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65
76. 능력자(2)
-크오오오!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는 외눈박이 거인.
녀석의 포효에 주변 건물 유리창이 일제히 터져나가고, 덩치가 10미터에 달하는 괴물이 휘두르는 주먹에 빌딩의 옆구리가 거칠게 뜯겨 나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분이 안 풀리는지, 온몸에 붉은 기운을 두른 채 불도저처럼 몸을 날리자 빌딩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기이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런 식으로 외눈박이 거인, 싸이클롭스가 쓰러뜨린 빌딩만 수십여 채.
아무래도 녀석은 인간이 아닌 건물과 싸우는 중인 것 같다.
‘레이저 캐논.’
-후웅!
그런 싸이클롭스를 향해 10중첩에 각종 강화까지 더한 레이저 캐논이 날아들었다.
위력은 7서클을 상회하는 만큼 아무리 사이클롭스가 강하다 한들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니다.
백색 광선을 반사적으로 양팔로 막아냈지만, 내 공격은 붉은 기운을 날리며 사이클롭스의 상체를 집어삼켰다.
“아!”
그런데 레이저 캐논이 지하까지 파고들려 하자, 그 밑에 지하철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캔슬했다.
사고 가속을 사용한 상태기에 가능한 반응속도로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을 군인들이 황당하단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120㎜활강포와 대전차 미사일도 싸이클롭스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싸이클롭스는 준 마스터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로 가죽 자체가 하나의 장갑이나 다름이 없다.
“반포 싸이클롭스 처리했습니다.”
나는 상황실을 향해 무전을 날렸고, 상황실에선 다시금 일감을 던져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장님. 죄송하지만 김포공항으로 가주시겠습니까? 그곳에 오우거 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김포공항이라면 이미 수행자가 배치된 장소다.
어차피 오늘은 군인들과 기 싸움할 생각이 없는지라, 상황 장교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알겠습니다. 혹시 수행자 중에 희생자가 발생하진 않았나요?”
-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진 확인된 바 없습니다. 정말 수행자 분들이 안 계셨다면 피해는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말은 우리가 돕지 못하는 타 도시는 피해가 크다는 뜻일까?
나는 길게 묻지 않고, 바로 김포공항이 있는 강서구를 향해 연속으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어서 7서클이 되면 좋겠다.
그럼 단번에 텔레포트로 가는 건데…….
‘뭐, 7서클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
혼란스럽기만 하던 상황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일까?
잠시 딴생각을 하고 말았다.
어차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도 사고 가속으로 시간을 쪼개 쓰는 만큼 쓸데없이 멍때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려보는 서울의 풍경은 한 차례 미사일 세례를 받은 듯한 모습이다.
여전히 하늘에는 검은 물감으로 칠한 듯한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고, 곳곳이 화재로 인한 연기가 솟구쳤다.
그리고 도착한 김포공항의 풍경도 다른 곳과 흡사했다.
나는 요란하게 뛰어다니며 오우거와 트롤을 몰이하고, 두 마리씩 빼내서 제거하는 수행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포공항에는 15명의 수행자와 낙오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나름 잘 싸우지만 몰이 중인 오우거와 트롤이 너무 많았다.
-콰아아아아앙!
그러다가 몹몰이 중이던 수행자가 급히 몸을 날렸고,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장소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오우거와 트롤을 집어삼켰다.
그건 박격포나 수류탄 수준의 위력이 아니었다.
아마 대량의 TNT나 현재로써 작동이 제한된 미사일을 트랩으로 사용한 것 같다.
-크오오오!
덕분에 적지 않은 수의 트롤과 오우거가 날아갔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녀석들은 화염 속을 뚫고 나와 길길이 날뛰었다.
나름 비장의 수였을까?
수행자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돕기 위해 하늘에서 오우거와 트롤들을 요격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빛줄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고,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뒤집어써서 흉측스런 모습이 된 공항청사와 화물터미널에 들러붙어 있던 몬스터들이 반항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당연히 몬스터들은 예외 없이 모두 제거되었다.
어차피 다시 등장하겠지만, 한차례 리셋이 되니 담당 수행자들이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회장님!”
수행자들이 반갑게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들에게 마법을 이용한 버프를 선물하곤, 다시 상황실에 무전을 했다.
“김포공항 오우거 정리했습니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당황한 목소리.
싸이클롭스에 비하면 어린아이인 오우거를 정리한 것에 놀랄 이유가 없다.
아무래도 뭔가 일어난 모양이다.
그리고 이어진 담당 상황 장교의 이야기에 나는 슬쩍 미간을 좁혔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능력자가 등장했습니다.
지금 전황은 좋지 않다.
때문에 새로운 전력의 등장은 반겨야 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상황 장교의 이야기는 그것만으로 끝이 아닌 느낌이었는데.
-근데 살짝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내용이 더 있었다.
-능력자가 군인들을 도와 어스웜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현장 지원을 왔던 부회장님 일행을 몬스터로 오인하여 공격했습니다. 그 과정에 부회장님께 직접 제압당했고, 능력자는 추궁을 위해 구류된 상태입니다.
“선아 씨는 무사하고요?”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제압해서 전투랄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상황 장교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았다.
김선아는 처음 본 능력자에게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정말 오해로 인한 실수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혹시 신이 능력자를 수행자의 적대 세력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황 장교 입장에선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예 수행자들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만큼, 그만 움직여 주길 바랄 것이다.
“알겠습니다. 선아 씨한테 일단 능력자는 풀어주고 하던 일을 하라고 하죠. 전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감사합니다. 회장님께선 잠실로 가주시면 됩니다. 종합 운동장에 드레이크가 등장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잠실로 이동하면서 김선아에게 무전을 날렸다.
내 지시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단 반응을 보이며 능력자를 풀어주었다.
“능력자의 무력수준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워낙 쉽게 제압이 돼서 정확하게 판가름할 순 없지만, 이야기만 들어선 3회차 중위권 수행자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
3회차 수행자면 즉시 전력감이라 표현할 수 있다.
현재 3회차 수행자가 뮤대륙 240일 차인 만큼, 처음부터 준수한 능력을 지녔다는 공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능력자라고 모두 같은 수준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더 강한 인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확실히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 * *
강현석은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취조 하다가 갑자기 걸려온 남성의 무전에 군말 않고 취조를 멈추는 김선아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뵙죠.”
그리고 그녀가 뒤도 보지 않고 수행자들을 이끌며 사라졌다.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령에게 물었다.
“저 아가씨는 누굽니까?”
“수행자 연맹의 부회장님입니다. 전 세계 수행자 중 두 번째로 높은 분이죠. 소장의 대우를 받는 분이기 때문에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연맹의 부회장이요?”
“네, 듣기론 대한민국 국군뿐만 아니라 미군과 UN군, 나토군에서도 소장의 대우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직접 병력을 동원할 수도 있고요.”
김선아의 왼쪽 가슴에 금색 별 두 개가 그려진 브로치가 달려 있었는데, 그게 장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서야 자신이 맥없이 당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한 계단씩 성장하는 수행자와 달리 능력자인 현석은 자신의 힘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상대의 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건 이길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
그리고 그건 묵묵히 그녀의 곁을 따라다니고 있는 금발청안의 여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능력자 분이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방금까지 아무것도 아닌 피난민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입장이 바뀌었다.
그래도 현석은 방금 겪은 게 있는지라 능력자가 되었다고 함부로 까불지 못했다.
* * *
한 명의 능력자가 생기니, 이후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능력자는 공통적으로 한 가지에 특화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염력술사면 염력을 이용해 타격을 하거나 방어를 하고, 화염 술사면 불을 이용해 타격하고 또 방어를 한다.
어떻게 보면 전문성이라 볼 수 있었지만, 한 가지 속성에만 치중된 것은 허점이 많다고 볼 수 없으며, 전투능력은 3회차 수행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3회차 수행자 중엔 인식이와 정우처럼 웬만한 2회차보다 뛰어난 수행자도 있고, 이제 겨우 100일도 안 된 4회 수행자에게 벌써 뒤를 잡힌 수행자도 있다.
그것처럼 능력자들도 능력의 편차는 있었는데, 그래도 대부분이 익스퍼트 중급 또는 4서클 수준의 힘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전투력만 보면 금방 전력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더구나 능력자 중엔 생각지 못한 힘을 지닌 이들도 있었다.
하피 떼에 농락을 당하던 광주에 나타난 정신계 능력자는 완전히 영웅이 되었으며, 투과 능력자는 몬스터의 몸속에 직접 수류탄을 심는 방식으로 오우거 30마리를 단독으로 처치하기도 했다.
수행자와 달리 능력자는 정말 초능력자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이들의 힘은 마력을 사용하는 스킬 같은 것이라고 김선아가 말했는데.
덕분에 시전자에게밖에 보이지 않는 염력 공격을 벨 수 있었다고 한다.
추후 더 강력한 능력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능력자는 25명인데, 내가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능력자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다소 적어졌다.
9월 18일.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고 10시간째.
생존을 위한 인류의 처절한 싸움도 조금씩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회장님! 등장하는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네, 저도 보고 있습니다.”
63빌딩 옥상에 앉아 허기를 초콜릿으로 채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이 서울을 붉게 물들이고,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한강의 물줄기는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의 풍경과 상반되었다.
무엇보다 하늘을 가득 채웠던 검은색의 구멍이 눈에 띄게 적어져 있었는데, 덕분에 잠시 앉아서 한숨을 돌려도 될 만큼 일말의 여유가 생겼다.
‘웨이브를 이겨냈다고 볼 수 있을까?’
앞으로는 일상에서도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의 물량일지 감이 안 잡힌다.
일단 지금 물량이 떨어진 것은 확실한데,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은 아직 아니었다.
‘웨이브가 끝나면 메시지로 알려주겠지.’
항상 끝맺음은 확실하게 알려주었으니.
1회차 수행자로 뮤대륙에서만 500일을 보낸 덕분에 이젠 신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 것 같다.
신은 죽음의 위기를 주되 그것을 이겨낼 요소를 주며.
위기를 넘기게 되면 더욱 강한 힘을 안겨준다.
이 모든 것이 관전의 재미를 위한 균형 맞추기일지 모르지만, 이젠 광대짓도 상당히 익숙해진 터다.
그리고 오늘은 미친 듯이 날뛴 덕에 잠재력 향상과 전투 교범의 중복 효과에도 진전이 없던 마법이 한 단계 나아갔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7서클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이젠 6서클의 벽을 넘기 위한 산 정상을 시야에 담은 상태.
그 정상에 다다르면 드디어 대마법사의 구역인 7서클에 들어서게 된다.
7서클이 되면 텔레포트가 가능해지고, 자력으로 텔레포트 게이트의 중요 부품인 좌표전송 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즉, 지구에서 내가 텔레포트 게이트를 만들면 공용 아공간을 통해 넘어온 게 아닌 만큼,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상급 보상에서 얻을 수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처럼 말이다.
그럼 한동안 지구 전역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하는 데 열중할 생각이다.
당연히 무료가 아니라 항공을 대신할 교통수단으로 높은 이용료를 받아 챙길 생각이다.
‘오러도 마법만큼 성장해주면 좋을 텐데.’
참고로 오러는 테라시아 후작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 이후로 발전이 쉽지 않아, 아직도 중턱에 걸쳐 있다.
-회장님, 현재 서울은 크게 위급한 일이 없습니다. 혹시 인천으로 지원 가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안 될 것 없지.
나는 알겠다고 답하곤, 인천 방향을 향해 연속 블링크를 사용했다.
이후 나는 인천뿐만 아니라 수원, 고양, 용인까지 돌면서 시민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었다.
예전이라면 잠을 자야 할 12시를 넘겨, 새벽까지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리고 수행자의 강제 수면 시간을 1시간 남겨두고.
[몬스터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게이트를 통한 몬스터의 신규 등장 속도가 기존의 50분의 1로 줄어듭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