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59
73. 우리도 있다(2)
나와 청아는 오대수가 얼음을 깨고 나오지 못하게 라피스 프리징(5서클)을 사용했다.
그사이 추기경과 대주교의 손을 떠난 새하얀 빛이 오대수에게 깃들고.
[키아아악!]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소름 끼치는 비명이 직접 들려왔다.
그에 성직자들은 깜짝 놀라 잠시 머뭇거렸다.
“계속하세요.”
“하지만…….”
“아, 그냥 공격하기보다. 이걸 쓰면 더 효과적일 겁니다.”
나는 아공간에서 신성력 강화 아이템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일전에 지하 도시에서 얻은 신력 강화 반지(보유 신력 100% 증가)와 오리하르콘 무기를 손에 쥔 성직자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신성력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끼아아아아아아악!]
폭사되는 빛이 더욱 강해지고 비명은 더욱 애잔해졌다.
추기경과 대주교는 아티팩트와 신기 수준의 무기를 처음 접해보는지라 신세계를 겪은 표정을 지었다.
“어찌 이런 성스러움이.”
“오오, 이것이야말로 성물이로다.”
방금 머뭇거렸던 건 잊었는지 그들의 감탄은 악마의 비명으로 이어졌고, 공격은 10분 뒤 블리자드 마법이 깨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털썩.
엄청난 열기를 토해내며 얼음 속에서 빠져나온 오대수.
녀석은 억울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데이아스 죽은 지 한참 됐는데…….”
“아, 그래?”
정신체인 악마종은 이미 예전에 소멸되었지만, 악마의 능력은 아직 오대수에게 남아 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몸을 덜덜 떨어대는 오대수에게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미 신체가 악마에게 동화되었던 터라 발끝에서부터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뮤대륙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내 당부에 오대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라졌다.
“죽은 겁니까?”
성직자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죠. 수행자는 한 세계에서 죽어도 다른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거참…….”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머리가 많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믿는 신과 신성력을 내려주는 신이 동일인물인지를 떠나서 성직자가 전력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에 테라시아 후작보다 강한 악마종을 처치한 것을 보면 이들의 힘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어째 지구가 점점 뮤대륙화 되어가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우선시되는 만큼, 조금 더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변화는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수행자들은 매일 연맹지부에서 성수로 검사를 해야겠네요. 이번처럼 괜히 악마종이 들러붙어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나저나 뮤대륙의 오대수는 어떻게 처리하지?
만약 오대수의 정신에 여전히 악마종이 붙어 있는 상태라면 잠재적 적인 이상 처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악마종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라면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만큼 살려서 죗값을 치르게 할지, 그냥 죽여 버릴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나중을 위해 이런 일을 전문으로 다루는 부서를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수행자가 증가하면 자연히 문제도 많아질 수밖에 없고, 내가 일일이 신경을 쓸 순 없는 노릇이니.
* * *
마전기를 발견한 신태화 교수는 연맹 소속으로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미래를 대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그가 진행 중인 연구는 마력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전자장비가 먹통이 되는 원인 해소와 효율적인 마전기 생산이다.
애석하게도 전자장비 관련 연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나 마전기 생산은 한 단계 더 발전된 기술을 손에 넣었다.
원래는 마력을 전자 분해하여 마전기를 만들었는데, 이젠 마석에서 직접 전기를 추출하여 사용할 수 있는 공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지훈에게 증명해 낸 셈이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신태화 교수는 전자장비 먹통 해소를 위한 반도체 개발에 애를 먹으면서 굉장히 저기압이었다.
북한 개마고원 연구단지.
연맹 소속 연구팀은 신태화 교수를 필두로 각국의 유명 과학자들이 참여시켜 덩치를 키웠다.
연구팀은 북한 개마고원에 자리를 틀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이 ‘이상 지형’으로 항상 마력이 존재하는 땅이기 때문이다.
연구 시설은 이상 지형 경계선에 위치했다.
수시로 마력이 존재하는 장소와 기재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오가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건물은 여러 개의 컨테이너를 이어 만들었지만, 내부 시설만큼은 국내 반도체 연구소 못지않았다.
“찾았습니다! 미스터 신!”
신태화 교수는 예고도 없이 자신의 연구실 문을 쿵 열며 나타난 미국의 화학 박사 ‘베일’을 보며 반문했다.
“찾다뇨?”
“마력 환경 속에서도 문제없이 반도체의 역할을 해주는 물질이요!”
“그, 그게 정말입니까?”
현재 기존 반도체들은 마력의 영향을 받으면 반도체가 아닌 부도체가 돼버린다.
그래서 아예 소재 하나하나 다시 살펴야 했는데, 순수소재와 각종 합성소재를 살펴봐도 원하는 물질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웨이브로 얻은 몬스터 사체나 던전 획득물로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소재를 찾아 연구하던 베일 박사가 새로운 반도체를 발견해 냈다고 한다.
신태화 교수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는 연구소 전체에 퍼졌고, 어느새 베일 박사의 연구실 앞은 관련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단순히 반도체만 발견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 베일 교수는 함께 있던 S전자 반도체 연구원에게 자그마한 소자를 건네받았다.
“가공까지 성공했죠.”
“오오.”
그가 보여준 것은 트랜지스터.
반도체에 각기 다른 불순물을 첨가한 N형, P반도체를 결합해 만든 기본 소자였다.
“제대로 기능하는군요.”
트랜지스터의 작동을 확인한 이들은 베일 박사를 따라 대기 중에 마력이 흐르는 이상 지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트랜지스터에 전류가 통하는 것을 확인하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환호했다.
“베일 교수님, 축하합니다! 당신은 영웅입니다!”
베일 교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것으로 D-DAY와 동시에 지구의 과학 기술이 반세기 전으로 후퇴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소재는 무엇에서 발견한 겁니까?”
그에 베일 교수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오우거의 수정체입니다.”
“수정체라면 눈에 있는 그거요?”
“네, 맞습니다. 현재 수집된 몬스터 중 오우거의 수정체만 가능하더군요.”
태연한 베일 교수의 대답에 신태화 교수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오우거의 수정체라니.
현재로썬 얻을 수 있는 소재의 양이 너무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얻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변화되는 환경에 맞추기 위해선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만으로 지금 당장은 D-DAY가 덮쳐오면 문명적 후퇴와 군사력 감소는 피할 수 없었다.
* * *
케일론 왕국 베르트 공작령, 연맹 본부.
나는 무릎이 꿇려진 채 성수를 뒤집어쓴 오대수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을 향해 일말의 의심을 품지 않았다면 지구에 어떤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그의 눈빛에선 더 이상 독기 따윈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살고 싶다는 의지밖에 느껴지지 않았는데, 비록 오대수가 지금은 악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지구에 큰 위협을 초래했던 것은 변함없는 만큼 얌전히 풀어줄 수는 없었다.
“한순간의 바보 같은 선택으로 지구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군요.”
“잘못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용서를 구하는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더구나 보잘것없는 실력도 성장이 멈췄으니, 당신의 능력치는 뮤대륙에서 병사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써먹으려야 써먹을 구석이 없다는 것이죠.”
병신이란 말을 길게 포장하며 오대수를 조롱하는 이유는 내가 진짜 화가 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에 대한 처분을 결정할 때가 되어서이다.
“뭐, 지구의 위기는 제쳐놓더라도 당신은 무고한 시민 4명을 사살하고, 1명의 여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습니다.”
그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지만, 나는 선례가 될 이번 사건을 엄하게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의 죄는 죽음으로 씻도록 하죠.”
더구나 한번 병신 짓을 한 인간은 재범의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나는 그냥 깔끔하게 그를 지워버리기로 했다.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만약 우리가 녀석에게 패했다면, 입장은 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지훈 님! 지훈 님! 잠시만요!”
내 손짓에 베르트 공작가의 기사들이 오대수를 끌고 갔고, 결국 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눈물을 쏟았다.
그런 오대수를 감정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나는 힐끔 김선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는데, 내 결정이 타당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나도 그렇지만 그녀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목숨을 날린 만큼 오대수라고 특별할 게 없었다.
별것 아닌 조무래기였지만, 나는 이번 사태로 느낀 게 많다.
특히 김선아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슬슬 입장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중간한 태도로 고수해 봤자 오히려 마이너스일 뿐, 나아질 것이 없으니.
* * *
74. 공표
[대공위를 획득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향상됩니다.]
[350,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수행자 최초로 대공위를 획득하여 추가로 350,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드디어 대공위가 내려졌다.
나는 이제 케일론 왕국의 대공작이자, 미하엘 국왕의 허가 아래 칭왕을 하여 대공국의 공왕이 되었다.
케일론 왕국의 남부는 베르트 대공국으로 통합되었으며, 기존의 귀족들은 영지를 반납하고 서부의 새로운 땅을 하사받아 떠났다.
나는 기존 베르트 공작령의 수도를 그대로 대공국의 수도로 정했으며, 변경백이 되면서 얻은 땅들만 공왕령으로 두고 나머지는 영지로 분할하기로 했다.
공왕은 케일론 왕국에서도 통용되는 남작과 자작위를 하사할 수 있으며, 국왕에게 요청하면 백작위도 얻어낼 수 있다.
이번에 내가 공왕이 되면서 국왕은 3명의 백작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나는 내 마법 스승이었던 고든에게 백작위를 주며 대공국의 내무대신으로 임명했고, 사숙조인 크리스토퍼 남작에게도 백작위를 주며 외무대신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백작위는 수행자에게 주었는데, 김선아가 아닌 히로시에게 넘겨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아끼는 부회장에게 백작위가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김선아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작위는 히로시에게 돌아가고 김선아에겐 자작위가 하사되었다.
가족끼리 다 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순 없으니까.
물론, 내 나라를 내가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지만, 나는 베르트 대공국을 수행자들의 수도로 만들 생각이다.
수행자 한 명 한 명이 벌어들이고 소비하는 금액이 엄청난 데다가 무섭게 성장하는 이들의 전투력이 더해진다면 아무도 베르트 대공국을 넘보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보면 수행자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뭐든지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의 성장은 곧 연맹의 성장을 의미하고, 이미 엄청난 돈을 수행자들에게 투자하고 있는 만큼 불만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연맹의 고위 간부인 1회차 수행자 전원에게 계승 남작위와 자그마한 영지를 하사했다.
“내일이군요.”
김선아의 이야기에 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당장 바뀌는 것은 크게 없었다.
그저 어중간했던 김선아와의 관계가 공고해졌다는 정도일까?
“혼란을 최소한으로 막아야 할 텐데.”
“잘될 겁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왔으니까요.”
심지어 말투도 아직 고치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일이 바로 정부가 국민들에게 D-DAY에 대한 정보를 공표하는 날이었으니 말이다.
엄청난 혼란이 예고되는 상황.
자칫 국가 경제와 치안은 물론, 체제까지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포함한 김선아도 그렇고, 각국의 고위 인사들의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이미 수차례 의혹이 나오긴 했지만, 모두 무마를 해왔기에 이상 현상이 크게 논의된 적이 없다.
그래서 내일 지구 전체에 들이닥칠 혼란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