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19화
99. 2달 후(2)
신입 수행자 환영 행사는 군입대처럼 딱딱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넓은 광장에 의자들이 길게 놓여있고, 행사 주인공들은 그곳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수행자 대표가 내게 연맹 배지를 받고, 간단히 환영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다.
이후 지구에서 보기 힘들어진 축제가 열리는데, 각종 호화 음식과 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기존 수행자들은 물론 뉴베르트의 시민들도 기대하는 날이 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왜 각국의 정상들이 모이느냐.
그 이유는 이 행사가 가벼운 분위기 속에 나와 어울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교 파티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 위치를 잘 알고 있다.
오만하다면 오만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내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당연히 국가 정상들은 내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대부분의 정상이 참여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제 와서 참석하지 않으면 괜히 눈 밖에 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사실 연맹이 각국에 제공하는 편의를 생각하면 자국의 수행자를 위해서라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
때문에 이 행사에 불참하게 되면 내가 내색하지 않더라도 많은 관계자들이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연맹의 회장인 내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연맹의 주요 인사들의 발언력도 상당히 강력했으니 그들에게 밉보여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김선아나 히로시를 포함한 1회차 수행자들은 자국의 정상들을 갈아엎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이미 히로시는 그 전력이 있기도 했고.
러시아의 대통령이 1회차 수행자인 니콜라이와 말다툼을 벌였다가 연맹의 눈치를 과하게 본 군에 의해 처리를 당할 뻔했던 이력이 있다.
그러니 연맹에서 주관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반갑습니다. 수행자 연맹의 회장 조지훈입니다.”
각국 대표와 수행자 연맹 주요 인사가 참관석에 자리를 잡고 나는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단상 중앙으로 향했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로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이번 8회차 수행자 1,250명 중 대표는 한국인으로 수행자 지정 오디션에서 살아남은 김민철이란 청년이었다.
긴장한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그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나는 그에게 은색의 배지를 달아주었는데, 그 은색 배지엔 연맹의 문양과 함께 회차를 의미하는 숫자 8이 새겨져 있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배지는 수행자의 경지에 따라 색이 나뉘게 되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계급과도 같았다.
신규 입장 수행자부터 익스퍼트 중급(4서클)까지는 은색.
익스퍼트 상급(5서클), 최상급(6서클)은 금색.
소드마스터(7서클)급은 금색 테두리에 흰색.
하이마스터(8서클)급은 금색 테두리에 검은색.
그랜드마스터(9서클)급은 유리처럼 투명했다.
현재 연맹에서 투명한 배지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나와 구미호, 바르토스 황제, 엘프인 노바까지 총 네 명이다.
현재 내 경지는 하이마스터에 8서클이지만, 전투력은 그랜드마스터급의 세 사람을 크게 상회 하는 만큼 굳이 한 단계 아래의 배지를 착용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 별도로 연맹의 직급을 가진 사람들은 추가 배지가 주어진다.
두 개의 배지를 달고 있는 수행자는 대부분이 1, 2회차 수행자들이었다.
이어서 김민철과 악수를 나눈 나는 간단하게 신규 수행자들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축하의 말은 마냥 듣기 좋은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능력자와 달리 수행자는 가만히 있어도 힘이 생기는 게 아닌 만큼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했다.
수행자들의 등급을 나누는 배지를 도입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꽤나 큰 동기부여가 된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수행자로서 우리 함께 성장해 나갑시다.”
마지막으로 생존에 대한 당부와 함께 수행자의 특별함을 강조하며 말을 마쳤다.
그에 다시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젠 매일 이 날이 기다려지는군요. 이리도 신선한 식재료를 맛볼 수 있다는 게 축복 아니겠습니까.”
안전구역을 제외하면 지구 어디에든 몬스터가 존재한다.
당연히 바다 속에도 다양한 몬스터가 있기 마련이니, 각국의 정상이라 해도 해산물을 맛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채소는 잔디 대신 곳곳에 심어 수확해 조금이나마 섭취하곤 있지만, 고기와 해산물, 과일 등은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덕분에 산업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약소국은 목숨을 걸고 해산물을 잡거나 옛 과수원 등을 털어 무기를 마련하고 있었다.
정부에서 수년 치의 식량을 확보해놓았지만, 이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 쓸 순 없었다.
오죽하면 생고기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서 몬스터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도 있겠는가.
그나마 우리 수행자들은 내가 툭하면 전투 마리오네트들에게 해산물을 잡아 오게 했기에 심심치 않게 생선이나 갑각류 등을 식탁 위에서 맛볼 수 있었다.
더불어 천공의 성 중엔 축사와 돈사, 양계장이 갖춰진 곳도 있다.
참고로 가축은 팔려고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었다.
“비밀 상점에서 사 먹을 수 있잖아요?”
“에이, 검은마석을 아깝게 어떻게 먹는 데 씁니까. 그리고 제가 벌어오는 것도 아닌데요.”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수만 개의 검은 마석을 쓸어 담을 수 있어서 먹는 데 써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마 대부분이 너스레를 떠는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얼떨결에 멍청한 대사를 내뱉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냐는 것과 비슷한 말이 아닌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식생활 개선도 중요한 과제가 되겠군요.”
당연했던 식사가 이젠 특권이 되었다.
그동안은 생존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이젠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야 했다.
* * *
대한민국엔 대규모 안전지대가 네 곳이 존재한다.
서울, 대전, 부산에 얼마 전 인천이 추가되어 경기도 사람들을 흡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인천시 남구 주안
“또 건빵이야?”
아직 정비 사업이 시작되지 않은 구역이 많은 인천에선 제대로 된 방 하나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 방 구한다고 3개월 동안 통조림 보급을 건네주기로 약속했으니.”
18살의 송민우는 여동생과 함께 모텔방에서 살고 있는데, 텐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비록 모텔이긴 해도 방을 갖고 있다는 것은 형편이 낫다는 뜻이었다.
“이 방을 양보해 준 사람도 참 웃겨 모텔이 자기 것도 아닌데.”
현재 사회에선 개인 재산이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에선 국토 재건이 끝나는 대로 옛 재산을 파악하여, 보상해준다는 계획을 초기에 발표했으나, 이는 몬스터를 완전히 한반도에서 몰아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많은 재물과 부동산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난리 피웠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떠들어봐야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시기였으니 말이다.
“오빠, 다른 먹을 것 좀 구해봐.”
“알았어. 노력해볼게. 아, 물 떨어졌으니, 조금 있다가 받아와.”
“응, 알았어.”
오히려 이런 상황이 돼서도 그럭저럭 치안이 유지 되는 것이 기적이라 볼 수 있다.
부모님이 난리 통에 돌아가시고, 중학생인 여동생과 둘만 남은 상황에서 치안까지 어지러웠다면 가뜩이나 신경 쓸 게 많은 상황에서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이다.
송민우는 그대로 모텔을 나섰다.
그는 누더기나 다름없는 백팩을 매고 있었는데, 흔히 이삭줍기라는 폐허 뒤지기를 하고 있었다.
거리를 나서자 마치 전쟁 직후처럼 곳곳에 무너진 건물과 아무렇지 않게 거리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20~30대 남성들은 대부분 군인으로 동원이 된 상태인지라,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여성 또는 미성년과 나이 많은 노인들이었다.
하지만 여성들도 미성년과 노인을 제외하면 모두 노역에 끌려가기 때문에 잠시 후, 거리는 한산해질 것이다.
송민우가 아직 18살이라 군대는 물론 노역에도 동원되고 있지 않지만, 군대나 노역에 끌려가면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주기 때문에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동생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약 30분을 걸어 그는 금방이라도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 같은 완전히 붕괴된 주택단지에 도착했다.
이삭줍기를 할 거면 쇼핑몰이나, 마트가 좋지만 그곳은 경쟁률이 너무 심하고 다툼도 자주 일어나서 위험했다.
무슨 몬스터가 휩쓸고 지나간 건지 몰라도 폭삭 주저앉은 주택단지엔 그와 같은 청소년이나 나이 많은 노인들이 잔해를 엎거나 파재끼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은 여러모로 위험했지만, 위험한 만큼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아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높다.
송민우는 의욕을 드러내며 탐색을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뒤집어 엎어봤자 체력만 소모되니, 무언가가 나올 가능성이 높을 곳을 살피는 것이었다.
-쿵!
그러다가 철근 콘크리트가 아니라, 옛 한옥 형태의 집을 발견하곤 가방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다.
오래된 한옥집은 속이 흙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구도가 약해, 부수기 수월했다.
그는 방이 위치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곳의 기와를 치워내고는 천장 부분을 뜯었다.
“오…….”
그가 뒤진 장소는 주방이었던 모양이다.
각종 주방 도구가 잔해 속에서 발견되었고, 그는 칼과 가위, 깨지지 않은 접시 등을 챙겼다.
그리고 뜯지 않은 세제와 키친타올도 기분 좋게 가방에 때려 넣었다.
스타트가 나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송민우는 여기저기 뒤지며 커다란 가방을 채웠는데, 순찰을 나온 군인들이 위험하니 나오라는 제지에 잠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가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폐허를 뒤졌다.
그렇게 얼마나 여기저기 쑤기고 다녔을까?
가방이 거의 꽉 찼을 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뭐해?”
“으악!”
너무 이삭줍기에 몰두한 나머지, 바로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뭐 하냐고.”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초록색 머리의 소녀.
그의 동생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지만, 장담컨대 얼굴은 100배는 더 그녀가 예뻤다.
“일하잖아.”
“일? 무슨 일?”
송민우는 살짝 주눅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예뻐서가 아니라, 너무도 말끔한 복장 때문이었다.
물이 귀해 빨래는커녕 목욕도 매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빛이 나듯 새하얀 원피스 차림을 한 그녀의 모습은 회색으로 가득한 풍경 속에 너무도 이질적으로 보였다.
즉, 그녀는 자신보다 월등히 나은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게 분명한 자연스런 머리색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
그녀를 대함에 있어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정부 고위 공직자 자식일 수도 있고, 군 지휘관의 자식일 수도 있다.
“쓸만한 물건 주워서 다른 물건이랑 교환하게.”
“교환?”
소녀는 교환이란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덕분에 송민우는 살짝 울컥했다.
그녀의 행동이 마치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구하면 되는데, 왜 교환을 하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바빠서 이만.”
그는 자리를 피하는 게 최선이란 생각에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계속해서 따라왔다.
“왜 따라와?”
“그냥, 심심해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 그는 결국 혀를 차며 이삭줍기를 그만하기로 했다.
그녀와는 얽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가?”
“장터!”
그리고 송민우는 빠르게 해당 장소를 벗어나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이후 주안역 근처 장터에 도착한 그는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의 물건을 살폈다.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는 데다가 이번 겨울은 유독 혹독할 테니, 따뜻해 보이는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당장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겨울 대책을 내놓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지라, 오늘은 동생이 바랐던 대로 다른 먹을 것을 구해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이삭줍기로 얻은 물건을 참치 통조림 두 개와 복숭아 통조림 한 개로 바꾼 그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와, 신기하네. 잡동사니가 먹을 게 됐어.”
“으악!”
그런데 또 언제 쫓아온 건지, 송민우의 옆에서 초록색 머리의 소녀가 나타났다.
“설마 계속 따라온 거야?”
“응.”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왜 자꾸 쫓아오는 거야?”
“내 부하할 사람 찾고 있어.”
뜬금없이 부하라니?
송민우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다다가 애를 가져서 새로운 부하가 필요하거든.”
“다다가 누군데?”
“우리 집 개.”
즉, 개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단 뜻인가?
이마에 힘줄이 돋아난 송민우는 한 대 쥐어박고 도망칠까 심히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