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99화
91. 수행자 선발 오디션과 천공성 아카데미
성녀의 수호자는 지정되는 순간 마스터급 전투력을 가진 성기사가 된다.
그런 전력을 놀릴 수가 없으니, 나는 봉봉이의 3번째 수호자 선택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기존 마스터나 대마법사를 수호자로 삼으면 안 된다는 금지사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그냥 내가 수호자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공짜로 마스터급의 무력을 손에 넣을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뮤대륙의 아리엘 성녀에게 가능성을 물었고, 안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최상급 익스퍼트의 기사이자, 7서클의 대마법사였으며, 마스터급의 성기사가 되었다.
히로시가 알았다면 사기라고 외칠 만한 상황.
“이 모든 게 가이아 님의 계획일지도 모르죠.”
가이아씩이나 되는 존재가 내가 이런 선택을 할 것이란 판단을 못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내게 뭘 바라는지는 몰라도 이미 수차례 느꼈던 부분.
가이아는 날 밀어주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시험을 거치지만, 항상 감당 가능한 수준의 시련이 주어졌고, 그에 대한 보상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신께서도 전하가 수행자들을 대표하는 존재란 사실을 인정한 것이죠.”
이번 웨이브를 통해 이브릴의 눈빛이 더욱 살가워진 느낌이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인정을 받은 모양.
앞으로 엘븐하임과의 관계를 잘 활용하면 미드랜드에서 베르트 대공국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나는 고생했다며 엘프의 초인들과 악수를 주고받았다.
[몬스터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게이트를 통한 몬스터의 신규 등장 속도가 기존의 50분의 1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웨이브 종료 알림이 뜨고, 천공성은 각국의 피해 상황을 집계했다.
“다행히 멸망한 국가는 없습니다.”
“대략 3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첫 웨이브에선 80개의 국가가 멸망하고 20억의 생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엄청난 발전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론 350만 명이 적은 것도 아니고, 그만한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이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이아가 아무리 나를 밀어주고,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계획에 놀아나는 것이 지금의 상황.
계속 싸워 살아남다 보면 결국은 진실을 접하게 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인간에게 있어 악신이었다.
‘이제 슬슬 답을 줘도 되지 않습니까?’
천공성에 배치된 각국 군인들은 웨이브를 잘 막아낸 것에 기쁨을 표하며 서로 감싸 안고 난리도 아니지만, 나는 그 속에서 홀로 하늘을 올려보며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 * *
베르트 대공국엔 100여 명의 미국인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일전에 마트 채 뮤대륙으로 넘어온 지구인이었는데, 아직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해 내 보호 하에 생활을 하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한때는 불안에 떨기도 했지만, 결국 승리에 승리를 거두며 왕좌까지 차지 한 것을 보며 모두가 나를 인정했다.
그들은 지구의 높은 교육 수준을 이용해 대공국 요소요소에 배치되었다.
분명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싸기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언제 지구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만큼, 뮤대륙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도 희망은 보이는군요. 비록 제한적이긴 해도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는 게이트가 존재한다니.”
하이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연결하는 차원의 틈의 등장은 그들에게도 희소식이었다.
비록 마스터와 대마법사 수준의 능력치가 있어야 차원 이동 간의 충격을 버틸 수 있다는 제약이 있지만, 어찌 됐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 된 것이다.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저는 이곳에 남고 싶은데….”
하지만 모두가 이를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미국인들은 문명이 뒤처지긴 해도 지금의 유복한 생활이 마음에 들었는지, 뮤대륙에 남길 바랐다.
“그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다만 언제까지 무상으로 먹고 재워줄 순 없으니, 그때가 되면 저를 위해 일하는 분들만이 지금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이 세계에 남길 바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뮤대륙에 적응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내 결정에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반발할 수도 없고.
“어떻게 보면 지구보다 이곳이 더 안전할 수도 있긴 하죠.”
지구에 일어난 이변에 대해선 같은 미국인 출신의 수행자들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다.
그에 지구로 돌아갈 의지를 갖고 있던 사람들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미국인들을 대표하는 마이클의 어깨를 두들기곤 조용히 따라오라고 턱짓을 했다.
마이클은 내 뒤를 따랐고, 우린 조용한 장소로 이동했다.
“결정했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힘을 보태드려야죠.”
“잘 생각했습니다.”
W마트의 손님으로 있다가 뮤대륙으로 넘어온 마이클은 알고 보니, 꽤나 유명한 기계 공학자였다.
나는 그에게 뮤대륙의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법과 지구의 기계공학을 접합하는 연구직을 제안했다.
당연히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고 해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상 지구행이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구에 남은 마이클의 가족들을 수행자들의 가족 수준으로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두 세계 간의 왕래가 자유로워진다면 그들이 뮤대륙으로 넘어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마이클에게 준남작의 작위와 함께 저택을 하사하겠습니다. 성과가 있다면 5대 작위와 함께 영지도 내려 줄 테니, 능력을 마음껏 펼쳐보세요.”
“감사합니다.”
마법과 지구의 기계공학이 더해진다면 SF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던 장비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 * *
그건 2차 웨이브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의 이야기였다.
[당신도 수행자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수행자 지정 오디션 진행!]
[한국 수행자 연맹 본부: 오디션을 통해 매달 20명을 수행자로 지정할 계획.]
[참가 접수는 각 쉘터 신문 교부처에서 가능. 신청자 중 추첨으로 참가자가 뽑히며, 오디션은 2주 동안 진행된다.]
[오디션은 공개적으로 진행이 되며, 녹화를 통해 각 쉘터에서 방영할 예정.]
해당 내용은 각 쉘터 광장에 설치된 영상 상영관에서 처음으로 공개가 되었다.
“저거 진짜야?”
“수행자를 뽑는 오디션이라니….”
“수행자는 선택받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평소 친하게 지내는 장교한테 들었는데, 수행자들은 매달 말일에 방문하는 포인트 샵이란 곳에서 수행자를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살 수 있다고 들었어.”
“아, 친구나 가족끼리 수행자가 된 경우가 그거 때문이구나?”
“맞아.”
당연하지만 해당 광고가 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바로 신청해야지. 수행자가 되면 인생 피는 거 아냐?”
“맞아, 언제까지 이렇게 거지처럼 살 순 없지.”
그리고 신문에도 본격적으로 광고가 실리기 시작하면서 쉘터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매일 신문 교부처엔 엄청난 인파로 붐볐으며, 군인들이 지키고 있음에도 실랑이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오디션 참여가 불가능하단 말에 언제 문제가 발생했냐는 듯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총: 2,822,184명 지원]
연령대를 만 18~33세까지로 지정했음에도 지원 가능한 인구 중 과반수가 신청했다.
현재 일반인들 사이에서 수행자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부분.
오디션이 3,000명으로 진행될 예정인지라 추첨 경쟁률이 무려 약 1000:1이었다.
“됐다! 붙었어!”
그리고 명단이 공개되자, 최종합격이 아님에도 당첨자들이 곳곳에서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3,000명의 합격자 중 7할이 오디션 시작과 동시에 떨어졌다.
그 이유는 마력 감지 능력 테스트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기사와 마법사로 더욱 대성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수행자들이 같은 공략본을 쥐고 같은 선상에서 시작하더라도 성장 속도가 모두 제각각이다.
퀘스트 진행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오러와 서클의 성장이 중요하기에 이왕이면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뽑은 것이었다.
덕분에 추첨 통과 후 잔뜩 기대감을 안고 오디션에 참가했던 이들은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오디션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이후 생존한 1000명에겐 한계를 시험하는 강도 높은 육체 훈련이 이어졌는데, 이는 신체 능력과 별개로 그 사람의 끈기와 의지를 살피기 위한 테스트였다.
덕분에 신체 능력은 떨어져도 악착같이 버텨, 최종적으로 500명이 남았을 때, 남녀 비율은 3:2정도로 제법 균형이 맞았다.
어차피 남녀로서의 신체 능력 차이는 수행자가 되는 순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마법사가 될 수도 있으니, 굳이 신체 능력을 따지기보단 해당 인물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후 오디션은 웨이브가 끝난 다음 진행이 되었다.
3차 오디션에 참여한 500명을 10개 조로 나누어 조별 오디션을 실행했다.
해당 오디션에서부터 수행자들이 멘토로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무대는 천공의 성으로 옮겨졌다.
천공의 성이 무대가 되니 방영되는 오디션 영상의 시각적인 효과가 상당했다.
신비로움과 이능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져 더욱 수행자를 가치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참가자들의 의지가 대단하네요.”
김선아의 감상에 천공성 집무실에서 기본적인 무기술을 배우고 있는 참가자들을 내려보던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를 어떻게 운영할까 했는데, 오디션 참여자 중 수행자가 되지 못한 사람에게 제안하면 되겠어.”
“마법사와 기사 아카데미 말씀이죠?”
“응.”
세계가 변했으면 그것에 적응을 해야 한다.
이번에 웨이브가 끝나면서 지훈은 각국 대표들을 만나 뮤대륙처럼, 일반적인 기사와 마법사의 육성을 제안했다.
시범적으로 마법사와 기사 육성을 진행하고 있지만, 더욱 제대로 된 뮤대륙 방식의 아카데미를 지구에 설립한다는 것이다.
규모는 각국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교육은 수행자들이 담당하기로 했다.
한국도 지훈을 중심으로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인데, 저 밑에서 열심히 뒹굴고 있는 오디션 참여자들을 보니 굳이 힘들게 아카데미 학생을 따로 뽑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네요. 이미 마력 감지 능력 테스트도 통과한 사람들이니.”
생각보다 여러모로 유용한 오디션이었다.
물론 다시금 오디션에 도전하여 수행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은 아카데미행을 선택할 것이라 예상했다.
3차 오디션은 멘토인 수행자들이 점수를 매겨 10개 조에서 7명씩 선발하게 된다.
그렇게 선발된 70명으로 최종 오디션을 진행하는데, 이 최종 오디션이 진짜 박 터지는 경쟁의 장이었다.
아직 지훈은 아카데미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고, 이번에 탈락하게 되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보상 없이 끝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종 오디션은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시가지에서 생존하는 서바이벌 게임.
다소 과할 수도 있지만, 수행자들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대기하고 있었기에 목숨을 잃을 일은 없었다.
수행자의 도움을 받게 되면 즉시 아웃.
포기하거나 행동 불능상태에 빠져도 아웃이었다.
그렇게 서바이벌은 이틀 동안 진행되었고, 최종적으로 20명이 선발되었다.
지구의 현 상황을 너무도 잘 담은 오디션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마지막 시가지 서바이벌에선 사람들이 같이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행자로 지정된 최종 선발자 20명의 가족은 즉시 수행자 가족으로 대우를 받으며, 연맹의 지하 벙커로 이동되었다.
서바이벌에서 아깝게 탈락한 참가자들의 아쉬움은 굉장히 컸다.
한순간의 판단 미스로 기회를 놓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훈이 그들의 아쉬움을 달래주듯 마법사, 기사 아카데미 설립을 발표하며, 최종 서바이벌에서 탈락한 50명에게 아카데미 1기생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