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80화 (180/247)

# 18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80

83. 개전(3)

지구의 첨단 무기들은 정밀하고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도시를 궤멸시킬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 지구의 전쟁은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라기보다 기계 대 기계의 싸움이라 볼 수 있는데, 더 뛰어난 성능의 장비를 가진 국가가 승리하는 기술전이 되어버렸다.

비록 지구의 환경이 급변하여 지금은 대부분이 사장되긴 했지만, 그만큼 지구와 뮤대륙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문명의 격차가 존재했다.

현대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세계의 권력자가 되고, 또 전쟁을 치르게 된다면 자연히 지구의 무기체계 도입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나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한 결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명 뮤대륙의 전쟁은 원초적이고 구시대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현대 기술에도 꿀리지 않는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법사의 존재이며, 차라리 이들의 능력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물론, 현대 지구의 지식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적진을 향해 나아가고 거대 금속 덩어리만 해도 무한궤도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지구에서 동력을 얻기 위해선 엔진이나 모터등의 기계장치가 필요하지만, 뮤대륙에선 1서클 마법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간단한 아티팩트를 이용해 얻은 동력은 지구의 어떤 엔진보다 효율적.

50톤에 달하는 금속 덩어리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허공에 띄우는 것보다 제작비도 저렴하고 마력 소모도 적어서 무한궤도를 채용했다.

저 금속 덩어리는 탱크의 역할을 하는 우리 군의 육상 전투 병기다.

명칭은 ‘소드 아머’.

하지만 일반 탱크와 달리 화포가 없고.

머리, 몸통, 배를 나누듯 횡으로 그어진 두 줄의 경계선과 여기저기 용도 모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탱크 역할을 한다기엔 애매한 생김새.

그러나 내부에 탑승한 것이 다름 아닌 마법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깡통차가 병사 학살에 최적화된 전차가 되는 것이다.

‘마법사의 전진 배치.’

극진한 보호 속에 후방 지원을 하는 마법사의 개념을 뒤집는 시도였다.

“괜찮을까요? 괜히 귀한 마법사를 낭비하는 꼴은 아닐지.”

비장의 수라기엔 약해 보였는지, 케일론 왕국 참모들이 우려를 표했다.

마법사는 전장에서 기사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표적이 되기 쉬운 데다가 캐스팅 시간이란 약점 덕에 빈틈이 많았다.

그래서 마법사의 전방 전투를 생소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보라는 듯 눈에 띄는 모양새 덕에 적 후방에서 마법이 날아들었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우리 마법사들이 이를 방어해냈다.

하지만 모든 마법을 막진 못해, 몇 개의 마법이 소드 아머에 작렬했다.

날아온 마법은 대부분 3클래스의 파이어볼이나, 4클래스의 파이어 스트라이크.

그러나 소드 아머는 3~4서클의 중위 마법에도 끄떡없이 전진을 거듭했다.

“괜찮습니다. 저 서클 마법에 파괴될 정도로 장갑이 얇지 않으니까요. 6클래스 마법도 한두 번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아무리 튼튼하다고 한들 7클래스 급의 대마법을 버틸 수는 없다.

7서클 마법사가 나선다면 장갑이고 뭐고 그냥 죽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대마법사의 공격을 막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고 6클래스 마법 한두 번 정도 버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소드 아머의 장갑은 단순한 통짜 철로 만든 것이 아니라, 녹는 점이 높은 흑철과 강철, 스테인레스 강이 층을 이루고 있다.

“음…….”

굳건한 소드 아머의 자태에도 여전히 존재가치에 의심을 보내는 참모들을 보니 직접 효과를 눈으로 보여 줘야 할 것 같다.

아직 용도를 숨기기 위해 소드 아머는 공격을 하지 않고 그저 전진했다.

덕분에 정체 모를 장비에 적군 참모진이 당황한 게 병사의 움직임으로 드러났다.

적들이 우왕좌왕 대는 것도 잠시.

이내 제대로 방진을 갖추는 것을 보니 우리의 도전을 받아들일 생각인 모양이다.

양군의 마법사들이 쉴 틈 없이 마법을 사용하고, 진형을 맞춰 전진하던 궁수들이 활을 쐈다.

하늘은 마법과 화살로 가득 차서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지만, 전진을 거듭하는 병사들은 전방만 주시하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두 진형의 거리가 100미터 이내로 가까워졌을 때.

선두에 있던 베르트 대공국군 병사들이 접이식 쇠뇌을 꺼내 벽처럼 견고하게 앞을 막아선 적 방패병을 향해 겨눴다.

설마 일반적인 전투 보병들이 쇠뇌를 장비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치 못했을까?

방패병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고, 곧 그들에게 볼트가 날아들었다.

-투투퉁!

“끄악!”

신중하게 겨눈 덕에 볼트의 명중률은 굉장히 높았다.

볼트는 나무판에 철을 덧대 만든 적군의 방패를 그대로 꿰뚫으며 진형을 무너뜨렸고, 베르트 대공국의 병사들은 단 한발의 볼트를 발사하곤 재장전 없이 쇠뇌를 바닥에 버렸다.

약 1만 개의 쇠뇌를 일회용으로 쓴 것이다.

아무리 대량 생산을 했다고 해도 조립식 쇠뇌가 싼 것도 아니고, 한번 쓰고 버리는 모습을 보며 케일론 왕국의 참모진이 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적군의 방패진이 여기저기 무너졌기에 무의미한 돈 지랄은 아니었다.

잠시 후 적들과의 거리가 50미터 정도로 좁혀지자, 250대의 소드아머가 속도 높여 선두에 달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소드아머가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한 신속한 움직임.

그리고 중장기병의 돌진과 비교되지 않는 질량의 소드 아머가 덮쳐오자, 적군의 전방이 단번에 붕괴되었다.

“오…….”

그때서야 아군 참모들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어서 소드 아머들이 투명한 물을 물총처럼 발사하나 싶더니.

-화아악!

그 액체에 불이 붙으며 화염방사기로 변모했다.

“끄아악!”

소드 아머 한 대에서 두 줄기의 화염이 내뿜어졌으며 불길이 무려 50미터나 뻗었다.

더불어 소드 아머에 탑승한 마법사가 미친 듯이 파이어볼을 캐스팅하여 난사를 하니, 주변은 쑥대밭이 되었다.

“대, 대단하군요.”

“상상했던 것 이상입니다.”

뭐, 적들이 대비할 시간이 적었던 탓에 크게 이득을 보긴 했지만, 케일론 왕국의 참모진이 의심해서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더욱더 만족스러웠다.

적 마법사들의 공격이 소드 아머에 집중되었으나, 아군의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방어를 해주었다.

사전에 대비한 대로 5클래스 공격마법은 5서클의 마법사가, 6클래스 공격마법은 6서클의 마법사가 막아냈다.

5, 6서클의 고위 마법사들은 계속 방어마법 또는 대응마법만 메모라이즈하며 필요할 때마다 즉시 시전했다.

덕분에 소드 아머들은 신나게 돌진해 적진을 휘저으며 적군을 유린했다.

그 사이 아군 진영에 변화가 생겼는데 중위에 위치해 있던 궁병들이  전진 배치됐다.

그들은 활 대신 가방처럼 등에 짊어지고 있던 커다란 자동장전 쇠뇌를 꺼내 사격을 시작했다.

소드 아머가 앞을 휘젓고 뒤에서 궁수들의 쇠뇌 공격이 이어지니, 마치 탱크+소총의 연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살된 적의 숫자는 3만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였다.

“적군이 전진합니다.”

그런데 적 사령관은 후퇴가 아닌 병력의 전진을 명령했다.

덕분에 보병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소드아머 뒤에서 편히 사격을 하던 궁수들이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고, 기다렸다는 듯 아군 선두에 방패진이 생겼다.

“기사단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마법으로 소드아머를 처리하지 못하자 결국 기사단을 출동시켰다.

우리도 그에 대항해 기사단과 수행자들이 나섰다.

“아군에게 소드아머 근처로는 다가가지 말라고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

“빌어먹을!”

슈엔다르크와 크로스비 왕국의 양 사령관은 소드마스터 하우트 후작을 노려보았다.

비록 그가 전투를 제안하긴 했다지만, 누가 이런 전개를 예상했겠는가.

하우트 후작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며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적들의 비밀 병기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장비의 효과는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소드 아머를 파괴하기 위한 아군 마법사들의 집요한 공격을 적 마법사들이 끈질기게 막아낸 탓에 파괴된 것은 겨우 10여 대밖에 되지 않았다.

7서클 마법사가 나서도 저쪽 역시 7서클의 마법사가 있어서 지금까지와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후퇴하죠.”

크로스비 왕국의 소드 마스터, 테우스 후작이 전군 후퇴를 제안했다.

그러나 사령관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후퇴했다간 추격전을 허용하게 됩니다.”

“저 장비의 속도가 상당해서 피해가 더욱 크겠죠.”

“그럼 어쩌자고요?”

“어쩔 수 없이 전진해야죠.”

“네?”

“저 쇳덩어리들이 설치지 못하게 난전을 유도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병력은 아직 우리가 많습니다.”

결국,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난전을 유도하며 전군 전진을 지시했다.

더불어 기사단을 출동시켜 적의 살인 병기의 처리를 지시했다.

“무, 무슨?”

하지만 기세 좋게 화염을 피하며 소드 아머에 접근했던 기사들은.

-철컥! 푸확!

“…….”

거대한 칼날에 두 동강이 나버렸다.

머리, 몸통, 배를 나눈 것처럼 소드 아머에 그어져 있던 두 줄의 틈새를 이음새 정도로만 생각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헛바람을 삼켰다.

무슨 용도인가 했더니, 그 안에 칼날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인 일반적인 칼날이라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전기톱처럼 회전하는 2중 칼날엔 무려 오러가 씌워져 있었다.

“저런 미친.”

소드 아머란 이름에 아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살인 병기의 내부엔 마법사뿐만 아니라 기사까지 탑승하고 있었다.

세상에 누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준 귀족인 기사를 회전하는 칼날의 오러 배터리로 쓰다니.

무섭게 회전하는 2개의 칼날에 기사들은 쉬이 달려들지 못했다.

몇 명이 머리를 굴려 팽이의 약점이기도 한 정수리에 몸을 날렸지만…….

-쿠웅!

소드 아머에서 발생한 돌풍 마법이 기사를 미뤄냈다.

“씨발!”

“계속 달려들어! 내부에 있는 마법사의 캐스팅 속도보다 빠르게!”

“생각보다 이동속도가 빨라서 머리를 노리는 게 쉽지 않아!”

“젠장! 어쩌라고!”

만약 시간이 있었으면 더 수월하게 뚫었겠지만, 당장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뚫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기사단은 이들 진영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군 기사단과 적군 기사단끼리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수행자가 워낙 많아서 불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번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만큼 새삼스러울 것 없는 보고였다.

“아무래도 나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결국, 잠자코 앉아만 있던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이 움직였다.

아무도 이렇게 엉망진창인 전쟁을 바라지 않았으나 더는 점잔 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

“나왔다.”

적군의 최종 보스들이 떴다.

“어차피 모레 대기실에 입장하니 엘릭서 아끼지 마시고,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도망치세요.”

“네!”

내 말에 김선아와 히로시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는 두 사람이 도망쳐야 할 때가 되면 시간 끌어주고.”

“알겠습니다.”

포인트샵에서 샀다곤 하지만 그동안 정이 많이든 청아다.

하지만 위급 상황이 되면 청아보다 그 두 사람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 셋이 밀리긴커녕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스터들은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어낼지 알 수 없었다.

감정이 없는 청아는 아무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셋과 나, 엠브리오 공작이 적진의 초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엠브리오 공작이 크로스비 왕국의 대마법사를 물고 늘어지며 시간을 끌고.

김선아, 히로시, 청아가 슈엔다르크의 신입 마스터를 상대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나머지 두 명의 마스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동료들을 돕는단 생각이었다.

김선아와 히로시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작전이지만, 가장 쉽게 적군의 마스터들을 처리할 방법이라 판단했다.

‘어째 소드 아머보다 수행자들을 노리는 느낌인데?’

마스터가 다가오자 후다닥 도망치는 수행자들을 보며 얼른 블링크를 사용했다.

그리고 주변의 풍경이 바뀜과 동시에 10중첩된 6서클의 폭발마법을 기습적으로 사용했다.

“큭!”

역시 마스터는 허울이 아니란 건가?

폭발 범위에 있던 두 사람이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러 막아냈다.

그러나 폭발의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그들(데이슨 공작, 테우스 후작)은 처참히 튕겨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