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17화
98. 선택형 전설급 보상카드(2)
그라나딘에게 붙었던 용의자의 내분.
짧게 혀를 찬 나는 김선아에게 말했다.
“정보 길드랑 협력해서 그 녀석들 잡아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수행자들로 제압팀을 꾸리던, 황실의 병력으로 제압팀을 꾸리던 편한 대로 하면 된다.
그녀는 이 나라의 황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김선아는 수아에게 시선을 주었는데,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아는 내가 추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김선아를 마스터로 대하도록 해.”
“김선아님을 임시 마스터로 등록합니다.”
인류를 배신한 반역자들이 아무리 병신이라 해도 수행자들이다.
그 안엔 2회차 수행자부터 5회차 수행자까지 분포돼 있었는데, 익스퍼트 최상급에 진입한 수행자도 둘이나 되었다.
더구나 일반 기사와 달리 수행자들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 모르는 만큼 안전을 생각해 전투 마리오네트 하나를 붙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델 체형의 예쁜 여성 둘이 화려한 복장으로 나란히 서 있으니, 상당한 포스가 느껴졌다.
“고생해.”
내 인사에 김선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김선아는 일 처리가 깔끔했기에 이후론 브라질 녀석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 * *
“빌어먹을, 이 새끼들이 확실해?”
“그렇다니까? 너희도 그때 이 녀석들이 미군하고 접촉하는 거 봤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라디스에게 붙으려 했다가 거하게 실패한 배신자들은 지금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일행 중 누군가의 배신으로 자신들의 소식이 지훈에게 전달된 것.
일반적으로 범인들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했으면, 다음 소식을 기다릴 법도 한데 지훈은 볼 것도 없다며 해당 정보를 공표했고, 다른 수행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범인 색출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이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범인을 찾기 위해 서로를 추궁했으나 이 상황에 내가 그랬다고 배신을 폭로할 멍청이는 없었다.
그래서 직접 정황을 따져가며 범인을 색출했는데, 미국과 맥시코 간 통신 복구 작업의 방어 업무를 맡은 미군에 말을 걸었던 수행자 셋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나, 나 아니야. 그런 거 전해준 적 없었다고! 너희도 봤으면 알 거 아냐.’
‘그거야 모르지. 우리가 보지 못했을 때 전해줬을 수도 있으니.’
‘그런 식이면 여기 있는 누구도 전해 줄 수 있는 거잖아!’
범인으로 지목된 수행자들은 끝내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던 그들의 모습은 여러모로 꺼림칙한 기분을 남겼다.
수행자 연맹 브라질 지부에 소속된 중국계 콜롬비아인이 싸늘한 시체가 된 동료들을 내려보며 미간을 좁혔다.
“살려서 조사를 받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조사를 받으면 계속 똑같은 말을 할 거 아냐. 이제 와서 이 녀석들이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냥 우리가 미국에 메시지를 전했다고 하고 그라디스에 대한 행동은 이들이 벌인 일이었다고 주장하는 게 낫지.”
“과연 그게 될까? 연맹 회장은 굉장히 냉정한 인물이라 들었는데.”
“괜찮아 방법은 있으니.”
그러면서 그는 물약을 하나 꺼내 보였다.
“그건?”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마인드 포션. 이걸 사용하면 일정 시간 진실의 눈을 속일 수 있어.”
“아…….”
진실의 눈 스킬은 얻는 게 쉽지는 않아도 아주 레어한 스킬은 아니다.
현재 2~3회차 수행자들이 머물러 있는 상급 퀘스트의 보상카드에서 구할 수 있는 스킬이었으니 말이다.
진실의 눈을 보유한 수행자는 해당 스킬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에 와선 파훼법이 이미 알려진 스킬이기도 했다.
진실의 눈은 상대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사실엔 반응하지 않는다.
그걸 이용해서 기억을 바꾸거나, 마인드 컨트롤로 거짓을 진실로 생각하게 만든다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걸 이용해서 연맹 회장 앞에서 결백을 주장하면 그도 무시하진 못할 거야.”
“그렇구나.”
이제 보니 제대로 계획을 세웠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죽은 수행자들의 심판을 주장하던 히스패닉계 남성에 대해 의심이 솟구쳤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와 싸워봤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봐도 그의 의견이 가장 타당해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은 아직 지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질 못했다.
“케인!”
그때 이들이 피신한 창고의 밖을 살피던 수행자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케인이라 불린 중국계 콜롬비아인이 무슨 일이냐 그에게 다가갔다.
중미와 남미의 중국계 수행자 대부분은 현재 브라질 지부에 소속되어 있다,
어딜 가나 뭉치길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인데, 덕분에 브라질 지부 내에서 중국계의 발언력이 상당한 편이었다.
“버, 벌써 왔어?”
그리고 창고 밖의 상황을 알게 된 케인이 헛바람을 삼켰다.
그들의 모습에 동료들이 모여들었고, 모두는 창고를 포위한 수행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브라질 지부 소속 수행자들은 나오시죠. 항복하지 않는다면 바로 공격을 실시하겠습니다.”
창고를 포위한 부대 속에서 화려한 장비를 걸친 남성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히로시다. 전투 총괄이 직접 왔어.”
히로시는 최상급 익스퍼트임에도 동급의 기사 여럿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로 유명하다.
더불어 지훈의 장비를 1순위로 물려받기 때문에 템빨도 대단한 수준이었다.
“총괄이 끼어 있는 부대와 싸워봤자 승리할 수 없어.”
케일의 이야기에 히스패닉계 남성이 수긍하며 말했다.
“계획대로 가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동료들은 별수 없이 동의했고, 그가 건네준 물약을 마셨다.
물약의 지속시간은 5일.
그 안에 결백을 인정받아야 했다.
브라질 지부 수행자들은 무장을 해제한 채 창고를 나섰다.
“진짜 문제를 일으킨 인간들은 저희의 손에 의해 제거가 된 상태입니다! 창고 안을 살펴보십시오!”
케인의 주장에 히로시는 부하들에게 턱짓을 했고, 창고 내부에서 수행자의 시신 셋을 발견한 이들이 돌아와서 말했다.
“시신은 수습하고 이들을 체포해 간다. 모두 포박해!”
“네!”
브라질 연맹 지부의 수행자들은 그대로 구속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억울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저흰 진짜 억울합니다! 최소한 조사라도 받게 선처해주십시오!”
히로시는 지훈처럼 진실의 눈을 보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진실로 여겨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무시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때.
히로시 뒤쪽에서 두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두 여성 중 한 명이 수행자 연맹의 부회장이자 지훈의 부인인 김선아란 사실을 알아채곤 사색이 되었다.
“억울한 사람들이 계속 범인을 따라다닌단 말입니까? 숫자도 더 많은데?”
수행자들 사이에선 지훈보다 악명이 높은 게 김선아였다.
따로 남편의 광휘를 이용해 갑질을 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지만, 잘못을 저지른 수행자들의 처벌을 결정하는 게 그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기 때문에 김선아의 말 한마디에 뮤대륙에서 목이 날아간 수행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진짜입니다! 범인 중엔 부지부장이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이들의 대답에 김선아는 기계적으로 답했다.
“뭐, 좋습니다. 어차피 결정은 연맹 회장님께서 해주실 테니.”
선처를 바라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억울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체포된 브라질 지부의 수행자들은 그날 바로 지훈 앞에 대령되었다.
“별다른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럼 더 좋지. 수아는 어디까지나 안전을 위한 장치였으니까.”
높다란 단 위에 놓인 황좌.
눈부시게 아름다운 4명의 미녀를 병풍처럼 양옆으로 늘어뜨린 지훈이 화려한 복장을 걸친 채 황좌에 앉아 브라질 지부의 수행자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꿀꺽.
바라보는 것만으로 피부가 저릿하다.
지훈에게서 좌중을 압도하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사실 이는 환골탈태의 영향이었지만, 지훈과 친분이 없는 이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같은 수행자일 텐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인류를 배신하고 제 목숨만 귀할 줄 아는 케인 일행은 자신들의 잘못보다도 이 눈높이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에 불만을 느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지훈의 눈빛.
뒤늦게 정신을 차린 케인 일행은 마른침을 삼키며 재차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지훈은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부인인 김선아에게 좌초지정을 듣고는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지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누굴 바보로 아나.”
지훈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처리해.”
황제의 지시에 베르트 제국의 근위기사들이 스릉 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케인 일행은 기겁을 해야 했다.
이렇게 조사도 하지 않고 쳐내다니, 수행자 연맹 회장이란 존재에 맞지 않는 폭거라 생각했다.
“어, 어째서 조사를 하지 않는 겁니까? 저흰 억울합니다.”
이들의 말에 지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히 말했다.
“너희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그, 그게 무슨?”
“어차피 난 판사가 아니거든. 심증이 있는데, 증거가 없다고 넘어가 줄 이유가 없지.”
“진짜 억울하다니까요? 모두 부지부장과 그의 수하들이 꾸민 일입니다. 저흰 알지도 못했어요.”
지훈은 볼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케인 일행에 가까이 다가온 근위 기사들의 검이 높이 솟구쳐 오르고 끝까지 억울함을 주장하던 이들의 애원은 분노로 바뀌었다.
“어차피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니잖아. 억울함은 미군에 토로해봐.”
“자, 잠깐!”
그리고 근위 기사들은 진짜로 구속된 이들의 목을 쳤다.
피로 얼룩진 황실 대전.
가벼운 손짓으로 피와 냄새 시체를 정리한 지훈은 헛웃음을 흘렸다.
“바보들 아냐? 마인드 포션을 사도 하필 내 상회에서 사다니.”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게니까요. 설마, 그런 상점까지 베르트 상회 소유라는 건 생각지 못했겠죠.”
지훈은 이미 이들의 비장의 수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수행자들이 생각할만한 수법도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가소로운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처리해야지. 최대한 고통스럽게 보낼 생각이야.”
“직접 나서시는 겁니까?”
김선아의 물음에 지훈은 황좌에서 보이는 창밖의 풍경 바라보며 간단히 답했다.
“인체와 관련된 건 미국이 전문이지.”
그렇게 그라디스에게 빌붙었던 인간들의 최후가 결정되었고 지훈은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 * *
그라디스에게 붙었던 브라질 지부 소속 18명을 미국 측에서 처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내 요구에 따라 충실하게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의 행태에 열 받은 것은 미국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몇 명의 뻘짓 덕분에 브라질 지부 소속 수행자 전체가 조사를 받긴 했지만, 추가로 발각된 인물들은 없었다.
브라질 지부는 두 개의 파벌이 존재했는데, 하나는 브라질 자국민으로만 구성된 파벌과 이주민들과 좋은 대우를 약속받고 브라질로 넘어온 주변국 수행자들로 이뤄진 파벌이 있었다.
강력한 한 명 아래 수행자들이 수직적 관계를 유지하는 곳은 한국을 포함해 몇 국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 처형된 수행자들은 주로 외부인으로 구성된 파벌이었다.
결국, 조사를 받던 나머지 브라질 수행자들은 죄가 없음이 밝혀져 풀려났다.
수행자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사형처벌이 내려진 것이어서 말이 많긴 했으나, 그들의 배신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어서 모두가 이해했다.
몇몇 박애주의자들이 그래도 사형은 안 된다는 입에 발린 말을 했지만, 그들의 의견은 대세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라디스를 제거하고 녀석의 흔적까지 깔끔하게 정리한 지구는 다시금 재건에 열중했다.
몬스터가 쳐들어오면 군인과 수행자, 능력자가 막고, 나머지 국민들은 터전 재건에 열을 올렸다.
현재 모든 국가는 경제란 개념이 사라진 상태.
국민 전체가 보급으로 살아가고, 국가는 보급이란 무기 덕에 국민들을 탈 없이 노역에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전구역이 증가하고, 성역을 중심으로 한 수도가 빠르게 재건되면서 변화가 발생했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든 비슷한 것처럼 노역이 끝나거나 노역에 동원되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이 생산 활동에 들어가면서 물물교환 장터가 곳곳에 생겨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