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18화
99. 2달 후(1)
물물교환 장터는 대부분 피난처 주변에 위치해 있는데, 서울에서 가장 큰 장소가 바로 용산 캠프였다.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위해 아직 재건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비 정비 구역에서 이삭줍기를 하거나, 직접 제작한 물품을 보급품 등과 함께 교환했다.
장터의 최고 상품은 다름 아닌 ‘검은 마석’.
단 한 개만 있어도 비밀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첨단제품이 많았기에 인기가 매우 높았다.
일반 시민들이 검은 마석을 얻는 방법은 단 하나뿐인데, 바로 수행자 연맹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수행자 연맹에서 운영하는 산업 시설에서 노동을 하거나, 천공성 등 시설 유지 관리를 위해 투입된 인원들에게 소정의 물품과 함께 급여 차원으로 검은 마석이 지급되었다.
이 검은 마석은 물물교환 시장에서 엄청난 가치로 거래되는 만큼, 연맹의 구인은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은 마석을 비밀상점에서 사용했지만, 일부는 식량 확보 목적으로 시장에 풀었고, 적은 양이나마 사람들 사이에서 거래되었다.
덕분에 과거 6.25전쟁 때 아이들이 미군을 향해 ‘기브미 초콜릿’을 외치던 것처럼 수행자와 능력자에게 달라붙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행자나 능력자가 검은 마석 하나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군인 때문에 쉬이 접근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온갖 아첨과 유혹이 수행자와 능력자에게 쏟아졌다.
정부 입장에선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발생되는 모든 것은 보급과 배정으로 모든 것 국민에게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굳이 물물교환을 막지 않았다.
다만 이삭줍기로 벌어지는 위험한 행동은 제지했는데, 잠깐의 평화에 방심하는 건지, 겁을 상실한 건지 이상한 주장을 하는 시민들이 생겼다.
[민간 탐색팀을 꾸리겠다. 안전구역 밖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해달라.]
[헌팅팀을 꾸리고 싶다. 총기를 대여해준다면, 헌팅팀을 만들어 대한민국 평화에 기여하겠다. 민간 헌팅팀을 만드는 것을 허가해 달라.]
탐색팀은 말이 좋아 탐색이지, 포화된 서울을 벗어나 외부에서 필요한 물건을 수집하겠다는 것이고.
헌팅팀은 고블린이나 놀, 오크 등 총기로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를 직접 잡아서 검은 마석을 얻겠다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이를 정부에서 허락할 리 없다.
하지만 위기를 넘기고 보금품만 받으며 노역을 하는 게 손해라 생각했는지, 적지 않은 시민들이 반항적으로 다양한 요구를 해왔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자신들이 장악한 미디어를 통해 선동으로 시민들의 행동을 제한했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나는 그런 정부에게 굳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우리가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시민들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업무인 만큼, 괜히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죽든 말든 시민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생긴다면 교훈이 될 것이요.
성과를 얻는다면 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가 아니었다.
[국가 간 물류 교역은 제게 의뢰하십시오. 천공의 성을 이용해 즉시 운송해 드리겠습니다. 단 대가로 소정의 검은 마석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 간의 물물교환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처럼, 천공성을 이용한 국가 간의 교역도 활발히 이뤄졌다.
당연하지만 세계 물류시장은 내가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소규모의 짐을 나르거나 사람을 옮길 수 있는 텔레포트와 대규모의 이동 및 운송이 가능한 천공의 성은 전부 내 소유였으니 말이다.
지구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더는 자선 사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명확한 대가를 요구하게 되었고 모두가 군말 없이 내 요구에 따랐다.
여기선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것이 맞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각 정부는 조금씩 주요 산업시설을 복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환 물품들은 주로 공산품이나 무기, 원자재, 석유제품, 식량 등이 대부분이었다.
주요 산업을 빠르게 복구할수록 얻는 이익이 컸는데, 초기에 정해진 경제적 서열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주요 국가들은 산업시설 정상화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구의 고부가가치 상품은 전자제품이 될 수밖에 없다.
오우거 반도체는 물론 마전기까지 지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게 연맹이다 보니, 산업이 정상화되면 될수록 연맹에 지불해야 할 각국의 로열티가 빠르게 증가했다.
당연하지만 당장은 결제 수단이 없기에 적립만 하고 있는 상태.
적어도 얌체처럼 연맹을 향해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할 수 있는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판단한 나는 자신과 연맹의 이득을 철저히 챙겼다.
덕분에 세계적인 영향력은 군사 부분만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커져갔다.
[국내 유선 통신망 완전 복구. 인트라넷으로 전국을 연결할 수 있게 되다.]
[기존 해저 케이블을 이용한 국가 간 통신망 복구시도.]
[국가 간 통신망 복구에 성공하다. 인터넷 시대로 돌아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에서 발간하는 신문만 보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세계가 복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격변 이후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통신이 회복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세계는 빠르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갔고, 순조롭게 시간이 흘러 그라디스를 처치하고 두 번의 웨이브를 더 막아냈다.
현실 시간으로 약 두 달 후.
뮤 대륙시간으로 300일의 시간이 지났다.
* * *
제1 천공성 아카데미 도시.
“아직까지 브람기슈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까?”
마치 뮤대륙을 보는 것 같은 로브 차림의 학생들이 성 광장의 노상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먹는 게 최상층 집무실에서 보였다.
천공성은 마치 빌딩 수십 채를 겹쳐놓은 탑과 같고 최상층은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하지만, 환골탈태를 걸친 내겐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또렷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천공성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뱉은 내 물음에 이브릴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의외네요. 바로 쳐들어올 것처럼 보이더니.”
3대 악에서 2대 악이 된 이블랜드의 마왕은 그라디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는지,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의 입장에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좋다.
아예 그대로 쳐들어오지 않으면 더 좋고.
요즘은 걱정할 만한 게 브람기슈의 침공 소식밖에 없었다.
모처럼 삶이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는데, 그런 변수가 남아 있다는 것은 역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라디스 때처럼 갑자기 쳐들어오는 게 아니어서 대비를 잘 해뒀지만, 우린 최상의 상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최악의 상황이란, 남아 있는 마왕 둘이 사이좋게 손잡고 쳐들어오는 일이었다.
내가 브람기슈나 라그나베일이라면 그냥 쳐들어오지 않고 얌전히 이블랜드에 처박혀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일반적인 수행자들의 성장도 한계가 있다는 게 요즘 부쩍 눈에 띄고 있고, 이쪽에서 전력을 잘 갈고 닦아도 이블랜드로 쳐들어가 그 둘과 싸우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브람기슈가 이성적인 판단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블랜드가 작은 땅덩어리도 아니고, 그냥 둘이서 남북으로 땅을 나눠 먹고 왕 노릇을 계속하면 좋지 않겠는가.
“타르니스 님의 상태는 어때요?”
타르니스는 하이랜드에 남아 있는 뮤대륙 마지막 드래곤이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에이션트 드래곤으로 엘븐하임에선 브람기슈의 침공을 타르니스가 사망하고 난 후로 잡고 있었다.
“최대한 버티고 계시지만 좋지 않습니다.”
역시 정해진 수명은 막을 수 없는 건가?
타르니스가 사망한다면 브람기슈의 정보는 성녀를 통해서만 수집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드래곤처럼 상세하게 관찰하는 건 어려웠다.
새삼 그라디스에 의해 파괴된 마를 쫓는 별이 너무도 아까웠다.
그라디스와의 전투 이후 나는 꾸준히 퀘스트를 수행했으며, 단련의 단련을 거듭해 많이 강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블랜드의 2대 악과 싸워볼 만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나마 성검의 각성 스킬과 시간 정지, 영겁의 사슬로 어느 정도 시간을 끄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이 없었다.
9클래스 마법에 그랜드 마스터의 심검을 동시에 구사한다면 모르겠지만, 단 몇 개월 만에 달성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렇군요…….”
하이랜드 최대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의 멸종은 뼈아픈 손실이지만, 이미 예정되어 있던 부분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잠깐의 평화를 즐겨야겠네요.”
나의 태평한 말에 이브릴은 뺨을 긁적였다.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김선아가 들어왔다.
고강한 기운을 품고 있는 그녀는 히로시에 이어 소드마스터가 되었으며, 한국 내에서 나의 대리인으로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녀는 잠시 이브릴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내게 말했다.
“준비됐어요.”
그에 간편한 복장에서 화려한 수행자 연맹의 정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김선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정상들은?”
“모두 1시간 전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6대가 된 전투 마리오네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에 마리오네트와 함께 이브릴이 다가왔고, 나는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주변의 풍경이 제1 천공성의 집무실에서 거대 도시로 바뀐다.
도시 풍경은 마치 유럽의 한적한 도시를 보는 듯했는데, 그곳은 바로 전설급 보상에서 얻은 천공의 도시, 뉴베르트였다.
베르트 제국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내 영토다.
오늘 뉴베르트에선 하나의 행사가 개최되는데, 바로 8회차 수행자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벤트였다.
7회차 때부터 도입해 이제 겨우 2회차가 된 이벤트지만, 신규 수행자 환영파티는 매우 성대하게 열려 대부분 국가의 정상들도 참여하고 있다.
수행자가 갖는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상태여서, 나라를 다스리는 각 정부의 수장도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주요 인사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부분 얼굴을 익힌 각 국가의 정상들이었으며, 그 속에 수행자 연맹과 함께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 능력자 연맹의 회장도 포함되어 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출범 한 달 차인 능력자 연합은 글로벌 단체를 표방하여 우리 수행자 연맹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한국 정부에 붙어 있던 능력자 협회도 현재는 그곳에 소속되어 있다.
그들의 목적은 국제 사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라는데, 딱 잘라 말해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나선 단체였다.
마음만 먹으면 쳐낼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굳이 그들을 치지 않았다.
사실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기도 했고, 그들이 선을 넘지 않는다면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게 이 세상을 독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수행자 연맹도 예전처럼 가입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가입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뜻인데, 그런데도 모든 수행자들은 의무처럼 연맹에 가입을 했다.
아무래도 연맹에서 제공하는 혜택이 워낙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연맹은 연맹원들에게서 회비를 거두고 있는데, 회차와 경지별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검은 마석을 받았다.
받기만 하는 것에 익숙해진 수행자들 중엔 왜 자신이 회비를 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안 따르면 연맹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으니, 누리는 만큼 연맹에 대가를 지불했다.
“그럼 시작하죠.”
각국의 정상들은 마치 신하라도 되는 듯 내 뒤를 따라 이동했고, 곧이어 행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