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23화
101. 조짐(1)
“오우거 수정체의 값이 많이 올랐다고 했지?”
“네, 처음 검은 마석으로 거래를 시작하고 거의 3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정부의 검은 마석은 대부분 오우거 수정체 구입에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죠.”
아무래도 오우거는 일반 군대로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수행자나 능력자들에게 구입하는 것이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검은 마석 타령을 하는 게 우리의 탓도 있는 것 같네.”
“하지만 시장경제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수요에 따라 값이 상승할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는 거죠.”
그래도 폭락이나 폭등은 국가에서 조절하기 위해 노력한다.
연맹도 조금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연맹의 회장으로서 수행자들의 이익을 줄이기 위해 억지로 값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건 흐름에 맞춰야 하는 법이니.
그래야 잡음이 적다.
“역시 결제 수단이 문제네.”
당연히 대안은 있다.
현재 검은 마석의 가치가 높은 이유는 화폐를 대신하는 유일한 안전자산이란 점 때문이다.
더불어 비밀 상점이라는 절대적 소모처가 있기에 이 상태로 두면 앞으로도 값어치가 치솟으면 치솟지 떨어질 일이 없다.
이는 한창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경제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결론만 말하자면 검은 마석에서 결제 용도를 분리하면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검은 마석은 본래 용도 그대로 비밀 상점용으로 두고, 정부에서 수정체를 구매할 때 다른 무언가로 결제한다면 검은 마석 확보를 위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즉, 대용 화폐가 필요하단 뜻이다.
화폐가 생긴다면 검은 마석의 가치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검은 마석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규제해서 억지로 떨어뜨리는 방식보단 미래지향적이지.”
헌터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 연맹 소속의 수행자들은 이로 인해 손해를 보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하지만 화폐를 제조할만한 신용도를 갖춘 국가는 이제 없지 않나요? 본위제도 나쁘진 않긴 하지만 그마저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요.”
“있잖아.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관이.”
내 말에 김선아는 눈을 크게 뜨며 진심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연맹에서 새로운 표준 화폐를 만들면 되지. 신용도도 높고, 영향력도 크고, 여차하면 화폐를 대체 할 수 있는 검은 마석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니.”
굳이 본위제가 아니더라도 수행자 연맹의 가치를 생각하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와의 거래에서 연맹의 화폐만 사용토록 하기만 해도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어.”
현재 국가 간 교역은 수행자 연맹이 있기에 유지되고 있다.
연맹이 없다면 국제 경제는 물론 안전구역의 소실로 나라의 존립 여부 자체가 불안정할 정도다.
이만큼 화폐를 생산하기 적합한 기관이 어딨겠는가.
비록 국가 주도하에 화폐를 생산하던 예전과 다른 방식이지만, 여러 상황을 따지고 봤을 때 수행자 연맹 외에는 화폐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단체는 없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김선아는 어째서인지 수긍하면서도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두 세계의 경제를 손에 넣게 되겠네요.”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겠네.”
현재 뮤대륙 미드랜드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화폐가 바로 베르트 은행에서 생산한 루트화이다.
때문에 은행의 무서움을 깨달은 미드랜드 국가들이 부랴부랴 자체 화폐를 생산했지만, 신뢰도와 범용성에서 루트화를 이기지 못해 유명무실해졌다.
자체 화폐를 살리기 위해선 루트화를 규제해야 하지만, 베르트 상회와 등을 지고도 무사할 국가는 몇 되지 않는다.
덕분에 미드랜드의 경제는 내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미드랜드에서 위스워드를 제외한 12개국의 제일 상회가 베르트 상회였으니 말이다.
도도한 위스워드 제국 역시 은행과 루트화 앞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쨌든 돈이 돌고 돌아야 경제가 활성화될 테니.”
“화폐를 발행하면서 그 화폐를 이용할 수 있는 연맹 직영상점을 지상에서 운영하면 더 빠르게 자리 잡겠네요.”
“그러네. 맞는 말이야.”
연맹 소속 수행자들과 능력자들이 오우거 수정체 매매에서 연맹 화폐로 결제를 원하면 국가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정부의 검은 마석 확보 열기도 조금은 식을 것이다.
“혹시 화폐 생산을 위한 구실이 필요했던 거 아니죠?”
상황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을까?
김선아의 의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 * *
“그게 무슨 말이야?”
미국의 버나드 대통령은 수행자 연맹의 공문을 전달받곤 당황하며 반문했다.
“수행자 연맹에서 자체 화폐를 발행할 테니, 앞으로 연맹과의 거래엔 무조건 이 화폐를 사용해달랍니다.”
“…….”
그러나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버나드 대통령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각 기관 장관들도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결제 화폐는 어떻게 얻고?”
“곧 출범할 연맹 은행에서 무이자로 빌려주겠답니다.”
“하하….”
헛웃음을 흘린 버나드 대통령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검은 마석이 화폐 역할을 겸함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군요.”
확실히 검은 마석은 비밀 상점에서 사용하면 그대로 소멸하는 소비성 아이템이기에 화폐를 대신하는 것은 여러모로 적절치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석을 대체할 만한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는데, 그 대안을 이런 식으로 내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건 단순한 명분이지.”
버나드 대통령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편의를 봐줄 만큼 봐줬다는 건가? 이젠 철저히 이익을 챙기는군.”
그에 재무부 장관이 입에 거품을 물며 말했다.
“절대로 따라선 안 됩니다! 자칫 그게 기축통화가 되기라도 한다면 추후 재건될 미국의 경제가 귀속되고 맙니다!”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지금 연맹 회장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네. 오히려 우리의 생존권만 위협받게 되지.”
“하지만 수행자 연맹은 국가가 아닌 일개 기관 아닙니까!”
날이 갈수록 중요도를 더해가는 수행자.
더불어 연맹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지금 그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 점이 문제라면 천공의 도시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면 될 뿐이야. 어쨌든 지금 안정적으로 화폐를 생산해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은 연맹뿐이라는 게 문제지.”
아무리 미국의 정상이라는 프라이드가 있더라도 버나드 대통령은 제대로 현실 파악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연맹의 주장대로 검은 마석과 화폐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한다.
하지만 이성적인 만큼 대세에 거스르지 못하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야 합니다.”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국방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수행자 연맹을 결코 거슬러선 안 됩니다. 미국 경제가 귀속되면 어떻습니까? 당장은 생존이 우선이고 살기 위해서라면 꼬리 잘 흔드는 개가 되어야죠.”
그에 재무부 장관이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성을 냈다.
“당신은 자존심도 없습니까? 여긴 미국입니다.”
지금 여기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게 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그의 귀가 붉어졌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처지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자존심도 살고 나서 따져야죠. 일단은 연맹에 얹혀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라가 예전의 성세를 찾는다면 그때 가서 마음 맞는 국가들과 함께 경제 독립을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일단은 연맹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인 국방부 장관의 이야기에 재무부 장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라고 왜 자존심이 없겠는가.
세계 최강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런 그가 이런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을 저주해야 했다.
“어쩌다 미국이 이런 꼴이 된 건지.”
누군가의 한탄.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미 정부는 별다른 항의 없이 연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연맹의 새로운 화폐 생산에 대한 공문에 이의를 제기한 국가는 총 5곳.
주요국가로는 일본과 중국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네.”
중국은 대국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고, 일본은 히로시가 한차례 정부를 뒤집어엎었음에도 여전히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을 끌어들이는 습성이 남아 있었다.
물론, 정부가 앞장서서 유언비어를 만들어 헛소문을 퍼트리진 않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상당히 거슬렸다.
일본은 지금 한국의 상황을 부러워하다 못해 질투하고 있다.
국민들의 삶이 어려운 것은 피차 마찬가지지만, 연맹 회장인 내가 한국에 여러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다.
수행자 연맹이 국제기관이긴 하나, 내 개인 소유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거리낌 없이 연맹의 힘을 조국인 한국에 많이 보태주고 있었다.
이를 갖고 다른 나라들이 불편해해도 어쩔 수 없다.
굳이 내가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하지만 문제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일본 시민들이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나와 연맹에 대해 여러 유언비어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안 그런 일본인도 많았지만, 상당수가 날조된 거짓말을 사실인 양 퍼트리고 있었다.
덕분에 히로시도 질렸다며, 한국으로 넘어올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국가별 종족 특성이란 게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
언제고 한번 주의를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주 빡센 주의를 말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 다행이야.”
“이의는 있겠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뿐이겠죠.”
김선아의 이야기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따끈따끈한 지구의 루트화를 살폈다.
지구의 새 화폐인 루트화는 뮤대륙의 것을 베이스로 만들어졌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인물화가 배치되어야 할 장소에 지구본이 그려져 있단 사실이다.
충실한 부하들은 내 얼굴을 새겨야 한다고 했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뒷면에는 귀족 가문의 인장처럼 수행자 연맹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특이하게 인물화가 없는 지폐다.
“퀄리티 좋네.”
인쇄기는 비밀상점에서 구매한 상품들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당연히 성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성능은 규모로 커버했으며, 15번째 천공성의 컨셉을 은행 도시로 잡았다.
하늘 위의 금고처럼 안전한 곳이 어딨겠는가.
2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보유한 천공의 성은 9개, 천공의 도시는 1개였다.
하지만 꾸준히 퀘스트를 수행하고 던전 등을 클리어하면서 지금은 천공의 성이 15개가 되었다.
천공의 도시는 그대로 1개고 말이다.
“드래곤 하트는 어때?”
내 물음에 김선아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없습니다.”
김선아와 히로시는 이번에 내게 지원을 받아 드래곤 하트를 흡수했다.
환골탈태를 한 두 사람은 마스터가 되자마자 하이마스터를 바라보는 위치에 올랐다.
참고로 드래곤 하트는 중복섭취가 가능하지만, 2번째 이후부터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2번째 섭취 때는 원래 능력치의 50%.
3번째 섭취 때는 원래 능력치의 20%.
4번째 섭취 때는 원래 능력의의 5%.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추가로 두 번만 더 드래곤 하트를 섭취했고. 나머지 포인트는 강화 등에 쏟아부었다.
상식대로라면 김선아와 히로시가 아닌, 미드랜드 평화위원회 소속 수행자들에게 드래곤 하트를 선물하는 것이 전력 상승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는데, 이유는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그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구미호 같은 경우 그라디스 토벌전에서만 90만 포인트 넘게 벌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왕위나 황위를 이양받는 등 편법으로 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했다.
물론, 포인트를 얻고 난 다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덕분에 얼마 전까지 미드랜드의 상황은 혼돈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