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70
79. 한국의 드워프(1)
느닷없이 총리가 죽게 되면 난리가 날 법도 한데, 의외로 사태는 조용히 넘어갔다.
히로시와 결탁한 관방장관, 방위성장관, 총무성장관 들이 사태를 조용히 수습했기 때문이다.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역시 새롭게 출범할 정권도 깨끗하다고 보긴 힘들지만, 그나마 조금 더 상황파악을 잘하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수행자가 총리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능력자 사이에 퍼져나가면서 일본에선 수행자와 능력자의 관계가 시작부터 틀어져버렸다.
그러나 히로시를 비롯한 주요 수행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건드리지만 않으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듯, 시민 구조작업과 몬스터 토벌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히로시가 군인들과 원정팀을 꾸려 홋카이도 수복 작업에 나서겠단 계획을 밝히면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 와중에 전 총리가 여론 조작으로 국민의 분노를 한국으로 돌렸다는 기사가 퍼지면서 혐한활동의 열기는 많이 식었다.
물론, 어떤 일이 발생하건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며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는 수행자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수행자 연맹이 한국인의 것이니 실상 일본은 한국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불어 이런 생각을 가진 능력자와 전 총리 측근들이 뭉치면서 추후 많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세력이 만들어졌다.
D-DAY이후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는지라, 이들에 대한 정보는 쉬이 알려지지 않았고, 알음알음 수를 늘려갔다.
이들은 ‘해방단’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해나갔다.
한때 한국을 점령하여 억압하던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겠단 명목으로 활동해 나가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기 그지없었다.
* * *
클로이가 임신을 하고 40주 3일 차가 되었다.
나는 초조하게 공왕성 복도를 서성였는데, 어제부터 클로이의 산통이 시작되면서 분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원래 출산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
클로이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 들려온 게 벌써 몇 시간째인 건지.
덕분에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고통을 줄여주는 마법을 써볼까?’
‘그리스 마법을 사용하면 아이가 미끄러져 나오지 않을까?’
‘제왕 절개를 하고 엘릭서를 사용하면 간단하지 않을까?’
황당한 것부터, 수행자이기에 가능한 엽기적인 생각까지.
하지만 귀족과 왕족의 출산을 전문으로 맡아온 성직자가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지구에선 어떤지 몰라도 뮤대륙에선 아이에게 깃들 축복을 막는다며, 속된말로 부정을 탄다고 한다.
한국이었으면 미신이라 잡아떼겠지만, 뮤대륙에선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젠 한국도 뮤대륙과 별반 다를 게 없으려나?
어머니는 김선아의 마음이 불편할까 많이 신경 써주셨다.
그녀는 수행자다.
다른 라이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아이를 가질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시기가 여러모로 안 좋았으니.
“그러고 보니, 수행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려나?”
“네?”
“뮤대륙에서 임신하면 뮤대륙에서만 임신 상태인 걸까?”
“아, 그러네요.”
나와 상반되게 어머니와 김선아는 클로이의 출산에 대해 태연하기만 했다.
하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엘릭서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만큼, 산모와 아이의 건강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끔 머리로는 이해도 마음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윽!”
잠시 후.
클로이의 격통이 절정에 달했다.
-응애!
방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그리고 나는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고, 공왕 전하?”
“아직 들어오면 안 되나?”
“아뇨 그건 아닌데.”
그리고 내 시선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성직자에게 힐을 받고 있는 클로이에게 향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왕자 저하입니다.”
나는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을 느끼며, 클로이에게 엘릭서를 사용했다.
강력한 신성력의 발현.
클로이는 최상의 상태로 순식간에 회복했다.
“아이에게도 엘릭서를 써도 되겠지?”
“무, 물론입니다.”
이어서 엘릭서의 빛이 아이에게도 깃들었고 짧게 남아 있던 탯줄이 사라지고 앙증맞은 배꼽이 드러났다.
계속 울고 있던 아이는 엘릭서로 인해 울음을 그치고 평온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세상에…….”
내 행동에 성직자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황가에서도 출산에 엘릭서를 쓰진 않을 것이다.
비록 일반적인 엘릭서처럼 포션 형태가 아니지만, 성녀에게서나 느낄 법한 신성력이 발현하니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지금 사용한 엘릭서가 나중에 아이의 성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소박하게 바랐다.
그리고 클로이가 정신을 수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서 아이에게 다가왔다.
“로아네요.”
“그래, 로아 조 이엘 베르트.”
수행자와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평범한 뮤대륙의 원주민일까?
문뜩 그게 궁금해졌지만, 아직 갓난아이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클로이의 품 안에서 꼼지락대는 작은 아기를 보며 신기함을 표해야 했다.
내가 애 아빠가 되다니.
* * *
클로이는 아이를 출산하고 엘릭서로 완전히 회복되는 바람에 바로 정보 길드의 업무를 시작했다.
어차피 다른 귀족이나 왕족들이 그러는 것처럼 유모가 전담해서 돌보기 때문에 육아 스트레스는 남의 일이었다.
덕분에 클로이는 그동안 밀린 일을 모두 해결하겠다는 듯이 산더미 같은 서류와 씨름을 벌였다.
참 보면 볼수록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여인이다.
설마 공왕비가 되어서도 그렇게 바쁘게 지낼 줄이야…….
하지만 클로이는 바쁜 와중에도 나와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아이와의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 모유 수유는 유모를 시키지 않고 반드시 자신이 했다.
보통 유모가 있는 뮤대륙의 귀부인들은 가슴 형태가 망가진다며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잘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평민 출신이라 그런 건진 몰라도 이건 어기지 않고 치르는 행사였다.
당연히 나도 지지하는 행동이고.
풍족한 생활과 예쁜 부인들.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아이가 있으니, 뮤대륙에서의 생활은 충실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진 않았는데, 7서클을 목표로 마법 수련에 힘을 쏟고 5일 중 하루는 반드시 퀘스트에 집중했다.
그런데 퀘스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상급을 지나 최상급 단계에 들어서고부터, 네임드 몬스터를 처리하라는 내용이 나왔는데, 그 최상급 단계에서도 중반에 접어드니, 말도 안 되는 내용이 튀어나온 것이다.
[퀘스트 발생]
등급: 최상
내용: 이블랜드에서 남작위를 가진 악마종 퇴치
보상: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 강화 보주 5개
기존 최상급 퀘스트의 보상은 일반 최상급 보상카드였던 반면, 역시 난이도가 난이도 인지라, 처음으로 선택형 최상급 보상카드가 걸린 퀘스트가 떴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깰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혼자 기어 나온 악마종이 아닌 이상 내가 이블랜드로 쳐들어가 작위를 가진 악마종을 수색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중증 중2병에 걸린 4회차 수행자, 오대수가 남작위를 가진 악마에게 씌어 괴상한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 녀석처럼 작위를 가진 악마종이 있는데, 이들은 이블랜드의 3대악 휘하에 소속된 고위악마란 뜻이다.
3대 악은 각각 동쪽의 왕, 북쪽의 왕, 서쪽의 왕이라 칭해지는데, 정말 이들을 왕으로 떠받드는 귀족들이라 볼 수 있다.
힘이 곧 계급인 이블랜드에선 작위가 높을수록 강해지며, 남작만 하더라도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의 중간에 위치한 괴물들이다.
아마 백작 이상부턴 확실하게 하이마스터, 8서클 급의 악마일 게 분명했다.
그런 괴물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짓은 아무리 내가 막 나간다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퀘스트가 막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퀘스트가 이제 와서 막힌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긴 하다.
히로시만 해도 한때 중급 마지막 퀘스트인 어스웜에 막혀서 상급 퀘스트에 도전하질 못했으니.
그만큼 나와 바로 뒤를 따르는 수행자들의 퀘스트 격차는 상당히 심한 편이었다.
뭔가 사건이 벌어져서 마법 성장을 자극한다면 금세 7서클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아무래도 퀘스트는 잠시 묵혀뒀다가 더 능력을 키워서 나중에 도전해야겠다.
‘해냈습니다! 해냈습니다. 선생님!’
한때, 총리 사태로 마음고생을 하던 히로시가 결국 익스퍼트 최상급을 달성해냈다.
그리고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김선아도 바로 다음 날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면서 두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히로시도 그렇고 김선아도 그렇고, 제법 오랫동안 괴롭혔던 벽을 넘게 되자 매우 감격해서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의 성장에 자극을 받은 1회차 수행자들도 더욱 독하게 수련에 몰두했다.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첫날 웨이브로 인해 매우 큰 피해가 발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구도 많이 안정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식량은 충분히 확보해놓은 상태이고, 노역 동원된 엄청난 수의 시민들이 적극 피난처의 보강 공사를 하니, 거의 모든 피난처가 방공호화 되었다.
뮤대륙의 여행을 마치고 주요 활동 거점이 된 용산공원 캠프에 들른 나는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의외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특이 능력자요?”
“네, 전투 능력이 완전히 제로인 능력자입니다.”
방어특화계나 치료계, 버프계 등 의외로 전투력이 없는 능력자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능력이 전혀 생각지 못해본 거라…….”
“뭔데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는 이어진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비 제작에 특화된 능력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폐고물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어낸다더군요.”
나는 능력자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웨이브가 발생하고 5일이 지난 지금, 한국에 등장한 34명의 수행자 중 단 11명만 연맹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정부에서 방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인데, 능력자 영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역시 수행자와 성질이 다르다는 생각 때문이다.
능력자도 충분히 대우받을 만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굳이 얹혀살 듯 수행자 집단에 들어갈 필요가 있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오히려 11명을 영입한 게 오히려 성공이라 볼 수 있을 수준이었다.
연맹의 영입제안을 거절한 능력자들은 대통령에게 국가에서 백업을 해주는 능력자 협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능력자들이 공통된 의견을 낼 수 있는 이유는 구심점이 되는 인물 때문이다.
통신 장교 중에 능력자가 탄생했는데 그는 수행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고, 우리의 권한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능력자들을 설득해 국가에 소속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시키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정부 입장에선 예쁘지 그지없는 타입이지만, 연맹 입장에선 귀찮기 그지없는 존재.
덕분에 적대적이진 않더라도 그들과는 어느 정도 벽이 존재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특수 능력자.
불꽃 튀는 영입전을 예고했다.
“감사합니다. 영입에 성공하면 선물 하나 해드릴게요.”
“아이고, 선물은요. 회장님께 도움이 되셨다면 충분하죠.”
요즘 정부 인사 중에 내게 줄을 대는 사람이 많았는데, 국방부 장관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와 악수를 나누고는 장비 제작에 특화되었다는 능력자를 두고 고민했다.
‘직접 찾아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