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63
74. D-DAY(2)
[변환 완료.]
[다섯 개의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치칙!
변환 완료 메시지와 함께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에 오류가 생기더니, 오래지 않아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더불어 도시 곳곳의 전광판과 신호등, 건물의 불빛 등이 일제히 꺼졌다.
그 외엔 딱히 달라진 것을 못 느꼈는데, D-DAY가 되었다고 당장 뮤대륙과 합쳐진다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구 전역에 마력이 생성되며, 마력으로 인해 일부 원소의 성질이 변환됩니다.]
공지의 상세 설명을 보니 여기서 말한 일부 원소는 실리콘, 게르마늄 등 반도체 성질을 가진 원소와 우라늄, 플로토늄 등 핵연료로 사용되는 원소를 뜻했다.
이제부터 에너지 생성에 제약이 따르며 과학 기술들은 반세기 전으로 후퇴했다.
알고 있었지만, 직접 사실을 확인하니 기분이 아주 뭣 같았다.
[지구 전역에서 몬스터가 등장합니다.]
-안전구역 중심지로부터 반경 3km에선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스킬이나 아티팩트로 만들어진, 안전구역 외에 자연적인 안전구역이 다수 존재합니다.
-일정 주기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며 이때는 안전구역의 효과가 없어집니다.
-금일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몬스터가 등장하는 것은 일회성 이벤트 따위가 아니다.
지금 신은 공지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뮤대륙에서처럼 몬스터의 위협이 존재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나마 안전구역으로 최소한의 편의는 봐주겠다는 건가?”
수행자 중에 안전구역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이걸 잘만 활용하면 각 도시마다 주요 피난 구역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모든 건 웨이브가 발생하는 오늘을 잘 넘기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
[수행자의 강제 수면시간이 8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듭니다.]
-수행자는 강제 수면시간인 2시간 동안 뮤대륙에서 5일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강제 수면시간은 그리니치 표준시 오후 9시~11시(서울 오전 3시~5시)입니다.
인상을 쓰며 공지를 읽던 나는 모처럼 마음에 드는 내용을 발견하곤 안도했다.
수행자들이 잠드는 시간은 활동할 수가 없는 공백기다.
사람이라면 응당 잠을 자야겠지만, 몬스터들이 우리가 잘 때 얌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꼭 고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이로써 한낮에 잘 수밖에 없던, 서구권 국가 수행자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수행자와 별개로 선천적으로 마력을 사용하는 ‘능력자’가 등장합니다.]
-능력자의 성장성은 낮지만, 처음부터 준수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능력자는 수행자와 달리 퀘스트를 수행하지 못하며, 후천적으로 신체 능력치 향상, 스킬 등을 추가로 얻지 못합니다.
-능력자는 뮤대륙을 여행하지 않습니다.
“응?”
능력자가 등장한다니?
나는 눈을 깜빡이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은 수행자 외에 다른 이능 사용자가 나타난다는 것 아닌가.
설명만 들어선 수행자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지만, 처음부터 준수한 힘을 사용한다는 점은 바로 전력화할 수 있는 뜻이기도 했다.
‘이들도 수행자 연맹에서 관리하면 되려나?’
아니, 수행자들은 뮤대륙에서의 활동 때문에 연맹 가입이 강요되지만, 이들은 연맹 활동을 강요할 방법이 없다.
일단 연맹 가입을 권해보긴 하겠지만, 국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이들을 수습하려 할 것이다.
뮤대륙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친목을 쌓을 수 있는 수행자와 달리, 능력자는 해당 국가에 고립되어 서로 교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의 숫자와 무력 수준이 어느 정도냐는 것.
자칫 수행자들의 입지를 좁게 만들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꼭 그렇지만도 않으려나?’
신이 공을 들여 준비한 수행자가 능력자에 밀리게 하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수행자와 달리 능력자는 인류의 생존 능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 같은 느낌이니.
뭐, 이건 능력자를 직접 봐야 알 것 같다.
수행자의 입지야 어떻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소식임은 분명하다.
[지구 전역에 숨겨진 비밀 장소가 드러나며 고대 종족의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던전, 유적, 성지 등이 새롭게 추가됩니다.
-오랜 옛날 마력의 손실로 지하에 숨어야 했던 고대 종족들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아틀란티스B의 용인족 말고 또 다른 비밀 종족이 있었나?
하긴 B라는 명칭을 붙였다면 A 또는 C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공지를 다 읽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공지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면 인류에 많은 여지를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몬스터들이 위협적이란 뜻이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만을 표하거나 잔머리 굴릴 여유가 없었다.
김선아를 보니 능력자란 존재가 걸리는지 인상을 쓰고 있다.
각자 다른 곳으로 이동한 연맹 7개 조는 지역 방어 임무를 맡지만, 나를 비롯한 2회차 정예들은 프리롤 형식의 지원조다.
자유롭게 활동하다가 청와대나 국방부에서 요청이 오면 출동하는데, 무전이 오기 전까지 몸을 풀며 상황을 살피면 될 것 같다.
우린 하나같이 공중 도약으로 허공을 밟으며 근처 30층 빌딩의 옥상으로 향했다.
그런 우리를 곳곳에 진지를 구축한 군인들이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며칠 사이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해져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무심코 한강 쪽을 바라봤는데…….
-우웅!
일전에 겪은 웨이브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검은 색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기는 지난번 웨이브보다 작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구멍이 서울 상공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이는 것만 100개가 넘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씨발.”
욕지거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풍경.
우린 그곳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개인화기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한 초급 몬스터이길 바래야 했다.
* * *
기존 서울 시민과 안전한 장소를 찾아 올라온 지방 사람들로 인해 현재 서울 피난처에 밀집한 인구만 무려 1500만 명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방어 거점이 된 도시가 20개인데, 그중 약 3할이 서울에 밀집한 것이다.
당연히 군대도 그렇고 수행자 연맹도 그렇고, 서울을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서울 전체를 보호하기보단 각 피난 구역을 요새화하여 집중 방어를 선택했다.
인명 손실을 막기 위해 시설 피해는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꺄아아악!”
그럼에도 피난 구역에선 꾸준히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장소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몬스터들이 피난처 내부에서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 여기! 군인 아저씨! 여기요!”
전 미군기지와 국방부가 포함된 용산공원은 여의도와 함께 서울에서 가장 큰 피난 구역 중 하나다.
대북 지원용 교량이라면서 만들었던 콘크리트 구조는 용산공원을 둘러싼 성벽이 되었는데, 그 내부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줄지어 있었다.
시민들은 막연히 안전할 것 같다는 기대감에 국방부가 있는 용산공원을 피난 장소로 선호했다.
덕분에 준비된 시설만으로 몰려든 시민을 수용하지 못해 천막과 텐트를 배정받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 시민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검은 구멍이 생기는 것을 보며 기겁했다.
“쏴!”
-타타타타탕!
군인들은 망설임 없이 허공의 구멍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귀를 막으며 멀찍이 도망쳤고, 검은 구멍 내부에서 벌집이 된 오크 사체가 쏟아졌다.
-철퍽! 쿵!
피난 구역 곳곳에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녹색 피 웅덩이와 몬스터 사체 동산이 위치했다.
얼마 안 있어 검은 구멍은 없어졌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구멍이 나타났다.
“우우웩!”
역겨운 냄새에 여기저기서 구토를 하고, 다시금 시끄러운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몬스터가 등장하기 전 게이트가 생긴다는 점.
덕분에 군인들은 게이트가 나타나면 몬스터가 등장하기도 전에 총을 난사했다.
생산 시설이 예전 같지 않은 만큼, 되도록 총알을 아껴야 하지만,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트, 트롤이다!”
몬스터에 대한 교육을 받은 군인들이 외쳤고, 시민들은 상어에게 쫓기는 정어리 떼처럼 전력으로 그 장소를 도망쳤다.
“젠장!”
군인들은 무서웠지만, 총을 쏘지 못하고 트롤에게 달려갔다.
눈먼 총알에 트롤에 쫓기는 시민들이 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더 근거리에서 사격을 하려는 것이다.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몬스터를 향해 달려가는 어린 군인들의 표정은 처참했다.
-타타타탕!
그래도 그들은 꿋꿋하게 제 할 일을 했다.
하지만 트롤은 총알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고, 구형 RPG로 대가리를 날릴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니 시민들과 군인 사이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했다.
트롤이 등장하면 그 장소는 반드시 아비규환이 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도, 도망쳐야 해.”
몬스터는 건물 내부에선 등장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국방부 건물이나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컨테이너로 들이닥쳤다.
-쿠쿠쿵!
하지만 몬스터가 건물 내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이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몬스터가 건물 내부로 들이닥치는 순간 그곳은 사형집행장으로 변모하고, 컨테이너는 맥없이 찌그러졌으며,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도 대형 몬스터에 의해 붕괴되기도 했다.
그나마 피난처로 지하철이 안전해 보이지만.
-가, 강남역에 어스웜이 나타나 속수무책으로…….
두꺼운 벽에 둘러싸인 벙커가 아닌 이상 무조건 안전하다고 볼 순 없었다.
병사들은 분투했다.
외부의 적은 효과적으로 막았지만, 피난민이 밀집된 장소에서 나타나는 몬스터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대응 능력이 빈약했다.
트롤이 대피소에서 날뛰자, 순식간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수행자다!”
그때 하늘 위에서 한 명의 남성이 나타나고.
그가 땅으로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푸확!
시민들을 짓이기던 트롤 다섯 마리가 분쇄되었다.
“와아아!”
그에 아직 상황이 해결된 게 아님에도 당장의 위기를 벗어난 시민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며 박수 쳤다.
하지만 트롤들을 사냥한 수행자는 군인들을 향해 윽박을 내질렀다.
“대형 몬스터에겐 포박 그물 사용하란 말 못 들었습니까!? 아무리 총을 난사해봐야 총알 낭비일 뿐입니다!”
그의 외침에 군인들은 움찔거렸다.
수행자들은 기본이 대위 대우다.
그런데 트롤을 압살한 그는 누가 봐도 고위 수행자였으니.
영관 또는 장군급 대우를 받는 인물일 수도 있었다.
소위 계급장을 단 소대장이 급히 경례를 올리며 변명했다.
“죄, 죄송합니다. 앞서 시민들이 말려들면서 피해가 발생한지라.”
수행자는 혀를 차며 허공에서 쏟아지는 날렵한 늑대인간을 손짓만으로 폭파시켰다.
“몇 명이 말려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수십 수백 명이 죽는 것보다 낫잖아요. 소위님의 판단에 더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때서야 소위는 화려한 수행자의 왼쪽 가슴에 국방부에서 임의로 제공한 별 세 개 달린 계급장을 볼 수 있었고, 그가 말로만 듣던 수행자 연맹의 회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그는 종전 감사원의 원장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회장님!”
뒤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는 듯, 황급하게 하늘을 달리며 나타났다.
* * *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건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나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상큼한 외모를 가진 김선아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나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야외 피난소는 제가 블링크로 돌도록 하죠. 여러분은 지하철을 중심으로 순회하세요.”
“알겠습니다.”
“청아, 너도 선아씨를 따라가.”
“네.”
내 지시에 그들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청아의 스킬 세팅을 근거리 공격형에서 마법 지원형으로 바꿨다.
이동하려는 김선아의 어깨에 손을 얹은 나는 작게 말했다.
“선아씨 안위를 최선으로 생각하세요.”
김선아는 알겠다며 작게 미소 지었다.
동료들은 빠르게 이동했고, 나도 용산공원을 스윽 둘렀 보았다.
뒤늦게 대위 이상 고위 장교들이 달려왔으나, 당장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블링크를 사용했다.
“아!”
이동 직전에 용산공원 시민들의 아쉬움 담긴 한탄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남아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나는 용산공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여의도로 이동했다.
안전구역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면 피해는 덜할 텐데, 안전구역이 무효화되는 날이 이어진다면 국민들의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