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88
87. 지구의 이종족(1)
원주민을 수행자로 만든다?
그 말은 뮤대륙 주민들을 지구로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일까?
나름대로 설명이 되어 있긴 하지만 조금 더 상세하게 알려주면 좋을 텐데, 살짝 아쉬웠다.
수행자의 가장 큰 이점은 강력한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은 게 바로 목숨이 두 개란 점이다.
한 곳에서 죽어도 다른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 점이 수행자가 전장에서 조금 더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어느 곳에서든 죽으면 모든 게 끝일 경우 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수행자들은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뮤대륙인에게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한다면, 그 1순위는 클로이와 내 아들 로아가 될 것이다.
그 외에 내게 충성하는 고위기사들이 될 테고, 당장 지구에서 전력이 될 수 있는 마스터나 대마법사들에게 수행자 자리를 권하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녀를 포함한 가이아 교단에도 의견을 묻지 않을 수가 없지.
이번에 대량의 수행자 지정권을 구매하긴 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사두는 거였는데, 살짝 아쉽다.
수행자 지정권은 엘릭서처럼 스킬에 등록되는 것이 아닌, 아이템슬롯, 공용 아공간, 신의 가호처럼 옵션 창에 포함이 되어 있다.
[보유 수행자 지정권: 50장]
이번 달에 사용 가능한 지정권은 50장.
적지 않은 수지만, 새로운 공지 덕에 그리 많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럼, 전하의 고향인 지구에 갈 수 있는 겁니까?”
지정권의 새 사용처를 들은 클로이는 눈을 크게 뜨며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치는 않아.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지. 수행자의 가장 큰 특징이 그거니까.”
뮤대륙 원주민들이 지구를 오게 되면 아마도 시간적 오류를 막기 위해 기존 수행자들과 같은 사이클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뮤대륙에서 5일을 보내면 지구에서 하루를 보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기껏 시간적 오류를 수정했는데, 뮤대륙인들이 지구에서 연달아 며칠을 머물게 되면 다시 시간이 틀어질 테니.
“합니다. 당연히 해야죠.”
“그래, 내가 퀘스트를 도와주면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비록 지구의 수행자들에 비해 능력치 상승이 쉽진 않다지만, 보상카드로 얻을 수 있는 특수 능력까지 배제하진 않을 테니까.”
기대감이 깃든 클로이의 눈동자엔 기쁨이란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장소, 자신이 갈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뮤대륙에서밖에 볼 수 없는 만큼, 스스로가 반쪽짜리 부인처럼 느껴진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수행자가 되고 지구를 거닐 수 있게 된다면 클로이는 온전히 나와 같은 시선에서 생활하게 되지 않은가.
해바라기 기질이 있는 그녀가 기뻐하는 것이 당연했다.
조금 거만한 판단 같지만, 클로이가 나를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충분히 느끼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로아에겐 지금 바로 사용하기보다 조금 더 크고 나면 사용하는 게 낫겠지?”
“그건 그렇죠.”
갓난아이를 위험하기 그지없는 지구로 데려갈 필요는 없지.
[뮤대륙 주민 클로이 이엘 베르트에게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나는 바로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했다.
그에 클로이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이 신기한지 작게 감탄사를 흘리고는 내가 알려준 대로 손가락으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
[클로이 이엘 베르트가 수행자 지정권을 받아들였습니다.]
수행자는 매달 1일에 새롭게 입장을 한다.
뮤대륙 원주민들의 경우 지구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특별할 것 없이 6회차부터 적용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어? 눈앞에 퀘스트란 게 떠올랐습니다.”
“뭐?”
뮤대륙 원주민이라 그런 건가?
클로이는 바로 수행자로 지정이 되었다.
5회차 수행자와 거의 같은 스타트.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클로이는 괜히 뮤대륙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자세한 것은 지구로 돌아가는 5일 후가 되면 알겠지만, 일단 클로이에게 퀘스트의 종류를 물었고, 그녀는 신전 일을 도와주는 것이라 밝혔다.
나 땐 토끼사냥 퀘스트가 첫 번째였지만, 지금은 그게 없어지고 마을로 이동하는 것이 첫 번째 퀘스트다.
그리고 신전의 일을 도와 여정 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두 번째 퀘스트였는데, 뮤대륙인 수행자는 신전 일이 첫 번째로 등장했다.
“공왕비가 신전 일이라니…….”
내가 헛웃음을 흘리자 클로이는 재밌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고로 신분증과 지도 기능은 기본으로 제공이 되었다고 한다.
“일단 수행자 지정권을 빨리 사용해 둘 필요가 있겠네.”
지정권 사용과 동시에 수행자가 된다면, 최대한 빨리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사용해 두는 것이 좋을 터.
나는 심복이라 할 수 있는 그라프를 포함한 최상급 익스퍼트의 기사 4명을 불러들였고, 그들은 수행자가 되겠냐는 내 제안에 놀라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서 마법 사부인 고든과 사숙조인 크리스토퍼 백작에게도 물었다.
둘 역시 내심 수행자의 빠른 성장을 부러워하고 있었는지 거부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근위 기사단 모두에게 사용하고 싶지만, 50장이란 수행자 지정권이 많아 보일지는 몰라도 20장은 지구에서 사용할 예정이기에 나머지 30장의 사용처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추가로 대공립 마탑에 소속된 6서클의 고위마법사 3명에게까지 지정권을 사용하여 딱 10장을 쓰고 20장이 남게 되었다.
1회차 수행자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 최상급 익스퍼트와 6서클의 마법사가 신규 수행자라니.
완전히 반칙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수행자가 된 것이 대단히 기쁘기는 하나, 자칫 큰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겠네요.”
클로이의 말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특히 기사와 마법사들의 경지 상승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분명 지정권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면 여기저기서 청탁이 들어올 것이다.
자신을 수행자로 만들어달라고.
당연하지만 그 속에는 마스터나 고위마스터, 7서클과 8서클의 대마법사가 포함될 수도 있다.
지구에 그만한 전력이 투입된다면 생존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강자들을 끌어들일 경우 뮤대륙에서 기득권들이 수행자들을 기피하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은 일을 겪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마스터급 이상 전력을 끌어들일 때는 확실히 아군으로 쓸 수 있거나,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 되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은 원주민 수행자들이 지구로 가는 데 문제가 없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 * *
당연하지만 뮤대륙인들에게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수행자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일부 수행자들은 성장이 더디다고 공지에 밝혀진 뮤대륙인들에게 지정권을 사용할 필요가 있냐며, 수행자는 지구인들로 한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성장과 별개로 즉시 전력이 되는 뮤대륙인들을 수행자로 만드는 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소중한 뮤대륙인들에게도 여분의 목숨을 만들어줄 기회를 막아선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앞선 의견은 수행자란 이점을 뮤대륙인들에게 내줄 수 없다는 독점의식이 깔린 생각이고.
뒤의 의견은 자유의사를 막아선 안 된다는 일반론이다.
“회장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미 지정권을 사용한 상태다 보니, 살짝 찔렸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답은 바로 나왔다.
“지정권 사용을 막기보단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사용하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 마스터 이상의 강자들을 수행자로 지정할 땐 이렇게 회의를 해서 과반이 찬성할 경우만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합리적이긴 하죠.”
아무리 의견이 나뉘어도 결국 내가 말하면 그것으로 결정이 된다.
뮤대륙인의 지정권 사용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아쉬움을 표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원주민을 향한 지정권 사용은 답이 나왔고, 이어서 우리는 5회차 수행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몬스터가 많아져서, 탐색대가 발견하지 못하고 죽은 수행자가 30명이나 됩니다. 결과 총 1,052명의 수행자가 입장하였으며, 이들에게 연맹에서 기본 장비를 지급했습니다.”
수행자에 대한 기초 정보는 이미 지구에도 알려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30명이 시작과 동시에 당했다고 하니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탐색 부대를 더욱 늘려야겠네요.”
5회차 수행자 중에 신경 써야 할 인물은 딱히 없었다.
시험 삼아 능력자에게 1장의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했는데, 그는 뮤대륙에 들어서지 못했다.
능력자 자체가 수행자와 비슷한 프레임을 가져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5회차 수행자들에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리고 5회차 수행자 중 무려 5할이 몬스터와 싸우던 군인들입니다.”
군인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
“몬스터를 사살해서 그런 걸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덕분에 여성의 비율이 훨씬 줄어들었다.
원랜 남녀 비율이 6:4 정도는 되었으나, 대량의 군인들로 인해 성비가 9:1에 가까울 정도로 깨져 버렸다.
뭐, 수행자가 남녀 손 잡고 쎄쎄쎄 할 것도 아니니 성비는 중요하지 않지만, 군인들이 대거 넘어온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젠 거의 모든 지구인이 수행자란 존재를 알고 있다.
덕분에 이번 5회차 신입들은 자신이 수행자가 되었단 사실에 어리둥절해 하긴커녕 매우 기뻐했다.
수행자가 되는 것만으로 피난처에선 특권층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로부터 대위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가족들이 더욱 안전한 피난처에 머물 수 있다.
그 외에도 완전히 귀족처럼 떠받들어 주니, 누가 싫어하겠는가.
덕분에 이번 5회차 수행자들의 의욕은 대단하다고 한다.
이젠 신입 수행자들을 맞이한 횟수가 꽤 되다 보니 길게 의견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회의 진행자인 김선아가 다음 의제를 꺼냈다.
“혹시 지구에서 비밀 상점이나 지도자 격의 몬스터를 발견한 국가가 있습니까?”
이번에 지구에서 떠오른 공지사항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지구 전역에 등장하는 300여 개의 비밀 상점과 무리를 이루는 몬스터들의 리더.
그러나 모두들 입을 닫은 채 서로를 살폈고, 결국 이렇다 할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건 직접 조사해 봐야겠다.
* * *
베르트 대공국의 수도인 바리스 시에 소속된 제법 큰 마을.
그곳엔 많은 주민들이 가이아 교단 신전에 몰려 있었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처음 뮤대륙을 찾은 수행자들이 신전에서 노역을 하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를 재밌다는 듯 구경했다.
수행자란 존재 자체가 이제 마법사처럼 상위 계층으로 분류된다.
그런 귀한 분들이 어리바리하게 노역을 하니 어찌 구경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귀족을 구경거리로 삼으면 경을 치겠지만, 수행자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연례행사처럼 자리를 잡았다.
여성 1명에 남성 5명으로 이뤄진 신규 수행자들은 통일된 복장으로 마을 사람들의 구경 속에 빨래도 밟고 청소도 했다.
“어느 나라 분이세요?”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기만 했으나, 제법 익숙해지면서 여유가 생긴 일본인 수행자 마사루는 옆에서 촛대를 닦고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피처럼 붉은 눈동자 한 쌍이 마사루에게 향했다.
이어서 붉은 눈동자를 가진 미녀가 웃는 낯으로 답했다.
“한국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답이 살짝 이상하다.
더구나 마사루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이라는 게 걸렸지만, 호감을 표할 수밖에 없는 미소에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웬만한 탤런트 못지않은 미모를 갖고 있었다.
덕분에 완전히 홀린 마사루는 붉은 눈동자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마사루가 눈치가 있다면 뒤에서 열심히 빨래를 밟고 있는 거구의 남성들과 마을 곳곳에 숨어서 자신을 살피는 은밀한 시선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오로지 눈앞의 여성에게 쏠려 있었다.
“성함이?”
“클로이입니다.”
누가 들어도 서양인 이름.
하지만 마사루는 그녀가 국적 설명을 이상하게 했던 이유가 교포 또는 혼혈이기 때문이라 판단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마사루입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