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꿈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78
83. 개전
드라이덴을 중심으로 한 상계의 소란은 슈엔다르크 왕실로 전해졌다.
루트화 대란 및 대출금 일시 상환의 늪은 상상 이상의 큰 효과를 거두었으며, 그 속에 베르트 상회가 폭리를 취하는 것을 슈엔다르크 왕실에선 결코 간과할 수 없었다.
“드라이덴 은행을 몰수한다.”
국왕의 판단은 1차원적이었다.
그러나 누가 생각해도 가장 간단한 조치라 여겼다.
“폐하, 그렇게 되면 루트화의 유입이 더욱 어려워지게 됩니다.”
덤으로 은행을 건들면 베르트 상회의 사치품값이 보복성으로 급등할 것이다.
귀족들에게 베르트 상회는 더 이상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존재였다.
“루트화 사용을 폐지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오나 우리 슈엔다르크가 교역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국가인 만큼, 경쟁력을 이웃에 뺏길 수도 있습니다.”
“루트화는 공용 주화의 대용품이 아닌가! 그깟 종이쪼가리가 뭐라고!”
재상과 국왕의 설전을 잠자코 지켜보던 슈엔다르크의 내무대신이 조심히 말했다.
“폐하, 은행을 몰수하더라도 그곳에 보관된 예금을 손에 넣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째서지? 그곳에 저장된 돈은 우리 슈엔다르크 왕국의 것이 아닌가.”
“이게 정확한 소문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예금된 돈은 고스란히 해당 지점 금고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돈을 다른 장소에서 보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대답에 국왕은 말을 잃었고 내무대신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은행을 몰수하면 그곳에 보관된 돈은 본국에서 찾지 못합니다. 예금주들이 돈을 찾기 위해선 외국 은행을 이용해야 하는 거죠. 그 돈이 일순간 슈엔다르크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은행의 존재.
하지만 그 은행이 가지는 가치가 조금씩 몸으로 체감되었다.
그런 은행을 만든 수행자의 위험도가 더욱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콰앙!
슈엔다르크 국왕은 왕좌의 팔걸이를 내려치며 군대의 진군 속도를 높이도록 지시했다.
* * *
“기본 화폐가 공용 주화라 그런지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았군요.”
내 혼잣말에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베르트 대공국의 귀족들은 이게 어딜 봐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거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확실히 슈엔다르크 상계는 난리가 났다.
많은 상회가 일시에 들이닥친 대출금 상환을 제때 정리하지 못해 계약에 따라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문을 닫았으며, 급하게 시장에 풀린 물품을 우리가 사들이며 얻는 차익도 상당했다.
또한, 루트화의 가치를 상승시킨 후, 조든 크리스 상회에서 은밀히 루트화를 비싸게 풀면서 얻은 차익은 거의 창조경제라 봐도 좋을 정도다.
그럼에도 슈엔다르크는 부들대며 분통을 터뜨릴 뿐 은행을 건들지 못했는데, 이미 이런 사태를 염두에 두고 모든 대비를 해뒀기 때문이다.
앞으로 은행은 그들이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할 눈엣가시로 여겨질 것이다.
다만 한가지 문제라면 이번 일로 다른 국가들도 은행에 경계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세계적으로 은행의 성장은 제대로 물살을 타서 폭발적으로 고객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번과 같은 화폐 대란을 막기 위해선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루트화를 비축해야 할 텐데, 이건 이것대로 좋다.
완전히 기축통화 취급이니.
아무리 본위제라 해도 종이 화폐의 장점은 무에서 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찍어내야 하지만 국가들이 주도해야 할 사업을 한 개의 기업에서 선점했다는 게 기가 막히지 않는가.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분풀이는 된 것 같군요.”
정말 뮤대륙의 로스차일드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작게 헛기침을 하곤 지도를 보며 물었다.
“적군의 위치는 어디쯤입니까?”
내 물음에 클로이가 지도 위로 나무로 만들어진 말들을 올렸다.
“슈엔다르크 군은 카텐부르크에 당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크로스비 왕국의 지원군은 악시란트에 당도한 상태고요. 이틀 뒤 오전 10시경에 전위 부대가 우리 국경에 당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적군의 병력 현황은 아래와 같다.
-슈엔다르크 왕국 군
기사 2,500
마법사 500
병사 250,000
-크로스비 왕국 군
기사 2,000
마법사 500
병사 150,000
여기에 마스터 3명과 대마법사 1명이 더해진다.
그리고 우리 진영의 전력은.
-베르트 대공국 군
수행자 1,800
기사 500
마법사 100
병사 70,000
-케일론 왕국 군
기사 3,000
마법사 1,000
병사 200,000
고급 전력은 수행자 덕에 우리가 더 우위에 있지만, 병사 머릿수의 차이가 커서 전체적인 전력은 비등하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것이 나라를 뺏고 빼앗기는 전면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나라면 절대 선공을 취하지 않을 전력이다.
저쪽에선 마스터 3명과 대마법사를 믿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크로스비 녀석들은 뭘 주워 먹으려고.”
이미 충분한 병력을 지원했지만 인구 대국인 크로스비 왕국이 전쟁의 당사자라면 배 이상은 많은 병력이 집결되었을 것이다.
이번 전쟁의 핵심 전력은 다름 아닌 수행자다.
지난 내전과 달리 이번 전쟁은 수행자들도 전면에 나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베르트 공국 자체가 수행자들이 중추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번 전쟁의 승패에 따라 수행자들의 주요 거점이 사라질 수도 있기에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수행자들에게 전황이 불리해지면 무조건 도망치라며 5클래스의 블링크 스크롤을 두 장씩 배포하여 아이템 슬롯에 등록하게 했다.
어떻게 보면 나라님이 주민을 차별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이는 수행자의 가치를 생각한 조치였다.
수행자는 한 명 한 명이 마스터의 제목이다.
수행자들만 있다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언제든 재기할 수 있으며, 뮤대륙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중요한 전력이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제 슬슬 가까워지고 있는데….”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는데, 그들의 눈빛이 이제 슬슬 앞서 말했던 조치라는 걸 취할 때가 되지 않냐는 것 같았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저쪽에서 선전 포고를 했으니, 개전은 우리 쪽에서 선언해도 되죠?”
물을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이야기.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개전을 선언하겠습니다.”
*
“전하!”
슈엔다르크 왕국의 원정군 사령관인 가르트 후작은 통신마법사가 급히 달려오는 것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무슨 일인가?”
“베르트 대공국에서 개전을 선언했습니다!”
그에 가르트 후작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는데, 개전 선언은 침략 군대가 수비측에 항복을 권한 다음 거절 시 선언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선전포고는 자신들이 했으니, 저쪽에서 개전을 선언해도 문제가 없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황당함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크로스비 왕국군과 합류하지 못한 틈을 노리고 공격해오겠다는 건가?”
마법사수가 1천 단위인 데다가 대마법사까지 끼어 있는 만큼 수성의 의미가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공격보단 방어 측이 유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개전 선언은 공격을 취하겠단 의지의 표현이었으니, 병력이 나눠진 틈을 노린다고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르트 후작은 정찰부대를 더욱 넓게 포진시켜 기습에 대비했으며, 이 생각을 크로스비 왕국 측에도 전했다.
긴장했던 것과 달리 첫날은 아무 이상 없이 흘러갔고 베르트 대공국을 하루 거리에 남겨 놓았을 때, 문제가 생겼다.
-후우우우웅!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섬뜩한 소음.
그에 군인들은 급히 하늘을 올려보았고, 하늘에 무언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뭔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뜬 그 순간, 지름 5미터의 쇠공이 군의 중심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앙!
화염과 강력한 충격파가 주변 휩쓸었다.
“끄아아악!”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쇠공을 중심으로 깊게 파인 크레이터처럼 분쇄되었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충격파에 연처럼 날아갔다.
“뭐, 뭐야? 마법 공격인가?”
쇠공 하나에 수백 명이 죽고 천 명이 넘는 인원이 부상을 입었다.
가르트 후작은 기겁하며 물었지만, 마법사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게 순수 물리 공격이란 말이냐?”
“그런 듯 보입니다.”
가르트 후작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내 하늘 위를 무수히 수놓는 쇠공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불꽃에 휩쌓인 채 떨어지는 수백 개의 쇠공들은 마치 전설로 치부되는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보는 듯했다.
“마법사! 방어막!”
그에 마법사들이 급히 방어막을 펼쳤다.
일반적으로 단순 물리력은 마법을 비롯한 마력이 깃든 힘 앞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건 의심할 여지 없는 정설.
-콰콰쾅아아아앙!
하지만 물리력도 물리력 나름이었다.
쇠공으로 만들어진 운석이 추락하며 만들어진 운동에너지는 7클래스 급의 대마법을 가볍게 상회했다.
단순 물리력은 대항하는 마력 앞에 큰 힘을 발휘 못 하지만, 그래도 5클래스 이하의 방어막을 산산조각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그 비명소리도 충돌음에 파묻혔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막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거대 쇠공을 이용한 융단폭격이 멈추고 드러난 풍경은 처참했다.
“사령관 각하! 사령관 각하!”
비록 곳곳에 피어오른 먼지구름과 새까만 연기가 뒤섞여 시야가 완벽하게 확보되진 않았지만, 사령부가 위치한 중원이 초토화되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겁에 질린 참모가 주변을 살피며 사령관을 찾았지만, 사령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국 사령관을 못한 참모가 급히 외쳤다.
“통신 마법사! 통신 마법사!”
“네!”
“이 상황을 알리며 전위와 후위를 넓게 포진시키도록!”
“아, 알겠습니다.”
병력만 25만이 넘다 보니, 전위와 후위의 거리만 수십 킬로미터에 달했다.
때문에 전후방에선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참모!”
그때, 나이든 마법사가 급히 날아와 말했다.
“이건 쇠공의 무게를 이용한 자유낙하 공격일세! 방어막은 소용없으니, 마법사들에게 쇠공을 향해 무게 감소 마법이나 플로트 마법을 사용하라고 지시하게! 그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야!”
참모는 그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전하라고 통신 마법사에게 알렸다.
그리고 잠시 후.
-후우우우웅!
다시금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공포에 물든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빌어먹을 베르트 대공.”
이게 누구의 짓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
“역시 마법사들은 똑똑하단 말이야.”
퍼밀리어를 통해 지상의 상황을 살피던 나는 거대 쇠공이 가득 담긴 뮤대륙 전용 아공간 팔찌를 공용 아공간에 집어 던지며 혀를 찼다.
지금 나는 대기권 끝에 방어막을 두른 채 떠 있는 상태.
미리 낙하지점을 체크하긴 했지만, 괜히 다시 확인한다고 쇠공 하나를 먼저 던져 보는 바람에 저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고 만 것 같다.
1차 융단폭격은 성공이지만, 2차 땐 마법사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쇠공을 향해 무게 감소 마법과 플로트 마법을 사용하니,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뭐, 이걸로 만족할까?”
이 공격은 기습에서나 사용할 수 있지 대비를 한다면 큰 효과가 없다.
얼핏 봐도 초토화된 중원에서 발생한 피해자가 5만은 되어 보였으니, 이걸로 만족해야겠다.
[빠른 대처 때문에 크로스비 왕국 군 피해는 3만에 그쳤습니다.]
크로스비 왕국군 쪽에도 엠브리오 공작이 인공 메테오를 선물해주었는데, 역시 대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어서인지 피해가 슈엔다르크보다 적었다.
하지만 양군의 피해가 8만 정도.
나쁘지 않은 스타트였다.
“슈엔다르크 왕실에도 선물해주고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