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200화
91. 수행자 선발 오디션과 천공성 아카데미 (2)
“어떻게 할 거야?”
3차 오디션에서 같은 조로 최종 오디션에서 탈락한 김은영, 김성태 두 사람은 아카데미 입학 제안을 받고 고민했다.
이대로 끝일 것이라 생각했던 입장으로썬 기쁜 상황이지만, 아카데미 학생은 수행자가 될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망설여졌다.
물론, 이들이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수행자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다음 기수에 참여한다고 해도 참가자 추첨에서 1000대 1의 확률을 뚫을 자신이 없었으니.
“일반적으로 기사, 마법사 과정을 밟으면 평생을 노력해도 지금의 상위권 수행자들의 무력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대.”
신의 백업을 받는 게 아니라 자력으로 힘을 기르는 것인 만큼 당연하지만, 과연 그 긴 시간을 수련만 하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아카데미는 기초 3년 과정으로 익스퍼트 초급, 3서클의 마법사를 만들어 배출하는 것이 목표라 한다.
거의 능력자에 준하는 수준.
그렇게 따지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최선이 아닌 차선책인 만큼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은영의 물음에 김성태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이내 결정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아카데미에 들어가겠어. 어차피 이대로 군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김은영과 달리 김성태는 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군인들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사전에 수행자 연맹에서 병사들의 참여를 막지 말라는 요청을 전해왔기에 군인들도 적극 오디션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군대.
하필이면 자신이 복무 중일 때 사건이 벌어져 짜증이 나는데, 기약 없는 전역일과 언제 돌연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에 억지로 끌려다니는 건 더는 사양하고 싶었다.
“하긴….”
김은영은 여자이기에 강제적으로 징병 될 일이 없지만, 동원령이 떨어지면서 현역뿐만 아니라 젊은 남성들이 예비군으로 끌려가면서 노역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이 여성들이었다.
그녀도 고된 노동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역시 몬스터와 직접 싸워야 하는 군인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지금의 군대엔 미래가 없다.
요즘 정부에서 군인들에게 많이 신경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감옥 안에서 아무리 좋은 대우를 받아봐야 그곳은 감옥이 아닌가.
하지만 아카데미 학생이 된다면 이런 군대로부터 자유로워질 터.
그리고 대우도 비교가 안 될 게 분명했다.
시범적인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국민 4천만 중 50명에게만 아카데미 입학 제안이 들어온 것 아닌가.
오히려 희귀성이라면 능력자나 수행자보다 위였다.
“그리고 아카데미 학생이 된다면 수행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잖아.”
“그건 그래.”
3차 오디션에서 친해진 덕분에 김성태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던 김은영도 결국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최종 오디션에서 탈락한 50명의 인원 모두가 아카데미행을 결정했다.
수행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의 생활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감정이 너무 강했다.
그렇게 오디션이 끝났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는 천공성의 만찬회가 열렸다.
요즘은 보기 힘든 신선한 해산물과 고기로 만들어진 요리가 듬뿍 차려진 테이블을 보며 모두가 군침을 삼켰다.
“해산물은 수행자들이 직접 바다로 나가서 구해 왔고, 고기는 천공성의 숲에서 키우던 멧돼지와 소를 잡았습니다. 마음껏 즐기세요.”
“와!”
만찬회엔 오디션에 최종합격한 예비 수행자들과 아카데미행이 결정된 예비생들이 자리했다.
지훈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들은 눈치 볼 것 거지처럼 음식에 달려들었다.
수행자들은 뮤대륙에서 하나같이 상류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신선한 식재료와 맛있는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시민들과 병사들은 이런 음식을 구하려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햄 소시지를 보급받는 날을 기다릴 정도.
처음 1~2주 동안은 그럭저럭 신선한 식재료들을 맛볼 수 있었지만,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은 하루 삼시 세끼 보존식만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김성태는 평소 좋아하던 꽃게를 다시 마주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아직 10월이 되지 않아 게에 살이 차 있을까 싶었지만, 손바닥만 한 꽃게의 뚜껑을 까니, 새하얗게 가득한 살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반겨주었다.
“오오.”
그 외에도 꽃게와 함께 잡아 온 대하도 한 바구니 쌓여 있었고, 각종 생선구이에 지훈이 직접 러시아에서 잡아 왔다는 킹크랩은 몬스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컸다.
그리고 한 구석에선 멧돼지고기와 소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는데, 어떤 공정을 거친 건지, 마치 사육사의 손에 키워진 좋은 품종처럼 잡냄새 하나 없이 부드럽고 기름졌다.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아 다행이란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순간이었다.
겨우 몇 달 전만 해도 당연하게 느껴지던 음식들이 이렇게 감사하게 다가올 줄이야.
그렇게 얼마나 미친 듯이 음식을 욱여넣었을까.
서서히 사람들의 먹는 속도가 느려져 갈 때, 지훈은 박수를 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시겠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주요 국가들이 수도를 중심으로 도심 재건 사업에 들어갑니다.”
해당 내용은 신문에도 실려 있던 만큼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훈이 모두가 아는 사실을 밝히자고 분위기를 잡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도시들을 잇기 위해 제가 보유한 천공성으로 무역선단을 꾸릴 예정이죠.”
새로운 세상은 지훈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수행자 중 비교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가장 강한 인물이었으며, 필수 시설로 자리 잡은 각국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장악하고 있다.
또한 주요 도시들이 재건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성녀가 선포한 성역 덕분인데, 그 성녀 역시 지훈을 따르는 부하였다.
거기에 몬스터들로 인해 자연히 봉쇄된 무역로를 천공성으로 독점하려 하다니.
얼마나 더 큰 힘을 가지려는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지훈의 심기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제가 보유한 천공성에 중립의 도시를 세울 예정입니다.”
천공의 성 자체가 무역 선단의 역할을 겸하고 그곳에 중립의 도시가 들어선다.
천공성은 그게 가능한 충분한 면적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 지훈의 발표는 독립선언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다.
천공성에 중립의 도시가 세워진다면 당연히 그곳의 주인은 지훈이었으니 말이다.
“현재 제가 보유한 천공의 성은 총 3개입니다.”
지난 웨이브에서 퀘스트를 완료해 얻은 선택형 최상급 보상에서 천공성을 하나 더 손에 넣은 덕에 천공의 성이 3개가 되었다.
“3개의 천공의 성에 들어설 중립 도시는 각각의 테마가 있는데, 저는 이 첫 번째 천공의 성을 아카데미 도시로 만들 생각이죠.”
그에 잠자코 듣고만 있던 김성태가 손을 들어 물었다.
“그 말씀은 저희 예비생은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뜻입니까?”
그의 돌발행동에 김은영은 깜짝 놀라 옆구리를 찔렀지만, 지훈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웃어 보였다.
“네, 맞습니다. 앞으로 이곳엔 한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아카데미가 설립될 겁니다. 아카데미는 당장 성과를 내긴 힘들지만, 지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죠.”
아카데미의 선생은 다름 아닌 수행자들이다.
수행자들이 가르친 학생들에 대한 권리를 연맹에서 쥐고 있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김성태와 김은영 입장에선 더욱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단 뜻이었으니 나쁠 것이 없었다.
참고로 두 번째 천공의 성은 공업 도시, 세 번째 천공의 성은 교역 도시였다.
추가적으로 얻게 되는 도시들 역시 대부분 공업 도시와 교역 도시가 되겠지만, 지훈은 천공의 성을 지구의 문명을 복구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할 뿐, 거주 용도로 쓸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여러분은 저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디 기대가 헛된 것이 되지 않게,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단어 선택이 살짝 강압적이지만, 어찌 됐든 김성태와 김은영은 현 최고 권력자가 만든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이 되었다.
아카데미 예비생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예비 수행자들은 지훈이 그리는 큰 그림에 감탄했다.
* * *
‘베르트 대공국에 대마법사가 무려 3명이나 된다.’
‘베르트 대공국의 교역량이 모국인 케일론 왕국을 넘어섰다.’
‘교역량뿐만 아니라, 슈엔다르크 왕국을 흡수하며 확충한 병력 덕에 군사력 부문 역시 케일론 왕국에 비견되는 수준이 되었다.’
‘베르트 대공국은 속국이라 볼 수 없는 거대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케일론 왕국과 힘을 합치면 두 제국에도 밀리지 않는다.’
요즘 어딜 가나 이슈의 중심엔 베르트 대공국이 있었다.
베르트 대공국은 교역을 중심으로 하는 상업 국가였으나, 지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거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를 얻게 되면서 강대국의 조건을 조금씩 갖춰갔다.
덕분에 국외에선 속국인 베르트 대공국과 모국인 케일론 왕국의 위치가 바뀌는 것 아니냐며 위기감을 표했다.
당연히 그들이 표하는 위기감은 케일론 왕국에 바람을 넣기 위한 이간질이었으나, 베르트 대공국의 확장에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은 케일론 왕국이 뭘 믿고 저렇게 베르트 대공국을 방치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단 반응을 보였다.
케일론 왕국도 대공국의 성장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다른 국가들과는 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케일론 왕국의 수도 카르디아 왕성.
모처럼 케일론 왕국의 국왕인 마하엘과 마주 앉은 나는 차와 함께 베르트 상회의 주력 상품인 초콜릿을 즐겼다.
“베르트 대공국 말일세.”
“네.”
“이제 슬슬 왕국으로 독립할 때 되지 않았나?”
“네?”
분위기 좋게 다과회가 진행되던 중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 미하엘 국왕.
괜히 누군가가 그에게 이상한 바람을 넣은 건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웬만해선 케일론 왕국과는 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아무리 실리주의자라곤 해도 그동안의 도움을 모른 척할 만큼 악독하진 않았으니.
속국이 독립을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당황할 것 없네. 애초에 베르트 대공국이 커지면 독립시켜주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아무리 나를 밀어주는 미하엘 국왕이라 해도 쉬이 이해하기 태도.
그의 심중을 헤아리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자, 젊은 왕인 미하엘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누른다고 눌러질 위인이 아니야. 그럼 자네를 곁에 두고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야 했지. 그래서 결론 내렸네.”
지나치게 솔직한 반응.
하지만 우리 사이에 불필요한 포장은 필요 없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베르트 왕국으로 독립하게. 그리고 우리 케일론 왕국과 동등한 입장으로 연합을 맺었으면 하네. 이런 걸 두고 연방 체제라 하나?”
그때서야 미하엘 국왕이 베르트 대공국의 지나친 성장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재밌는 제안을 하시는군요.”
확실히 점점 애매해져 가는 케일론 왕국과 베르트 대공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방안이었다.
더불어 미하엘 국왕은 내가 제안을 거절하리라 생각지 않는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의 반응이 얄밉지만,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나는 결국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군요.”
“그렇지?”
“아무래도 연합 회의를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전에 협의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닐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