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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74화 (174/247)

# 17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74

81. 인간의 적은 인간

범죄 무리의 눈에 비친 지훈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언론에서 광고했던 능력이 허풍이 아니라면 총을 가지고도 쉽게 제압할 수 없는 괴물이 수행자였다.

더구나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사이를 태연하게 누비는 것을 보면 확실히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들이 정부의 소식이 전달되는 피난처에 있었다면, 눈앞의 상대가 자신들의 빈약한 상상 따윈 가볍게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이들은 나라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만에 하나 싸워야 할 상황을 대비해 권총이 채워진 허리춤에 손을 가까이했다.

그에 지훈은 신기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큰 피해를 입은 청주에 이렇게 대규모의 민간 쉘터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네요.”

“예, 뭐…….”

“왜 정부 피난처로 이동하지 않는 겁니까? 이왕이면 군인들의 보호를 받는 게 더 낫지 않나요?”

마치 떠보는 듯한 느낌에 리더의 미간이 좁혀졌지만, 그의 입은 그럴싸한 대답을 내놨다.

“그동안 관찰해보니, 몬스터들도 나름의 지능이 있는 것 같더군요. 피난처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항상 그곳으로 몬스터가 몰리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에 숨어 있는 게 차라리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맞는 말이기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너무 단기적인 발상이군요. 그러다가 몬스터가 이곳에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갖고 계신 무장으론 막아 내는 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지훈의 시선이 자신의 허리춤으로 향하자 리더는 흠칫 놀랐다.

그러나 총기를 갖고 있다고 뭐라 않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충분히 안전 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항상 감시조를 둬서 몬스터의 낌새가 이상하면 이곳을 버리고 도망칠 예비 피난처도 마련한 상태고요.”

완고한 이들의 반응에 지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더는 피난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혹시 피난처로 이동을 제안하기 위해 찾아오신 겁니까?”

“아뇨. 청주의 피해가 워낙 크다고 들어서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저분들이 몬스터 사이를 잘 피해 가는 게 보이더군요. 그래서 흥미가 생겨 쫓아왔습니다.”

리더의 시선이 빈집털이범들에게 향하고, 그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자 짧게 혀를 찼다.

“보아하니, 여러분께선 이 주변 몬스터들의 배치를 어느 정도 꿰고 있는 것 같더군요. 맞습니까?”

“네, 일단 이 근처와 피난소 주변까진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훈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물건이 생겨나자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덕분에 지훈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높아졌다.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도니까요.”

그러면서 지훈은 청주의 지도를 펼쳤고, 펜을 건네며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다.

“그럼 알고 있는 대로 표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오크나 고블린, 놀, 늑대인간처럼 총기로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는 체크 할 필요 없습니다. 혹시 몬스터의 이름을 모르면 형태를 말해주세요. 그럼 제가 알려드리죠.”

지훈의 목적이 몬스터의 배치를 알아내기 위함이란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총동원해 성심성의껏 요구에 따랐고, 생각 이상으로 상세한 정보에 지훈은 얼굴 가득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이거 신세를 졌군요.”

“아뇨,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리고 수행자님께서 강력한 몬스터를 정리해 주신다면 저희야 좋은 일이니까요.”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이 지었다고 믿기지 않는 선량한 표정.

그에 피식 웃음을 흘린 지훈은 지도를 수습하며 용무가 끝났다는 듯 등을 돌렸다.

“수고하세요.”

지훈의 자신의 등 뒤에 대고 인사를 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툭.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그의 걸음이 멈췄고,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이곳엔 여성이 한 명도 없나요? 이 정도 규모면 한 명 정돈 눈에 띌 법도 한데.”

* * *

이게 며칠 만에 입어 보는 옷인지.

평범한 대학생이던 이수연은 퀭한 눈으로 야구방망이를 손에 쥔 남성들을 올려보곤 쥐죽은 듯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성들은 모두 삶을 포기한 듯한 표정이었으며, 남성들은 시체처럼 바닥에 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이 학교를 차지한 무리의 노예계층.

이수연과 함께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일주일 전만 해도 반항적이던 이들도 폭력에 굴해 순한 양이 되었으며, 쉴새 없이 흐르던 눈물이 말라버린 이들은 감정이 죽은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얌전히 정부 지시에 따르는 거였는데.’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며 정부를 비웃던 사람.

운동 단체 또는 종교에 따라 독자적인 움직임을 선택한 사람.

불손한 생각으로 도시에 남은 사람까지.

피난처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모두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으니.

이수연은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옷을 입은 채 멍하니 눈만 굴려 창고 내 풍경을 눈에 담았다.

마음속으론 누군가가 구해주러 오지 않을까 막연한 상상을 품었지만, 세상이 미쳐버렸는데 그런 정의의 사도가 나타날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쾅!

그런데.

“썅! 깜짝이야!”

가끔은 쓸데없다고 생각한 망상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는 걸까?

어두운 창고에 스며드는 햇빛에 이수연은 눈을 찡그렸고, 그 이상으로 인상을 찌푸린 문지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창고에 들어선 인물은 문지기가 성을 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씨발, 들켰어.”

“뭐가?”

“수행자 새끼가 여자들 데려오래!”

“엉?”

분위기가 심상치 않지만, 좀처럼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문지기들이 모여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무시하면 되잖아?”

“그게 안 되니까 그러지!”

“수행자가 한 명이라며?”

“한 명이긴 해도 괴물 새끼야! 총이 안 먹힌다고!”

“뭐?”

“씨발,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두르고 있어서 총알을 전부 튕겨내는데 어쩌라고! 그리고 손 한번 휘두르니까 교실 하나가 가루가 되더라!”

“미친…….”

문지기들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야, 그렇다고 이것들을 데려가게? 없다고 구라쳤어야지!”

찔리는 것이 많은 이들은 하나같이 당황했다.

“직접 수색한다는 걸 말려서 우리가 데려온다고 한 거야. 그냥 말 잘 듣는 년 골라서 속여넘기는 수밖에 없어.”

그에 문지기들의 시선이 여성들에게 쏟아졌고, 대표로 5명이 골라졌다.

그리고 그 속엔 이수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수행자는 쉽게 죽이지 못해도 네 년들 대가리 터지는 건 순식간이야. 그리고 허튼수작 부리면 여깄는 사람들 모두 죽여버릴 테니 잘 생각해.”

그동안 당한 게 워낙 많다 보니, 엄포도 큰 공포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수연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여성들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그녀들은 안내자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태연하게 테이블을 펴고 앉아 마치 귀족처럼 차를 마시는 잘생긴 남성 앞에 서게 되었다.

“여자들을 불러왔습니다. 수행자님.”

항상 강압적인 태도로 폭력을 행사하던 무리의 리더가 굽신거리는 것을 보며 이수연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그에 찻잔을 테이블에 놓은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성들을 훑어보았다.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겉모습과 달리 그의 눈빛은 마치 물건을 보는 듯 차가웠다.

“반갑습니다. 수행자 연맹의 조지훈입니다.”

이수연은 그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길게 생각 않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지훈의 시선이 똑바로 이수연에게 향했다.

움찔 놀란 그녀는 무심코 곁의 여성들을 바라보았으나, 모두 시선을 피했다.

결국 이수연은 오롯이 지훈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혹시 당신들은 학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순간 이수연은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여기서 사실을 밝혀야 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잠자코 무리에서 시킨 대로 행동할까.

속으로 많은 갈등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녀는 문뜩 이 상황이 리더들의 장난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반사적으로 몸이 시키는 대로 답을 했다.

“아, 아니요.”

그동안 당한 게 워낙 많다 보니 녀석들을 거역하기가 힘들었다.

이수연은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대답이 바뀌진 않았다.

“하하. 저희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런 일은 벌이지 않는다고요. 비록 방금 수행자님의 의도를 착각해서 공격하고 말았지만, 이걸로 오해는 풀렸겠죠?”

천연덕스런 리더반응에 지훈은 태연하게 말했다.

“수행자들은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능력 중엔 이런 게 있죠.”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리더뿐만 아니라 끌려온 여성들도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이어진 상황은 모두의 예상을 가볍게 뒤집어 버렸다.

“거짓말을 판별하는 능력.”

-촥!

허공을 수놓는 붉은 액체.

동시에 동그란 무언가가 떠오르고, 상황을 이해 못 한 사람들은 모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검?’

이수연은 지훈의 손에 유리처럼 날이 투명한 특이한 검이 들려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고, 목을 잃은 몸통이 썩은 고목처럼 쓰러지는 것을 보며 헛바람을 삼켰다.

“끝까지 변명하며 애쓰는 모습이 재밌었다.”

그리고 바닥에 대고 검을 크게 휘두르자 핏물이 바닥에 작은 반원을 그렸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척!

무리의 지도계층이라 할 수 있는 남성들이 하나같이 총을 빼 들었다.

개중엔 소총을 지닌 사람도 있었는데, 사선 상에 놓여 겁에 질린 여성들과 달리 지훈은 태평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투퉁!

그러자 총들이 일제히 분해되어 바닥에 흐트러졌다.

“이 규모를 유지하고도 피난처로 이동하지 않는 이유는 뻔하잖아. 이 멍청한 놈들아.”

이어서 지훈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남성들은 모두 자석처럼 바닥에 붙어 꼼짝도 못 했다.

“이, 이건 살인이야.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대통령이라 해도 재판 없이 처벌할 순 없어…….”

여자들을 끌고 왔던 사내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억울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법 없이 살던 놈들이 왜 갑자기 법을 따지지?”

법을 운운하니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이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이 상황을 이해 못 한 여성들은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갇혀 있는 사람 더 있죠?”

“네, 지하 창고에…….”

지훈의 물음에 이수연은 비로소 사실대로 답을 할 수 있었고,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 * *

청주지역 여고에 숨어 있던 1천 명 규모의 민간 쉘터에는 50여 명의 여성과 70여 명의 남성이 노예로 부려지고 있었다.

강간과 도를 넘은 폭행에 여성 3명과 40여 명의 남성이 죽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죽은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비윤리적인 일에 반대하다가 눈 밖에 나서 본보기로 처리된 것이었으며, 여성들의 사인은 자살이었다.

역시 사람은 위급 상황에서 본성이 나오는 것 같다.

지금까지 피난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자초한 일인 만큼 어떤 일을 당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수많은 여성이 성노예가 되고, 약한 자가 강한 자의 장난감이 되어 인권을 유린당한 모습을 보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아마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연맹 회의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여 앞으로 꾸준히 피난 지역 밖의 시민들도 수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나는 빠짐없이 제압된 악인들을 가리키며 물었고, 자신을 이수연이라 밝힌 여성이 표독스럽게 말했다.

“죽여주세요. 아니, 제가 죽이고 싶습니다.”

극한에 놓였던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았다.

모두 악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바랐고, 가능하다면 자신이 직접 원수를 처리하고 싶어 했다.

충분히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에 나는 살려야 할 일반인을 우선적으로 고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100여 명이 구제되자.

-콰직!

나머지 사람들을 일시에 사살했다.

“어, 어째서.”

피해자들이 왜 자신들이 직접 처리할 기회를 주지 않냐는 반응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네?”

내 물음에 그들은 황당하다는 듯 반문을 했고, 나는 괜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이 사람들 왜 죽었대요?”

그에 피해자들은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고, 눈치 빠른 몇몇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나라가 망한 것은 아니니, 법은 존재한다는 겁니까?”

“아…….”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갑자기 수백 명이 돌연사를 하다니, 역시 세상이 미친 모양입니다.”

내 너스레에 피해자들은 더 이상 따지고 들지 못했고, 나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제가 목을 날린 사람은 정당방위입니다. 여기 바닥에 탄피 널린 거 보이시죠?”

아주 뻔뻔하기 그지없는 연극.

그런데 나는 피해자들과 달리 이런 어설픈 연극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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