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71
79. 한국의 드워프(2)
고철을 이용해 즉석에서 무기를 만든다니, 연금술사라도 되는 걸까?
등가교환의 법칙 같은 거?
장비 제작 능력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효율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이는 무기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용도가 많았다.
만약 금속을 원하는 형태로 제련할 수 있다면, 반쯤 사망한 생산 시설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현재 무기 생산 공장에서 용광로를 가동 중이긴 하지만 이 용광로는 무기 생산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
지금은 필요하다고 해도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철을 비롯해 다양한 재료들이 피난처밖에 널려 있다.
그를 잘만 이용하면 난민 수준의 생활수준은 물론, 생존 능력을 끌어 올리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야기만 듣고 장비 제작 능력을 너무 놓게 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능력이 어설프다면 국방부 장관이 굳이 내게 직접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가보자.’
블링크를 남발하면 제주도라도 1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를 보내 영입 제안을 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해당 인물은 창원시 대상공원 캠프에 있습니다.”
나는 수행자 연맹의 검은색 제복 차림의 김선아에게 이 출장 소식을 알렸다.
어차피 내일이나 모래 쯤, 지방에 똬리를 튼 고위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이참에 다녀오면 될 것 같다.
* * *
창원시 대상공원 캠프는 9개의 초중고 학교와 2개의 대학교, 10만 평 규모의 종합운동장과 대상공원, 올림픽공원 등 4개의 공원이 더해진 남부 최대의 캠프다.
규모는 용산공원 캠프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1500만 명이 몰린 서울과 달리, 창원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사람 이동하고 겨우 60만 명만 남아서 대부분의 시민이 이 캠프에 머물고 있었다.
울산이 괴멸적 피해를 입었던 것에 비해 창원은 수비 라인을 집중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하여 오히려 부산보다도 피해가 적었다.
물론 광주에서 나타났던 히피 같은 정신계 몬스터나 싸이클롭스 같은 제압이 불가능한 몬스터가 캠프 한가운데 떨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창원에서 등장한 몬스터는 대부분이 일반 몬스터였던 만큼 운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피해가 적다고 해도 상처 없이 막아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도시에 비해 피해가 적었을 뿐, 죽은 사람만 거의 1만 명에 달했으니.
-스스스.
창원의 유일한 능력자인 도치우는 군부대로부터 제공받은 클래식 군용 트럭을 끌고 캠프 내부를 돌아다니며 특이한 짓을 벌였다.
그가 끌고 다니는 트럭에는 벽돌 같은 금속으로 가득했는데, 트럭이 멈춰설 때면 어김없이 그 장소에선 높이 3미터의 날카로운 송곳이 생겨났다.
그 송곳이 캠프 곳곳에 설치가 되고 있었는데, 도치우에게 소위 계급장을 단 군인이 다가와 물었다.
“뭐해?”
고등학교 동창이자 캠프에서 소대장으로 임무를 수행 중인 친구의 물음에 도치우는 태연하게 답했다.
“나중에 트롤이 떨어질 때를 대비한 함정.”
그리고 그가 한 손을 금속괴가 실린 트럭에 뻗고, 반대 손으로 땅에 대자 고드름이 어는 것처럼 금속으로 이뤄진 거대 송곳이 생겨났다.
“더 빼곡하게 심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럼 사람들 도망칠 때 힘들어. 이 정도가 딱 좋아.”
가만히 도치우의 작업을 구경하던 소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실은 너한테 전달사항이 있어.”
“전달사항?”
도치우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의문을 표하자 소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에서 귀빈이 내려오신단다.”
서울이란 말에 그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도시는 수행자들의 도움을 받아 위급상황을 많이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지방 도시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
정부에서 유독 서울을 끼고 돌아서 지방 사람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그 귀빈이 이곳을 왜 찾아올까?
이유는 뻔하다.
능력자인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도 귀가 있는지라, 능력자가 탄생하면 수행자 연맹과 능력자 협회란 단체에서 영입을 시도해온다고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봐도 금속을 원하는 대로 조형할 수 있는 능력은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능력자 협회?”
“아니, 수행자 연맹.”
능력자 협회가 아직 정식으로 출범한 것은 아니지만, 협회는 정부 소속이 될 예정인 만큼, 연락해 온다면 당연히 정부의 지지를 받을 협회가 먼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먼저 움직인 것은 의외로 연맹이었다.
이는 정부에서도 협회보다 연맹을 더 챙겨 줄 수밖에 없다는 뜻일까?
그도 아니면 연맹에 정보를 알려 주는 정부 관계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오는지는 모르고?”
“그것까진 못 들었어. 하지만 분위기가 어느 정도 높은 사람인 것 같다고 하더라. 그리고 금방 온다던데?”
금방 온다고 해봐야 서울에서 오면 비행기를 타도 2시간 가까이 걸릴 것이다.
엔진이 제트엔진이 아닌 프로펠러였으니 말이다.
그럼 여유가 있겠다고 생각한 도치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응?”
그렇게 얼마나 작업에 몰두했을까?
캠프 내부를 순찰 중이던 군인들이 기겁하며 총구를 하늘로 겨눴다.
설마 몬스터 게이트가 이곳에 등장했나 싶어 도치우와 소위는 당황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랬더니 그 장소엔 허공을 디딘 검은 제복 차림의 남성이 가만히 서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색 제복은 승마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었다.
복장은 전체적으로 타이트 했으며 목을 덮는 블라우스 위로 다양한 뱃지가 채워진 조끼를 입고 있었다.
지나치게 겉모습에 치장된 제복.
그렇다고 만화 속에서나 볼법한 웃긴 생김새가 아니다.
화려하지만 누가 봐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법했다.
몬스터가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도치우와 군인들 시민들은 모두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연맹에서 도치우 씨를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조지훈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하지만 그의 이름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설마 연맹의 회장님이신….”
물을 것도 없는 본인.
그는 연맹 회장이기 전에 남북 종전 감사원 원장이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유명하진 않아도 누구나 뉴스를 통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얼굴이었다.
지훈이 소개에 주변에 있던 군인들은 급히 경례를 올렸다.
이들이 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면 모를까, 아직 대한민국에 소속된 군인이었다.
연맹의 회장은 중장의 계급을 받은 만큼, 창원 캠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군인이었다.
“전 신경 쓰지 마세요.”
한 번쯤 잘난 낯짝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대면할 줄이야.
도치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 * *
서울에 있는 캠프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
규모도 그렇고, 시설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 없었다.
그래도 30만 이상 대형 캠프 중에서도 가장 적은 피해를 입은 만큼, 시민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독기를 품고 다음을 대비하며 노역하고 있는 수도권 캠프들에 비해 대비가 많이 약한 느낌이었다.
분명 괜찮은 장소긴 하지만,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다른 곳보다 덜한 느낌이었다.
노역을 하긴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시설에서 시선을 거두며 도치우가 세운 거대 송곳과 트럭에 실린 금속괴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
만약 그가 재질까지 가리지 않는다면 더욱 최고일 것이다.
그럼 움직이는 개인 공장이나 다름없으니.
“제가 왜 찾아왔는지는 알고 계시죠?”
내가 찾아온 이유는 워낙 뻔해서, 그도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연맹 가입을 제안했다.
“그런데 어째서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겁니까? 그냥 부하들 시키면 될 텐데요.”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빠르게 치우 씨를 영입하기 직접 움직이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래 보여도 수행자 중 가장 빠르거든요.”
비굴하게 굽실거리지 않고, 태연하게 웃으며 그를 띄워줬다.
‘너를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느낌에 그는 부끄러운 건지 내가 어려운 건지,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말은 꽤나 의외의 것이었다.
“감사하지만, 저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이곳을 더욱 안전하게 보강하여 시민들을 지킬 생각입니다.”
이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우선시 하다니.
꽤나 숭고한 희생정신이 아닌가.
나와 상반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웨이브 사태로 서울에 대한 감정이 별로 안 좋거든요.”
지금 수행자들의 서울 활동은 굳이 변명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사실대로 말했다.
“지금은 거리가 먼 이곳까지 왔다 갔다 할 여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시간이 지날 수목 많아지고 또 강해지는 만큼, 언제까지 서울에만 머물러 있지 않겠죠.”
그들의 감정과 별개로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불편하다 한들 이들이 의지하고 있는 군인과 대피소는 정부 주관하에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미래를 대비해 만들어둔 산업시설 대부분이 서울에 남아 있는 만큼 불편하다고 등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도 안전구역이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린 여러분을 버린 게 아닙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여력이 없었을 뿐이죠.”
지금 어렵지 않은 곳이 어딨겠는가.
정작 그들은 피해도 크지 않았는데.
그에 도치우는 말을 잃고 뺨을 긁적였다.
무식하게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아공간에서 테이블을 꺼내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앉으라며 그의 자리에 차를 따라 주었다.
도치우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담당으로 보이는 소위가 옆구리를 찌르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차지했다.
“치우 씨의 능력은 금속에만 해당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사물에도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능력이었다.
그가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금속의 무게는 500kg.
직접 손을 대지 않고 30미터 떨어진 거리의 금속까지 가공할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금속을 가공할 땐 정교함이 떨어져서 단순한 형태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의외로 전투형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네요.”
“네, 캠프 밖에 널린 게 금속이라서….”
그래도 아예 전투형으로 각성한 능력자에 비할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는 끝까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나는 변화 없는 표정으로 연맹 가입에 대한 조건을 제시했다.
내가 직접 영입에 나섰다.
그만큼 조건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과연 끝까지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
“서울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벙커가 있습니다. 우리 수행지 연맹 소유죠. 그곳으로 가족분들을 모시겠습니다.”
그도 가족 형제들이 있을 것이다.
몬스터로 넘쳐나는 이 세상에 가족의 안전만큼 달콤한 보상이 어딨겠는가.
“이곳에서도 충분히 안전한 장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의 눈이 살짝 흔들렸으나 미끼를 물진 않았고, 나는 다음 조건을 제시했다.
“원하는 사람 한 명을 수행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네?”
“수행자 지정권이란 아이템이 있거든요. 그것을 사용하면 다음 회차 수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엔 흘려듣기 힘든 제안인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도치우의 담당자로 보이는 소위가 놀라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원하는 사람을 지정해서 수행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네, 그래서 전 부모님과 친구들을 모두 수행자로 만들었습니다.”
의외로 이건 먹힌 모양이다.
하지만 내겐 아직 이거 외에도 꺼낼 카드가 많았다.
“그리고….”
다음 조건을 제시하려던 나는 미간을 좁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왜 그러십니까?”
뒷목을 쿡쿡 찌르는 느낌에 지도를 살펴보니, 빨간 점이 빠르게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나는 장비를 소환해 착용했고,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면서 복장이 바뀌자, 두 사람은 감탄사를 터뜨리면서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곳의 피해가 적었던 이유가, 몬스터의 파워 밸런스가 한 놈에게 집중돼서 그런 것 같군요.”
“네?”
항상 살인사건을 몰고 다니는 추리만화의 주인공처럼, 마치 내가 등장하길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녀석은 악마종이었다.
아직까지 보고가 되지 않았던 악마종의 출현.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이야기는 잠시 후 다시 나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