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04화
93. 서울 재건(2)
국방부 장관이 지훈에게 달라붙어 알랑방귀 뀌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도 결국 강한 사람에게 붙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내키진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지훈은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강한 인물이었으니.
이는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이었으며, 미국의 대통령조차 아부를 떨 수밖에 없는 인물인 만큼 기회주의자들이 붙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하성훈 대통령도 지훈과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의 불운이라면 지훈 같은 인물과 항상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는 한국인이란 점이었다.
“연맹의 회장은 국정에 관여를 안 합니다. 그가 달가워하지 않을 텐데요?”
대통령의 말대로 지훈은 국가 운영은 정부에 일임하고, 자신은 생존을 위협하는 몬스터 퇴치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애초에 지훈은 국제단체의 우두머리인지라, 국내 사정에만 신경을 쓸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지훈은 이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그동안 정부에서 지훈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맞춰줬기 때문에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하성훈 대통령의 업무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면 관여를 하실 겁니다. 인도주의적인 것도 좋지만, 지금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실리를 따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내분이 일어나 정치에 관심도 없는 지훈을 끌어들이려 하니 대통령 입장에서 기가 찰 뿐이다.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흐름.
하지만 하성훈 대통령도 인간이고 자존심이 있는지라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마이너스란 사실을 왜 모릅니까? 연맹 회장은 정부 내부의 분열을 결코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정 안 맞는다 싶으면 전부 뒤엎어 버릴 수도 있죠.”
대통령의 말에 합참의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말했다.
“마치 자신이 조 회장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군요.”
“적어도 가장 오랜 시간 그를 봐온 건 납니다.”
“물론, 대체로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도 조 회장님에 대해선 나름 잘 알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회장님께선 합리주의자이십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잘 아시는 분이란 거죠. 대통령께선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계십니다.”
그의 말대로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기 위해, 지훈은 이럴 거라며 합리화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몫.
지훈을 들먹이는 합참의장의 태도도 합리화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서로의 의견에 접점이 없어 보이는군요.”
더 이상 합참의장을 설득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를 비롯한 군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무도 막지 못했다.
결국, 합참의장과 고위 장성들이 회의실을 벗어나자 대통령은 이마를 짚었다.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
대통령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방부 장관에게 물었다.
“국토 지배력을 위해 지방 곳곳에 안전 거점은 만들어둬야죠. 하지만 지금처럼 불규칙적으로 안전 구역을 퍼뜨리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전략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고집인 걸까?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고 더는 생명이 허무하게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군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그로 인해 당장 발생할 수 있는 희생자는 적지 않을 것이다.
안전 구역이 있기에 지금의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굳이 안전 구역을 밀집시켜 보호지역을 줄인다는 것엔 동감할 수 없었다.
국방부 장관은 딜레마에 빠진 대통령을 보며 충고하듯 말했다.
“앞으로 이런 의견충돌은 더욱 많아질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대통령님을 중심으로 한 정부가 아닌, 미국조차 눈치 보게 만드는 조 회장님의 막강한 권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구시대의 왕조라도 세우고 싶은 건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결국 이것도 시대의 흐름인 거죠.”
하성훈 대통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 * *
잠에서 깨어난 나는 복장을 챙기고는 클로이, 김선아에게 말했다.
“다녀올게.”
“위험한 거 아니죠?”
“물론이지.”
걱정 가득한 표정의 부인들을 떼놓고는 청아와 연아를 소환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네, 안녕하세요.”
벙커 개인실을 나서자 언제나처럼 잠에서 깨어난 수행자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익숙하게 인사를 받으며 봉봉이와 두 수호자(수호견?)를 찾았다.
“어디 가?”
현재 시각은 겨우 오전 5시.
졸린 눈을 비비는 봉봉이의 물음에 나는 제1 천공성으로 간다고 말하고는 텔레포트 게이트 방향으로 이동했다.
천사가 된 후 돋아난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쫓아오던 봉봉이는 여전히 졸린 지, 자신의 수호자인 다이어 울프의 등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고오오오.
연맹의 지하 벙커는 이제 지하 도시라 불러도 될 정도로 확장이 된 상태다.
순환된 공기가 상당히 큰 바람이 되어 불어왔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행자들도 보상을 벙커 확장에 사용해서 지금은 사람 수대로 방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규모는 족히 4~5만 명은 수용할 수 있는 수준.
덕분에 벙커 깊은 곳엔 수경재배 농장을 비롯해 양돈장, 양계장, 수행자들이 잡아 온 물고기를 보관하는 수족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농장엔 성장 촉진마법이 더해지고, 양돈장과 양계장은 소음을 잡고 냄새와 유해물질을 정화할 수 있는 마법이 더해져 있다.
해당 시설은 연맹 벙커 거주민들이 함께 관리하고 있는데, 덕분에 외부에선 맛보지 못할 신선한 재료들로 음식을 요리해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거기에 도서관과 임시학교 같은 교육시설에 수영장과 헬스장, 배드민턴, 풋살, 농구, 탁구장 등 다양한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당구장, 영화관, 오락실 같은 여가시설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전화 통화 및 컴퓨터들끼리 자료를 공유할 수 있게 자체적인 유선 인트라넷을 구축해 놓았다.
당연하지만 사용에 필요한 전자제품은 모두 비밀상점에서 구입한 물건들이었다.
‘바깥과 완전히 다른 별도의 세상.’
그것은 외부에서 한창 고생하다가 새롭게 수행자가 되거나 그 수행자를 따라온 가족들이 내뱉은 감상이었다.
많은 감정이 느껴지는 말이지만, 결국 이 여유 있는 생활은 수행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가족들을 위해 꾸린 것인 만큼,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지금이라도 연맹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을 감사해할 뿐이다.
그렇게 수행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동하길 5분여.
나는 벙커 깊숙한 곳에 위치한 텔레포트 게이트에 다다랐다.
“베르트 폐하.”
“좀 주무셨어요?”
“네, 잘 자고 왔습니다.”
그곳에서 스코틀랜드에 있는 차원의 틈을 통해 지구로 날아온 이브릴과 합류하곤, 다 함께 서울 상공에 떠 있는 제1 천공성으로 단체 텔레포트를 했다.
-팟!
그에 주변의 풍경이 회색의 콘크리트에서 새하얀 성벽이 멋들어진 천공의 성으로 변했다.
아직 9월인지라 일출 시간이 빠르다.
해가 떠오르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5시만 해도 사위분간이 제대로 될 정도였고, 동쪽 지평선 너머로 불그스름한 빛이 드리웠다.
멋진 풍경.
하지만 그것보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텔레포트 광장 끝자락에서 여명의 하늘을 바라보는 4명의 남녀였다.
그들은 바로 위스워드 제국의 비공식 전력인 아르비스 경을 포함해 8서클 마법사 세 명과 안개 초원의 구미호였다.
이들은 공간이동 능력이 있어서 바로 내가 알려준 좌표로 날아온 것이다.
구미호는 여명이 그리 감동스러운지, 평소에 감춰둔 커다란 귀가 솟아나 요란하게 쫑긋댔다.
히로시가 본다면 한눈에 반할 만한 모습.
그러나 아쉽게도 구미호는 델피로 공작의 제자인 아르비스 경과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들이 우리의 등장을 못 알아챘을 리 없다.
구미호가 기분 좋게 빙글 돌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왠지 불쌍하게 느껴져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뮤대륙에서 5일을 보내야 지구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자리를 옮기죠. 지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료와 과자를 내드리겠습니다.”
“그거 좋군요.”
나는 그들을 이끌고 천공성 최상층 집무실로 향했다.
이들 외에도 와야 할 사람이 3명 더 있지만, 그들은 모두 검사 계열에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사람들의 영역까지 찾아가야 했다.
하이마스터들의 신변에 무슨 이상이 있겠냐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도착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폐하, 그런데 그분께선?”
그렇게 집무실로 향하던 중 델피로 공작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지닌 봉봉이에게 관심을 주었다.
“지구의 성녀인 엘리시아입니다. 천사기도 하죠. 그리고 이 다이어울프들이 수호자입니다.”
새벽바람을 맞아서인지, 결국 잠을 깬 봉봉이는 다이어울프인 다다를 말처럼 늠름하게 타고 있었다.
겉모습은 중학생 소녀처럼 보여도 아직 여러모로 어린 티가 났다.
내 말에 새롭게 수행자가 된 미드랜드 평화위원회의 대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구미호는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 별말이 없었다.
“역시 세계가 달라서 그런지 여러모로 특이하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침 도착한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뮤대륙에서 맛보기 힘든 탄산음료와 다양한 과자를 내왔다.
과자는 주로 탄산에 어울리는 짭짤한 스낵류였다.
“허허.”
탄산수는 뮤대륙에도 존재한다.
물론, 시판 음료처럼 강하지 않은 자연 탄산수지만, 갑자기 음료를 마시며 기겁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재밌다며 웃음을 흘릴 뿐이다.
구미호는 과자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종류별로 베어 물며 감탄했다.
“하늘을 나는 성에 성녀와 엘프까지……. 폐하께선 뮤대륙에서나 이곳에서나 특별하시군요.”
“운이 좋았죠.”
8서클의 대마법사를 제자를 둔 델피로 공작조차 가볍게 여기지 못하고 혀를 내둘렀다.
나는 그런 델피로 공작을 보며 물었다.
“지구에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신분을 위해 일단 그들의 소속은 수행자 연맹이 되겠지만, 행동까지 제한하긴 힘들었다.
내 물음에 네 사람 중 가장 자기 의견이 강한 델피로 공작이 말했다.
“저와 라인하츠 공작은 지구의 과학 기술이란 것을 연구할 생각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탐내는 것은 매우 마법사다운 태도다.
그리고 지구의 과학은 워낙 광범위 했기에 한번 빠져들면 오랜 세월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어서 거론이 안 된 두 사람에게 시선이 향하자,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인 아르비스 경이 구미호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동안 지구를 여행하며 이곳저곳 둘러볼 생각입니다.”
구미호의 사정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행동.
더불어 둘의 관계가 친구 이상이란 것이 확실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럼 여러분의 방은 이곳에 마련해 드리죠. 여행한다고 해도 어디서든 텔레포트로 날아올 수 있는 분들이니, 평안한 방이 있는 게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들에게 집무실에서 가까운 큰방들을 내주었다.
“대신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면 가감 없이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이는 이미 사전에 합의된 사안이었기에 이들은 불만이 없었다.
“물론이죠. 기쁜 마음으로 나서겠습니다.”
미드랜드 평화위원회 소속 멤버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천만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들은 별다른 돌발행동 없이 정해진 대로만 움직였다.
그런데 돌발상황은 이들이 위치한 천공성이 아닌, 지상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