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73화 (173/247)

# 17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73

80. 천공성이 두 개(2)

다행히 내 아공간에서 모두 수납이 가능했기에 주섬주섬 흘린 물건을 챙기는 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항상 20% 안팎으로 차 있던 아공간이 거의 가득 찼다.

물론, 공용 아공간 안에 여분의 일반 아공간 아티팩트가 들여 있긴 하지만, 개인이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갖고 다닌다는 게 신기했다.

고위악마 중엔 엘프 못지않은 수명을 가진 종도 있다고 하던데, 그가 그런 경우일까?

내용물은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와 함께 나중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나는 어수선한 창원 캠프를 향해 이동했다.

“바, 반갑습니다. 회장님. 구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언제 나왔는지, 창원 캠프의 관리자로 보이는 소장계급의 군인과 고위 장교들이 튀어나와 일제히 경례를 올렸다.

더불어 캠프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는데, 숨어 있던 시민들이 속속 공터로 나서면서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다.

좋은 이미지를 심는 것에 성공한 걸까?

하긴 내가 챙긴 이득은 둘째치고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그들 입장에선 구함을 받았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박수 소리는 머지않아 열렬한 환호성으로 바뀌었고,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캠프 사령부로 안내하려는 소장을 뒤로하며 이곳에 온 목적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오래지 않아 도치우를 발견한 나는 웃는 낯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이야기 좀 할까요?”

그런데 잔뜩 겁을 먹은 그는 어깨에 손을 얹는 내 행동에 크게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곧 그것이 실례라는 것을 깨달은 도치우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를….”

나는 말없이 턱짓으로 대기하고 있던 소장을 가리켰고, 마른침을 삼킨 그는 잠자코 내 뒤를 따라 사령부로 향했다.

‘생각보다 쉽겠는데.’

그가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좋게 보던지, 나쁘게 보던지 상관없다.

어차피 연맹에 소속되기만 하면 얼마든지 이미지를 고쳐갈 수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연맹에 가입하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내 제안을 받아들여 연맹의 12번째 능력자가 되었다.

본인이 겁에 질린 것도 한몫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등을 떠밀 듯 내 제안을 거절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원하던 금속 능력자를 얻은 나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천공의 성을 획득했습니다.]

[천공의 성이 비가시 모드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소유주와 입장이 허가된 인원에게만 성의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보물이다.

최상급 보상 중에 가장 좋은 스킬들을 이미 손에 넣긴 했지만, 1순위가 아니더라도 2순위로 뽑을만한 스킬과 보상은 여전히 많았다.

하지만 나는 선택형 보상카드에서 이미 보유하고 있는 천공의 성을 다시 선택했는데, 대규모 안전구역 확보는 물론 운송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천공의 성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3만 명.

과연 3만 명을 넘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듯 보이는 수용인원도 현재 지구의 상황을 생각하면 결코 많은 게 아니었다.

천공의 성의 최대 장점은 성 자체의 비행 능력도 있지만, 대규모 인원과 짐을 싣고 장거리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잘만 사용하면 생존자들의 대규모 이주는 물론, 수행자들의 빠른 해외 투입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천공성의 가장 큰 가능성은 국가 간의 대규모 무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의 독점에 가까운 형태로 말이다.

물론, 현 상황을 생각하면 독점 무역을 염두에 두는 것은 몹쓸 짓일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이 어렵다고 지구 사람들이 평생 난민처럼 살아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재기할 게 분명하다.

언젠가 산업도 조금씩 정상화가 되어갈 것이고, 다시금 경제 개념도 돌아올 터.

그래서 당장 스킬 한두 개로 크게 강화를 이룰 수가 없으니, 미래를 차근차근 대비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도 충분히 무역의 여지는 있다.

서울처럼 각국의 주요 도시 역시 D-DAY 이후를 대비한 산업시설이 남아있고, 식수를 퍼 나를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아예 천공의 성을 공장으로 개조하는 방법도 있다.

천공의 성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두 번째 천공의 성 등록을 마치고는 아늑한 성주의 방에서 카르시안의 아공간에서 얻은 물건을 살폈다.

[그림자 망토]

[마귀족의 정복]

…….

[아다만티움 3.25t]

[미스릴 850kg]

[다크시움 112kg]

[북쪽의 왕 라그나베일의 비늘 1개]

[베히모스의 뿔 2개]

[베히모스의 송곳니 4개]

[베히모스의 가죽 12장]

[블랙 드레이크 가죽 150장]

[싸이클롭스 가죽 100장]

아공간엔 장비 제작에 쓰일 원료가 가득했다.

금속이면 금속, 몬스터의 부산물이면 부산물.

하나같이 귀하기 그지없는 재료들뿐이었다.

어중간한 물건은 들어 있지 않았고, 몇 개 되지 않는 장비 역시 포인트 샵에서나 구입할 법한 물건들이었다.

장비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히든 스킬인 그림자 이동이 깃들어 있는 망토.

지금도 블링크와 함께 많이 사용하는 내 주력 스킬 중 하나였다.

이건 사고가속을 지닌 김선아에게 주면 될 것 같다.

그리고 히로시가 좋아할 만한 성능도 준수하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근사한 디자인의 장비도 제법 많았다.

‘완전 로또네.’

겨우 한 마리의 적을 처리하고 얻은 전리품이라 보기 힘든 물량.

아니, 이건 단순한 전리품이 아니라 생전 카르시안이 모아놓은 재산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전투로 백금화 수십만 개에 달하는 재산을 얻은 것은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더구나 이것들은 지구에서 사용 가능한 물건들이 아닌가.

지구에서 수행자들의 전력을 한층 끌어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시 괜히 귀족이 아니다.

‘이 정도 물량이면 3회차 수행자까진 문제없이 장비를 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구의 현재 산업 수준이 예전 같지 않다는 문제가 있지만.

지금 우리에겐 금속을 이용해 얼마든지 장비를 찍어낼 수 있는 능력자가 있었다.

이미 그가 미스릴도 조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너무도 형편 좋은 상황.

혹시 가이아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수행자 강화를 목적으로 카르시안을 던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만큼,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뿐 괜한 고민에 빠지지 않았다.

이미 고민은 할 만큼 했으니까.

“지방도시나 한 바퀴 돌아야지.”

도시별로 처리하지 못한 고위 몬스터가 있을 테니, 이김에 정리한 다음 서울로 올라가야겠다.

* * *

인간을 적응의 동물이라 하는 것처럼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 같은 피난 구역 밖에서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모두 정부의 지시에 불응한 사람들로 사태가 진정되자 겁에 질려 피난 구역으로 기어들어간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개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한국에만 1백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피난처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지역의 사람이다.

그러나 개중엔 피난처를 앞에 두고도 불온한 생각을 품어 목숨을 건 생존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피난처에는 규칙과 윤리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피난처 밖은 무법지대나 다름이 없었는데, 몬스터가 등장하고 10일이 지난 지금 재난 영화에서나 볼법한 상황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살인과 강간은 빈번히 일어났으며,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노예처럼 부렸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면서 범죄행위는 점점 조직화 되었으며, 그런 이들이 피난처를 꾸리며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인간의 적은 몬스터지만, 군인의 손인 닿지 않는 피난처 밖에선 몬스터보다 같은 인간이 더욱 무서운 적이 되어 있었다.

“오, 씨발. 역시 부자 동네라 그런지 터는 족족 나오네.”

절단 토치로 가정집의 금고를 연 도둑들이 기분 좋게 웃으며 내용물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피난을 하더라도 웬만해선 재산을 챙겨갈 테니 뭐가 남아있겠는가 싶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지역엔 적지 않은 재화들이 잠들어 있었다.

특히 떳떳하지 않은 자금이나, 단기간에 처리하지 못할 만큼 많은 재물을 보유하고 부자들은 금고 또는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 재산을 넣어 놓고 피난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당연히 이런 재물들은 한탕을 목적으로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선 이들의 타겟이었다.

“피난처에 기어들어간 것들 진짜 멍청하지 않냐?”

“그러게 이런 기회를 버리다니.”

“뭐든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부가 따르기 마련이지.”

금이 많다 보니 가방은 금세 무거워졌고, 이들은 주머니에까지 귀금속을 가득 찔러 넣고는 조심히 고급 주택을 나섰다.

“몬스터는?”

“없어, 가자.”

거리의 생존자들에게 몬스터의 동선과 영역은 필수 숙지 사항이다.

이들은 능숙하게 몬스터를 피해 보금자리를 향해 이동했고, 오래 걸리지 않아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몬스터 피해 다니는 덴 너희가 최고다.”

빈집털이범들이 도착한 곳은 높고 튼실한 담벼락을 가진 여고였는데, 그곳에 무려 1천 명이 넘는 인원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무리엔 또렷한 서열이 존재했는데, 그 속에서도 재물을 축적하는 빈집털이범들은 상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열이 낮은 사람들은 못 알아볼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온몸에 피멍을 달고 있었고, 그나마 여자들은 상처가 적었지만 온몸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남성이 빈집털이범들에게 물었다.

“군대는?”

“안 보여. 역시 피해가 크긴 컸나봐, 지금까지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 하는 거 보니.”

이들이 위치한 곳은 충북 청주.

청주는 이번 웨이브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시 중 하나로 군과 시민들은 피난처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 했다.

덕분에 피난처 외부는 몬스터들과 위기를 넘고 살아남은 아웃사이더들의 영역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빈집털이범들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품평하듯 여성들을 살폈고,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 성균아!”

학교 옥상에서 몬스터의 동향을 살피는 감시조의 남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와 빈집털이범들을 반갑게 맞이해준 무리의 리더에게 말했다.

“수행자 연맹에서 사람이 찾아왔어.”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뭔가 큰 게 날아와서 몬스터인가 봤더니 사람이더라고.”

그에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다수에게 핍박을 받던 소수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고,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던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수행자라면 초능력자들 말하는 거지?”

이들은 외부와 정보가 단절되어 있어서 능력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수행자는 D-DAY 이전부터 광고를 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우리 처리하려고 온 거 아냐?”

여기저기서 찔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자 리더는 미간을 찌푸리며 감시조에게 다시 물었다.

“용무는?”

“정확히는 나도 몰라, 리더를 만나고 주변 상황에 관해 물어볼 게 있다고밖에 못 들었어.”

빈집털이범들이 리더에게 자신들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경찰서를 털고 얻은 권총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리할까?”

“아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대야. 평범한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일단 대화를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공격하는 걸로 하자.”

리더의 결정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재빨리 옷이 벗겨진 사람들에게 옷을 입혀서 지하 창고에 가둬놨다.

그리고 잠시 후 감시조의 안내를 받으며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검은색 제복 차림의 남성이 나타났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

모두들 같은 생각이었는데, 시사에 밝은 몇몇 사람들은 그가 종전 감사원 원장 조지훈이란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가 연맹의 회장이란 사실까진 몰랐기에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반갑습니다. 설마 수행자를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전 최성균입니다.”

리더의 악수를 건성으로 받은 지훈은 스윽 주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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