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20화
송민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심심하면 친구들이랑 놀던가. 왜 바쁜 사람 붙잡고 귀찮게 하는 거야.”
“친구?”
“왜, 친구 없어?”
아무리 그래도 친구 없냐는 물음은 자존심이 상하는지, 소녀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있어. 다다랑 차차.”
아무리 들어도 사람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다다는 아까 나왔던 이름이 아닌가.
애를 가졌다는 그.
“너희 집 개?”
“응.”
고개를 끄덕이며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는 소녀의 모습에 송민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이 차이는 세 살 정도 될까?
성인에서 3살 차이는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한창 성장기인 청소년들에게 3살 차이는 꽤 크다.
고등학생이 중학생을 보면 애처럼 보이는 것처럼 아직 앳된 그녀의 모습에 얼굴을 붉힌 게 괜히 창피해졌다.
덕분에 이어진 송민우의 물음은 퉁명스러웠다.
“개밖에 친구가 없다는 거야?”
사람 친구란 말에 초록머리 소녀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오빠, 언니는 많아.”
뭔가 사연이 있는 걸까?
송민우는 괜한 말을 꺼낸 것 같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됐다. 그만하자.”
이상한 분위기를 풍겨서인지 완전히 소녀의 페이스에 말려 버렸다.
“부모님은 어디 계셔? 혼자야?”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 평온을 찾았다.
“아빠랑 둘째 엄마는 손님 때문에 바쁘고, 첫째 엄마는 잠깐 외출했어.”
“응?”
그런데, 어째 가족 구성이 이상하다.
엄마 앞에 숫자는 왜 붙는단 말인가?
“엄마가 둘이야?”
송민우는 다시금 소녀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응.”
“치, 친엄마가 누군데.”
“날 낳아준 엄마? 없는데?”
뭔가 복잡한 가정사가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둘인데, 둘 다 친엄마가 아니다. 마치 부인만 셋이라는 느낌이 아닌가.
덕분에 송민우의 머릿속에선 막장 드라마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요즘 같은 상황이면 고위층이 부인 둘을 둬도 이상하지 않아. 누구도 문제 삼지 못할 테고, 그렇게 편하게 살 수 있으면 따라올 여자도 많으니까.’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녀가 고위층의 자제가 분명하단 사실.
가족사를 들으니, 깊게 관여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오빠!”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송민우의 동생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원래 남매끼리 한창 사이가 안 좋을 때지만, 힘든 시기를 같이 넘겨서인지 둘은 서로를 아끼고 매우 의지하고 있었다.
송민우에게 팔짱을 껴온 여동생이 눈에 띄는 머리색을 가진 소녀를 보며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저희 그런 거 안 믿어요.”
“응?”
얘가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는 송민우.
“가이아 교단인가? 그 신흥종교 사람 맞죠?”
동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뒤늦게 이해한 그는 그게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난처한 기색을 보이는 바람 동생이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 어떻게 알았지?”
“맞다고?”
뜬금없는 소녀의 자백에 송민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이아 교단은 대격변 이후 지구에 직접 힘을 드러내고 있는 뮤대륙의 여신을 믿는 신흥종교로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기고 있었다.
“관계가 있긴 한데.”
애매모호한 대답.
하지만 요즘 가이아 교단의 신도들이 얼마나 과격하게 세력 확장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예쁜 소녀의 얼굴이 사람을 홀리기 위한 수단일 거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이건 손을 떼고 물러나야 한다.
고개를 내저은 송민우가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소녀는 계속해서 따라왔다.
애써 신경 쓰기 싫은데 자꾸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쟤 왜 자꾸 따라와?”
“모르겠다.”
그도 그녀가 왜 자꾸 따라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통조림 필요해? 통조림 줄까?”
소녀의 물음에 두 사람은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그게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란 생각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초콜릿 줄까? 과자도 있는데.”
이어진 그녀의 물음에 여동생의 고개가 돌아갈 뻔했다.
초콜릿이나 과자는 요즘 맛보기 힘든 고급 식품이었으니 말이다.
“아니면, 검은 마석 줄까?”
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하던 두 사람은 소녀의 말에 동시에 고개가 팩 돌아갔다.
어디서 꺼낸 건지 소녀는 한 손에 초콜릿을 한 움큼 쥐고, 다른 손엔 검은 마석을 한 움큼 쥐고 있었다.
검은색 크리스탈에 보라색 기운이 연기처럼 일렁인다.
그건 진짜 검은 마석이었다.
-꿀꺽.
검은 마석은 하나만 있어도 자신이 오늘 힘들게 번 통조림 수천 개는 구할 수 있다.
현재 지구에서 돈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기도 했으며, 그 가치는 쉬이 변하지 않을 보물.
소녀의 손에 쥐어진 것만 10개가 넘어 보인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소녀에게 쏟아졌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모두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분명 군침 도는 물건이다.
하지만 그보다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걸렸다.
“얼른 숨겨!”
결국, 송민우는 발끈해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았고, 얼른 그녀의 손을 낚아채 동생과 함께 군인들 근처로 달려갔다.
군인들이 있으면 안전하다.
군인들은 좋은 대우를 받는 대신 규율이 매우 엄격한 데다가 검은 마석을 얻어도 모두 국가에 귀속돼서, 쉽게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거 어디서 난 거야?”
“용돈.”
“용돈이라니…….”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
“그거 정말 줄 거야?”
통조림이랑 급이 다른 물건이다.
당연히 송민우와 여동생 모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응. 줄게.”
그리고 소녀가 너무도 가볍게 12개의 검은 마석을 건네주자.
남매는 벙찐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건만 있으면 둘의 생활환경은 180도 바뀔 테니.
“그럼 내 부하 되는 거지?”
소녀는 수줍게 손을 뻗어왔다.
사기라면 그녀는 여우주연상 정돈 우습게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분명했다.
여러모로 꺼림칙하다.
덕분에 송민우는 검은 마석과 그녀를 계속해서 번갈아 바라보았고, 그 모습은 꼭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은…….”
송민우는 보상이 보상인지라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으나, 그때 누군가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뭐하세요?”
“헉!”
검은색 제복의 잘생긴 청년.
일반 시민이라면 상관없지만, 그 청년이 입고 있는 복장이 수행자 연맹의 정복이란 사실이 문제였다.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경례를 올리고 검은 마석에 시선을 빼앗겼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흩어졌다.
송민우와 여동생 또한 헛바람을 삼켰고, 시선을 내리니 이들의 눈에 금색으로 반짝이는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은색 배지는 일반 수행자, 금색 배지는 고위 수행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수행자가 다짜고짜 말을 걸어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새 부하야.”
그런데 녹색 머리의 소녀는 수행자와 안면이 있는지 말을 편하게 했고, 수행자는 ‘흐음?’ 소리와 함께 민우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나 아직 결정 안 했…….”
“얘 데려갈 거야.”
말을 끊은 소녀는 건방지게 연상인 자신을 ‘얘’라 칭했지만, 송민우는 수행자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꾹 닫아야 했다.
“뭐, 엘리시아 아가씨께서 그러시다면 그런 거죠.”
엘리시아.
이국적인 이름이다.
생긴 건 동양인과 서양인의 하프 같은 미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말을 해서 그저 한국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걸까?
듣기로 수행자와 능력자들은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녀도 그런 부류인 걸까?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민우였다.
엘리시아가 가자고 그의 손을 잡아당겼으나, 당연히 어디를 가자는 건지 설명이 필요한 송민우가 따라갈 리 만무했다.
“어디 가는데?”
“우리 집.”
내가 왜 거길 가냐는 표정을 짓자, 남성 수행자가 제정신이냐는 눈빛으로 살 떨리게 노려보았다.
덕분에 송민우와 여동생은 겁에 질려 입 다물고 엘리시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자신을 원망하듯 바라보는 여동생의 시선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엘리시아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납치였다.
“어?”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주안역에 설치된 군 시설이었다.
프리패스로 경비가 삼엄한 시설 내부에 들어서니, 마법진같은 기이한 문양이 수 놓인 금속판 위로 빛이 일렁이는 이상한 시설이 등장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
그것이 마법과 연관이 있는 것임을 알아채고 기겁했지만, 둘은 ‘억’ 소리 한번 못 내고 엘리시아와 함께 그 시설에 올라섰다.
“텔레포트. 뉴베르트.”
그리고 푸른빛이 그들을 감싸더니, 이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변했다.
-하하하!
상황을 이해 못 하고 눈만 껌뻑이는 송민우를 가장 먼저 반겨 준 것은 시끌벅적한 소음이었다.
노랫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뒤이어 웅장한 성의 모습과 유럽에서 볼법한 파란 지붕의 목조주택들이 길게 놓인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오, 오빠!”
여동생이 기겁한 목소리로 팔뚝을 치자 멍한 표정의 민우가 고개를 돌렸고, 이내 성 뒤쪽으로 펼쳐진 구름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천공의 성?”
그도 보고 듣는 게 있는지라, 수행자들이 보유한 천공의 성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그 천공의 성은 자신과 인연이 없는 장소였고, 함부로 올 수 없는 곳이란 점이다.
시설 유지를 위해 시민들을 고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천공의 성이 지상에 정박했을 때나 잠깐 동원되는 단순 노동자였다.
“천공의 도시 뉴베르트다. 천공의 성의 열 배가 넘는 규모를 가진 하늘 위의 대도시지.”
“…….”
그런 곳에 왜?
송민우와 여동생은 패닉에 빠져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엘리시아가 검은 마석을 한 움큼 꺼내 들고 수행자가 아가씨라 칭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천공의 도시가 지닌 화려함과 밝은 분위기는 폐허를 뒤지는 자신들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주눅이 든 두 사람은 수행자가 따라오라는 손짓에 잠자코 따라갔다.
그리고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제복의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설마 이 사람들이 전부 수행자라고?’
얼핏 눈에 들어오는 것만 봐도 백 단위가 아니다.
족히 수천은 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검은 제복을 입은 채 술잔을 기울이고 침이 절로 나는 음식들을 사치스럽게 뜯고 있었다.
“아빠!”
그때 엘리시아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덕분에 능력자 속에 파묻힌 민우와 여동생은 로봇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난 누구? 여긴 어디?’란 생각이 절로 나는 상황.
그런데, 그건 이어진 상황에 비하면 약과였다.
엘리시아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끌고 왔는데, 딱 봐도 그들은 제복부터 일반적인 수행자들과 달랐다.
일반 수행자 연맹의 제복도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그 위에 더 많은 장식들이 더해져 있었다.
그리고 엘리시아에게 붙들려 끌려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그럼에도 수차례 신문에 실렸던 인물이었으니.
그는 수행자 연맹의 회장이자, 요즘은 황제라고까지 칭해지는 전 세계 권력의 정점 조지훈이었다.
“내 부하.”
“그래?”
엘리시아의 소개에 지훈은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민우를 살폈다.
“몇 살이지?”
지훈의 물음에 송민우 뇌는 매우 빠른 반응속도를 보였다.
“18살입니다!”
“어린 것 같은데…….”
나이를 들은 그가 난감한 기색을 보이자 엘리시아는 떼를 쓰듯 지훈의 옷자락을 잡고 마구 흔들어 재꼈다.
“이미 허락받았어!”
“음, 그래?”
그에 지훈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거지. 10대 수행자랑 능력자도 있긴 하니까.”
대체 자신에게 뭘 시키려는 걸까?
겁이 났다.
* * *
나는 봉봉이가 데려온 청년과 소녀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너 설마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끌고 온 거야?”
“했는데?”
내 물음에 뻔뻔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봉봉이.
그러나 잔뜩 겁을 먹은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니,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 게 분명하다.
평소 봉봉이의 성격을 보면 어떤 식으로 끌고 왔는지 뻔했다.
봉봉이의 수호자는 총 셋이다.
한 명은 나이며, 나머지 둘은 집에서 키우던 다이어울프다.
하지만 그 다이어울프들이 짝짝꿍이 나서 한 놈이 임신해 버렸다.
나는 그때서야 다이어울프들의 성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놀랐다.
그런데 한 놈이 임신을 하자 봉봉이는 가차 없이 수호자의 힘을 거둬들였다.
이유를 물으니, 임신한 상태에선 무리를 하면 안 된다나?
그래서 봉봉이는 이 김에 짐승이 아닌, 사람을 부하로 삼겠다며 여기저기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두 다이어울프와 친하긴 하지만, 역시 수호자로 부려먹기엔 적절치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후줄근한 복장의 두 사람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우선 클리어 마법으로 옷과 몸을 깨끗이 만들어주고, 아공간에서 마법사 아카데미의 로브를 꺼내 둘에게 걸쳐 주었다.
복장이라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본인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복장이 후줄근하면 자존감도 떨어지기 때문에 신경을 써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봉봉이가 고심 끝에 고른 수호자 후보다.
함부로 대할 수는 없지.
나는 웃어 보이며 두 사람에게 일단 식사를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