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84
85. 새로운 공지(2)
“회장님!”
사석에서나 조심스레 오빠라 부르는 김선아가 굳은 표정으로 급히 달려왔다.
그에 멀지 않은 곳에서 자판기와 씨름을 하고 있던 히로시와 이태영 등 측근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다.
“무슨 일인데?”
그녀가 사석에서 나를 오빠라 부르는 것처럼 나도 이젠 편하게 말을 놓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대기실 중앙에 이변이…….”
항상 여유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다급한 모습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급히 대기실 중앙을 향해 몸을 날렸고, 몇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 있는 중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기실은 직사각형 형태인데, 양쪽 끝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길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남는 자판기를 찾아 흩어지게 되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대부분 중앙에 모여 있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수행자의 수는 4회차까지 총 2,200여 명.
D-DAY 이후 적지 않은 인원이 지구에서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2,500명까지 늘어났던 인원이 꽤 줄었다.
내가 다가가자 자연히 수행자들은 길을 터줬다.
그렇게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던 내 앞에 신비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대천사 시엘라]
그곳엔 천사가 4쌍의 날개를 펼친 채 지면에서 약 20cm정도 떠 있었다.
“이게 대체.”
나는 영문모를 상황에 당황했는데, 마치 천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인도의 1회차 수행자 사지타가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렇군요.”
천사는 그런 사지타의 손을 따라 내게 시선을 주었다.
머리카락부터 눈동자 색까지 모두 은색인 천사가 지면에 발을 내디디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마치 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예상치 못한 대천사의 등장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대천사라면 드래곤이나 3대 악과 동열에 놓이는 존재.
하지만 드래곤이나 3대 악과 다른 점이라면 뮤대륙이 아닌 천계에서 신들을 보좌한다는 것이다.
“반갑습니다. 수행자들의 대표여.”
그녀는 그야말로 천사 같은 미소를 흘리며 나를 반겨주었지만, 영문 모를 상황에 나는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굳이 이름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내게도 당신의 이름이 보이니까요.”
그러면서 시엘라란 천사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녀의 이름이 시스템 메시지로 머리 위에 표기되는 것처럼 내 이름도 시엘라에게 보이는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더욱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감상 따윈 문제가 아니라며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말했다.
“가이아님께서 지구에 은총을 내려 주시려 합니다.”
이미 초토화가 됐는데, 이제 와서?
인심 쓰듯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내 표정은 사정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불쾌함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수행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한 명이 나서서 돌발행동을 할 법도 하지만, 내가 있어서인지 일단 다들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은총이라 하시면?”
너무도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나는 눈앞의 천사가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다.
내 물음에 그녀는 다시 허공에 떠오르더니, 모두가 잘 보이는 위치까지 올라가 말했다.
“지구에 성녀가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성녀라.
나쁠 건 없는 이야기다.
성녀는 존재 자체가 악마종에게 극독과 같은 존재이며, 마스터급의 수호자 3명을 만들 수 있는 권능을 보유하고 있으니.
무엇보다, 항상 내가 걱정하던 3대 악 수준의 악마종이 지구로 넘어오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었다.
성녀가 소환하는 대천사는 3대 악을 처단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은총이군요. 성녀의 존재는 지구의 희망이 될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애써 적개심을 거두며 영업용 표정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그에 시엘라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수행자들과 지구의 안위를 위해 노력하는 지훈 님의 노고는 가이아님께서도 감명 깊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 예…….”
감명 깊게가 아니라 흥미롭게일 텐데?
천사가 할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닌지, 여전히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상으로 첫 성녀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훈 님에게 내리겠습니다.”
수행자 지정권 같은 성녀 지정권을 주겠다고?
마치 가이아는 내게 권력이 집중되길 바라는 것 같지 않은가.
“따로 성녀를 지정함에 있어서 제약이 존재합니까?”
“없습니다. 다만 신성력을 보유한 인물이 성녀가 된다면 조금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죠.”
제약이 없고, 신성력을 원래부터 보유하고 있으면 금상첨화라.
그에 머릿속으로 후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훈 님께서 후보를 선택하실 때까지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럴 거면 굳이 천사를 내려보내지 않고 메시지창으로 알려도 되지 않을까?
더구나 동행이라니.
어쩌면 그만큼 성녀라는 것이 특별해서 이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단지 그것뿐입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다시 지면으로 내려왔다.
“의심이 많으시군요.”
“워낙 많은 일들을 겪고 있어서요. 모든 일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죠.”
“이해합니다.”
아직 내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성녀의 힘은 워낙 커서 운송자가 필요하죠. 나는 그 힘을 옮기는 운송자이며, 당신은 그 운송자를 지구로 이동시키기 위한 매개체입니다.”
“왜 그렇게 불편한 방법을 취하는 겁니까?”
“아직 지구가 완전히 동조된 상태가 아니라 대천사 정도의 존재도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거죠.”
가이아는 전능한 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천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분명 어떤 제약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구를 자신이 관리하기 편한 상태로 변환하고 있는 과정이라든지.
“수행자로서 돌발 상황은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거절할 수는 없겠죠.”
어차피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지라, 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가 이렇게 의문에 답을 해준 것만으로 일종의 성과다.
현장 관리자로부터 가이아의 현 상황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취득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당장은 개인의 성장에만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그건 육성으로 내뱉은 말이 아닌, 머릿속으로 직접 울려 퍼지는 말이었다.
발신인은 당연히 눈앞의 대천사.
아무래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깨고 있는 모양이다.
* * *
눈을 뜨니 익숙한 회색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연맹 지하 벙커에 위치한 내 방이었다.
옆자리엔 김선아가 누워 있었는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도 거의 동시에 부스스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천사는요?”
그에 내 눈동자가 10평 남짓한 방을 스캔하고 대천사 시엘라가 색이 입혀지듯 나타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뮤대륙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몸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은데, 매개체란 역할의 영향인지 그다지 편한 느낌이 아니었다.
시엘라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감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마나가 온전하게 자리 잡지 못했군요.”
마치 점검을 나온 현장 관리자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네 개의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지구에서 처음으로 공지사항이 떠올랐다.
내 시선은 자연히 시엘라에게 향했고,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지구에 성녀가 등장합니다.]
-성녀는 신성 마법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3명의 마스터급 성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성녀를 통해 지구의 신성 마법을 정비하면 전력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녀는 세계 10개 지역에 성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역으로 지정된 장소는 중심으로부터 직경 20㎞가 안전구역이 됩니다. 성역은 한 국가에 1개만 설치할 수 있습니다.
성녀의 등장은 대천사를 통해 이미 전달받은 내용이다.
그런데 성녀의 능력에 포함된 것 중 성역에 대한 설명은 나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직경 20㎞면 상당한 범위였으니.
서울로 치면 외곽을 제외한 중심지는 모두 포함되는 범위였다.
이를 활용하면 시민들을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역 선포 건으로 의견 대립이 발생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그나마 바로 통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직접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연락이 날라오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김선아와 함께 침대에 걸터앉아 계속 공지 내용을 살폈다.
[능력자의 등장 속도가 증가합니다.]
-능력자의 능력이 더욱 다양해집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파악된 능력자의 수는 약 1500여 명.
무시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그런데 등장 속도가 증가한다?
곧 있으면 수행자와 숫자가 비슷해질 것 같다.
현재 한국에 능력자는 45명이 존재하며, 그중 3할 수준인 14명이 연맹에 가입되어 있다.
[세계 각지에 300개소에 비밀 상점이 등장합니다.]
-몬스터를 제거하면 일정 확률로 검은 마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마석을 이용해 비밀상점과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비밀 상점은 다양한 아티팩트를 비롯해 현재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전자장비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비밀 상점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샵의 지구 버전인 걸까?
전자장비를 판다는 것이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게임처럼 변해가는 환경을 보면 장난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자연히 내 시선이 시엘라에게 향했다.
“이 모든 것은 정해져 있던 시스템입니다.”
그러면서 시엘라는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각 몬스터의 로드가 탄생합니다.]
-몬스터들은 로드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며 부락을 이룬 몬스터들은 번식 속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마지막 공지는 상점 내용과 맞물려 지구인들에게 숨어만 있지 말고 조금 더 활발하게 사냥활동을 이어가라는 것처럼 보였다.
이걸로 공지사항은 끝.
따로 뮤대륙과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뮤대륙과 지구의 공지사항이 나눠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공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복장을 갖추기 시작한 나는 김선아와 함께 방을 나섰다.
“우왁!”
거의 지하 마을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수행자 연맹 벙커.
유령처럼 벽을 통과하여 나를 따라나서는 시엘라의 모습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녀 후보로 생각해 둔 사람이 있습니까?”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그때 멀리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중학생 정도의 외견을 지닌 소녀가 달려왔다.
소녀의 곁에는 말라뮤트처럼 생긴 개 두 마리가 따르고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달려와 매달리는 녹색 머리의 소녀, 봉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연히 대천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성녀가 되기 위한 조건이나 제약이 없다고 하셨죠? 그리고 사전에 신성력을 지니고 있으면 성녀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고 하셨고요.”
시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에겐 강력한 성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구는 종교적 마찰이 적지 않은지라, 특정 종교의 성직자를 선택할 순 없습니다.”
“음…….”
“하지만 제 근처엔 성직자가 아니면서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소녀가 한 명 있죠.”
자연히 나와 시엘라, 김선아의 시선이 봉봉이에게 향했고, 영문 모를 상황에 봉봉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이 아이가 성녀로서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엘라의 처음으로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