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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76화 (176/247)

# 176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76

82. 베르트 대공국(2)

당연하지만 슈엔다르크 왕국의 선전포고 소식은 케일론 왕실을 당혹게 했다.

“당장 지원해야 합니다. 베르트 대공국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슈엔다르크에 단독으로 싸워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급히 소집된 귀족회의에서 베르트 공왕파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새 군무대신 세일런 후작이 강하게 주장했다.

그에 케일론 왕국의 중추 세력이 된 베르트 공왕파의 귀족들이 당연하다는 듯 동의했다.

비록 지훈이 출가를 하면서 세력 확대가 예전 같진 않지만, 여전히 엠브리오 공작파와 크로이센 공작파보다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훈에게 활동 자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베르트 상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단합도 잘 됐다.

그러니 세력의 주축인 베르트 대공국이 침략을 받는다는 것에 이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지원을 해야겠죠.”

지훈이 왕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곤 하나 케일론 왕국의 소속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이상, 지원에 대해선 엠브리오 공작파와 크로이센 공작파 역시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지원 규모가 되겠군요.”

하지만 의견이 나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규모라뇨? 당연히 왕국에서 전심전력으로 지원해야죠.”

“그런 식이면 대공국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대공국이 속국이라곤 하나 주권을 가진 국가입니다. 어디까지나 우린 지원을 해야 하는 입장인 거지 앞장서서 전쟁을 치르는 입장이 아니죠.”

“더구나 슈엔다르크는 케일론 왕국이 아닌 베르트 대공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번 전쟁의 주체는 베르트 대공국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덕분에 회의장의 의견이 나뉘며 베르트 공왕파와 이외 파벌의 대립으로 이어졌고, 이 모습을 케일론 왕국 2대 공작과 국왕이 잠자코 지켜보았다.

계산적인 반응을 보이는 두 세력에 베르트 공왕파의 세일런 후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을 쳤다.

“지금은 파벌의 이득을 따질 때가 아니오! 국가 위기란 사실을 모르겠소!? 베르트 대공국의 손실은 고스란히 케일론 왕국의 국력 저하를 의미하는 것! 자신들의 위치를 위해 아군의 위험을 무시하려 들다니 매국노나 할 법한 발상이군!”

“세일런 후작! 공왕의 위세를 등에 업더니, 이 자리의 국왕 폐하와 두 공작 전하가 보이지 않게 되었소? 말씀을 가려서 하시오!”

그렇게 회의장의 반응이 격해지자,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베르트 대공국의 외무대신이자 지훈의 사숙조인 크리스토퍼 백작이 입을 열었다.

“공왕 전하의 신하이기 전에 사적으론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서 충고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비록 케일론 왕국에서의 작위는 5등작 중 중간이지만, 크리스토퍼 백작은 대공국의 톱 귀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나서니, 세이런 후작도 더 이상 목소릴 높이지 못했다.

“공왕 전하께선 계산이 통하는 상대가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의문을 표했으나, 케일론 국왕은 알아들었는지 고민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공왕 전하께서 케일론 왕국에 실망하시게 되면 이전과 같은 관계를 이어가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지, 지금 뭐하는 겁니까? 그럼 모국을 배신하겠다는 겁니까?”

“저는 단지 공왕 전하의 성향을 알려 드린 것뿐입니다. 결코 공왕 전하께선 그런 생각을 품고 있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배신하겠단 의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만?”

“배신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 자체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죠. 입에 발린 포장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겉치레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꼬투리 잡고 늘어지지 말라는 듯한 말투.

귀족들의 차가운 눈빛에도 크리스토퍼 백작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공왕 전하께선 아군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분입니다. 개인의 욕심 때문에 아군의 등을 칠 분이 아니죠. 하지만 관계가 틀어진다면 여러분처럼 계산적이게 될 겁니다. 그럼 판단하시겠죠. 케일론 왕국과 베르트 공국의 관계에 대해. 지금보다 더 이득이 되는 방향을 찾아서.”

그에 베르트 공왕파는 침묵을 지켰지만, 다른 파벌의 귀족들은 다시 반발했다.

“조용히 하라.”

하지만 미하엘 국왕이 적절히 끼어들면서 다시금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백작, 오해 소지가 많은 경솔한 발언은 자제하도록.”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백작의 말이 맞다. 베르트 대공국은 우리 케일론 왕국의 방패이기 앞서 짐의 신하국이다. 전쟁을 치르는 신하를 상대로 이것저것 재가면서 내 몸만 사릴 순 없지.”

“하오나 폐하···.”

그에 내무대신 타일러 백작이 당황하며 반론을 하려 했으나, 국왕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이건 주종관계를 따지기 전에 신뢰 문제이기도 하다. 주군이 신뢰를 저버리면서 어찌 신하에게 충성만을 요구하겠는가.”

합리적이기 그지없는 발언.

하지만 엠브리오, 크로이센 공작파 입장에선 국왕이 너무 지훈을 끼도 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국왕의 편애는 지극히 당연한 것.

수행자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선 절대로 그들과 벽을 쌓아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수행자는 케일론 왕국을 강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으니.

‘이번 내전으로 오랜 동맹을 이어온 로엘 제국과의 관계가 깨졌다. 수행자들이라면 로엘 제국의 훌륭한 대용품이 되어주겠지.’

미하엘 국왕은 나중에 베르트 대공국이 더욱 커져서 독립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수행자들과 신뢰 관계를 이어간다면 동반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이는 지훈이 공왕이 되어 자신의 나라를 꾸렸음에도 케일론 왕국의 경제 성장이 멈추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국왕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르트 공왕파와 크리스토퍼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케일론 왕국은 전력으로 베르트 대공국을 도와 슈엔다르크 왕국을 몰아낼 것이다.”

* * *

“미하엘 폐하께서?”

“그러하옵니다. 2개 방면 군 전체와 수도 방위군에서 2개 군단을 파견하고 영주들에게도 사병 차출을 지시했습니다. 지원군의 규모는 기사 약 3천, 병사 20만으로 추정됩니다.”

케일론 왕국 귀족 회의 결과를 전달받은 나는 새삼 미하엘 국왕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면 케일론 왕국 전력의 약 7할에 해당하는 숫자다.

물론 귀족들을 최대한 털고 동원령까지 선포하면 더 끌어모을 수 있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급조된 병력이 아닌 상시 훈련을 받는 정규군이었다.

“폐하께 제 이름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크리스토퍼 백작은 내 지시를 직접 이행하기 위해 회의실을 나서고, 나는 동료와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네요.”

“천만다행입니다.”

케일론 왕국은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몇 안 되는 이미지 좋은 국가였다.

김선아와 히로시를 포함한 베르트 대공국의 주요 수행자들이 안도했다.

국왕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속셈이랄 것 없는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고, 내 입장에선 환영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걱정을 덜었군요.”

내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직 전쟁에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7클래스 스크롤을 이전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시장에 나와 있는 7클래스 스크롤은 내가 쓸다시피 사들이고 있는데, 약 한 달 전부턴 스크롤을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졌다.

이는 각국에서 7클래스 스크롤을 전략 자산으로 지정하여 수출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공교롭긴 하지만, 덕분에 이전처럼 스크롤을 남발하는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원치 않게 클래식한 전투를 벌이게 생겼지만···.

지구인인 내겐 마법 말고도 적의 전력을 깎아 먹을 수단이 제법 있었다.

“이제 마스터급 전력만 어떻게 하면 되겠군요.”

클로이의 이야기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슈엔다르크 왕국엔 대마법사 없이 마스터 한 명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올해 초 새롭게 한 명의 마스터가 추가되면서 슈엔다르크 왕국은 두 명의 마스터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물론 우리 측 진영에도 나와 케일론 왕국의 대마법사 엠브리오 공작이 있지만.

크로스비 왕국에서 마스터 1명과 대마법사 1명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마스터에게 필승을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명의 마스터를 동시에 상대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래시+사고가속을 기본으로 한 개인의 전투력은 막강.

여기에 1일 1회 8클래스의 블리자드를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과 마스터급의 지원 능력을 지닌 최상급 정령을 1일 최대 90분까지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까지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나, 그럼에도 확실하게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는 이유는 아이템빨이 수행자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라시아 후작이 8클래스의 방어막을 생성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던 것처럼 그들도 어떠한 변수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100% 우위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여차하면 저희 셋이 마스터 한 명을 붙잡고 늘어지겠습니다.”

히로시가 김선아와 청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히 이 셋이라면 엘릭서빨 세우면서 마스터 한 명 붙잡고 늘어지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긍정적으로 히로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장 이들에게 위험을 감수시키는 것보단 일단 상황을 살피면서 경우에 따라 대처하면 될 것 같다.

어쩌면 마스터와의 3 대 1 전투를 예상보다 쉽게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니.

참고로 지금 나는 7서클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쟁 전까지 서클이 향상된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객관적 전력이 비등하다고 해도 결국 승리를 위해선 운영이 중요합니다. 혹시 특별한 작전이라도 있으신지요.”

큰 전쟁을 앞두고 내 태도가 너무 태연했을까?

기사 출신이 아닌 전통 군인으로 병법과 군대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참모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전쟁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만약을 염두에 두고 공왕이 되면서 차근차근 전쟁을 대비해 왔으니까요.”

“대비라 하시면?”

“수행자의 가치는 단순 전투력만이 아니란 것이죠.”

방첩을 걱정한 나는 손을 내저으며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다른 사안은 둘째 치고 이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중요한 수단이었으니.

내 대답에 참모는 송구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는 지도를 살피며 변수를 체크했다.

그러던 중 슬쩍 짜증이 났는데.

‘왜 녀석들에게 끌려가야 하지?’

전쟁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해도 이대로 당하기만 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슈엔다르크 왕국에 경제 압박을 해볼까요?”

뜬금없는 내 이야기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참모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슈엔다르크는 경제 강국입니다. 그런 국가에 경제 압박이라뇨?”

백작위를 받으면서 내무대신이 된 내 스승 고든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슈엔다르크 상계에 ‘루트화’가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맞죠?”

“예, 뭐···.”

루트화는 베르트 은행에서 발행하는 금속화폐를 대체하는 종이 화폐다.

베르트 대공국, 케일론 왕국과 교역을 하기 위해선 베르트 은행의 계좌가 필수.

그런데 수표와 종이 화폐를 이용하면 은행 계좌가 없어도 교역을 할 수 있다.

또한 무겁고 부피가 큰 기존 화폐와 달리 종이 화폐의 효율성이 각국 상계에 인정을 받으면서 야금야금 금속화폐의 자리를 빼앗았다.

베르트 은행이 생기고 나서 종이 화폐가 유통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요즘은 종이 화폐가 유통되고 난 다음 은행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졌을 정도다.

대부분의 국가에선 이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종이 화폐와 은행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물론 머리가 비상한 몇몇 상인들이 국가에 베르트 은행의 위험성을 경고하긴 했지만, 일개 상인의 외침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상인 길드에서는 베르트 상회의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오히려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상인들에게 경고를 주는 형태로 현 상황을 묵인하고 있는 상태다.

“차관 상환을 요구하고 수표와 종이 화폐의 유통을 중지시키죠.”

그게 무슨 압박이 되겠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과는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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