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07화
95. 악마종 사냥(1)
뮤 대륙의 성녀에게도 도움을 청해보고 엘프들에게도 도움을 청해야지.
또 미드랜드 평화위원회에 스스로를 9서클 급이라 칭한 구미호도 있지 않은가.
여신이 내게 아이템까지 준 것을 보면 변수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나는 그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대비를 할 생각이다.
뮤대륙과 지구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을 수만 있다면 3대 악 하나 정돈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테니.
‘설마 이렇게 빨리 3대 악과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이기면 만세지만, 지면 잃는 게 너무 많았다.
“이왕이면 백작, 후작, 공작의 악마종을 처리한 다음에나 올 것이지.”
목숨을 위협받는 이 상황에서도 나는 가장 먼저 3대악과 관련된 퀘스트를 클리어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아쉬워했다.
이왕이면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게 긍정적이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라디스가 지구로 넘어온 틈을 이용해 녀석의 영역을 휘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백작위 이상의 악마종이 강하다지만, 8서클과 하이마스터급의 존재들이 우르르 몰려가 다굴을 치면 해결할 수 있을 테니.
* * *
“좋습니다. 그거에요.”
나는 창술로 기초를 다듬었지만, 요즘은 검술을 배우는 일이 월등히 많아졌다.
그 이유는 내 검술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그라프를 비롯한 기사들은 검술의 이해도가 창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일단 포인트 상점에서 검술을 포함해 이런저런 무기술을 사서 익혀두긴 했지만, 시스템적으로 무기술을 스킬처럼 사서 익힌다고 자동으로 숙달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 무기술에 대해 이해하고 제대로 구사하는 것은 내 능력 여하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수행자들도 끊임없이 수행을 하는 것이다.
현재 내 검술은 익스퍼트 최상급 중에서도 끝자락.
어떠한 계기만 있다면 소드마스터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베르트 왕국 왕실 연무장에서 나와 검을 맞대고 있던 상대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후우….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진짜 운이 좋다.
요즘엔 무려 하이 마스터로부터 직접 검술을 배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와 검을 맞대며 수련에 도움을 주고 있는 인물은 바로 칼바도스 왕국의 바르토스 국왕이었다.
아무리 명망 높은 검사라 하더라도 한 국가를 다스리는 왕이 다른 나라 왕의 검술을 봐준다는 것은 미드랜드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물론 칼바도스 왕국은 로이아스 연방 제국에 가입을 청하고 또 그것이 진지하게 검토될 정도로 사이가 좋은 국가다.
하지만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국왕이 다른 나라까지 찾아와 검술 지도를 해준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우리 주변만 봐도 대주교가 포함된 다수의 신관과 양국의 근위 기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뭐, 대부분의 기사들은 나와 바르토스 국왕의 훈련을 관찰하며 건질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내 훈련이 끝나자, 옆에서 바르토스 국왕의 제자인 소드마스터 카르트 후작에게 수련을 받고 있던 히로시와 김선아의 훈련도 끝났다.
“역시 습득 능력이 남다르십니다. 검술은 이제 건드릴 것이 없네요.”
내 습득 능력은 스킬과 전투교범이란 아이템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그는 나를 희대의 천재로 여길 뿐이다.
그리고 바르토스 국왕은 나뿐만이 아니라 김선아와 히로시 역시 눈여겨보았는데, 둘 모두 나 못지않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따지면 실제 재능은 전투 교범만 사용 중인 히로시, 전투교범에 사고가속을 사용 중인 김선아, 전투교범, 사고가속, 잠재력 향상을 사용하는 나 순이 될 것이다.
내가 언제든 마스터의 벽을 깰 수 있는 상태라 바르토스 국왕이 신경을 많이 써줘서 그렇지, 틈나는 대로 김선아와 히로시의 상태도 직접 살펴주었다.
덕분에 김선아와 히로시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최상급 익스퍼트 후반에 올라선 상태.
경지를 시간으로 나눌 수 없지만, 대충 뮤대륙 시간으로 150일 전쯤의 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후, 마스터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으니, 미치겠네요.”
“원래 그때가 그렇죠. 그래도 큰 고비 없이 성장하고 있는 겁니다. 익스퍼트 상급에서 최상급이 되는 것보다 최상급에서 마스터가 되는 것이 월등히 어려우니까요.”
우린 시녀들이 내온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리고 나는 동료들에게 클린 마법과 리커버리 마법을 사용해주었다.
“대마법을 피로회복 용도로 받다니, 사치스럽군요.”
나는 웃으며 그와 함께 다과를 즐길 휴게실로 향했다.
“그라디스의 위치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습니까?”
그도 지구에 3대 악이 나타난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막 수행자가 되었는데, 지구가 파탄 나기라도 하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되는 만큼 그라디스에 대한 감정은 미드랜드 평화위원회의 모두가 좋지 않았다.
당연히 힘을 합쳐 녀석을 쓰러뜨릴 예정인데, 8서클과 하이마스터의 능력으로는 그라디스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3대 악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성녀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봉봉이와 아리엘 성녀가 동시에 대천사를 소환한다면, 3대악이라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네, 지구 각지의 피난처에선 아직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만전의 상태가 아닌가 보군요. 힘들게 차원을 넘어와 놓고 얌전히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봉봉이의 신탁은 그라디스가 지구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지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각국에 이상 현상에 대한 상황파악을 요청했지만, 평범한 몬스터의 준동 빼고는 이렇다 할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지구에도 용인족이란 강한 종족이 세계 각지에 존재합니다. 이김에 그들과 손을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용인족이요?”
“네, 타고난 전사 종족입니다. 마스터는 물론 하이마스터에 잘하면 그랜드 마스터급의 인물도 있을 거예요.”
내가 느낀 용인족은 뮤대륙의 엘프와 비슷했다.
수명도 길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전투에 특화된 체질을 갖고 있었다.
비록 마력이 제한된 장소에서 생활한 덕에 성장이 원활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마스터급의 전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아마 마력이 풍부해진 지금의 지구에서 한두 세기를 더 살아가면 그들의 능력치도 대폭 상승할 게 분명했다.
“놀랍군요. 지구에도 그런 종족이 있다니.”
이번에 가이아를 만났을 때 용인족과의 접점에 대해서도 묻는 거였는데, 너무 묻지 못한 게 많았다.
3대 악의 등장은 인류의 위협만이 아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위협이었기에 지금까지처럼 마냥 방관하긴 힘들 것이다.
“뭐, 사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엘 성녀님의 참전 여부지만요.”
“아직 답변이 없는 겁니까?”
“네….”
아리엘 성녀는 수행자의 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힘을 보태 줄 것이라 판단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우리의 요청에 대해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녀로써 이 세상을 비워둔다는 것이 내키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세상은 뭐든지 기브 앤 테이크.
그녀가 그라디스를 처치하기 위해 지구를 도와주고, 봉봉이가 브람기슈를 처치하기 위해 뮤대륙을 도와준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뭐, 봉봉이는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하면 군말없이 따를 테지만, 문제는 당장 닥친 지구의 위협에 대한 아리엘 성녀의 애매한 태도였다.
수행자에겐 친밀하지만 지구의 위협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저도 함께 부탁해 보겠습니다.”
바르토스 국왕의 대답에 나는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네?”
바르토스 국왕과 함께 성녀를 설득하기 위해 이타루스 신성 왕국을 찾은 우린 비보를 마주했다.
“애석하지만 지구엔 갈 수 없습니다.”
그건 바로 성녀의 그라디스 토벌전 불참 소식이었다.
나와 바르토스 국왕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성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도와는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어째서.”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리스크?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훈님께선 그라디스와 브람기슈에만 정신이 팔려 계십니다. 하지만 3대 악이 왜 3대 악인지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 나와 바르토스 국왕은 표정을 굳혔다.
“그 둘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미드랜드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 이곳을 비우겠습니까?”
북쪽의 왕 라그나베일.
3대 악에서도 가장 강력하단 평가를 받는 마룡.
미드랜드와 가장 인접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서 항상 배제된 존재이기도 했다.
“라그나베일이 온순해서 얌전히 미드랜드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녀석은 항상 저와 눈싸움을 벌이며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덕분에 나와 바르토스 국왕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고, 아리엘 성녀는 미안하단 표정으로 우릴 타일렀다.
“3대악을 각개격파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상대를 너무 깔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각개격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럼 수행자가 되면 되잖아요?”
옆에 있던 바르토스 국왕도 동감하는지 좋은 생각이라며 끄덕였지만, 성녀는 쓰게 웃었다.
“제게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해보시겠습니까?”
나는 바로 그녀에게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했다.
그런데….
[수행자로 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내가 허탈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이렇게 될 것이라, 예측했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지구에 등장한 능력자는 수행자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리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
“능력자처럼 성녀는 가이아님에게 이미 힘을 부여받은 존재니까요.”
결국, 우린 아무런 소득 없이 성녀가 기거하는 주신전을 나서야 했다.
“젠장.”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성녀 둘이 대천사를 소환해 그라디스를 처치한다는 그림 자체가 내 망상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긴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으면, 여신이 나타나지도 않았겠지.
* * *
그나마 죽으란 법은 없는 걸까?
엘븐킹덤에서 대대적인 병력 지원을 약속했다.
더구나 그 속엔 그랜드 마스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구미호가 합을 이룬다면 분명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왕이면 정령왕 계약자에 드래곤까지 나서줬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성녀가 라그나베일을 신경 쓰는 것처럼 그들은 브람기슈를 신경 쓰느라 모든 전력을 파견하지 못했다.
“그동안 이렇다 할 고비가 없어서 그런지, 오만해졌던 모양이야.”
내가 묵묵히 검을 휘두르자, 옆에서 나란히 검을 휘두르던 김선아가 말했다.
“그만큼 이룬 업적들이 대단했으니까요.”
언젠가부터 나는 내 자신의 힘보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 같다.
내 힘도 미약한 것은 아니지만, 적이 너무 강대했기에 강한 힘을 보유한 존재의 도움만을 바라고 있었다.
1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개의 사정이 있기 나름이거늘.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죠.”
“맞는 말이야.”
이제 더 이상 도움을 바라기는 힘들다.
그럼 당장 전력 향상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부터 강해져야 해.’
마스터를 찍으면 8서클이나 하이마스터를 상회하는 무력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7서클 대마법사에 소드 마스터, 마스터급 성기사가 되는 것이니.
‘하지만 겨우 이것만으로 전황에 변화를 줄 순 없다.’
내가 스스로를 단기간에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몇 가지를 생각한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