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64화 (164/247)

# 16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64

76. 능력자(1)

몬스터와의 사투 5시간째.

“연맹02, 강남역 어스웜 처치했습니다. 하지만 역의 상당 부분이 붕괴되면서 더 이상 피난처로 사용할 수 없답니다.”

청와대 지하 벙커엔 실시간으로 처참한 소식이 이어졌다.

“사망자는?”

“약 500여 명의 시민이…….”

사상자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 기본이 백 단위다.

사람의 목숨 값이 예전 같지 않다.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짧은 시간에 피난민 15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기존에 존재하던 것과 이번에 새로 지어진 방공호에 단 200만여 명의 시민밖에 수용하지 못했고, 나머지는 지하철 등을 피난처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철로를 이용해 주변역으로 분산시켜. 강남역은 외부에서 몬스터가 침입 못 하게 완전히 통로를 차단시키고.”

“하지만 다른 지하철 역시 만원인지라.”

“그렇다고 못 들어가는 건 아니잖나! 좁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아, 알겠습니다.”

대통령은 상황 장교에게 윽박을 내지르곤 이마를 짚었다.

“소리 질러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곳곳에서 무전과 기계식 유선전화를 통해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접수되었는데, 단 몇 시간 만에 서울에서만 벌써 2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피난처에 있는 사람들만 헤아린 것으로 말을 듣지 않고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100만 명 가까이 되는지라, 피해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지만 서울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는데.

모스 신호로 다른 도시의 소식을 전해오는 상황 장교들의 이야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울산의 야외대피소가 모두 당했답니다. 생사가 확인 안 되는 시민이 약 20만에 달한다고…….”

“처, 청주 상황실과 1시간째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광주에 하피 떼가 등장하여 시민과 군인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서울을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다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방의 방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 하나 조용한 곳이 없었고, 쉬이 피해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대통령을 침통케 했다.

‘뭐가, 100만이라는 거냐.’

아마 지금까지 발생한 희생자만 100만 명이 가뿐히 넘을 것이다.

대통령은 수행자들로부터 전달받은 희생자 100만 명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 상황에 신문을 찍어내기 위해선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 만큼, 일부 절망적인 내용은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대통령은 손톱을 깨물며 어서 웨이브가 끝나거나 어떠한 반전이 일어나길 기도해야 했다.

* * *

서울 고속터미널역.

‘씨발…….’

터미널 내부와 외부에 하나씩 단 두 개의 출입문을 제외하곤 나머지 출입구는 모두 막놓았을 텐데,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나는지 군인들의 총소리는 끊이질 않고 울려 퍼진다.

3호선, 7호선, 9호선이 연결된 고속터미널역은 역의 규모도 큰 데다가 7호선과 9호선이 굉장히 깊게 파여 있어서 벙커처럼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하의 특성상 총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지고, 간간이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몬스터의 포효에 사람들이 발작하듯 어깨를 떨었다.

-쿠우웅!

그러다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주변이 흔들렸다.

기겁한 사람들은 군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들이라고 모든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야외대피소로 갈 걸 그랬어. 여기 있다간 미칠 것 같다.”

“여기가 이 정도면 밖은 훨씬 심하겠지.”

“그래도 매몰위험은 없을 거 아냐!”

“대신 몬스터에게 직접 노출될 것 같은데.”

“하지만 거긴 군인들이 훨씬 많고…….”

겨우 한 사람 누울 공간만 배정되어 옆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공시생 강현석은 젊은 부부의 대화에 속으로 혀를 차며 부모님을 떠올렸다.

부모님은 이런 간이 대피소가 아닌 제대로 된 방공호로 모셨다.

방공호는 정원이 얼마 안 되는지라 부모님만 그곳에 모시고 자신은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만, 지금은 개인 통신 장비가 먹통인 상황.

사전에 전자장비가 먹통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부모님과 연락할 수단이 없어지니, 조금 위험하더라도 함께 이곳으로 피난을 했어야 하는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현석은 감상에 젖을 여유도 없었다.

“높으신 분들은 이런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벙커 안에 숨어 계시겠지?”

“씨발 새끼들, 자기들만 살겠다고 이런 걸 숨기다니.”

이 상황은 정부의 탓이라며 욕설을 내뱉는 사람.

“아!”

“죄송합니다.”

“이 새끼야 사람을 쳐놓고 그게 사과하는 태도야?”

“네? 지나가다가 살짝 스쳤을 뿐인데요?”

상황파악 못 하고 괜한 소란을 만드는 사람.

“하나님 아버지…….”

귀를 막은 채 기도를 올리는 사람.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

“흑!”

우는 사람.

‘정신병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네.’

현석은 한숨을 내뱉으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몬스터 못지않게 주변 사람들이 거슬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간이 천막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솔린 발전기 덕에 내부가 어둡지 않다는 것과 정부에서 비상식량과 식수를 충분히 마련해 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대피소엔 의료진까지 제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두통약 좀 얻고 싶어서요.”

“증상이 어떻게 되세요?”

신경성이 분명한데도 증상을 묻는 그의 모습은 꽤나 초췌해 보였다.

그에 현석은 느낀 대로 답을 했고, 알약 2알을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간이 의무실을 나서는데.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쳤다.

“무, 무슨?”

당황한 현석과 의사는 황급히 소리의 근원지를 살폈고.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어!”

누군가가 이들의 궁금증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동시에 현석이 피난해 있던 지하철 플랫폼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런 씨발!”

그는 뒤도 보지 않고 인파를 헤집으며 파고들었다.

-키아아아!

나타난 몬스터는 지하철 두께의 거대한 갯지렁이, 어스웜이었다.

녀석이 철도 바닥을 뚫고 나타나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어?”

그런데 포효에 무형의 힘이 깃들어 있는지, 순간적으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하지만 현석은 많은 사람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나뒹구는 상황에도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버티며 걸음을 옮겼다.

-타타탕!

군인들은 지하철 출구뿐만 아니라 철도 양쪽에도 진지를 구축해 놓은 상태였는데, 이들의 응사에 어스웜의 시선이 군인에게 향했다.

“턱 아래를 노려라! 어스웜은 방어력이 높아도 트롤 같은 재생력은 없어! 목에 구멍을 뚫어서 산성 브레스를 못 쓰게 만들어야 돼!”

사전에 몬스터에 대한 교육을 받은 중대장이 외쳤다.

지하철 방어 임무를 배정받은 그의 입장에서 가장 최악이라 생각했던 몬스터가 바로 어스웜이었다.

때문에 확실히 공략법을 기억하고 있었고, 중대장의 지시에 부대원들은 화력을 집중했다.

-휘이이익! 쾅!

“젠장!”

중대장이 직접 대전차 미사일을 날렸지만, 어스웜이 피하는 바람에 애꿎은 천장에 구멍만 뚫었다.

유도기능이 없는 대전차 미사일의 명중률은 사용량 대비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키에에엑!

그래도 대량 배치된 20mm 대전차 라이플의 활약에 어스웜의 턱 밑에 구멍을 내는 데 성공했다.

“좋아! 포박 그물!”

하지만.

“으아아악!”

산성 브레스를 쓰지 못한다고 어스웜이 약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질량으로 육탄전을 벌이자 상대하는 입장에선 달려오는 기차와 싸우는 것과 같았다.

결국 군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어스웜은 아비규환이 된 지하철 승차홈으로 향했다.

“아…….”

지하철은 다 좋은데 출구가 한정되어 있어서 사람이 한 번에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아직도 승차홈을 벗어나지 못한 현석은 하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어스웜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부모님이 다른 곳에 계셔서 다행이다.’

방금까지 부모님도 이곳에 모셨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후회했지만, 결국 두 분을 방공호에 두고 온 게 올바른 선택이 되었다.

-키에엑!

사람들을 한 번에 삼키겠다는 듯,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는 어스웜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축하합니다. 능력자로 각성했습니다.]

[사이코 키네시스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게임의 화면처럼 갑자기 메시지가 떠오르고.

현석의 머릿속으로 낯선 정보들이 입력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모든 것은 어스웜이 다가오는 단 한 순간에 벌어진 일.

그리고 기억의 강제 주입이 끝이 나자 그는 어스웜을 향해 강하게 팔을 내저었다.

-콰아아앙!

그에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어스웜이 뒤로 튕겼다.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군인과 시민들은 말을 잃은 채 현석을 바라보았다.

순간의 정적.

현석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에게 깃든 낯선 힘.

하지만 그 사용법은 이미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하하…….”

헛웃음을 흘린 현석은 스르르 상체를 일으키는 어스웜을 향해 포박하는 느낌으로 양손을 움켜쥐었다.

-키에에엑!

빠져나가기 위해 온몸을 뒤트는 어스웜과 녀석을 포박하려는 현석의 힘 싸움이 벌어졌다.

“뭐해요! 쏘세요!”

현석의 외침에 살아남은 군인들이 정신을 차리며 어스웜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제자리에 고정된 어스웜은 단순한 과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유효한 공격 수단인 대전차 미사일이 연달아 날아들자.

-퍼엉!

머리가 터져나가면서 어스웜의 움직임이 멈췄다.

“사, 살았어!”

지하철 내부에 안도의 한숨이 크게 울려 퍼진다.

몇몇 사람들은 현석을 향해 왜 이제야 나선 거냐는 불만 어린 눈빛을 보냈지만, 알지 못하는 힘을 지닌 그에게 직설적으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행자셨습니까?”

위층에서 지원군을 이끌고 나타난 소령과 상하행선 라인을 지키고 있던 대위가 다가와 물었다.

현석은 희열과 당혹스러움이 공존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아뇨. 방금 힘을 얻었습니다.”

지휘관들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능력자란 말입니까?”

능력자의 등장 시 반드시 연맹 회장에게 알리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능력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거.”

아직까지 능력자의 등장이 보고된 적이 없기에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고, 입에 발린 말로 현석을 치켜세워주었다.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희망의 탄생이군요.”

하지만 감탄도 잠시.

-퉁! 퉁! 퉁!

지하철 상행선에서 전체 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군인들은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시민들은 다시 불안감에 떨었다.

“죄송하지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지만, 이 환경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현석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방금 전엔 상황이 급박해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사람들을 위해 나설 만큼 강단 있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건 현석 입장에선 정말 큰마음을 먹고 내뱉은 대답이었다.

-퉁! 퉁!

그 기이한 소리는 누가 들어봐도 사람이 내는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점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상행선 승차홈이 코너형으로 되어 있어서 50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상대가 누군지 확인도 할 수 없었다.

-퉁퉁퉁퉁!

그런데 소리가 점점 빠르게 가까워지면서, 이들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달했다.

-팟!

그때 현석의 시야에 희뿌연 무언가가 잡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휘둘렀고, 클레이모어 격발기를 손에 쥐고 있던 지휘관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쏘지 마라! 멈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헉!”

하지만 현석의 손을 떠난 무형의 충격파는 중간에 멈출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거대한 어스웜을 가차 없이 튕겨냈던 충격파를 사람이 맞는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이어진 상황은 모두의 예상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선두에 선 가녀린 체구의 여성이 발도술 같이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번개처럼 휘둘렀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간 푸른 기운이 현석의 충격파를 베어버렸다.

-척!

“…….”

그리고 눈 한 번 깜짝이니, 차가운 표정의 여성이 현석의 코앞에 나타나 목젖에 검을 겨누고 있었고.

“윽,”

옆에선 금발의 여성이 자신의 팔을 부러뜨릴 것처럼 붙잡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연예인 못지않은 청초한 미모.

그러나 살기 가득한 눈빛을 가진 한국인 여성이 손에 힘을 주자 현석의 목에선 가느다란 핏물이 흘러내렸다.

겁에 질린 현석은 아무런 말을 못했고, 소령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몬스터인 줄 알고 그만. 이분은 방금 힘을 각성한 능력자입니다.”

현석은 이들이 말로만 듣던 수행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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