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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212화 (212/247)

# 21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12화

97. 마왕 강림(1)

“다음은 제 차례군요.”

노바가 허리춤에서 짧은 에페를 뽑아 들며 바르토스 황제와 교대해 앞으로 나섰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 검이란 단순한 매개체일 뿐 형태나 크기, 무게는 전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당연히 그와의 대련을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 내저었다.

그에 푸른빛의 구슬 10여 개가 떠올랐고, 나를 중심으로 위성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플라잉소드나 심검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위력은 플라잉소드나 다름이 없었다.

마력에 둘러싸인 구슬 안에는 오러가 응축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보통 플라잉 소드는 사고를 분할하는 것인지라 완숙의 경지에 들어서도 최대 운용 가능한 검은 두 개가 끝이다.

하지만 10여 개의 푸른 구슬은 복잡한 검술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내겐 사고가속과 미래시가 있으니 굳이 사고 분할을 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모두 컨트롤할 수 있었다.

오러와 마법의 결합.

이번에 환골탈태를 하며 모든 힘이 마력을 중심으로 이어진 덕에 자연스레 구사할 수 있게 된 힘이었다.

-스스스!

내가 펼친 푸른 구슬이 회전 속도를 높여갔다.

그리고 나와 노바는 동시에 전투자세를 취했는데, 노바는 굳이 플라잉 소드를 사용하지 않고 검 한 자루만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느 방식으로든 공격 가능한 심검이 있으니, 굳이 필요치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럼 시작하죠.”

내가 하수기에 선공을 허락한다든가 그런 건 없었다.

그는 나를 동급의 적수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의 신호와 동시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노바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고가속이 최대로 펼쳐져 있음에도 눈에 잡히지 않는 신속은 총알 따위완 비교가 되지 않았다.

-퉁퉁퉁!

기사의 경지가 그랜드 마스터급에 다다르면 능력은 마법사와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눈앞에 사라진 노바를 대신해 나타난 것은 시야를 가득 채운 검강 다발이었다.

마치 촉수처럼 유연하게 뻗어 오는 검강 다발은 보는 것만으로 압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님을 미래시로 눈치챈 나는 검강 다발을 푸른 구슬로 상쇄하며 가볍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핏!

그러자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장소에 오러블레이드가 솟아났다.

만약 내가 멍을 때리고 있었다면 저 오러블레이드가 몸을 꿰뚫었을 것이다.

저게 바로 심검의 묘였다.

이어서 나는 몸을 비틀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검을 휘둘렀고.

-콰아앙!

노바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검과 검의 충돌.

힘겨루기를 하듯 검을 맞댄 노바가 감탄 섞인 감상을 말했다.

“빠르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지는 분명 그가 높지만, 사고가속으로 반응속도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 되면서 나는 스탯 포인트를 얻을 때면 모두 민첩에 투자했다.

더불어 마법과 스킬 등의 보조가 더해진 상태기 때문에 순간 스피드에서 노바에게 밀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포위하듯 푸른 구슬을 생성해 그를 압박했으나.

고슴도치처럼 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 검강이 포위 공격을 막아냈다.

-쾅! 콰앙!

전체적인 순발력은 내가 위.

한방 한방의 파괴력은 그가 위였다.

더구나 그랜드 마스터란 경지가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사고 가속과 미래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속도를 보였다.

그렇게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길 5분여.

-콰직!

“큭!”

“괜찮으십니까?”

섬뜩한 파괴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군 나는 패배를 시인했다.

기이하게 꺾인 팔을 바라보며 리커버리를 사용했고 부상은 금세 회복되었다.

바르토스 황제는 노바의 전투에서 많은 것을 느꼈는지, 박수를 치며 감명받은 표정을 지었는데, 나 역시 방금의 대련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소드마스터로서 그랜드마스터들에게 직접 훈련을 받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사치란 말인가.

이들과 함께라면 빠른 시일 내로 하이 마스터 단계에 접어들 수 있을 것 같다.

“생각 이상이군요. 만약 8서클 마법을 완전히 본인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제가 졌을 겁니다.”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코 높은 평가가 아닙니다. 지훈 님이 전력이 아니란 것을 알고 싸워서인지 오히려 허탈할 지경인데요.”

전력이 아니란 말은 파워부스트와 영겁의 사슬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영겁의 사슬은 걸리면 그냥 전투가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제대로 대련이 되지 않을 터.

그래서 나는 파워 부스트를 활용하며 대련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

‘파워 부스트’는 마력이 높을수록 큰 위력을 발휘하는데, 현재 내 마력으로 해당 스킬을 사용하면 거의 3배에 달하는 능력치와 공격력 상승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파워 부스트는 장점만큼이나 또렷한 단점이 있다.

그건 바로 1시간의 지속시간이 끝이 나면 10분 동안 마력을 충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력을 충전하지 못하면 내 전투력은 90%가 떨어져 나간다고 봐야 한다.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스킬이지만, 제약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파워 부스트의 활용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스킬을 1시간 내내 사용하지 않고 중간에 끄는 방법이었다.

미래시처럼 스킬 자체를 비활성화하는 방법.

하지만 애석하게도 해당 방법은 실패로 끝이 났는데, 그 이유는 비활성화하면 바로 스킬 효과가 끝난 것으로 판단하여 마력이 10분간 차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방법 저 방법 써보며 시스템적인 허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한 가지 해법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엘릭서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엘릭서를 사용하면 모든 상태 이상을 치료해 준다.

설령 그게 스킬과 연관이 있는 시스템 문제여도 말이다.

신체가 마력을 충전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상태 이상에 해당 된다고 볼 수 있으니, 엘릭서가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즉, 엘릭서만 받쳐 준다면 파워부스트를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재 나는 200개가 넘는 엘릭서를 보유하고 있으니, 이론상 200시간 넘게 파워 부스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샛길을 찾아내는 것을 보면, 역시 잔머리는 잘 돌아간다.

“큭!”

파워부스트를 사용하여 대련하자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막강했던 노바가 오래 걸리지 않아 피를 토하며 떨어져 나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얼른 리커버리를 사용했다.

리커버리에도 파워부스트가 적용되어 그는 바로 안색이 좋아졌다.

“후…. 공격력은 물론 신체 능력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니, 어떻게 손을 못 쓰겠네요. 잘도 그 힘을 제어하시는군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 그를 보며 나 역시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처음 파워부스트를 얻었을 땐, 제약 때문에 아쉽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나, 그 제약이 없어지니 그야말로 사기란 생각이 절로 드는 스킬이 되었다.

그리고 폭발적인 능력치의 증가는 사고가속과 궁합이 매우 좋았다.

덕분에 나는 갑자기 증가한 힘을 문제없이 사용해낼 수 있었다.

나는 노바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고, 그는 언제 엄살을 떨었냐는 듯 말했다.

“이런 경험은 오랜만이군요. 여러모로 즐겁습니다.”

마음껏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경쟁 상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들 한다.

그는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전력을 급상승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랜드 마스터 둘에 9서클 급의 구미호, 나와 봉봉이까지 더하면 아무리 3대 악이라 해도 싸워볼 만하지 않을까?’

지나친 자신감일지 모르지만, 봉봉이가 소환할 대천사를 중심으로 작전을 짜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단기간에 이뤄낸 전력 상승은 성공적이었다.

* * *

세상 어딜 가나 자기 목숨만 귀한 줄 아는 사람이 있다.

꼭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팔아넘기고, 동포를 핍박하는 앞잡이가 되어 희망이란 단어를 짓밟는다.

물론, 사람이란 존재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일괄된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지만, 백에 하나 정도는 돌발행동으로 상황을 안 좋게 만드는 인간이 분명 존재했다.

피난이 결정된 멕시코 시티.

흥이 식은 표정으로 도심을 거닐던 백발의 청년 앞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명성을 원하는 어리석은 용사 희망자인가?”

그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는지, 백발의 청년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히죽 웃음을 흘렸다.

그에 백인과 동양인이 고루 섞인 무리의 사람 중 히스패닉계 남성이 튀어나오며 손을 내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흰 그라디스 님의 종을 자처하는 신도들입니다.”

무릎을 꿇으며 비굴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의 모습에 백발의 청년 그라디스 눈썹이 꿈틀댔다.

“너희는 수행자로군?”

“네, 그렇습니다.”

그라디스가 지구로 넘어오고 수행자를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

그런데 이미 자신의 위치와 정체는 그들에게 모두 까발려져 있었다.

그에 그라디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는데, 마치 위성처럼 지구의 궤도에 위치한 성물 ‘마를 쫓는 별’이 보이는지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겼다.

“역시 잘못 느낀 게 아니었군. 어쩐지, 가는 곳마다 인간들이 없다 했어.”

그런 그라디스의 머리 위로 작게 빛나는 불빛이 별똥별처럼 떨어져 내렸다.

-스스스!

잠시 후, 바람 스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하얀 궤적을 그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콰아앙!

그리고 멀지 않은 장소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는데, 그것이 그라디스를 감시하던 마를 쫓는 별이란 사실을 알아챈 수행자들은 하나같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저희는 그라디스 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결론은 인간을 배신하여 내게 달라붙고 싶다는 것이군.”

요점만 말하는 수행자들을 훑는 그의 눈빛은 마치 오물을 바라보는 듯했다.

수행자들은 그런 그라디스의 시선에 발악하듯 자신들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지구 전반을 포함해 방해 세력의 정보를 수시로 파악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주제 파악 못 하고 그라디스 님에게 덤벼들려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원하시면 행동대원으로 힘도 보태겠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은 것뿐이죠.”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행태를 보았다면 온갖 욕을 쏟아붓겠지만, 그라디스는 돌연 낮은 웃음을 흘리며 히스패닉계 남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라디스의 손이 닿을 때마다 남성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뭐, 나쁘지 않지. 솔직한 게 좋은 것이니.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위선이거든. 적어도 너희에게선 위선은 찾아보기 힘들구나.”

배신자끼린 통한다는 건가?

인류를 배신한 수행자들과 가이아를 배신한 타천사 그라디스는 여러모로 비슷한 면이 많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라디스의 성향을 알기에 이들이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럼 쓸모 있는 정보를 밝혀 보겠나.”

“네!”

그라디스가 자신들을 받아 주었단 생각에 표정이 밝아진 이들은 주절주절 정보를 발설했다.

당연히 그 속엔 지훈에 대한 이야기와 미드랜드 평화 위원회의 초인들, 엘븐 하임의 지원, 성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쯧, 그렇군. 성물이 버젓이 날아다닌다 싶었는데, 이 세계에도 성녀가 있었어.”

“건방진 녀석들에게 시간을 줘봐야 쓸데없는 희망을 품어줄 뿐입니다. 말끔히 청소하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그라디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부일지 모르지만, 해당 수행자의 경솔한 말은 인류에게 크나큰 죄악을 저지르는 행위였다.

“건방진 녀석이로군. 내게 명령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수행자들은 미리 연습이라도 해왔는지 일사불란하게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

“망극합니다.”

그라디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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