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214화 (214/247)

# 21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14화

97. 마왕 강림(3)

-투투투퉁!

7겹에 달하는 6클래스의 오토실드가 종잇장처럼 꿰뚫리고.

“큭!”

나는 크게 구멍이 난 가슴을 내려다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귀찮다는 듯 휘두른 그라디스의 손짓에 당한 것이다.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은 공격은 2단으로 날아왔는데, 첫 공격은 여신의 가호가 방어를 해내고, 두 번째와 공격을 막기 위해 오토실드 기능이 사용됐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려 버렸다.

“마스터 치료를….”

그리고 내 옆에 있던 청아도 얼떨결에 왼팔을 잃고 말았다.

전투 마리오네트도 신체는 피륙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코어를 제외하면 내장기관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엘릭서.’

그래서 나는 자신뿐만 아니라 청아에게도 엘릭서를 사용했고, 우리는 즉시 부상에서 부활했다.

굳이 엘릭서를 쓰지 않아도 봉봉이의 부활마법이면 바로 회복할 수 있지만, 녀석의 신성력도 한계는 있으니 엘릭서에 여유가 있는 내겐 부활을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해 놨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나는 더욱 신중하게 그라디스를 공격했다.

그라디스는 온몸이 미스릴로 되어 있는지, 오러블레이드로도 깃털 하나 베기가 힘들었다.

체격은 비슷하지만, 체급이 다른 느낌.

‘반전이 필요하다.’

나는 끊임없이 그렇게 생각하며 빈틈을 살폈지만, 녀석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에도 쉽게 유효타를 허락하지 않았다.

진짜, 끔찍할 정도로 강했다.

덕분에 그라디스의 덩치가 실제보다 크게 느껴졌다.

이 모든 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한 공포심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겁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제, 젠장.”

동급의 적만 없다면 홀로 한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평가받는 하이마스터(8서클)와 그랜드마스터(9서클)도 3대 악을 상대로 아무것도 못했다.

그나마 대천사를 앞세운 우리 전체가 달려들어 전황이 유지되는 거지, 봉봉이가 없었다면 순삭당하고 끝났을 것이다.

‘혹시 3대 악은 신족만큼 강한 거 아닐까?’

3대 악은 상성에서 밀리는데도 대천사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럼 대천사 윗계급인 신족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신족.

흔히 17신이라 부르는 이들로 가이아와 함께 신계라는 곳에 머무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외형 이미지와 속성(불의 신, 사냥의 신 등) 외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어서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신족이니까 엄청 강하겠지’라고 판단할 뿐이다.

“이대로는 끝이 없습니다.”

그때, 내게 다가온 구미호 클라우디아가 거대 여우의 모습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며 그렇게 말했다.

대천사를 제외하면 그녀는 나만큼이나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최대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라디스의 공격을 많이 받으면서 봉봉이에게 4차례나 부활을 받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싸우면서 마력 소모라도 부추기는 수밖에….”

“그러다가 마력회복 수단이 있으면요?”

그도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지라 우리처럼 포션을 마시든 아티팩트를 사용하든 마력을 충당할 수단이 있을 수도 있었다.

내가 말을 잃자, 그녀는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제가 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한 모습.

뮤대륙에서 안개 초원에 갇혀 있는 그녀에겐 지구가 유일한 자유의 땅이다.

지구를 위해 나서주는 그녀가 고맙지만, 개인적으로 클라우디아의 결심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성녀의 부활과 수행자의 엘릭서가 있다고 하지만, 그게 만능인 건 아닙니다. 심장과 함께 머리가 날아가면 즉사에요.”

부활 마법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소생과 다르다.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부상도 즉시 회복시키지만, 완전한 사망판정은 뒤집을 수는 없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건 모두가 같잖아요. 저만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죽어봤자 뮤대륙에서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여우로 둔갑하며 말했다.

[영겁의 사슬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횔 만들겠습니다. 타이밍 잘 맞춰주시고, 죽지 않을 부상이라면 바로 제게 엘릭서 써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그녀보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나을 것 같지만, 클라우디아는 내가 잡기도 전에 벼락처럼 허공을 박찼다.

당혹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설아야 가자. 청아와 연아는 하던 대로 원거리 지원하고.”

“네.”

여차하면 설아를 대신 희생시키겠단 생각으로 클라우디아의 뒤를 따랐다.

그라디스는 대천사와 치고받고 있는데도, 외부 상황을 체크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녀석의 공격이 정직하게 달려오는 구미호에게 날아들었다.

어떤 방어막도 그라디스의 공격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에 클라우디아의 여우 몸 중 절반이 날아갔지만, 나는 즉시 엘릭서를 사용해 회복시켰다.

‘엘릭서. 엘릭서. 엘릭서….’

잠깐 1초도 안 되는 시간 사이 클라우디아에게 6번의 엘릭서를 사용했다.

엘릭서가 없었다면 그 짧은 시간에 6번은 죽었다는 뜻이다.

-콰앙!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라디스가 클라우디아에게 더욱 강한 공격을 날렸는데, 우리만 신경 쓰지 말라는 것처럼 대천사가 커버해 주었다.

그라디스를 상대하는 대천사의 모습은 의외로 말끔했다.

그러나 그건 부상을 치료했기 때문에 겉모습만 멀쩡했지 움직임은 많이 둔해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대천사가 전투를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클라우디아가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클라!”

무모한 돌진에 기겁한 그녀의 남자친구가 애칭을 불렀지만, 그대로 클라우디아는 몸을 크게 부풀리며 그라디아에게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콰아앙!

클라우디아의 머리는 그라디아에게 닿기도 전에 터졌다.

머리나 심장 둘 중 하나라도 살아 있는 상태라면 회복할 수 있다.

나는 즉시 엘리서를 사용했지만, 녀석의 공격은 내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콤마 단위를 이어졌다.

-퍽!

미안하지만 뒤이어진 공격은 설아가 막게끔 했다.

파워부스트가 적용된 10중첩의 8서클 그레이트 실드가 9서클의 앱솔루트 실드를 상회하는 포스를 보였으나.

어김없이 터져나갔다.

더불어 설아의 사지가 사방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뜯겨져 내장을 쏟았다.

나는 척추가 덜렁거리는 설아의 머리를 끌어당기면서 마침내 영겁의 사슬을 사용했다.

영겁의 사슬은 피하기 힘든 거리에서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라디스가 피하려는 것을 대천사가 절묘하게 막아냈다.

-촤라라라락!

이후 사슬이 그라디스를 감는 것을 보며 나는 즉시 설아에게 엘릭서를 사용했다.

다행히 설아는 코어가 무사한 덕분에 끔찍한 모습에서도 회복되었다.

마리오네트라 해도 예쁜 여인의 모습을 한 설아를 악마처럼 고기 방패로 사용한 덕에 클라우디아도 무사할 수 있었다.

“뭐, 뭐냐!? 이건?”

설아에겐 미안하지만 결과적으로 누구도 희생되지 않고, 그라디스를 포박할 수 있었다.

나는 가슴부터 시작해 다리까지 꽁꽁 사슬에 포박되어 있는 그라디스를 보며 외쳤다.

“지금입니다!”

그에 사방에서 그라디스를 향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큭!”

그라디스는 공간이동으로 해당 위치를 벗어나려 했으나, 영겁의 사슬이 도주를 막았다.

덕분에 녀석은 두 눈 뜨고 날아드는 공격들을 맨몸으로 받아야 했다.

“감히!”

그러나 그라디스의 포효에 날아들던 공격들이 증발했다.

‘기합만으로 공격들을 날려 버리다니.’

겪으면 겪을수록 무서운 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쉬지 않고 공격을 쏟아부었다.

그라디스의 위용이 너무도 엄청났던지라 금방이라도 사슬을 끊고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겁의 사슬은 웬만해선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티팩트 설명에 ‘신족이라 해도 쉽게 끊을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해당 아티팩트는 ‘대천사 리엘’이란 인물의 전용 장비로 일종의 성물이었다.

“크읍!”

얼굴이 새빨개진 그라디스가 힘을 줘도 사슬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매섭게 날아드는 공격에 그라디스는 아예 검은색의 베리어를 펼쳤다.

덕분에 우리의 공격이 박히지 않았지만.

“컥!”

대천사의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밀리긴 했어도 대천사는 그라디스와 정면 전투가 가능한 유일한 존재였다.

대천사의 창이 배리어를 뚫으며 미간에 틀어박혔고, 그대로 그라디스의 머리가 좌우로 쪼개졌다.

하지만 타락천사임에도 몽크의 특성을 가졌는지, 머리가 급속도로 회복되어 원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그런데 그라디아가 회복 후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네 덩이의 거대한 헬파이어가 날아와 작렬했다.

-콰아아앙!

“큽!”

덕분에 근처에 있던 나와 설아, 대천사가 폭발에 뒤로 튕겨졌다.

미처 방어할 틈도 없었고, 정면으로 날아든 공격은 모두 나와 마리오네트들이 사용한 10중첩 헬파이어였다.

나는 녀석이 회복할 것이란 사실을 미래시로 보았기에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사용했다.

8서클이 된 지 얼마 안 된 덕에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이 헬파이어뿐이지만, 그것만으로 공격력은 충분했다.

파워부스트와 각종 스킬로 떡칠 된 10중첩 헬파이어는 아무리 3대 악이라 해도 맨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를 이렇게까지 당황시킬 줄이야.]

아직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주듯 머릿속으로 그라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발로 인해 발생한 화염과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고, 머리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몸통만 남은 그라디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없는데, 생각은 어떻게 하지?’

순간적으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갑자기 녀석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점점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라디스는 계속 덩치를 불려갔고, 크기가 거의 싸이클롭스 수준으로 커졌다.

사슬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지만, 고무줄처럼 늘어나 끈질기게 그라디스를 구속했다.

신족도 구속한다는 영겁의 사슬이 곧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으로 늘어나자 모두가 겁을 먹었다.

“어, 어떻게 하죠?”

구미호 클라우디아의 물음에 나는 간결히 답했다.

“공격하죠.”

그 이상의 답은 없었다.

나는 모두를 이끌고 녀석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봉봉이와 대천사는 신성력을,

나를 비롯한 마법사 군단은 헬파이어 난사를.

하이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는 어검과 심검으로 극딜을 넣었다.

덕분에 녀석은 믹서기에 갈리듯 머리서부터 목, 가슴까지 살이 터져나갔다.

방어막을 사용해도 대천사가 꿰뚫고, 사슬을 부수려 해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고정된 적을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공포스런 일이 발생했으니.

-뚝!

[크아아아악!]

그라디스의 힘인지, 우리의 공격이 영향을 미친 건진 몰라도 결국 사슬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아티팩트 영겁의 사슬이 영구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앞으로 쓸모가 많을 아이템이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그라디스가 무서운 검은 기운을 흘리며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뭐, 이런!’

결국, 녀석을 뜨러뜨릴 순 없는 걸까?

우리가 당한다면 이 세상은 끝이다.

모두가 절망한 그때.

내가 착용하고 있던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여신의 권능 / 팔찌 / 소환형 공용장비]

-가이아의 힘이 담긴 팔찌로 1회용 아티팩트이다.

-가이아의 고위 권능 하나가 ‘무작위’로 부여된다.

그건 가이아가 3대 악으로부터 살아남으라며 내게 준 선물이었다.

‘어떤 것이든 고위 권능이면 필시 생존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녀의 말을 떠올린 나는 그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랜덤 아이템이라서 사용을 미뤄왔지만, 지금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매달려야 했다.

[여신의 권능이 사용되었습니다.]

[권능: 고문의 주마등]

뭔가 애매한 이름.

하지만 지금은 설명을 읽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바로 권능을 발현했다.

-툭.

그러자 맹렬히 달려오던 그라디스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

이유를 모르는 이들은 모두 겁에 질려 움찔거렸으나.

나는 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눈을 크게 떴다.

-1시간 동안 입은 데미지가 누적되어 일시에 적용됩니다.

-신체의 회복능력이 24시간 동안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귀에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악!]

“공격해요!”

머릿속을 진탕으로 만드는 굉음.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통에 몸을 비트는 그라디스를 향해 다시금 마법을 난사했다.

지금 데미지를 주면 하루동안 회복을 못 한다.

권능으로 한 번에 죽어주면 베스트지만, 그것만 바라고 얌전히 지켜만 볼 수 없었다.

[가이아, 이 비겁한 년….]

잠시 후.

그라디스는 그 말을 끝으로.

[서쪽의 왕 그라디스를 처치했습니다.]

녀석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