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15화
97. 마왕 강림(4)
“설마 가루 상태에서 부활하는 건 아니겠죠.”
분명 그라디스를 처치했다는 메시지창이 떴음에도 아무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다.
헛웃음을 흘린 나는 몸에 힘이 풀려 마리오네트들의 부축을 받았고, 봉봉이가 고기 방패 역할을 해준 두 다이어울프와 함께 날아왔다.
연인에게 타박을 받는 구미호 클라우디아와 아직 자신은 멀었다며 한숨을 내쉬는 초인들.
‘진짜, 운빨로 이겼네.’
나는 무시무시했던 그라디스의 위용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철저히 여신이 준 운빨템 덕분에 살아남았지, 우리의 실력으로 그라디스를 이긴 게 아니었다.
“이런 짓을 또 해야 한다는 거지?”
내 혼잣말에 엘프인 이브릴이 다가와 송구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상황이 조금은 더 나을 겁니다.”
하이랜드엔 드래곤도 있고 엘븐킹덤을 포함한 이종족의 전력도 막강하다.
그때가 되면 나도 더 강해질 테니, 승리를 점쳐볼 만하나 그라디스와의 전투에서 자신감을 잃었다.
뮤대륙에서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선 싸울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실력 향상에 더욱 정진해야 할 것이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요.”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배 아래에서 느껴지는 오러 포인트의 기운을 보니, 어느새 마스터의 벽을 넘어 8서클과 동급인 하이마스터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9서클을 찍으면 조금은 3대악과 싸울 만할까?
작게 심호흡을 한 나는 새로운 메시지에 감탄사를 흘렸다.
[서쪽의 왕 그라디스 레이드 결과]
1. 조지훈 45.4%
2. 엘리시아 34.3%
3. 클라우디아 9.5%
4. 노바 2.8%
…….
그러고 보니, 그라디스를 잡으면 보상을 준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블랜드 악마종 왕을 제거하란 시스템 퀘스트까지 함께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것에 만족해야 했다.
살짝 아쉬운 것이 있다면 봉봉이와 내 기여도가 나뉘어 있다는 것.
마리오네트들은 내 공적으로 쳐도 봉봉이는 성녀여서인지는 몰라도 별개로 취급을 받았다.
봉봉이는 수행자도 아닌데, 어떤 식으로 보상을 주려는 걸까?
이왕이면 내겐 선택형 전설급 보상카드가 나오면 좋겠다.
3대 악 레이드의 MVP인데, 적어도 그 정돈 나오지 않을까?
[레이드 MVP가 되셨습니다.]
[선택형 전설급 보상카드 1장을 획득했습니다.]
[선택형 전설급 장비 보상카드 1장을 획득했습니다.]
[전설급 보상카드 3장을 획득했습니다.]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 5장을 획득했습니다.]
[기여도에 따른 포인트 4,540,000을 획득했습니다.]
[3대 악을 처치하여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3대 악을 최초로 처치하여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이어진 보상 폭탄에 나는 언제 기운이 없었냐는 듯 헤벌쭉 웃음을 흘렸다.
“포인트가 한 번에 95만이나 들어왔어요. 그리고 전설급 보상카드 1장에 선택형 최상급 3장도 얻었고요.”
순순히 자신의 보상을 까발리는 구미호 클라우디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내던진 그녀 덕분에 영겁의 사슬을 사용할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충분히 그 정도의 보상을 받을만했다.
“아무래도 포인트는 ‘기여도×10만’인 것 같네요. 전 28만 포인트가 들어왔습니다.”
전설급 보상카드는 클라우디아에서 컷이 됐으나, 모두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를 한두 장씩 손에 넣었다.
덕분에 다들 내게 스킬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사고가속을 최고의 스킬로 꼽았고, 그 뒤를 이을 스킬로 잠재력 향상과 미래시를 꼽았다.
“아빠, 이거 봐!”
봉봉이도 뭔가 좋은 걸 받았는지,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자랑하듯 내게 다가왔다.
그런 봉봉이의 머리에는 투명한 티아라가 씌워져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오리하르콘제임을 단번에 알아채곤 장비 설명을 살폈다.
[천사장 카리엘의 티아라]
-신족이자 천사장인 카리엘의 상징.
-신성력 총량이 200% 증가한다.
-신성 마법의 능력치가 50% 증가한다.
-소생(1일 1회, 1시간 내로 사망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귀속, 파괴 불가
그야말로 봉봉이를 위한 특화 장비.
능력치도 엄청났다.
더구나 죽은 사람까지 살릴 수 있다니, 완전히 신의 영역이 아닌가.
“대박이네.”
혹시 봉봉이도 보상카드나 포인트를 받았나 물어봤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보상이 모두 티아라 하나에 몰빵된 모양이다.
이왕이면 성녀인 봉봉이도 수행자로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나는 손에 한 움큼 쥐어지는 10장의 카드의 무게감을 느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번 보상은 추후 벌어질 3대 악과의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한 번에 파워업을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지상으로 향했다.
어차피 선택형 최상급에선 죄다 천공의 성을 선택하겠지만, 버릇 때문에 보상카드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뽑고 싶었다.
“…….”
그런데 서울로 향하던 우리의 표정은 굳어졌는데.
그 이유는 이제 막 재건에 들어갔던 서울의 모습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단 석벽을 먼저 쌓아 두고 쉬도록 하죠.”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은 내 요청에 마법사들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이라곤 하나 9클래스 수준을 넘어선 위력의 헬파이어를 난사해서인지, 서울의 서쪽이 증발해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넋 놓고 있던 시민 상당수가 폭발에 휩쓸렸을 것이다.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를 상대로 이 정도면 매우 선방했다고 볼 수 있지만, 당혹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서울 중심부가 날아가지 않아 다행이죠. 만약 처음에 서울을 의식하지 않고 싸웠다면, 전체가 날아갔을 겁니다.”
이브릴의 말이 맞다.
씁쓸하긴 하지만, 우리가 실력으로 녀석을 물리친 게 아닌 이상 이것저것 따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요? 호수가 많이 생겼네요.”
위스워드 제국의 델피로 공작의 농담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말한 호수란 한강을 끼고 생긴 크레이터에 한강 물이 차면서 만들어진 거대 웅덩이를 말했다.
그런 게 서울에서부터 고양, 김포 방향으로 수십 개가 이어져 있었다.
8서클의 마법사가 무려 8명이나 되다 보니 석벽을 복구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서울 중심부로 향하자 숨어 있던 수행자들이 달려 나왔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고생했다며 와락 안겨 오는 김선아와 클로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나는 비는 사람은 없는지 수행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연맹 소속 수행자들과 능력자들은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게 대비가 되어 있었는데, 빠짐없이 나타나 우리를 반기는 것 보면 그들이 있던 장소엔 영향이 없던 모양이다.
“대단합니다! 완전히 전신들의 전투였어요!”
이름 모를 남성 능력자가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쳤다.
그에 주변 수행자들과 정부 관계자들도 얼떨결에 박수를 따라 쳤다.
폐허를 등지고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
사람들의 환호보다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으나, 어느 수행자가 비밀 상점에서 구매한 스마트폰을 들이밀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지구에서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면 역사에 남을만한 전투였으니, 사진 한 장 남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 * *
사람들은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만큼 강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가까이 지내는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점점 가속도가 붙듯 빠르게 강해진 이유도 있지만, 이제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다닐 일이 아예 없어졌기에 내 무력은 그들의 상식선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번 3대 악과의 전투로 그 상식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번 그라디스 레이드의 MVP는 대천사를 사용한 봉봉이가 아닌 나였다.
영겁의 사슬과 여신의 권능, 나와 마리오네트 3명의 폭딜이 더해진 덕분에 종합적으로 내 기여도가 더 높게 평가되었다.
그리고 레이드 기여도 2위를 차지한 봉봉이도 엄연히 따지면 내 전력이었다.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전신으로 취급을 받고 있는 상태.
소식을 들은 히로시는 바로 서울로 날아와 초인을 넘어 신이 되어 버렸냐며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직 그는 내 라이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서쪽에 사람들이 적어서 다행이었지.’
피난을 시킨다고 사람들을 서울 중심부로 모은 게 유효했다.
덕분에 희생자는 1만 명 선에서 끝이 났는데, 3대 악을 상대로 매우 선방했으나, 웨이브 외에 공격으로 발생한 가장 큰 희생이었다.
하지만 희생자에 대한 위로도 잠깐, 모두가 이 상황을 만끽하며 환호했다.
완전히 영웅 취급이었으나, 지금의 내 관심사는 사람들의 환호가 아니었다.
손에 쥐어진 10장의 보상카드.
이게 가장 큰 관심사였다.
‘좋아, 가자.’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 5장.
전설급 보상카드 3장.
선택형 전설급 무기 보상카드 1장.
선택형 전성급 보상카드 1장.
우선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 5장을 사용했다.
선택한 보상은 모두 천공의 성.
덕분에 지난번 추가한 4번째 천공의 성과 전설급 보상카드에서 나온 천공의 도시까지.
총 10개의 하늘 섬을 보유하게 되었다.
김선아와 히로시를 포함해 현재 최상급 퀘스트 구간에 있는 1회차 수행자들이 있지만, 아직 아무도 천공의 성을 얻지 못해 하늘은 거의 내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천공의 도시를 중심으로 9개의 천공의 성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럴싸할 것 같다.
천공의 도시는 면적이 서울보다 조금 작은 수준.
그래서 전 세계 수행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천공의 도시로 이주를 시킬까 고려 중이다.
어째 점점 수행자란 존재가 현대판의 천룡인이 되어가는 느낌이지만 박애주의자가 아닌지라 내 사람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이어서 나는 3장의 전설급 보상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능력치 향상을 위해 장비들을 착용했는데.
“…….”
오리하르콘의 강도에 버금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3대 악 앞에 맥없이 훼손된 장비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3대 악의 공격을 장비빨로 방어해내려면 다른 소재의 강도를 오리하르콘 급으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오리하르콘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장비가 완전히 파괴된 건 아니라 자체 수복 중이다.
배에 구멍이 뚫린 흉물스런 갑옷 차림에 능력치를 올려주는 버프스킬을 모두 사용했다.
더불어 이번에 그라디스를 사냥해내면서 스텟도 대폭 상승했기에 지난번 전설급 카드를 뽑을 때보다 운 수치가 더욱 높아졌다.
할만하다고 생각한 나는 전설급 보상카드를 사용했다.
[오리하르콘 3kg을 획득했습니다.]
지난번에 전설급 보상에서 2kg을 얻었으니, 현재 재고는 총 5kg이나 된다.
이 정도면 철 10kg에 달하는 부피니, 잘하면 갑옷도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방패를 여럿 찍어내서 강화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오리하르콘은 보통의 방법으로 얻을 수 없는 최강의 금속.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전투 마리오네트를 획득했습니다.]
전설급 보상은 포인트 샵의 최상급상품과 중복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얻게 된 4번째 마리오네트.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내가 능력하나 믿고 하렘을 차린 줄 알 것이다.
나는 딱히 마리오네트에 손을 대야 할 만큼 욕정에 굶주려 있지 않았다.
새로운 마리오네트는 전체적으로 슬림한 모델 체형이었다.
연한 갈색 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서 같았다.
[영겁의 사슬을 획득했습니다.]
“좋아!”
그리고 마지막 보상에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전투의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장비가 나왔기 때문이다.
원래 보유하고 있던 것은 완전 파괴되어 사라졌지만, 영겁의 사슬은 3대 악의 움직임을 봉쇄해 우리에게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이것만 있으면 공작위 이하의 악마종도 쉽게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