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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62화 (162/247)

# 16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62

74. D-DAY(2)

-종로구 시민 여러분, 경복궁과 창경궁 또는 가까운 지하철역에 피난처가 마련되어 있사오니, 신속히 피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 짐은 여벌의 옷만 있으면 됩니다. 현금은 사용처가 없으니, 가까운 은행에 방문하시어 입금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시민 여러분의 생존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았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선 신속히 피난해 주시기 바랍니다.

종로구 환전상인 김동우는 텅 빈 거리를 바삐 오가는 군용차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랄들 하긴.”

꼬장꼬장한 성격의 김동우는 이 사태를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정치인을 포함해 재계 고위 인사들은 이미 개인 자산을 정리하여 현물로 바꾼 상태다.’

‘이 모든 것은 호황을 가장한 국제적 경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주요국들이 짜고치는 고스톱인 것.’

‘개인 자산을 소각하고, 부동산값을 폭락시키려는 극단의 조치다.’

이것은 종로구 쩐주들 사이에 은밀히 도는 소문이었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발표보다 신뢰할 수 있다.

뉴스에선 유례없는 경제 호황이라 떠들었지만, 요 3달 동안 국제 경제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모든 것이 초자연적인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라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평소 알고 지내던 지하 쩐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문이 대통령의 말보다 더 믿음이 갔다.

그렇게 그는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는데, 자신을 비롯해 종로 유력인사들이 대거 거주하는 동네에 지금까지 잘 눈에 띄지 않던 주민과 군인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야?”

김동우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금은방 정씨가 눈에 들어오자 그에게 상황을 물었다.

“아 글쎄! 강제로 퇴거시키려 하잖아!”

“뭐?”

그에 김동우 역시 주민들 틈에 섞여 군인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군인들은 녹음이라도 한 것처럼 계속 같은 말을 내뱉었고, 잘난 주민들 사이에선 ‘내가 누군지 아냐’는 호통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대부분이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병사들이었는데, 그들을 잡고 늘어져 봐야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을까?

“어?”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고, 바보처럼 눈을 껌뻑이며 한 장소를 바라보았다.

-크르르르르.

그곳엔 단독 주택 옥상에 손을 얹은 채,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4미터의 푸른 거인이 위치해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시민이건 군인이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인의 눈동자가 이들에게 향하고, 곧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더니 누런 이를 보이며 흥분했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악!”

녀석이 포효와 함께 땅을 쿵쿵 울리며 다가오자, 사람들의 시선에 공포심이 깃들었다.

‘저, 저게 뭐야!? 설마 대통령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김동우는 시민들과 함께 기겁하며 도망쳤다.

몇몇 주민들은 아들뻘인 군인들의 등을 밀면서 처치하라고 소리쳤다.

“실탄 장전! 쏴!”

그에 함께 있던 하사 계급의 부소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타타타타탕!

요란한 총격음이 울려 퍼졌으나.

-크아아악!

거인은 끄떡도 하지 않고 달려올 뿐이다.

거인과의 거리는 고작 50미터 정도.

패닉에 빠진 군인 중에 수류탄에 손을 가져다 대는 이도 있었지만 부소대장이 다급히 막았다.

“멍청아! 우리도 수류탄 유효 범위야!”

“그,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머릴 노려!”

부소대장의 외침에 군인들은 거인의 머리를 향해 총을 난사했지만, 총상은 금세 회복되었다.

도리어 거인의 화만 돋을 뿐이다.

“도, 도망쳐!”

결국 군인들은 총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물러났다.

“어? 최하사님! 저길!”

한 병사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을 따라 이동하고, 곧 무협지의 허공답보처럼 맹렬한 기세로 하늘을 달려오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서걱!

하늘을 달려온 남성은 눈 깜짝할 새 군인들의 앞에 나타났고,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괴물의 머리가 푸른 피를 뿌리며 날고 있었다.

-쿵!

공포의 존재였던 거인이 한순간에 당했다.

그 모습을 군인뿐만 아니라, 김동우를 비롯한 주민들도 똑똑히 봤는데, 괴물의 머리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죄송하지만 바빠서.”

그리고 괴물을 처리한 남성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영화 같은 장면에 모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저게 수행자…….”

마른 침을 삼킨 김동우와 시민들은 실랑이를 벌이던 군인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가까운 피난처가 어디라고 했죠?”

아무리 꼬장꼬장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을 직접 목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 * *

4회차까지 해서 한국인 수행자의 수는 낙오자를 합쳐도 겨우 160명밖에 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 전국을 돌면서 고집을 피우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무감각한 이들에게 사태의 심각성과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피난 거부자 밀집 구역에 몬스터를 풀었다.

오크나 고블린 등은 총기에 약한 만큼 군인들이 처리토록 하고 트롤 이상의 몬스터만 수행자들이 나서서 처리했다.

당연히 대통령과 고위 관계자들은 기겁했지만, 쓸데없이 사람들과 심력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 나는 이를 강행시켰다.

그로 인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듯 정부의 지시에 따라 피난처로 이동했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소문이 퍼져 현 상황은 꾸며낸 게 아니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그렇게 말할 때는 믿질 않더니, 진원지가 확실치 않은 소문에는 귀를 기울인다.

사람 심리라는 게 참 웃긴 것 같다.

“이 이상은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죠.”

D-DAY가 내일로 다가온 지금, 더는 바깥을 신경 쓸 순 없었다.

결국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한국의 피난율은 높은 편이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 이상으로 쩔쩔맸는데, 재난 상황에 익숙한 일본조차 버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미래신문에서 시민들의 희생이 왜 이렇게 많이 났나 했더니, 자살희망자가 많아서였구만.’

우린 도시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끄고 내일 있을 대격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전국의 비상 통신망은 해결되었네. 비록 한 세기 전에나 쓸법한 모스부호지만, 없는 것보단 낫지.”

전자회로 없이도 전화기를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기계식 전화기는 회선이 길어지면 잡음 등 장애물이 많아서 모스부호를 우선 설치했다.

연맹 연구팀에서 오우거 수정체로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재료 수급이 어려운 만큼 대량의 장비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새 반도체로 도시 내에서 사용할 무전기를 우선 생산했다.

도시 대 도시는 모스부호.

도시 내에선 모스부호, 기계식 전화기, 무전기를 혼용해서 사용할 예정이다.

전화기와 모스부호는 유선통신인지라 빠른 정보 전달을 위해 전장에는 무전기가 꼭 필요했다.

그 외 각종 생산 라인과 산업 전반 편의시설 등이 반세기 이상 전의 것으로 교체되었다.

“이후의 정보를 알 수 있으면 좋으려만.”

“어쩔 수 없죠.”

D-DAY 이전의 정보가 실린 미래신문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정보는 D-DAY 직후에서 멈춰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스트레스가 상당한지 흰머리가 부쩍 많아진 느낌이 든다.

나는 아쉬움을 표하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미래신문 자체가 우리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틀만 잡아주고 이후의 위기는 우리의 힘으로 헤쳐 나가라는 건가?”

그런 것 아닐까?

어쩌면 추후 미래신문이 다시 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지금으로썬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

D-DAY이후 몬스터가 꾸준히 등장하는 건지도 알 수 없고, 이 모든 게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싱겁게 사태가 해결될 리 없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 전체가 나서서 철저히 대비한 것이다.

차라리 이 모든 대비가 헛수고로 끝났으면 좋겠다.

이 모든 투자가 낭비로 전락한다 해도 평화와 바꿀 수 있다면 당연히 평화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징병제여서 다행입니다. 현역 49만 명에 예비군이 180만 명이니.”

“그렇지, 그리고 자네를 비롯해 수행자의 질이 높은 것도 이 나라의 복이지.”

수행자들의 전력을 현대식 군대와 비교하긴 힘들지만, 한국에서 굳이 비교해보자면 최소 군단의 전투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서도 첨단 장비로 무장한 현대 군을 농락할 수 있다.

여기에 익스퍼트 초급 이상인 국내 수행자 130명이 더해지게 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된다.

더구나 내일이 되면 첨단 장비가 먹통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대군 대비 수행자의 전투능력은 더욱 높아진다.

“예비군은 바로 동원하실 생각입니까?”

내 물음에 대통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봐야지. 그나마 규율이 유지되고 있는데, 현역보다 많은 예비군이 들이닥치면 관리가 어려울 수도 있거든.”

그가 걱정하는 것은 탈영과 선동이다.

군 생활에 익숙한 지금의 현역은 괜찮은데, 전역한 지 오래된 예비군들은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른다.

현대군의 특성이 총기를 쥐는 순간 뮤대륙의 일반 병사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은 전투력을 발휘한다.

굳이 여론이 좋지 않을 때 예비군을 끌어들이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합석하고 있던 장군들 사이에 말이 많았는데.

대통령의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비군은 대한민국 최대의 전력 중 하나로 썩일 필요가 없다면서 예비군의 동원을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언제든 동원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놓을 생각이네. 당장 그들이 총을 쥐지 않더라도 할 일은 많거든.”

나는 대통령의 판단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의 우려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니.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즉시 예비군 동원을 요구할 생각이다.

그와 달리 나는 현장에서 직접 싸우는 역할이니까.

“베스트라고 할 순 없지만 준비는 갖춰졌네.”

“이젠 내일을 기다리는 것뿐이군요.”

그렇게 우린 D-DAY 전의 마지막 회의를 마쳤다.

* * *

“다녀올게.”

“그래, 몸조심하고.”

우리 집 지하에 마련된 벙커는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여 규모가 4000평에 달했으며 국방부 벙커와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여차하면 다른 국가, 또는 천공성으로 도망칠 수 있게 텔레포트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수행자 연맹 지하 본부’라 이름 붙여진 벙커는 수행자들과 연맹에서 일하는 직원(낙오자 포함)들의 친인척만 수용했다.

범위는 ‘해당자’를 중심으로 한 2촌 이내 친척과 ‘해당자의 배우자’를 중심으로 한 2촌 이내의 인척이다.

이는 예전부터 정해 놓은 규칙이었기에 어떤 예외도 적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수행자와 연맹 직원들이 연인관계에 있던 인물과 다급하게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나는 이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차피 벙커는 그 정도의 유도리를 발휘해도 될 만큼의 넓었으니.

덕분에 현재 지하 벙커에 수용된 인원은 총 1100명에 달했으며, 마을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사람들로 붐볐다.

드디어 찾아온 대격변의 날.

벙커 밖으로 나서는 수행자들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우리 수행자들에게 몬스터와의 전투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가족들 입장에선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덕분에 벙커엔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으며, 인사를 마친 수행자들은 하나같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봉봉아 부모님 잘 지켜드려.”

“응! 알았어!”

내 말에 며칠 사이 중형견 수준까지 커진 새끼 다이어울프 두 마리를 거느린 봉봉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봉봉이의 전투력도 무시할 수 없다.

외견과 어울리지 않게 익스퍼트 중급 수준의 무력을 지녔는데, 어느 정도 안전하다 싶으면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성장을 시킬 생각이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에 곁에 두고.

나는 봉봉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벙커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를 전투조에 배정이 된 수행자와 일부 낙오자(선행자)가 뒤따랐다.

우린 연맹 본부 쪽 출구를 이용해 지상으로 나왔는데, 곳곳에 진지를 구축한 군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배치는 예정대로입니다.”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7개 조로 나뉘어 흩어졌고, 나와 김선아를 비롯해 익스퍼트 상급 수준의 2회차 정예들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잠시 후.

[지구 환경 변환 중…….]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오르면서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우린 급히 이 사실을 청와대에 알렸고.

주변 군인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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