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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72화 (172/247)

# 17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72

80. 천공성이 두 개

나는 날아드는 악마종을 향해 10중첩에 강화가 더해진 레이저 캐논을 사용했다.

7클래스를 상회하는 위력을 지닌 백색 광선이 수백 미터 떨어진 타겟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밝은 대낮임에도 하늘을 수놓는 백색의 광선은 선명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자, 잠시…….”

갑작스런 상황을 이해 못 한 도치우와 주변 군인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나는 블링크를 이용해 피난 캠프에서 멀어졌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샛노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백색 광선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꽤나 화려한 환영 인사군.”

당연히 먼 거리에서 사용한 마법에 적이 맞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레이저 캐논을 피한 악마종은 나를 향해 히죽 웃어 보이며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베르트 공작이군.”

[카르시안 남작]

나는 녀석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나를 안다는 건 이블랜드에서 건너온 악마종이란 뜻이겠지?”

하지만 카르시안 남작이란 악마종은 내 물음엔 답을 해줄 생각이 없는지, 조소를 흘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서쪽의 왕 그라디스님 휘하의 카르시안 남작이라 한다.”

북쪽의 마룡 라그나베일.

서쪽의 타천사 그라디스.

남쪽의 불사왕 브람기슈.

뮤대륙의 3대 악이자, 미드랜드에선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들.

이블랜드의 지배자 중 한 명인 북쪽의 왕 라그나베일을 카카오섬 정벌 때 먼발치에서 직접 보았기에 3대 악의 막강함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건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덤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것을 보는 것만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단순한 전투 능력치라면 9서클 마법사, 그랜드 마스터보다 윗줄인 고룡을 상회하는 힘을 지닌 게 3대 악이라고 하니.

미드랜드의 신성력이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면 뮤대륙은 악마종의 지배를 받는 땅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3대 악 휘하의 고위 악마들이 자꾸 지구에 등장한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좋게 생각할 수가 없다.

지구에도 악마종에게 극독인 신성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신을 믿는 방식이 잘못되어서인지, 갑작스런 힘에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건지, 미드랜드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왕 킬러라 할 수 있는 성녀 같은 존재가 없어서 3대 악 중 하나라도 지구에 떨어지는 날엔 멸망의 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자력으로 지구를 찾아온 거냐? 타의에 의해 보내진 거냐?”

묻는 것에 순순히 답해줄 것이라 생각하긴 힘들지만, 이 상황에 자기소개나 하는 놈이기에 혹시 몰라 물었다.

“글쎄?”

역시나 대답해줄 의무가 없는 카르시안은 익살스런 웃음을 흘렸고, 나는 손에 쥔 무기를 익숙한 창으로 바꾸었다.

“자의는 아니겠지. 뭔가 꿍꿍이가 있다면 이렇게 멍청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

입장 바꿔서 내가 3대 악으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았다면 다짜고짜 전투를 벌이기보다 지구의 탐색과 조사를 먼저 실시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상대 앞에 굳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 녀석이 어쩔 수 없는 멍청이거나,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차가운 물음에 카르시안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수행자들은 가이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상황은 시스템과 연관이 있다는 암시일까?

나는 솔직한 감상을 더해 답했다.

“그리 선한 신은 아니란 점과 과거 오스카라 불린 아틀란티스의 여황제와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는 거?”

짧은 대답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놀랍군. 의외로 정확하게 알고 있잖아?”

허술한 대답에 감탄사를 흘린 카르시안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가이아가 악질이라서 말이야. 흥미를 위해 여기저기 싸움을 자주 붙이거든. 아마도 너는 가이아의 큰 관심을 받는 인물인 모양이다.”

그러면서 카르시안은 양손의 형태를 검처럼 바꾸었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허공을 디디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 말은 가이아에 의해 원치 않게 나와 싸움이 붙여졌다는 건가?”

하지만 원치 않는 싸움이라고 하기에 녀석의 눈빛은 굉장히 도전적이다.

“이 경우 원치 않았다기보다 거절할 수 없는 당근이 제시되었다고 봐야겠지.”

악마종도 퀘스트를 받는 걸까?

내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라는 듯 턱짓을 했지만, 카르시안은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콰앙!

창으로 날아든 검을 막자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 대신 에너지와 에너지가 충돌하며 큰 충격음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 이상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군.”

그는 내가 생각해온 일반적인 악마종과 느낌이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접한 악마종은 패러사이트 퀸과 4회차 수행자에게 들러붙어 지구로 넘어왔던 데이아스 뿐이지만, 전형적인 악마의 분위기를 풍긴 그 둘과 달리 조금 더 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 싸우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쓸데없이 감상에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녀석을 해치운다면 퀘스트가 완료될 가능성도 있으니 거칠 것이 없다.

-콰아앙! 쾅!

비록 잘 털면 몇 가지 정보를 더 건질 수 있을 것 같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녀석은 악마 종이란 것이고, 내 등 뒤로 수십만 명이 머무는 피난 캠프가 있다는 점이다.

-드드드득!

힘을 이용한 정면충돌에선 이길 수가 없다.

나는 녀석이 휘두른 검을 흘리거나 사고가속+미래시로 막아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공간이동으로 자릴 피하며 전투를 이어갔다.

“조금 멀리 가서 싸우자고 하면 들어 주려나?”

내 물음에 녀석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바람대로 해당 장소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었다.

* * *

“뭐, 뭐야 저게.”

군인들과 함께 참호에 숨은 금속능력자 도치우는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빛의 충돌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시민들 역시 튼튼한 철제 컨테이너와 참호 속에 몸을 숨겼지만, 건물과 도시 시설 곳곳이 붕괴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도움이 안 돼 보였다.

그저 저 빛이 캠프에 가까워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저기서 싸우는 게 우리와 같은 사람인 거 맞지?”

누군가의 의문은 전투를 지켜보는 모든 이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연맹의 회장인 지훈이 몬스터와 싸우고 있다.

분명 연맹의 회장은 모든 능력자와 수행자를 포함해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닌지라 막연히 예상만 했다.

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장면은 예상했던 것 그 이상.

마치 상상으로만 그리던 신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어떤 상황이야?”

도치우는 자신의 친구인 소대장에게 물었고, 쌍안경으로 상황을 살피던 소위는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흐릿하게 실루엣밖에 안 보여.”

“씨발, 만화냐?”

그때.

하늘에서 지상을 향해 백색 광선이 뿜어졌는데,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던 그 공격의 방향이 갑자기 틀어지며 캠프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숙여!”

저들에겐 수없이 주고받는 일격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에겐 그러한 공격 하나하나가 천재지변이나 다음이 없었다.

-스스스스!

마치 거대한 지네가 옆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수백미터 밖에서 날아든 백색 광선이 캠프 바로 옆을 훑고 지나갔다.

목숨을 건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것도 잠시.

공격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야수가 할퀸 것처럼 길쭉한 구덩이가 생긴 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건물이건 아스팔트건 여지없이 증발해버렸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비현실의 끝을 달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허탈하게 웃어 보인 도치우는 소위에게 물었다.

그에 넋이 나간 소위는 반사적으로 왜 그러냐 물었다.

“만약 저런 몬스터가 연맹 회장님이 없는 상태에서 들이닥쳤으면 몰살당했을 거 아냐.”

“그건 그렇지.”

“어쩌면 이 모든 게 나를 영입하기 위한 계획일지도 모르고.”

도치우의 이야기에 영혼 없는 대답을 이어가던 소위는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네까짓 게 뭐라고 저런 연기를 하냐?”

지금까지 떠받들어주기 바쁘던 친구의 솔직한 감상에 도치우는 화를 내지 못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금속을 다루는 능력의 가능성을 높게 점치던 도치우는 자신의 능력이 처음으로 하찮게 느껴졌다.

* * *

여유만만하던 카르시안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더니, 머지않아 분노에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뭐 이런 녀석이!”

익스퍼트 최상급이자 6서클인 마검사가 마스터 수준의 위력을 발휘한다곤 하지만, 자신이 질 것이라는 예상치 않았을 것이다.

남작위의 악마 종만 하더라도, 하이 마스터에 준하는 전투력을 발휘하니까.

하지만 나는 단순히 마스터급의 마검사가 아닌, 수많은 스킬을 지닌 수행자였기에 밀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미래시와 사고가속 스킬의 연계에 카르시안은 벽이라도 마주하는 것처럼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지 못했고.

악마종에게 극독인 오리하르콘 무기와 각종 템빨이 더해지니, 그는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데몬베인.”

하지만 기생형이던 패러사이트 퀸과 정신체인 데이아스 때와 달리 카르시안은 자신의 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확실한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세 방향 공격.

그런데 그의 팔찌가 붉은 빛을 내뿜으며 주변의 마력을 흐트러뜨렸다.

덕분에 마법이 증발하면서 카르시안은 간단하게 내 창을 막았다.

결국, 소득 없이 우위만 점한 전투를 이끌어가던 나는 어쩔 수 없는 악마종이란 것을 증명하듯 시선이 캠프로 향하는 카르시안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아끼면 똥 된다.’

나는 카르시안이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할까, 결국 아껴 놨던 패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콰아앙!

“큭!”

그리고 최적의 타이밍을 발견한 순간.

-푸화하아악!

마스터급 이상의 존재와 싸울 땐 쉽게 뚫려 버려서 사용하지 않던 안개장막 스킬이 펼쳐졌다.

당연하지만 안개 장막이 비장의 수가 아니다.

안개 장막에 대해선 악마들도 잘 모르고 있는 만큼, 아주 잠깐 발길을 붙잡는 것이 가능했다.

“뭐냐!?”

녀석이 경계심을 보이며 안개를 벗어나려 했지만, 안개는 힘으로 뚫지 않는 이상 빠져나갈 수가 없다.

덕분에 카르시안이 보이지 않는 벽에 걸려 당황했고, 그 잠깐의 당혹스러움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했다.

‘블리자드.’

포인트 샵에서 구매한 ‘죽음의 폭풍’ 내장 스킬인 8클래스의 블리자드.

더구나 안개와 블리자드는 상성이 좋아서 위력이 증폭된다.

안개 전체를 집어삼키며 덩치를 키워가는 극한의 폭풍.

아무리 악마종이라 해도 피륙으로 이뤄진 생물인 이상, 블리자드 한복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손발이 굳기 시작한 카르시안.

나는 신의 가호로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녀석을 얄밉게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카르시안은 속수무책으로 얼어붙었다.

“어처구니 없…….”

아무리 강력한 고위악마라 해도 움직이지 못하면 샌드백이나 다름이 없다.

얼음 조각이 된 녀석은 내가 뽑아 든 장검에 수십 조각으로 잘게 나뉘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 향상됩니다.]

[보상으로 강화보주 5개를 습득했습니다.]

[보상으로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 1장을 획득했습니다.]

그럴싸했던 초반 포스에 비해 허무하기 그지없는 결말.

마치 내 퀘스트를 돕겠다는 듯이 나타난 악마종을 처치함으로써 처음으로 막혔던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혹시 싶었는데 역시나.’

조건만 맞으면 지구와 뮤대륙의 퀘스트가 공유된다는 뜻이다.

카르시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블리자드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데다가 싱겁게 끝난 것 같아도 여지를 두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나름 깔끔한 결말이지만, 인위적인 퀘스트 완료에 기분 좋게 웃을 만큼 배알이 없지 않았다.

‘마치 가이아가 나를 밀어주는 것 같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노골적인데 못 알아챌 수가 없다.

“내게 뭘 바라는 거냐?”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

그러나 역시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꺼림칙해도 내겐 나쁠 게 없는 상황.

그리고 이런 느낌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짧게 혀를 차는 것으로 괜한 고민을 떨쳐낸 나는 이어진 메시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르시안 남작의 아공간 내용물을 수거할 수 있습니다. 수거하시겠습니까?]

“응?”

내가 말한 ‘응?’은 어디까지나 의문형이었지만, 시스템은 대답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균열이 생기며 엄청난 양의 물품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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