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202화 (202/247)

# 20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02화

92. 베르트 왕국(2)

“호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한에 보면 호위는 한 명으로 제한한다고 했다.

당연히 호위를 데려간다면 청아나 연아가 적당하겠지.

“만약을 위해 제가 따라나서도 될까요.”

하지만 이브릴이 나서며 미소를 지었다.

‘8서클의 대마법사인 이브릴이 나서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미드랜드 평화위원회라는 곳에 하이랜드 소속인 그녀를 데려가는 게 옳은가 의문이 들었다.

아마 8서클과 하이마스터라면 그녀가 모습을 감추더라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것으로 치면 연아와 청아도 마찬가지.

잠시 고민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다른 종족은 호위로 쓰면 안 된다는 항목도 없고, 이블랜드의 악마종만 아니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연아나 청아는 소환형 사역마니까 굳이 동행할 필요는 없지.’

더불어 엘븐 하임과의 동맹관계라는 점이 더욱 내 신변의 안전을 공고히 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엘프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미드랜드 평화위원회라니, 거창한 명칭이네요.”

실소를 흘리는 이브릴을 보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름 그대로 평화를 위한 단체일지, 힘 있는 자들이 거들먹거리기 위한 단체일지는 직접 겪어봐야 알 것 같다.

* * *

베르트 왕국의 남부, 전 슈엔다르크 왕국령 소도시 레이블.

“전혀 예상치 못했군요.”

레이블 시는 마을보다 조금 큰 규모의 소도시다 보니, 외부인의 모습은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자신들을 관찰하듯 둘러보고 다니는 외부인인 두 남성을 보고도 아무런 참견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블 시를 찾은 두 남성 중 젊은 청년이 작게 감탄사를 흘리며 말했다.

“도저히 적대국에 흡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토로 보이지 않습니다. 듣기로 영주 없이 베르트 왕국 행정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도시라 들었는데, 생각보다 능력 있는 행정관이 담당인 모양입니다.”

그에 나란히 걷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트 왕국이 신생 국가긴 하지만 자금력은 무시할 수 없어. 오히려 영지가 이렇게 무리 없이 운영된다면 슈엔다르크 왕국 소속으로 남은 것보다 살기 좋을지도 모르지. 이곳 사람들은 운이 좋아.”

“하지만 그 자금력을 적대국이었던 땅에 푸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뭐, 점령지는 가혹할 정도로 수탈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니.”

그렇게 도시를 거닐던 두 사람은 여관과 함께 운영되는 음식점으로 들어섰고, 관리가 까다로운 신선 제품 위주로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온 음식을 맛본 남성들은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재료들이 굉장히 신선하군요? 이 정도면 영주성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겠는 걸요?”

젊은 남성의 칭찬에 식당의 주인은 너털한 웃음을 흘렸다.

“요즘 베르트 상회에서 냉장, 냉동 마차란 것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재료값이 다른 상회보다 1할 정도 비싸긴 하지만, 굉장히 신선하게 운송됩니다. 다음부턴 해산물도 받아서 사용해볼까 생각 중이죠.”

“이곳에서 해산물을요?”

“네, 해산물은 얼려서 배송해준다는군요. 당연히 항구만큼 신선하진 않겠지만, 요리로 내는 데 문제는 없죠. 얼마 전 시범적으로 구입한 생선을 구워봤는데,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산간 지형인 레이블에서 해산물은 귀족들이나 즐길 수 있는 식재료이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지만, 평민들은 구입할 수 없는 가격이 되어버린다.

요즘 왜 그렇게 베르트 상회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귀족들을 주요 타겟으로 시작해서 평민들의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제 베르트 상회는 뮤대륙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성들은 친절한 식당 주인에게 살짝 예민한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다.

“이쪽 땅이 베르트 왕국에 넘겨지면서 시민들의 삶이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잘살고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에 식당 주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저희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당혹스럽다뇨?”

“오히려 삶의 수준이 월등히 나아졌거든요. 세율이 약 20% 낮아지고, 일자리도 많은 데다가, 임금은 체불 없이 무조건 지불됩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평민들에겐 매우 크거든요. 그래서 베르트 왕국을 적대시하던 분위기가 거의 사라졌죠.”

“그래도 슈엔다르크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처음엔 그랬지만, 이젠 모르겠습니다. 이 식당은 본래 외지인과 용병들이 주요 고객이었죠. 하지만 근래 들어 마을 주민들도 하나둘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주머니에 여유들이 생긴 거죠.”

먹고 살기 바쁜 평민들에게 사치성 소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시장의 확대를 뜻했으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예민한 문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지, 식당 주인은 부랴부랴 자리로 돌아갔고, 생각이 많아 보이는 중년인은 한참 턱을 쓰다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다른 도시도 둘러보자꾸나.”

“네? 밥은요?”

하지만 중년인은 계산을 하고 급한 용무가 생겼다며 식당을 나섰다.

이후 그들은 텔레포트 게이트로 베르트 왕국령에 케일론 왕국령까지 둘러봤다.

그리고 중년인은 많은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감상을 내뱉었다.

“뮤대륙인보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이방인이 나라를 더 잘 다스리는군.”

“이제 겨우 1년입니다.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그럴까?”

“스승님?”

청년의 물음에 한참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년인이 입을 뗐다.

“가능하다면 우리 왕국도 로이아스 연방 제국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네?”

중년인의 정체는 테우스 칸 바르토스.

미드랜드의 2대 하이 마스터 중 1인이자, 중견 왕국인 칼바도스의 국왕이었다.

* * *

정확하게 재본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계산으로 미드랜드의 넓이는 아시아 대륙에 유럽과 아프리카를 더한 것과 비슷하거나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중 약 절반이 불모지였으며, 개중엔 인간의 발길을 절대 허락지 않는 금지도 존재했다.

[안개 초원]

나는 지도 기능에 표기되는 지명을 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개 초원은 미드랜드 중서부에 위치한 금지로 신수와 마수의 경계가 미묘한 구미호가 산다고 한다.

“구미호라, 처음 들어 보는군요.”

엘프인 이브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구에서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다양한 설화가 존재하는 전설의 동물입니다. 미인으로 둔갑해 남자를 홀려 재액을 뿌린다는 이야기도 있고, 구미호가 등장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며 신수로 추앙했다는 설화도 있죠.”

“성마의 구분이 모호하군요.”

“그렇죠. 그리고 그건 뮤대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드랜드 동부에선 가뭄을 해결해주는 정령의 일종으로 칭해지고, 이곳 서부에선 나라를 멸망시키는 분노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니까요.”

특징만 떠올리면 하이랜드의 수인족과 비슷하지만, 구미호는 조금 더 신비하면서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가졌다.

“지금 이 안개의 초원이 오래전 구미호가 멸망시킨 나라가 있는 터라고 하죠.”

“구미호는 종족을 일컫는 걸까요?”

“글쎄요?”

서한에는 이 좌표로 안내인이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안내인을 기다렸는데, 잠시 후 등장한 안내인을 보며 말을 잃어야 했다.

[구미호 클라우디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것도 정도가 있지.

설마 진짜 구미호가 나타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전설은 전설이기에 신비한 것인데, 역시 뮤대륙에선 허튼 전설은 없는 것 같다.

“베르트 국왕폐하 맞으십니까?”

나는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늘어뜨린 미녀의 물음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마중 온 클라우디아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안내역이 구미호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그것도 모르고 실컷 구미호에 대해 떠들어댔는데.

나와 이브릴은 말없이 구미호의 뒤를 따랐다.

“혹시 클라우디아님도 평화 위원회 소속이십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웬만한 남자라면 미소 한 번에 넘어갈 만큼 매혹적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미드랜드 평화 위원회라고 해서 당연히 구성원은 인간뿐일 거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브릴이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구미호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였다.

9서클이나 그랜드마스터 급은 아니어도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어 보였다.

미드랜드 평화 위원회를 살짝 만만하게 본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조금은 더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구성원은 몇 명입니까?”

“현재로썬 저를 포함해 총 7명이죠.”

그리고 숫자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니,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구미호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주변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잠시 후 우리의 눈앞에 유적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광장으로 여겨지는 장소에 아직도 작동하는 분수대를 옆에 두고 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테이블 앞엔 한 무리의 남성들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베르트 폐하.”

6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게 향했는데, 그 중에서 노년의 마법사가 특히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는 바로 로엘 제국 황금 마탑의 주인인 델피로 공작이었다.

이름은 게임 아바타처럼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지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엔 구미호처럼 예상치 못한 이름이 두 개 더 포함되어 있었다.

“데스사이즈님과 아르비스님?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내가 머리 위 이름을 보며 물었음에도 두 사람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다가왔다.

수행자가 상대방의 이름을 알아본다는 것은 조금만 조사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어쌔신 마스터 드레이크가 조금 더 유명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

어쌔신 마스터?

암살자 중에 그렇게 불리는 인물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틈에 낄 수 있는 수준인지는 전혀 몰랐다.

“반갑습니다. 저는 델피로 공작님의 제자인 아르비스 입니다.”

미드랜드에서 현존 최강의 마법사라 일컬어지는 위스워드 제국의 델피로 공작.

설마 그의 제자까지 8서클의 마법사일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존재라니, 위스워드 제국은 생각 이상으로 속이 검은 나라인 것 같다.

그렇게 그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굳이 이브릴을 소개하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베르트 폐하께선 말을 돌려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나처럼 국왕이란 위치를 가진 칼바도스 왕국의 바르토스 국왕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둘러서 말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죠.”

내 대답에 바르토스 국왕은 델피로 공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에 짧게 혀를 찬 델피로 공작이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수행자가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어진 그들의 요구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그럼 제게 무슨 이득이 있죠? 오히려 라이벌 국가의 분들에게 성장할 가능성을 주면 좋을 게 없어 보이는데요.”

지극히 타당한 물음.

델피로 공작도 예상했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왔다.

“슈엔다르크 왕국과 크로스비 왕국을 드리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