성 바르토스 황제는 제외하고, 원래부터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구미호는 드래곤 하트를 섭취했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물론, 더욱 강해지긴 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든가 눈에 띄는 경지 상승이 없다 보니, 극적인 변화가 없다고 평한 것뿐이다.
개인적인 전투 능력은 나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그 외 위스워드 제국의 최고령 마법사 델피로 공작이 염원하던 9서클에 접어들었으며, 델피로 공작에 가려 항상 2인자 취급을 받던 마드세인 왕국의 라인하츠 공작 역시 9서클을 달성했다.
하지만 구미호의 애인이자 델피로 공작의 제자인 아르비스 공작과 로엘제국의 제일 검 테이트 공작은 아쉽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아직 8서클과 하이마스터 끝자락에 머물렀다.
아무튼 이로써 델피로 공작과 라인하츠 공작이 연맹의 투명 배지를 받으면서, 검은배지보다 투명배지가 많아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재 투명배치 등급의 수행자는 나와 구미호, 엘프 노바, 바로토스 황제, 델피로 공작, 라인하츠 공작까지 총 6명이며.
그 아래 등급인 검은 배지는 아르비스 공작과 테이트 공작, 엘프 이브릴까지 겨우 3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브릴에게도 드래곤 하트를 선물할까 생각했지만.
이브릴은 이번에 라인 산맥의 에이션트 드래곤 타우러스가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의 심장을 받기로 되었다며 사양했다.
현재 맛집처럼 자주 찾고 있는 포인트 자판기제 드래곤 하트는 성룡의 것인지라 고룡의 드래곤 하트를 섭취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분명한 것은 일반 성룡과는 비교되지 않는 마력이 깃들어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포인트 자판기에 풀리려나?
“무슨 생각하세요?”
김선아가 잡티 하나 없이 맑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환골탈태를 거친 그녀의 피부는 그야말로 비단과도 같다.
덕분에 경지 상승의 의욕을 크게 보이지 않던 클로이가 요즘은 부쩍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피부 미용을 위해 환골탈태를 하려 하다니.
드래곤 하트를 안전하게 섭취하기 위해선 적어도 마스터가 되어야 하는 만큼 그녀에겐 긴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 클로이의 경지는 익스퍼트 중급 수준.
특히 뮤대륙의 수행자가 지구의 수행자보다 성장이 더 느린 만큼 마스터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부인이 성장의 의욕을 보인다면 나로선 지원해 주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스승으로 엘븐하임의 그랜드 마스터 노바를 붙여주었다.
아무리 실력 상승이 쉽지 않다고 해도 그랜드 마스터가 스승이라면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전투 교범을 계속 사용하고 퀘스트도 빠르게 진행해 최상급을 뚫어 잠재력 향상 스킬을 얻는다면, 그녀도 언젠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잠시 드래곤 하트에 대해 생각했어.”
고개를 끄덕인 김선아는 손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우리가 있는 집무실 창문에선 성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에서 수행자 정복에 흰색 배지를 단 송민우가 음식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바구니를 들고 시종처럼 봉봉이를 따라다니는 게 보였다.
봉봉이의 간택 덕에 수호자가 되어 인생 역전한 송민우.
그런 그의 주요 업무는 봉봉이의 수발이었다.
“쟤도 많이 힘들겠네.”
“그래도 민우가 들어오고 엘리(봉봉이)가 더 밝아졌어요.”
이러다가 진짜 둘이 정드는 거 아닐까?
살짝 아빠로서 걱정이 되었다.
“루트화의 도입을 거부한 정부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러다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며 싸늘하게 물어오는 김선아의 모습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말했잖아. 루트화가 없으면 우리 연맹과 거래할 수 없다고.”
연맹과 거래를 못하면 교역을 못 한다는 뜻과 같다.
과연 누가 손해일까?
나는 어깨를 으쓱였고, 김선아는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 국가의 수행자들에겐 제가 당부해 놓겠습니다. 거래 시 무조건 루트화만 받으라고요.”
“그렇게 해.”
다시금 창문으로 시선을 옮겨 봉봉이와 송민우의 술래잡기를 구경했다.
“앞으로도 이런 평화가 지속되면 좋겠네.”
내 이야기에 김선아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왠지 불길한 대사네요.”
“그런가?”
* * *
“뭐? 그게 무슨 말인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연맹의 거래는 무조건 루트화로만 이뤄진다고요. 더 이상 물물교환은 하지 않습니다.”
일본 도쿄.
신 총리는 수행자들이 오우거 수정체를 판매하지 않자 리더인 히로시를 찾아갔고, 오늘도 어김없이 검은 코트자락을 멋지게 펄럭이는 히로시가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지, 지금 연맹의 요구에 불응했다고 이러는 건가? 그리고 물물교환이라니, 검은 마석처럼 확실한 결제 수단이 어딨다고.”
“분명 사전에 밝혔을 텐데요. 우린 예고한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그리고 연맹은 이제 검은 마석을 돈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단호한 히로시의 반응에 총리는 유이와 나츠오를 비롯한 일본인 수행자들에게 도움을 바라는 시선을 던졌지만, 모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수행자들이 친한파란 사실은 알고 이 자리에 앉은 거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일본은 한국 다음으로 뛰어난 수행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1회차 수행자도 무려 3명이나 보유하고 있으며, 히로시는 마스터에 올랐을 뿐 아니라, 1회차 수행자 중에서도 상위권인 나츠오 역시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더불어 일본은 필드에 오우거 비율이 높아 이들이 구해오는 수정체의 양이 상당했고, 한국과 미국에 이어 빠르게 기술을 복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수행자들이 수정체를 판매하지 않자,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린 딱히 친한파가 아닙니다. 그저 따르는 지도자가 한국인이었던 것뿐이죠. 그분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하나 없습니다.”
히로시는 일본의 수행자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지훈의 지지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훈은 부인인 김선아와 히로시를 수행자로서 동일하게 취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쉽지 않은 결정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 열렬한 지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총리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곤란한 기색을 보이자 히로시는 핀잔을 주듯 말했다.
“그러게 왜 쓸데없이 극우 진영의 레파토리를 따릅니까?”
현 총리는 대놓고 한국에 대해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친밀한 것도 아니었다.
기사에는 한국을 비난하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실렸는데, 현실에 기반해 한국과 자신들의 차이를 강조하고 연맹의 한국 편애에 불만을 드러냈다.
“극우 진영의 레파토리가 아니라, 대다수 일본 국민들의 생각이 그러하네. 힘없는 내가 뭘 어쩌겠는가.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에 따를 뿐이지.”
지나치게 솔직한 총리의 말에 히로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일본은 수행자들의 노력 덕에 시코쿠와 홋카이도를 복구한 상황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안전구역을 이용해 해당 지역에 거점 도시를 확보해놨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덕분에 일본 내에서도 히로시는 영웅취급을 받고 있으며 이전 총리 사건도 조용히 묻혔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국민 중엔 히로시를 포함한 일본 수행자들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연맹에서 탈퇴해 자체적인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이는 감정에 치우친 논리일 뿐 득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더불어 자신을 연맹의 회장인 지훈과 라이벌인 양 관계를 형성해서 히로시는 여러모로 곤란했다.
히로시는 지훈과 나란히 서고 싶지만, 실제 라이벌은 그가 아닌 김선아였으니 말이다.
“도쿄의 성역을 포함해 일본 안전구역에 거대한 성벽을 세워준 게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알고는 있네. 알고는 있지만, 규칙과 이성보단 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다고 총리까지 그러시면 안 되죠.”
지친 표정의 히로시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저는 진지하게 이 나라를 떠날까 고민 중입니다.”
당연하지만 충격적인 말에 총리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관방장관이 기겁했다.
그런데 나츠오와 유이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의 상황만 봐도 이 나라는 전혀 저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맹의 눈치만 보게 만들고 있죠. 회장님께서 일본의 태도와 우리 수행자들을 별개로 생각해 주셔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만약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이 나라를 떴을 겁니다.”
어차피 수행자들의 가족은 모두 천공 도시 뉴베르트에 살고 있다.
히로시는 연맹 내에서도 직급이 높아 좋은 저택을 배정받았고, 개인 비서와 요리사, 미화원까지 딸려 있었다.
수행자들은 각자가 소속된 국가로 출퇴근할 뿐이다.
“지, 진짜 그런다는 건 아니지?”
“차라리 지금의 제 생각을 신문에 실어 내보내세요. 연맹을 등지려 한다면 더 이상 이 나라에 있을 가치가 없다고요. 그리고 총리도 태도 확실하게 하시고요.”
히로시는 검은 코트자락을 펄럭이며 총리실을 벗어났고, 나츠오와 유이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는 이들에게 실소를 흘리곤 그의 뒤를 따랐다.
결국 총리는 연맹의 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루트화를 받아들이고 유통시키기로 말이다.
더불어 히로시가 시킨 대로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밝혔다.
[현 일본의 태도는 아주 불합리하다. 도쿄를 보호하는 성역은 연맹 회장님의 결정에 의해 설치된 거지, 우리가 정한 게 아니다. 그런 성역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연맹 회장님의 호의인 것이다. 음모론으로 그런 회장님과 연맹을 모욕하면 참지 않겠다. 최악의 경우 이 나라를 떠날 생각까지 갖고 있다.]
극우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절로 욕이 치미는 내용.
당연히 이는 히로시의 생각일 뿐이지, 모든 일본인 수행자들의 생각은 아니었지만, 혹시 이 내용이 지훈의 사주를 받아 작성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히로시는 도쿄를 활보하면서도 질문을 던져오는 사람들에게 신문 내용 그대로 답변했다.
덕분에 곳곳에서 매국노라고 욕을 하며 돌을 던졌지만, 히로시는 돌을 던진 사람을 과격하게 제압하며 말했다.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일본이 곤란한 거다.”
히로시의 태도와 말은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 * *
“아빠!”
봉봉이 때문에 익숙한 호칭.
하지만 나를 아빠라 부르는 이는 봉봉이가 아니었다.
“응, 그래그래.”
나는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들 로아를 안아 들었다.
이제 17개월 차가 된 로아는 14개월부터 걷기 시작해 이젠 성 내부를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다.
아직 의사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맘마와 물 정돈 직접 요구할 줄 알았다.
나는 벼락출세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황제는 황제다.
덕분에 항상 로아의 뒤로 마법사 2명과 성직자 2명, 기사 10명, 시녀 10명이 따라다녔다.
지금도 로아가 혼자 걷자 유모와 시녀들이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그나마 베르트 황실은 풍조가 자유로운 편이지만, 나와 황비, 황자 앞에선 모두가 긴장했다.
‘내가 아빠라니.’
아마 속으로 이런 말을 천 번은 넘게 내뱉었을 것이다.
봉봉이도 애지중지 키웠지만 너무 빠르게 성장해버렸고, 실제 피는 이어진 게 아닌지라 로아를 볼 때면 너무 신기했다.
나는 여느 지구의 아빠와 다름없이 로아를 앉은 채 황실 대전을 누볐고, 발코니에 서서 빠르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수도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럴싸하지? 로아가 똑똑하게 잘 성장한다면 이 나라는 네 것이 될 거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로아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모인 모양이다.
아이의 웃음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아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을까?
“폐하! 폐….”
누군가가 다급히 나를 부르며 황실 대전을 가로질렀다.
그러다가 로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게 입을 꾹 닫았으나, 황급히 달려온 인물이 베르트 제국의 대주교란 사실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무엇이 그를 이리도 당황시켰을까.
나는 로아를 유모에게 맡기고는 대주교에게 용무를 말하게 했다.
“이블랜드의 악마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