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90화
87. 지구의 이종족(3)
베트남에 위치한 용인족의 마을.
그곳은 베네수엘라에서 발견했던 아틀란티스B와 달리 오지에 있지 않았다.
도심까진 아니어도 호치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 지하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 해당 마을 최대 지주 가문이 인간으로 둔갑한 용인족이었다.
비밀상점에서 도망친 두 용인족은 혹시라도 천사가 따라올까 긴장하며 조심스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때.
“느꼈어?”
“응.”
기감을 최대한으로 확장해 이동하던 그들의 감각에 묘한 것이 걸렸다.
“오러다.”
그것은 바로 단련된 오러의 기운.
둘에게 매우 친숙한 힘이었다.
“이런 데서 오러가 느껴지다니.”
“그런데 기운이 너무 약한데? 끽해봐야 익스퍼트 초급 수준이야.”
용인족으로 따지면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 수준의 힘이었다.
오러는 몬스터가 다룰 수 없는 기운.
그러나 용인족의 어린아이가 혼자 나왔다곤 생각할 수가 없으니, 상정 외의 존재가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혹시 소문으로만 듣던 수행자란 존재인 걸까?
“살펴봐야 하나?”
평소라면 서로에게 물어볼 것도 없겠지만, 도망친 입장이다 보니 잔뜩 위축돼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안위가 위험해지더라도 예상외의 상황은 꼼꼼히 살피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고, 그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우리가 다가오는 걸 눈치챘나?”
그런데 오러가 느껴진 방향으로 다가가자 목표가 자신들을 피하듯 반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익스퍼트 초급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아니, 꼭 그렇진 않으려나?”
수행자란 존재는 특수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하니,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수행자에 대한 정보는 언론을 통해서 접한 만큼, 과대 포장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었다.
-타타타닥!
익스퍼트 초급의 힘을 지닌 존재가 도망쳐봐야 이들을 따돌릴 순 없었다.
거리는 금세 좁혀졌고, 용인들은 끝내 미약했던 오러의 주인을 따라잡았다.
“여자?”
용인족들은 붉은 눈동자를 가진 동양인 여성을 보며 슬며시 미간을 좁혔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 인간은 자연적으로 붉은 눈동자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백색증의 알비노라면 모르겠지만, 그녀는 누가 봐도 알비노가 아니었다.
멋을 위해 착용한다는 컬러렌즈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용인족과 같은 붉은 눈동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유쾌하게 여길 수 없었다.
“당신들이.”
그런데 상대의 외모를 보고 놀란 것은 용인족들 뿐만이 아니라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용인족이군요?”
용인족은 인간 사회에서 완전히 잊혀진 종족.
하지만 그녀가 정확하게 정체를 알아보자, 두 사람은 크게 당황했다.
-챙!
“우리가 용인족이란 걸 어떻게 알았지?”
한 용인족들은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고 다른 한 명은 인간처럼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에 여성은 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전 수행자입니다. 일부 수행자들은 아틀란티스B라는 용인족의 도시와 인연이 있거든요.”
‘아틀란티스B’라는 이름에 두 용인족은 경계심을 살짝 누그러뜨렸다.
“아틀란티스가 아직 유지 되고 있던가.”
“두 분은 그쪽 소속이 아닌가 보죠? 인구는 계속 줄고 있긴 하지만 아직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가?”
그들의 말을 통해 지구의 용인족끼리는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엮일 일이 없다 보니 수행자를 본 게 처음이라 신기했지만,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그들이 이미 다른 용인족과 안면을 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그녀를 통해 수행자들의 수준을 가늠한 용인들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여성이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무기를 내렸다.
“미안하지만 같이 가줘야겠다. 다른 용인족 마을과 인연이 있다고 해도 이곳에서 우리를 본 이상 아무런 대비 않고 보내줄 순 없지.”
이어진 용인들의 이야기에 여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죄송하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냥 못 본 척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나 용인들은 완강했다.
“그럴 순 없지.”
“두 분을 따라가면 쉽게 풀어 주실 것 같지 않습니다만?”
당장 공격 의사가 없다 해도 용인족을 따라가면 무사히 돌아올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
그녀의 의심은 당연했고, 용인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게 선택지는 없다. 당장 우리가 무력을 행사하면 제압되는 것은 순식간일 테니.”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여성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두 용인은 시간을 길게 끌고 싶지 않은지 다시 무기를 들었고, 붉은 눈동자의 여성 클로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전 용인족과 다투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두 분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저를 구속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안전을 위한 행동이 더욱 큰 위협을 불러일으킬 수 있죠.”
경고로 내뱉은 말.
그러나 용인들의 태도는 일관되었다.
두 용인은 클로이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소 강압적으로 나갔는데, 이것이 착각이란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클로이는 지훈이 건네준 소환형 공용장비 중 목걸이의 기능을 사용했다.
“실레스틴.”
클로이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바람.
빠르게 밀도를 높인 바람은 회색이 아닌 연녹색을 띠었고, 이어서 아름다운 나신의 여성이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그에 당황한 용인들은 급히 검을 휘두르고 총을 쐈으나.
-쿵!
“큭!”
둔중한 충격파가 두 사람을 두들겼다.
용인들은 나름 분투했다.
하지만 실레스틴은 마스터급의 전력.
사고 가속과 미래시가 있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최상급 익스퍼트 두 사람이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제압된 용인족들이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멍하니 클로이를 바라보았다.
오러로 바람을 가르고 꿰뚫어도 그 바람은 흩어지지 않고 두 사람을 삼켜버리니 전투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불가항력이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에 맞닿아 있는 바람의 칼날.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에게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어디죠.”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의아했지만, 두 사람은 처지가 처지인지라 순순히 답했다.
“베, 베트남 호치민.”
고개를 끄덕인 클로이는 주변을 스윽 살폈다.
그러나 강력한 정령의 기운 때문인지, 큰 소란에도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뺨을 긁적인 그녀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중급 이상의 마석이 있으면 빌려주실래요?”
말이 빌려달라는 거지, 언제 돌려받을지 알 수가 없다면 그건 강탈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여기.”
마석이 자신들의 안위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냈다.
“만약을 위해 전부 챙겨가겠습니다. 나중에 꼭 갚도록 하죠.”
그리고 그녀는 길게 볼 것 없이 중급 마석을 집어 들며 착용하고 있던 팔찌 형태의 휴대용 텔레포트 게이트를 활성화했다.
-팟!
그리고 클로이는 푸른빛과 함께 사라졌다.
덩달아 자신들을 구속하던 힘이 사라지자, 두 용인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무슨 일진이 이래.”
“이렇게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천사를 만나 겁에 질려 도망치고.
만만하게 여겼던 수행자에게 수 분 만에 제압을 당해 삥까지 뜯겼다.
한숨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은 살아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 * *
나는 벙커 안에 위치한 텔레포트 게이트를 가만히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따로 들어온 소식 없는 거지?”
내 물음에 김선아도 걱정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텔레포트 게이트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수행자로 만든 뮤대륙인들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클로이의 안위를 걱정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가 내 곁에서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도쿄에서 스승인 고든이 발견된 것을 보면 뮤대륙 수행자들도 지구를 넘어올 수 있는 게 확실한데, 속속 들려오는 마법 통신 속에 클로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쓸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이 되지만, 클로이에겐 공용 아공간이 없었다.
덕분에 수행자로서 처음 지구로 향하는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환형 장비뿐.
내가 가진 소환형 장비 중 텔레포트 기능이 있는 것은 중급 마석을 사용해 5명의 인원과 500kg의 짐을 옮길 수 있는 휴대용 텔레포트 게이트밖에 없었다.
나는 클로이의 무력을 거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으나, 그녀는 암살자들이 배우는 오러심법을 익혀 익스퍼트 초급수준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실레스틴을 소환할 수 있는 장비와 성검 수준의 무기, 막강한 방어구 등이 있으니 상식적으로 신변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러나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괜히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
덕분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고 몇 시간째, 연맹의 벙커를 벗어나지 않았다.
-팟!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예고도 없이 텔레포트 게이트가 활성화되었고, 푸른빛과 함께 누군가가 나타났다.
“전하!”
그리고 그 누군가가 클로이임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겨 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덕분에 주변에 있던 몇몇 아줌마들이 마누라인 김선아를 앞에 두고 대놓고 바람 핀다며 오지랖을 부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이 전하의 거처군요.”
클로이는 신기하단 표정으로 벙커를 살폈다.
당연히 미녀의 등장에 남성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내가 곁에 있으니 시선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 * *
D-DAY당시 발생한 웨이브로 이후 붕괴한 국가는 80여 개에 이른다.
물론 대부분 군사력이 낮은 약소국이었지만, 강대국임에도 웨이브가 집중되어 궤멸 수준의 타격을 입은 곳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정도가 심했는데, 지방의 2개 도시와 파리를 제외하곤 완전히 전멸했다.
사상자는 무려 전체 인구의 6할.
물론, 집계되지 않은 도시 밖의 하이에나들이 많지만, 도시 붕괴 당시 피난처와 함께 명을 달리한 곳이 많았다.
때문에 프랑스는 곧 다가올 2차 웨이브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해 지방 도시를 철거하여 국민들을 파리에 집중시키기로 했다.
군사력을 한곳에 모으려는 의도였다.
분명 실용적이며 효과적인 판단.
하지만 이 계획엔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방의 국민들이 몬스터 밭을 뚫고 파리로 도보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웨이브가 끝나고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 웨이브 당시 쏟아졌던 몬스터를 모두 정리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지방 피난처에서 파리로 향하는 과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피난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을 때.
“피난민들이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기존 피난처에서 버티는 거였는데…….”
대규모 군과 수행자, 능력자들이 나섰음에도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갔다.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지역 한가운데 갇혀버린 것이다.
어찌나 수가 많은지 열심히 싸워도 몬스터가 줄지 않았다.
웨이브에서 살아남은 몬스터와 그동안 꾸준히 생성된 몬스터가 더해지면서 곳곳에 자연적인 웨이브 포인트가 생성된 것이다.
더구나 무리 속에 몬스터들을 이끄는 지도 개체가 처음으로 발견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너무 절망적인 상황에 프랑스의 1회차 수행자인 마티스는 이를 지훈에게 이를 상담했다.
“제가 도와드리죠.”
그런데 지훈은 문제될 것 없다는 식으로 너무 간단히 답을 하며, 지구에서 보자는 말을 남겼다.
“정말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냥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낫다니까요.”
마르세유 방면 피난 책임자가 된 마티스는 호위군사령관과 능력자들의 의문에도 단호하게 답했다.
“수행자 연맹의 회장님께서 자리를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럼 자리를 지키면 되는 겁니다. 분명 이 사태를 해결해주실 거에요.”
“충성심이 대단하군요. 좋겠습니다. 수행자들의 임금님께선.”
예민해진 능력자의 비아냥에 마티스는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고 호위군사령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말렸다.
“아무튼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제 생각도 능력자님과 같습니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니까요. 전멸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령관이 능력자의 의견을 지지하자 마티스는 별수 없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기다렸어요?”
그런데 그때였다.
이들 사이에 낯선 목소리가 끼어든 것이.
“헉!”
능력자들과 군인들은 기겁하며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동양인 청년이었는데, 그의 곁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두 명의 미녀와 예쁜 소녀, 개 두 마리가 원래 있던 것처럼 서 있었다.
“회장님!”
마티스를 포함한 능력자들은 기쁜 표정으로 그들을 반겼고, 나머지 사람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영광입니다. 말로만 듣던 수행자 연맹의 회장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오는 사령관과 달리 신경질적이던 능력자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인원 지원이 끝인 겁니까?”
그에 지훈은 ‘이 말 뼉다구는 뭐냐’는 표정을 지었고, 마티스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지훈은 건방지다는 듯 능력자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눌렀고, 기분 상한 능력자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츠츠츠츠.
하늘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두 개의 거대한 천공성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