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68화 (168/247)

# 16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68

77. 능력자 길들이기(3)

서울 거리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몬스터가 남아 있었다.

몬스터들은 거리를 배회하다가 사람들이 보이면 달려들었는데, 대부분이 고블린이나 오크, 늑대인간 같은 소형종이었다.

물론 곳곳에서 트롤이나 오우거같은 대형종도 등장하긴 했다.

다만 어제 오우거를 고블린처럼 쓸어버렸던 기억과 비교하면 평화롭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형종은 수가 많지 않아 근처에 다가오기도 전에 청아가 마법으로 날려 버렸다.

소형종은 시설 탈환 조인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못하고 전투 여단의 총알받이가 되어 쓰러졌다.

그리고 몬스터가 죽으면 수행자들은 검으로 몬스터의 가슴을 갈라놓았는데, 이렇게 하면 뒤따르던 수송조에서 마석을 찾아 수습했다.

몬스터는 분명한 적이지만, 이제 기중한 자원이기도 했다.

그동안 이런 사태를 준비한 덕분인지, 단 이틀 사이 뒤바뀐 세상에 완전히 적응한 듯한 모양새다.

처음에 잔뜩 경계하던 능력자들도 몬스터들이 접근조차 못 하고 사살되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여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거리를 걷다 보면 쑥대밭이 된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아, 어느새 군인보다 시민의 숫자가 더 많아졌다.

군인들과 수행자들이 지키는 피난처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는데, 정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덕분에 우린 중간중간 지하철역을 방문해서 시민들을 떨쳐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 것 같다.

상황에 잘 적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지시를 거부했던 인물들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지시에 따르지 않은 만큼 이들의 피해는 각자가 초래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정부의 지시에 따라 피난을 하고도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시민들은 정부를 향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더불어 단계적인 예비군 동원과 시민들에게 노역을 강제로 시키면서 정부에 대한 지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지못해 따랐는데, 이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

몬스터의 공격이 미래 신문을 보고 느꼈던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으며, 설마 몬스터가 공수부대도 아니고 하늘에서 쏟아질 거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시민들은 결코 정부를 이해하지 못했고,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왜 이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인가. 전 국민이 이날을 대비했으면 피해는 더 적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분명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도시 곳곳에서 기어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미리 알려줬어도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믿더라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노동을 하려 했을까?

그렇지 않다.

최악의 경우 지금처럼 비상식량과 식수, 약품, 생필품 등을 확보하지 못하고 치안만 흔들렸을 수도 있다.

세상이 쑥대밭이 된다는 데, 누가 태연하게 일이나 하겠는가.

자기들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그러나 이런 가정은 시민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나마 몬스터라는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유지되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안전한 상황이었다면 쿠데타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다행인 것은 수행자들에 대해선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

이미 여기저기서 수행자들로부터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았고, 정부에선 우릴 선전용으로 활용했기에 불만의 화살은 수행자에게 향하지 않았다.

“이런 식이면 오늘 안에 모든 목표를 탈환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죠. 하나하나 되찾아가는 수밖에.”

가장 먼저 탈환해야 하는 것은 발전소, 하수처리시설 등이 아닌, 무기 생산 공장이다.

정부에서 D-DAY이후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개인화기 생산 공장이 남산에 있다.

아직 여유는 있지만, 아무래도 탄환과 수류탄, 대전차 미사일 등을 물 쓰듯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수행자가 더 많아져서 산업시설에도 안전구역을 설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한참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폐허 속 시민들로 인해 시간을 빼앗긴 우린 3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남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타앙!

우릴 반겨준 것은 황당하게도 몬스터가 아닌 총알이었다.

“돌아가! 여긴 주인이 있다!”

무기 생산 공장은 매우 튼튼하게 지어졌다.

남산을 파서 방공호처럼 만들었는데, 성벽처럼 둘러진 담장 너머로 수십 개의 총구가 우릴 향해 겨눠져 있었다.

“혼란을 틈타 이곳을 차지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뜯고 들어간 건지…….”

이곳이 무기 공장인 걸 알고 차지했다고 보긴 힘들다.

아무래도 정부의 지시에 불응했던 주변 시민들이 위급해지니, 이곳을 피난처로 삼은 모양이다.

겉모습만 보면 튼튼하기 그지없는 방공호가 아닌가.

‘용케 몬스터를 따돌리고 숨어들었네.’

방공호인 줄 알고 숨어든 곳이 무기 공장이다.

더구나 사용 가능한 무기들도 적재되어 있으니, 발견한 사람들 입장에선 쾌재를 부를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것이 아닌, 나라의 것이다.

“그곳은 정부의 중요 시설입니다. 개인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방금 위협사격한 건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나오세요. 주변 피난처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필 날아든 총알이 날아와 박힌 게 내 발 앞이다.

당연히 총알 한두 방 날아온다고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지만, 슬쩍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웃기지 마! 지금 이 상황에 네것 내것이 어딨어!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지!”

“아직 나라 안 망했어요.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정부의 중요 시설이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곳입니다. 그곳을 비우고 다른 피난처로 이동하세요.”

나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설득하려 했으나, 끝까지 반말하던 20살 정도의 청년이 대답 대신 다시 위협사격을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키득키득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양아치를 보는 듯했다.

녀석들의 행동에 김선아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손을 들었고, 그에 여단장이 공격 준비를 지시했다.

-차차착!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을 해도, 5천 명의 군인들이 일제히 사격자세를 취하면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들은 약이라도 한 건지 술을 처먹은 건지, 한번 쏴보라는 호전적인 눈빛으로 답했다.

“우리의 목숨이 위태롭다 싶으면 이 공장 날려 버린다!”

그에 군인과 수행자는 물론 능력자들까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았다.

더 이상 이들과 말씨름할 가치를 못 느낀 나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크아아아악!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귓가에 파고든 것이.

익숙한 포효에 소리의 근원지로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1회차 웨이브에서 능력자 사이에 많은 희생자를 만든 외눈박이 몬스터, 싸이클롭스가 느닷없이 남산 중턱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싸이클롭스는 멀리 뛰기를 하듯 붉은 기운을 감싼 채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기겁했다.

“쏴!”

군인들은 재빨리 떨어져 내리는 적을 향해 사격했다.

하지만 싸이클롭스가 내뿜는 붉은 기운에 막혀 납탄들이 증발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재빠르게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이 역시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싸이클롭스는 강력한 몬스터다.

카카오 섬 정벌 때는 1시간 넘게 싸우고 나서야 처치할 수 있었다.

‘레이저 캐논.’

그런데 애석하게도 지금의 내 상대는 아니었다.

나를 중심으로 뻗어 나간 10중첩 레이저 캐논.

그 마법은 그대로 싸이클롭스의 상체를 집어삼켰다.

그럼에도 힘을 잃지 않은 새하얀 빛이 남산 중턱에 기다란 계곡을 만들었다.

상체를 잃은 싸이클롭스가 내장을 쏟으며 떨어져 내렸고, 청아는 손을 내저어 육중한 사체를 멀리 튕겨냈다.

-쿠우웅!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군인과 무기 공장을 차지한 양아치, 능력자들은 하나같이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나는 양아치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녀석들은 기겁하며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에 실소를 흘리며 가볍게 말했다.

“좋은 말할 때 나오세요.”

겁에 질린 양아치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지금 나오면 개소리했던 거 봐주겠다고 하자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하지만 김선아는 얌전히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내게 총을 쐈던 양아치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컥!”

그리고 뱃속에 든 것을 게워내는 양아치를 뒤로하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내 뒤를 따랐다.

다소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수행자들에게 이는 일상이라 볼 수 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는 능력자들을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 * *

나는 딱히 일본인에 대해 별다른 악감정이 없다.

일본인 수행자들과도 친하고 연맹의 주력 전투 요원인 히로시를 굉장히 아꼈으니.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는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렇다기보다, 자기들이 잘못했으면서 뭐만 하면 피해자인 양 행동하는 것이 아니꼬웠다.

한국 정치판이라고 해서 크게 잘난 건 없지만, 일본 정치판의 패시브 스킬이라 할 수 있는 이 특성은 지구 전역이 초토화된 상태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안타까운 희생. 한국인들로 구성된 연맹의 지도자들은 정말 이 사태를 몰랐나.]

[가장 피해를 적게 본 국가는 바로 한국. 왜 우리 일본만 이렇게 당했는가.]

나는 황당한 내용이 담긴 신문을 보며 히로시에게 물었다.

“이게 일본 피난처에 배부되고 있는 신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내 물음에 히로시는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참…….”

말을 잃은 채 고개를 내젓자, 일본의 1회차 수행자 유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비난이 일고 쿠테타까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게 만든 겁니다. 덕분에 정부를 향한 비난은 고스란히 회장님과 한국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죠.”

이번엔 1회차 수행자로 전 어스클랜 간부 출신인 나츠오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재일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생기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겠죠. 아무래도 혐한활동을 하던 인간들이 곳곳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엄한 사람 갖고 물타기 하는 일본 정부가 문제인 거지.

같은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공격대상 중 하나인 김선아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얌전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겠죠?”

히로시와 유이, 나츠오는 당연한 거 아니냐며 억울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항의했죠. 이딴 식으로 나오면 연맹 소속의 수행자로써 얌전히 넘어갈 수 없다요.”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제 살기 바빠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정정 보도를 하고 용서를 구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더군요.”

실컷 두들겨 패놓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면 다인 줄 아나.

“그럼 그 기간 동안 위험에 노출되는 재일교포들은 어쩌고요.”

“일단 정부에서 그들을 모아 따로 피난 쉘터를 구성한다고…….”

왜 자기들이 잘못하고 애먼 사람을 피해자로 만드는 걸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난다.

나는 시녀가 내온 차를 마시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연맹 일본 지부의 이름으로 공식 항의하겠습니다.”

“아예 정부의 지시에 수행자들이 보이콧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친한 사람들이 이렇게 변명하듯 내 눈치를 살펴야 하다니.

참 일본 정부도 대단한 것 같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내젓고는 히로시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자기 안위 살피기 바쁜 인물이 위에 있어 봤자 득 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유이와 나츠오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의문을 표했지만, 평소 바보 같아도 눈치 빠른 히로시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는지, 단호하게 말했다.

“총리를 제거하겠습니다.”

그에 나머지 두 사람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며 기겁했다.

“어리석은 총리가 버티고 있어봤자 힘들어지는 건 국민이야. 제대로 상황파악을 할 줄 아는 인물이 지휘봉을 잡아야 돼.”

단호한 히로시의 이야기에 유이와 나츠오는 더는 반문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도 거부감은 갖고 있어도 히로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었다.

일본인이기 전에 연맹의 간부였으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