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05화
93. 서울 재건(3)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통령께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급급해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회장님.”
미드랜드 평화위원회 사람들을 반쯤 방목하고 용산기지에 방문한 나는 갑자기 찾아온 합참의장의 이야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성훈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처음 시작을 악연으로 엮여서 그렇지 그의 일 처리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니 말이다.
내게 있어 하성훈 대통령은 주제 파악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합참의장의 이야기만 들어선 대통령에게 정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대통령님을 뵙기로 하죠.”
“네?”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상대를 평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아, 물론이죠. 이해합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청와대로 향했고,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이 뒤를 따랐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건 꽤 오랜만인 것 같군. 잘 왔네.”
그동안 너무 바빠서 대통령과 마주 앉을 일이 없었다.
D-DAY 이후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그는 예전에 알던 모습보다 더 늙어 있었다.
나는 그런 대통령에게 7클래스의 리커버리 마법을 사용해 주었다.
“이건?”
“회복 마법입니다. 피곤해 보이셔서요.”
“하하, 고맙네. 몸이 매우 가볍군.”
그리고 나를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오게 만들었는지 대통령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 내용은 합참의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점을 찾는다면 주관적 의견이 많았던 합참의장과 달리 조금 더 객관적이랄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견충돌이었다.
인도주의와 실리주의의 다툼이었으니.
개인적으론 합참의장의 의견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갖고 대통령이 잘못했다며 따질 수는 없었다.
“음….”
하지만 이와 별개로 내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둘이 합의점을 찾으면 될 사안을 왜 내게까지 들고 왔냐는 것이다.
나는 합참의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대통령의 의견을 이해 못 하겠단 반응을 보이며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의견충돌이 있을 때마다 저를 부를 생각입니까?”
내 물음에 합참의장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결정이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게 됩니다. 근시안적인 사고를 집착하는 대통령님의 의견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요. 지금은 대통령님을 규탄할 세력이 없습니다. 우리라도 이렇게 의견을 내지 않으면 방향을 잘못 잡은 독재 정치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무조건 대통령이 틀렸다고 단정하는 행동은 옳지 않지만, 확실히 그의 말대로 국가의 명운이란 키를 쥔 대통령의 주변에 쓴 소리를 할 세력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 역할을 군인들이 한다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고, 모든 게 국가 비상사태인 만큼 어쩔 수 없다며 넘기기엔 지금의 결정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거 참.”
난감하다.
대통령을 앞에 두고 결정권을 내게 넘기려는 행동도.
그런 합참의장의 의도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도.
대체 왜 이런 난제를 내게 던져 주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혀를 차며 결론을 내렸다.
“냉정하게 말해서 정치에 제가 관여하는 순간 대통령님의 권한은 유명무실해집니다.”
오만하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내 위치는 대통령보다 낮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아빠한테 이르듯 달려오는 합참의장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대통령 또한 작게 한숨을 내쉴 뿐 부정하지 않았다.
“전 국제기구의 수장입니다. 지금으로선 국가 정치엔 관여할 생각이 없으니, 대통령께서 결정하세요.”
“네?”
내 선언과도 같은 말에 합참의장은 기겁했다.
대통령은 안도했지만, 많은 것을 느낀 표정이었다.
나도 뮤대륙에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이다.
하지만 적어도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기존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파괴하는 것보다 났다고 판단했다.
이런 식으로 내가 국가 정치에 개입하게 되면 끝이 없다.
분명 다른 국가에서도 나를 이용하려 들 수 있으니.
“하지만 대통령께선 조금 더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끼어들지 않는다고 이것이 지속 되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명심하지.”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여지를 두며 떠난 내 행동으로 인해 대통령은 더욱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의 표정엔 진한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를 향한 눈빛 속엔 어째서인지 더욱 강한 갈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저들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보단 내가 나서서 주도권을 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 대통령은 내 말 한마디에 휘청할 만큼 위태로운 위치였으니.
그러나 지구에서 정치에 관여하기엔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 * *
대통령은 회의실을 나서는 지훈을 보며 안도했다.
하지만 여지를 남겨 둔 지훈의 마지막 말 덕에 자신을 향한 군인들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두 의견의 합의점을 찾아보죠. 되도록 인명피해를 적게 내면서 효과적으로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형태로요.”
하성훈 대통령의 이야기에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이 잠자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대전과 부산에 유사 성역을 만들기로 하죠.”
더 이상 자신의 의견만 고수 할 수 없었다.
그에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통령도 완전히 고집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 유사 성역의 면적은 서울의 절반 수준으로 하죠.”
“그 말씀은 여전히 안전구역을 전국에 포진시키시겠단 생각이군요?”
“맞습니다. 이는 한반도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합참의장은 한마디 하려다가 국방부 장관의 제지에 혀를 차곤 부하에게 지도를 가져오도록 했다.
그러면서 대전과 부산에 면적 3km의 원을 덧대 인조 성역을 만들었다.
“대충 25번의 안전구역 스킬을 겹치면 서울 면적의 절반 정도가 되겠군요.”
지름이 20km인 성역의 절반 면적이면 지름이 약 14km 정도다.
합참의장은 내키지 않지만, 컴퍼스를 대통령에게 넘겼고, 대통령은 진지하게 안전구역이 배치될 구역을 선정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군부에선 이전처럼 감정적으로 대통령을 대하지 않았고, 대통령도 수용할 것은 수용하며 타협점을 찾았다.
* * *
베네수엘라 남부 열대 우림.
-쿠쿠쿠쿤!
“뭐, 뭐야.”
바깥세상이 난리가 나건 말건,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던 아틀란티스B의 용인족들은 도시가 곧 무너질 것처럼 요동치자 몹시 당황하며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일반적인 지진이라면 집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아틀란티스B는 지하도시였다.
혹시라도 상벽이 붕괴되면 모두 함께 손잡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다.
“모여!”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용인족엔 마법사와 비슷한 법술사가 존재하며, 대마법사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존재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었다.
용인족들이 모두 광장에 모이자 법술사들이 결계를 펼쳤다.
그에 천여 명의 용인족을 감싸는 거대한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그런데 지진이라 생각했던 흔들림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고 거대한 공동 중심에 검은색의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뭔가 온다! 막아!”
이어서 스파크가 튀던 공간을 중심으로 몬스터가 등장할 때와 같은 검은 색의 게이트가 입을 열었다.
그 게이트에서 느껴지는 무서운 기운에 법술사들은 기겁하며 공격을 쏟아부었고, 지하도시 전체가 울리는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하하하핫!
그런데 충격파에 이어 들려온 것은 사람들의 속을 뒤집는 웃음소리였다.
“우웩!”
여기저기 용인족들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법술사와 검사들은 얼굴이 파리해져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들은 복잡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스스스.
그리고 법술 공격에 의해 허공을 가득 채웠던 회색 연기가 걷히며 고풍스런 연미복 차림의 남성이 나타났다.
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에 피처럼 붉은 눈동자.
창백한 피부색에 눈부신 미모를 지닌 남성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아틀란티스의 주민들을 스윽 살폈다.
“호오…. 이걸 운명이라 해야 하나?”
너무도 아름다운 남성.
그러나 그를 본 용인족들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건 괴물이라고.
아틀란티스B의 용인족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당해낼 수 없는 괴물 말이다.
“용인족이라니, 욕심 많은 어머니의 마지막 미련이 아닌가.”
허공의 새하얀 남성은 입맛을 다시듯 혀를 날름거렸다.
“너무 힘을 써서 요양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몸보신 재료가 널려 있다니.”
남성의 핏빛 눈동자가 용인족들을 훑자 단 3명을 제외한 모두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끝까지 버틴 용인족들은 절망하며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고, 그에 응답하듯 허공에 떠 있던 남성의 등 뒤로 새까만 네 쌍의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쿠쿠쿠쿠쿠!
서울의 랜드마크인 잠실L타워를 밀어내며 거대한 석벽이 솟아올랐다.
높이 50m, 길이 200m. 두께 5m.
그 거대한 석벽은 마드세인 왕국의 자랑인 8클래스 마법사 라인하츠 공작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어서 바로 옆으로 비슷한 규모의 석벽이 줄줄이 솟아났다.
그건 이브릴과 델피로 공작, 아리브스 경의 작품이었다.
“앞으로 이런 걸 300개는 더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서울 성역을 따라 장벽을 만들고 있는 이브릴이 엄살을 떨었다.
“성역의 둘레가 63km 정도이니…. 그렇게 되죠.”
나 또한 연아, 청아와 함께 중첩 스킬로 8서클 마법사에게도 뒤지지 않는 수준의 석벽을 만들어 올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웨이브가 끝이나도 몬스터는 게이트를 통해 계속해서 나타난다.
하지만 안전 구역 내에선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음으로 이렇게 석벽을 둘러놓으면 외부에서 몬스터가 침입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안전구역의 효과가 사라지는 웨이브가 발생해도 석벽 내부의 몬스터만 우선 적으로 제거하면 되기에 생존확률도 더욱 높아진다고 판단했다.
-쿠쿠쿠!
8서클의 마법사 4명과 단순 노동에 특화된 나와 연아, 청아가 더해지니 도시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성벽이 만들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높이가 50m면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아무래도 서울이니 상징적 의미도 있는 거죠. 부산과 대전은 높이 20m, 두께 3m의 성벽을 지을 생각입니다. 8서클의 대마법사라면 한 번에 1km에 가까운 석벽을 쌓을 수 있겠죠.”
솔직히 나 혼자서라도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 서울과 지방을 모두 석벽으로 두를 수 있다.
하지만 도와주겠다고 나선 건 이들이었으니, 이제 와서 힘든 척 해봐야 소용없었다.
뭐, 이게 다 많이 친해졌다는 뜻이겠지만 말이다.
인원이 많아서 빡세게 하면 하루 만에 서울 작업은 끝날 것이다.
성벽엔 500미터 간격으로 주둔 부대를 놓을 수 있는 망루를 설치했다.
대마법사들이 세운 석벽인 만큼 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 석벽의 폭이 무려 5미터나 되어서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 넓이였다.
공간을 잘만 이용하면 굳이 망루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는 중장비를 설치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것도 나름 장관이긴 하네요.”
이 정도 규모의 석벽이라면 우주에서 봐도 눈에 띄지 않을까?
이브릴의 감상에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하지만 벽 속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군요.”
뮤대륙에선 성벽 속에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지구는 그렇지 않다.
이 석벽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방패지만, 자유를 잃었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당장 서울 시민들은 웅장한 석벽의 존재를 환영하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지만, 과연 저런 모습이 얼마나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