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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93화 (193/247)

# 19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93화

89. 하이랜드의 신화종(1)

순간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눈만 껌뻑였는데, 능력자 협회의 회장 성우식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검은 마석은 왜요?”

그에게 서슴없이 무언가를 빌려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니, 내 의문은 당연했다.

성우식은 자신도 염치없다는 것을 아는지 뺨을 긁적였다.

“수행자들은 비밀상점이 아니더라도 포인트 자판기를 비롯해 강화할 수단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능력자들은 자신을 강화할 수단이 비밀상점이 유일하거든요.”

비밀상점의 등장이 가장 반가운 것은 능력자들일 것이다.

그의 말대로 수행자들은 비밀상점 외에 포인트 자판기도 있고, 뮤대륙에서 제작한 장비를 공용 아공간을 이용해 지구로 넘길 수도 있다.

물론, 공용 아공간을 거친 다른 세상의 물건은 본인만 쓸 수 있지만 말이다.

더구나 굳이 장비가 아니더라도 수행자는 퀘스트 및 수행을 통해 성장의 여지가 많다 보니, 성장이 더딘 능력자들 입장에선 애가 탈 법도 했다.

능력자는 3회차 수행자와 무력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능력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게 지구 시간으로 보름, 뮤대륙 시간으로 70여 일이 흐르면서, 차이가 생겨났다.

이대로 점점 차이가 벌어지면 능력자의 존재 가치는 어중간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능력자로서 자신을 강화하고 싶은데, 검은 마석을 얻는 게 지지부진하니 내게 급히 빌리려는 것이다.

조금씩 검은 마석을 모아 장비를 하나하나 구입하는 것보다 일단 빚을 지더라도 장비를 갖추고 시작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흥미로운 상황이지만, 나는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검은 마석을 빌려준다면 차라리 수행자들에게 빌려주지 능력자들에게 빌려줄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누구나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이기도 했다.

“대신 제대로 이자를 쳐서 갚도록 하겠습니다. 한 달 안에 갚는 조건으로 이자로 1할을 더해 드리는 걸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한 달에 이자가 1할이면 1년으로 치면 연 이자율이 100%가 넘는다.

사채 중에서도 악덕 사채 수준.

당연히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금전의 가치가 사라진 상태.

어쩌면 검은 마석이 기존 화폐를 대신하는 새로운 돈으로 취급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김에 검은 마석으로 고리대금업이라도 해봐?’

나는 가만히 있어도 대마법사인 연아, 청아와 마스터급 무력을 지닌 차차, 다다(다이어울프)가 나서서 대량의 마석을 벌어온다.

검은 마석 1~2천 개 정돈 아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터.

‘같은 수행자들에겐 낮은 이자로 빌려주고 능력자나 정부에겐 조금 더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 거다.’

더구나 검은 마석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법률 자체를 무시했다.

즉, 내 마음대로 이자를 받아도 문제 될 게 없다는 뜻이다.

현 상황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새로운 사업이 아닌가.

“몇 개나 필요한데요?”

내가 관심을 표하자 그는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500개요.”

그럼 한 달 내에 550개로 증가해서 돌아오는 건가?

나쁘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죠.”

“감사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건 난데, 감사하단다.

오히려 아이디어를 제공받아서 고마운 건 나였다.

* * *

이번 5회차 수행자 중 한국인의 수는 55명이다.

여전히 인구 밸런스를 무시하는 숫자지만, 이는 수행자 지정권의 사용 덕분이기도 했다.

마스터와 성녀, 대마법사급의 인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가장 안전한 국가로 손꼽히는 곳이 대한민국인데 수행자와 능력자 비율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추후 지구가 안전기에 접어들게 되고,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한국은 기존보다 더욱 높은 국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았다.

오늘이 지구 시각 9월 13일, 뮤대륙 628일 차.

국가 간 전쟁이 끝나고 3달째에 접어들었으며, D-DAY 직후 태어났던 내 아들 로아는 100일을 넘겼다.

여전히 체구가 작은 편지만, 그래도 빠르게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면 굉장히 신기했다.

지금 나는 대마법사가 되고 난 직후 검술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래서인지 조금씩 정체되어 있던 경지가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이는 내 재능이라기보다 잠재력 향상 스킬과 전투 교범의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수행자가 상급과 5서클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말 축복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3회차 상위권 수행자 중에서 상급 익스퍼트(5서클)에 도달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전의 용사들인 1회차 수행자 중에서도 아직 최상급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수행자들이 많았고, 2회차 수행자 중에 익스퍼트 중급(4서클)을 벗어나지 못한 수행자도 있었다.

수행자가 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상위권의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큰 압박을 느끼는 것은 1회차 수행자들.

1회차 수행자들은 뮤대륙을 개척하고 퀘스트 공략 자료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물론, 상급 익스퍼트라고 다 같은 상급 익스퍼트인 건 아니지만, 3회차 수행자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용납하기 힘든지, 최근 들어 수련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1회차 수행자 중 6서클, 최상급 익스퍼트에 도달한 사람은 약 반수였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게 힘든 건 당연하다지만.’

내가 11개월 전에 최상급 익스퍼트를 찍은 것을 생각하면 격차가 점점 크게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덕분에 수행자들 사이에서 나보고 인생 2회차인 거 아니냐, 실은 신족인 거 아니냐는 우스운 의심이 이어졌다.

“새롭게 대공국에 편입된 구 슈엔다르크 왕국의 영토가 안정되었습니다. 이제 군의 배치를 고루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속국이라 부르기 힘든 영토를 갖게 된 베르트 대공국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거의 준 전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반란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는데, 처음 불만이 팽배했던 구 슈엔다르크 왕국의 국민들은 수개월이 지나면서 그 기세가 많이 죽었다.

애초에 반란의 성공률은 제로에 가까울 뿐 아니라.

풍부한 대공국의 자금과 인간적인 세금, 많은 일자리와 여러 지원 정책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삶이 더 나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평민들은 신념보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제가 대공국의 신하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국가는 또 없을 겁니다. 공왕전하께선 진정으로 성군이십니다.”

사실 봉건 국가에서 영주의 재산 취급을 받는 국민들의 정서는 지도자의 성향을 물려받을 뿐 개인의 감정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영토를 점령당해 영주가 참수를 당해도 영지민들은 새로운 주인의 밑에서 잘 지내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내 기사이자 대공국 군무대신이 된, 용병 출신의 빌리엄 자작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내가 한 게 뭐 있나요.”

“한 게 없으시다니요! 대공국의 국민들은 하나같이 공왕전하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징수가 불가능하게 모든 영지에 세금 한도를 정하시고, 대규모 토목공사와 베르트 상회의 전격적인 투자로 대량의 일자리를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빌리엄 자작은 흥분한 모습으로 계속 내 얼굴에 금칠을 했다.

“거기에 평민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시고, 인재라면 신분을 따지지 않고 등용하시니, 평민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국민들에겐 그야말로 이상적인 군주시죠!”

우연히 내가 높은 위치에 있는 것뿐이지, 지구인이 군주가 된다면 모두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국민들에게 퍼주기보다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려 했을 뿐인데, 모든 게 잘 먹혀든 덕분인지 제대로 순기능을 하고 있었다.

세금 한도를 정했다고 해도 영주가 최대한으로 징수한다면 50%까지 거둬들일 수 있다.

물론 70~80%의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았던 영지민들 입장에선 인간적인 수치로 보일지 모르지만, 지구인의 시선으로 보면 결코 낮은 세율이 아니었다.

그리고 학교 역시 저렴하나 분명 유료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지구인이라면 돈도 많은데 조금은 국민들에게 인심을 써도 되지 않겠냐는 반응을 보일 정도인데.’

내가 한 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뿐.

당연한 권리라 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는 혁신적인 성군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나는 열을 올리는 빌리엄 자작을 진정시키고는 슈엔다르크의 상황을 물었다.

원래 이런 정보는 클로이에게 묻는 것이 제일 확실하지만, 요즘 클로이는 퀘스트를 진행한다고 바빴다.

그래서 정보 길드의 전달 사항은 각 부처의 장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슈엔다르크 왕국이 재건에 힘을 쏟긴 하지만 여러모로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전쟁 배상금도 워낙 큰 데다가, 베르트 상회의 공격으로 경제가 초토화되었으니까요. 조금씩 회복하고 있긴 하지만 예전의 성세를 찾긴 힘들 겁니다.”

슈엔다르크 왕국은 이제 그저 그런 국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공국인 우리보다 국력이 한참 아래이며, 앞으로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물론, 베르트 대공국이 속국이란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거대해진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말이다.

“프리우스 왕국은 여전히 반응이 없고요?”

원래 베르트 대공국은 딱 두 개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북으로 모국인 케일론 왕국, 남으로 슈엔다르크 왕국 이렇게 단 두 곳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슈엔다르크 서부 영토를 먹으면서 남부의 프리우스 왕국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약소국이니 여러모로 긴장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대적인 반응보단 친선을 바라더군요.”

프리우스 왕국은 소왕국으로 남쪽으로 이블랜드를 끼고 있어서 북쪽만 신경 쓸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와 친선으로 관계를 다지고 싶어 하는 게 이해가 되었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을 걸어온다면 모를까 먼저 나서서 전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에 사숙조인 크리스토퍼 백작에게 프리우스 왕국에 친선 대사 파견을 지시했다.

이후 나는 대공국 수도 지하에 오수 처리 시설을 설치하고, 대공립 마탑과 함께 마법 과학부의 신설을 의논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해서 실패한 게 없다 보니, 내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나의 권력이 강한 것도 있지만, 수행자가 되고 2년 가까이 쌓아 올린 신뢰도가 낮지 않았다.

덕분에 회의는 여느 때처럼 순조롭게 진행이 됐고, 중요한 사안을 의논한 것치곤 빠르게 결론이 났다.

“저, 전하!”

그런데, 그때였다.

히로시가 어울리지 않게 회의실에 뛰어 들어왔고, 그가 이렇게 놀랄 일이 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입니까?”

히로시는 백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

하지만 대부분의 수행자가 그런 것처럼 그는 대공국에서 정계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국무 회의에 참석하고자 왔을 리 만무하고 표정을 보아하니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 같았다.

“하, 하이랜드 엘븐하임에서 친선 대사가 찾아왔습니다.”

“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나는 물론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엘븐하임’이면 엘프의 나라를 뜻했다.

“그 말은 엘프가 찾아왔다는 거죠?”

“예! 엄청 예쁩니다.”

헛웃음을 나게 하는 히로시의 반응.

그러나 상황이 너무 평범하지 않아서 모두 말을 잃었다.

드워프는 인간과 어느 정도 교류를 하고 있다지만, 엘프는 하이랜드의 신화종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종족이었다.

그런 종족의 나라에서 친선 대사를 보내오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나보죠.”

엘프들은 긴 수명으로 대량의 마스터와 대마법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드랜드에선 잊힌 정령을 다루는 종족이다.

신화종의 정점인 드래곤만큼이나 중요한 종족으로 치부되는데 그런 이들이 찾아왔다면 이유가 결코 가벼울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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