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61
74. 공표(2)
국민들의 혼란과 별개로 수행자 연맹은 평온하기만 했다.
예전부터 이 사실을 인지한 만큼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었고 가족들의 피난처도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 보면 치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추후 몬스터와 목숨을 걸고 싸울 사람들에 대한 특혜로 생각해 줬으면 한다.
그렇게 측근들과 함께 인터넷 반응을 살피던 우린 TV로 시선을 옮겼다.
TV 속에서 비추는 장소는 청와대 정문 앞이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비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예정된 시위라기보다 이번 사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돌발적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연맹 얼굴마담들의 활약을 지켜보죠.”
내 말에 측근들은 흥미를 표하며 TV를 살폈다.
청와대 정문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항의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하늘로 향하고 그에 따라 카메라 앵글도 하늘로 향했다.
그곳엔 반짝이는 무언가가 떠 있었는데, 그게 점점 커지더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현장감을 더해주고, 이어서 카메라에 잡힌 작은 체구의 사람이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퉁!
그런데 주변에서 비명을 지르고 기겁하며 놀라던 것이 무색하게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안정적으로 땅에 착지했다.
[이, 이게 무슨?]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묘기.
현장에 있던 모두가 말을 잃었다.
그리고 착지한 인물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바로 K팝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아이윌의 주축 멤버 주아였다.
그녀는 비주얼에 중점을 둔 검은 제복에 등 뒤로 기다란 창을 메고 있었다.
주아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주변을 스윽 둘러 보더니, 오러를 실은 발을 쿵 내리찍었다.
-콰앙!
그녀의 발자국을 중심으로 작지 않은 크레이터가 생기며 아스팔트 조각이 튀었고, 사람들은 수류탄이 터진 듯한 소음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주아는 짜증을 가득 담아 말했다.
[지금은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주변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냉랭한 분위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내분을 일으키지 마시죠.]
다소 강압적이지만, 앞서 보인 특별한 모습 때문인지, 그녀의 빼어난 미모 덕뿐인지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항의하던 사람들 중 아무도 답을 못하고 주춤거리기만 하자, 그녀는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적은 괴물들이지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덕분에 TV를 보던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고, 주아는 현장에 있던 이들이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자, 허공을 계단 밟듯 뛰어오르며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졌다.
“연기해도 되겠는데?”
내 말에 함께 있던 동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방송에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주아 뿐만이 아니었다.
수행자가 된 연예인과 유명인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비췄으며,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미 정부의 통제에 따르고 있는 언론사의 시선 돌리기 방송이었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돼서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는 기관은 모두 정부의 입김이 닿은 곳이라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 돌리기’는 제법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은 현 상황에 혼란을 표하면서도 특수한 힘을 지닌 이들에 관심을 보였고, 방송에서 연신 이들을 홍보하며 수행자들을 부각시켰다.
[수행자란 존재는 몬스터들의 침략에 대비한 신의 안배.]
[매달 1일, 전 세계적으로 선택받은 1천여 명이 사람이 수행자가 되며, 이들은 꿈속의 모험을 통해 특수한 능력을 손에 넣는다.]
[한때 이능의 힘을 사용하는 수행자들과 정부가 대립하기도 했지만, 몬스터가 지구에 덮칠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힘을 합치고 있다.]
[전 세계 수행자들을 총괄하는 연맹의 회장과 부회장이 한국인. 수행자의 능력은 한국이 단연 세계 최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반드시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런 이들의 특징은 묘하게 단합이 잘 된다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국정원의 보고에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요?”
“네,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며 간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예고했지만, 경찰이 예외조항으로 시위를 허가해주지 않았죠.”
비주류 종교단체와 현 정부와 반대되는 정치 성향을 가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통제에 못 따르겠다며 전면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정부와 수행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외신 기사와 뉴스 모두 국가 통제 속에 만들어진 허구라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마음대로 하라며 방치하고 싶지만, 그들로 인해 잘 흐르고 있는 물살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는지라, 강경 대응을 지지했다.
“제압하는 과정에 수행자도 참가시키도록 하죠. 그럼 더 효과적이겠죠.”
“알겠습니다.”
어제 큰 이슈를 끈 주아를 비롯한 얼굴마담들의 활약을 녹화된 영상이라며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증언이 많고 유X브 사이트에 휴대폰 촬영 영상도 많이 떠돌았지만, 여전히 긴가민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인터넷 커뮤니티 ‘솔티’는 반정부 성향이 매우 강하다.
이들은 현 정부에서 어떤 좋은 일을 해내도 그 의도를 의심하고 음모론을 만들었으며, 대통령을 조롱했다.
사실 이들의 행동은 신념이라기보다 흥미 주의가 강했는데, 전 세계가 난리가 났음에도 이전의 버릇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경찰에서 시위를 금지시켰는데, 이래도 되나요?”
한 커뮤니티 회원의 걱정에 솔티의 관리자 백승엽은 콧방귀를 꼈다.
“어차피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하면 쉽게 못 건드려. 뭘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도 이 이상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겠지.”
그에 해당 회원은 자신들이 당해봤자 아무도 신경도 안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이 방해하면 시위가 아니라 잡아떼면 그만이야.”
이게 뭔 개소린지.
그럼 준비한 플래카드들은 뭔데.
하지만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단단히 정신무장을 한 사이버 전사들이었다.
“승엽씨 저기 은행 앞에서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이들이 찾은 장소는 강남역.
일부러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골랐으나, 지금의 강남역은 평소에 비해 휑하기만 했다.
직장인들은 출근하지 않았고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기 때문에.
그나마 은행 앞은 사람들로 붐볐는데, 국가에서 은행거래에 제한을 두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돈이 있어 봤자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도 거의 없다.
편의점이나 슈퍼, 마트 등 식료품을 판매하는 가게 중에 물건을 푸는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었으니.
그런데 백승엽은 그런 은행이 자신들의 의견을 내비치기 좋은 장소라 생각했는지, 주변 은행을 순회하며 시위를 벌였다.
미리 배치된 군인들이 곱지 않게 바라보았지만, 그래 봤자 일반병.
군필자로서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하성훈 대통령은 퇴진하라!”
“사기꾼 하성훈은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혀라!”
100여 명의 시위자들은 기세 좋게 외쳤는데, 애석하게도 이들의 시위는 순탄치 못했다.
군인들이 상부에 보고하자 단 3분 만에 경찰이 출동했기 때문이다.
“해체하세요!”
당연히 허가받지 않은 이들의 집회에 해체를 지시했다.
그러나 쉽게 물러날 거였으면 애초에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찰들은 무엇을 보장받은 것인가!”
“가족을 지키지 않고 태평하게 업무를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하성훈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린 시위를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에 표현의 자유가 없어졌나!”
점점 경찰과 시위대의 말싸움이 커졌고, 결국 체포를 위해 의경이 투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때.
-털썩.
시위대의 리더인 백승엽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일제히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야?”
당연히 백승엽은 물론, 경찰과 주변에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고.
하늘에서 두 남녀가 천천히 내려왔다.
“지원 왔습니다.”
검은색 제복 자락을 펄럭이며 사뿐히 지상에 내려선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수행자?”
경찰은 물론 시민들은 그들이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또한 여성 수행자가 눈에 익다는 느낌이 든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시아다. 아이윌의 김시아야.”
수행자 관련 영상을 TV에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우, 웃기지 마! 너희 약 쓴 거지?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어떤 장치가 있을 거야!”
백승엽은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쳤고, 시아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에 백승엽은 하늘은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상대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과격한 조치.
금방이라도 피떡이 될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는 지면에 닿기 직전 멈춰섰다.
“정신 차리세요. 당신 같은 사람들의 입장을 일일이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차가운 시아의 말에 겁에 질린 백승엽은 실금을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뭐 하세요?”
그리고 시아 곁에 있던 남성이 경찰들에게 눈치를 주자 얼른 의경들이 시위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할 일을 마친 두 사람은 다시 하늘로 솟구쳤고, 오래지 않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대박.”
누군가의 감탄사는 주변으로 전염되었으며, 해당 영상은 인터넷 라이브를 통해 자동으로 업데이트가 되었다.
*
75. D-DAY
때가 다가올수록 지구 곳곳에선 이상 현상이 많아졌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오로라가 관측되고, 아프리카에 눈이 내렸으며, 곤충과 동물들이 대량으로 사람들의 영역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이상 지형’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했는데, 독도와 일본 사이에 제주도 크기의 섬이 솟구쳤으며, 중국의 대도시인 항저우에 거대 협곡이 생기면서 주민들이 증발하기도 했다.
더는 이상 현상을 숨길 필요가 없는지라,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 해당 사실을 그대로 보도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D-DAY를 3일 앞두고 본격적으로 국민들을 안전구역으로 이동을 시켰다.
우리나라는 서울을 비롯해 20개 대도시에 방어라인을 꾸렸다.
대통령이 국가 위기를 공표하고 다음 날부터 전국적으로 치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안전구역 이주가 시작되자 범죄율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감시하에 놓이다 보니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도 저지를 수가 없는 환경이 된 덕이지만 말이다.
“대체 왜 버티고 있는 거야?”
하지만 안전구역 이주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약 10%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죽어도 고향은 못 벗어난다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과 인적없는 도시에서 기회를 노리는 예비 도둑들도 있지만.
끝까지 정부를 부정하는 앞뒤 꽉 막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통령께서도 골머리를 썩이고 계십니다.”
나는 국정원 직원의 이야기에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냥 통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버리죠?”
“그게 인원이 너무 많아서.”
“품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잘 지켜야죠. 저들이 섞여봤자, 통제만 힘들 것 같은데요?”
마음은 알지만 곤란한 표정을 짓는 국정원 직원을 보며 혀를 찼다.
“지난번 웨이브와 신규 이상 지형에서 포획한 몬스터들을 풀어버리죠.”
“네?”
내 제안에 그는 기겁했지만, 나는 간단히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방법이 아니냐며 이를 강행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