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꿈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22화
100. 헌터(2)
서울은 성역을 따라 높이 50미터의 석벽을 쌓아 올렸는데, 성역의 직경이 20km인지라 서울 외곽지역은 안전구역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버려졌다.
그런 지역 중 한 곳인 강서구에 다양한 복장의 사람들이 소총으로 사주경계를 하며 주변을 수색했다.
그들은 바로 새로운 정부 정책에 의해 출범한 헌팅팀이었다.
그러다가 가장 앞에 선 중년 남성이 오른손을 펼쳤다 주먹을 쥐자 모두가 멈춰 엄폐를 실시했다.
몇몇 사람들이 군에서 지원해준 쌍안경으로 전방을 살폈는데, 오래지 않아 고블린들을 때려잡는 오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략 수는 20마리 정도.
“오크가 저렇게 소란을 피우는데도 조용하단 건, 고위몬스터가 주변에 없단 뜻이겠지?”
30명으로 구성된 헌팅팀의 리더가 곁에 있던 남성에게 묻자 그 동료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싸우기로 마음먹은 남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전진을 명령했다.
현재 오크와의 거리는 200미터 정도.
이왕이면 멀리 떨어져 총을 쏘고 싶지만, 지금은 사선 상에 방해되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헌팅팀은 골목을 조심하며 천천히 전진했고, 잠시 후 버려진 차량을 바리케이트 삼아 오크들을 조준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총기는 연식이 오래된 M16.
하지만 이미 영점 사격까지 마친 뒤였기에, 총기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오크는 헌팅팀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사이 리더가 손을 들었다.
-척!
그리고 리더의 손이 떨어지자.
-타타타타탕!
M16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불을 뿜었다.
-쿠에에엑!
이어진 장면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오크는 일반인이 결코 싸워 이길 수 없는 몬스터지만, 총기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녀석이 아무리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총알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으며, 덩치가 큰 데다가 몸이 무거워 힘이 좋아도 달리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성난 오크들이 콧김을 뿜으며 달려왔지만, 채 50미터도 다가오지 못하고 몰살을 당했다.
“이긴 거지?”
“하하…….”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만 당겼을 뿐인데, 왠지 진이 빠졌다.
“20마리면 분명 검은 마석을 가진 녀석이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의 말에 모두의 눈이 번쩍 띄었다.
그렇다.
자신들은 평화를 위해 파견 나온 군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나선 사설 부대였다.
모두 몸을 일으켜 얼른 오크에게 다가갔고, 피비린내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마석이 있는 위치를 찔러 가죽을 갈랐다.
“이, 있어!”
“여기도!”
“오!”
그리고 그들은 총 4개의 검은 마석과 7개의 일반 마석을 얻었다.
“스타트가 아주 좋은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크의 검은 마석 드랍률이 12:1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쾌조의 스타트였다.
더구나 검은 마석 정도는 아니어도 일반 마석 역시 전기 생산의 연료로 쓰이기에 적지 않은 값어치를 자랑했다.
일반 마석 또한 7개나 나와 모두의 표정이 고무되었다.
당장 지금 가진 것만 누군가가 독식해도 생활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그래, 이래서 헌터를 한 거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빨리 자리를 옮기자.”
“대장, 오크 고기는 먹을 수 있는 건가?”
“먹고 싶어?”
역한 냄새를 풍기는 푸르딩딩한 색상의 고기는 그야말로 식욕을 뚝 떨어뜨리는 비주얼을 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고기를 먹어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
그래서 먹을 수만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었다.
“뭐, 비위 좋은 군인들은 가끔 먹긴 한다더라. 조금만 챙겨 피 냄새 풍기면 위험해지니까.”
“알았어.”
대답과 달리 큼지막한 고기를 떼어낸 사람들은 가져온 비닐에 꽁꽁 싸맸다.
이젠 비닐도 귀해서 아껴야 하는데, 고기가 이성을 이겼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는데, 석벽에서 너무 멀어지면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석벽 주변을 위주로 살폈다.
-타타타탕!
“좋아!”
하늘이 도왔을까?
이들의 사냥은 큰 고비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3시간 뒤, 탄환을 모두 소비할 때까지 사냥을 하고 안전구역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검은 마석 16개에 일반 마석 28개.”
“대박이네!”
짧은 시간 돌았을 뿐인데, 보상은 엄청났다.
충분히 위험을 감수하고도 남을 수준.
비록 1인당 0.5개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이라 할만했다.
겨우 3시간의 사냥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검은 마석 16개 중 규정에 따라 절반을 총기 구매를 위한 중도금 형식으로 지불했고, 나머지 검은 마석은 물물교환을 통해 배분하기로 했다.
검은 마석 8개면 장터에서 물건을 쓸어 담다시피 할 수 있었다.
“하급 마석 20개는 검은 마석 1개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일반 마석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귀한 재료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어차피 일반 마석은 이들이 갖고 있어 봐야 쓸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일반 마석 20개를 검은 마석 1개와 바꾸었다.
“총기는 완납이 되기 전까진 반납 보관하셔야 하는 거 아시죠?”
“네.”
“정부는 국영 공업사들이 제작한 물품을 파는 마석 상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번 구경하고 가세요.”
마석 상점이란 이야기에 이들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방문했고, 판매 물품을 본 이들은 표정을 굳혔다.
[5.56mm탄 1000발 – 검은 마석 0.5개]
[수류탄 15개 묶음 – 검은 마석 0.5개]
[섬광탄 15개 묶음 – 검은 마석 0.5개]
“이게 무슨…….”
“잠깐 탄환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거 아니었어? 오늘도 인당 100발씩 지금 해줬잖아.”
“그럴 리가요. 탄환이 땅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닌데, 공짜로 지급해드릴 순 없죠.”
“아니, 몬스터를 제거해 주면 나라에도 좋은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어느 나라가 사설 부대에 무상으로 탄환을 제공합니까?”
정부에서 헌터 제도의 도입을 승인했을 때 부족한 검은 마석을 유입시키기 위한 방안이란 것은 누구나가 예측할 수 있었다.
물량이 늘면 가치는 떨어진다.
하지만 검은 마석은 획득 양이 많아져도 가치는 계속해서 솟구쳤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적인 화폐의 경우, 기존 100개에서 또 100개를 추가로 찍어낼 경우, 시장엔 200개의 화폐가 돌지만.
검은 마석은 비밀 상점이란 소멸처가 존재한다.
비밀상점에서 소비한 검은 마석은 다시금 시장에 풀리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화폐 개념이긴 해도 지속적인 생산이 필요한 것이 검은 마석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총기를 파는 것만으로 검은 마석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있다.
때문에 단발성이 아니라 어떻게 지속적으로 검은 마석을 뜯어갈지가 관건이었는데.
설마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비싸잖아!”
“저는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기존 시세로 치면 약 50만 원치의 물건들입니다.”
“아니, 지금은 인건비 자체가 통조림으로 퉁칠 수가 있는데, 50만 원어치가 아니지!”
“인건비가 낮은 대신 설비 레벨이 낮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건 지극히 타당한 가격입니다.”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정부뿐일 것이다.
비밀 상점에선 하이엔드 스마트폰을 검은 마석 2개에 판매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개당 50만 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전자제품에만 한정된 가격으로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었다.
“그럼 0.5개는 어떻게 내는 건데?”
“일단 1개를 내시면 0.5개를 우리 마석 상점에서 구매 가능한 상품권을 거슬러 드립니다.”
“이 새끼들이!”
정부도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너무 등 처먹는 느낌이었다.
누가 계획한 건지는 몰라도 성질 긁는 용도로는 최고라 평가할 만했다.
“일단 진정하시고 잘 살펴보세요. 꼭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어차피 탄환은 계속 구입을 하셔야 할 테고, 그 쿠폰으로 굳이 장터를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생필품도 있습니다.”
“대신 비싸겠지.”
이들을 안내한 공무원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트롤 가죽 방어구 상의 – 검은 마석 0.5개]
“이 트롤 가죽 방어구 상의는 방탄복보다 뛰어난 생존능력을 지니게 해줍니다. 몬스터들은 총을 쏘는 게 아니라, 대부분 냉병기나 둔기를 쓰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트롤 가죽 방어구는 흡수력이 뛰어난 데다가 좌상에 강력한 내성을 보입니다.”
완전히 영업사원이 따로 없다.
하지만 살짝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는데, 요즘 화학 소재 생산이 쉽지 않아서인지, 방어구라고 세팅된 장비들의 재료는 대부분이 몬스터 부산물로 이뤄져 있었다.
[무전기 세트 – 검은 마석 1개]
“부대를 운영함에 있어서 무전기는 필수죠. 이 김에 마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확실히 그의 말대로 무전기는 꼭 필요한 장비라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식료품과 공산품이 마트처럼 구비되어 있었다.
문제는 값이 장터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란 것.
때문에 전투 관련 장비 외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거 어째 말리는 느낌인걸?”
결국 헌터들은 불만을 토해도 그곳을 나설 땐 탄환과 수류탄, 무전기를 구입한 뒤였다.
그럼에도 남은 4개의 검은 마석으로 물물교환 장터에서 모두의 양손이 무거워질 만큼의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목숨 걸고 싸운 것 치곤 이득이 적은 느낌이지만, 이는 총기 대금을 완납하면 사라질 걱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1일 차가 아닌가.
전투가 익숙해지고, 탄환 관리 등에 신경 쓰면 더 오랜 시간 전투를 지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차피 하루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심산으로 달려든 사람이 없었으니, 조금 더 길게 볼 필요가 있었다.
더불어 무엇보다.
오랜만에 맛을 본 고기가 꿀맛이었다.
비록 그게 오크 고기긴 해도 말이다.
***
“생각보다 헌터 제도가 잘 정착한 느낌인데?”
첫날 헌팅에 약 1만여 명이 참여하고 500여 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이 5%란 것은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지만, 이는 전투에 익숙하지 않아서 벌어진 참사일뿐 지속될 피해는 아니라 판단했다.
“덕분에 석벽 인근은 몬스터가 상당히 줄었으며, 헌터 희망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김선아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부에서 발간한 오늘자 신문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너무 장사에 혈안이 된 느낌이네.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은 거의 원가밖에 안들 텐데.”
소총 탄환의 가격이 대격변 전엔 400원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용이 적지 않은데, 지금은 임금 자체가 매우 낮았다.
그런데도 탄환 한 개의 가격을 500원 정도의 가치를 매긴 것을 보니, 헌터들의 불만도 이해가 되었다.
“대신 정부 측에선 원재료 수급이 어렵다며 인건비가 싸다고 무조건 가치를 낮게 책정할 순 없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지.”
어떻게 보면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서 공산화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는 화폐가 사라진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형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이를 인식하고 있는지, 정규 노동자들에겐 식량이나 생필품으로 보급 외에 추가 보상을 지급했다.
“그래도 정부와 헌터들의 대립이 발생하면 좋을 게 없으니, 이 불만을 조금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작게 ‘흠’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