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57
72. 하늘 위의 하늘 (3)
“저, 실은…….”
김선아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오대수와 있었던 일을 지훈에게 밝혔다.
오대수가 김선아에게 보인 반응과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착각.
강제로 현실을 마주시킨 이야기까지 모두 들은 지훈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김선아가 왜 그러냐며 묻자, 그는 가볍게 답했다.
“전형적인 조무래기네요.”
감정이 가득 담긴 악담에 김선아와 옆에 있던 클로이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그런 조무래기들이 항상 사고를 치더군요.”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고 하지만, 멍청한 인물일수록 이용당하기 좋을 수밖에 없다.
총회에 나타났던 적이 사람인지, 몬스터인진 지도의 표식만으로 알 수 없으나, 지훈은 자신의 공격을 너무도 유유히 피한 적의 존재가 여러모로 걸렸다.
지훈은 김선아에게 말했다.
“거점을 바리스 시로 옮기시죠. 그런 놈들과 일일이 얽힐 필요 없습니다.”
그의 제안에 김선아는 클로이를 빤히 바라보았고, 클로이는 가볍게 답했다.
“제 허가가 필요한 일입니까?”
어깨를 으쓱인 김선아는 지훈에 제안에 따라 거점을 아예 영주성이 위치한 바리스 시로 옮겼다.
“대공 작위를 받기 전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항상 살인사건을 달고 다니는 애니메이션의 꼬마 주인공처럼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젠 당연하다 생각했다.
* * *
“하핫!”
오대수는 공격 한 번에 폭사한 오우거를 보며 유쾌한 웃음을 흘렸다.
“이거 뭐야? 죽어라 수련할 필요가 없는 거였네!”
그리고 오우거 외에 다양한 몬스터가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오대수가 검을 찌르면 관통력을 지닌 검은 기운이 직선 상의 모든 것을 꿰뚫고, 검을 휘두르면 전방 10미터 이내의 모든 적이 두 동강 났다.
또한 요령을 터득하니 검 끝에 먹물 같은 새까만 기운을 모아 방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우 강력한 폭발력이 발생하여 타겟을 날려 버렸는데, 그 위력은 고위 마법에 뒤지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들은 어쩔 수 없지. 원래 뭐든지 선택받은 사람만이 위로 올라가는 것뿐이야. 그리고 너는 선택을 받은 사람이다.]
오대수는 머릿속을 울리는 데이아스의 목소리에 만족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이 능력이면 조지훈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건가?”
[베르트 공작 말이지?]
“그래.”
[듣기로 그는 최상급 익스퍼트의 기사이자, 6서클의 마법사라 하더군. 무력은 소드마스터에 비견된다 들었다.]
마검사라니, 아주 멋진 포지션이 아닌가.
남들은 하나도 대성하기 힘든 것을 지훈은 두 개 모두 최고의 위치를 사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삼 지훈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의 관심은 자신이 그보다 낫냐는 것.
낫지 않다면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했다.
지훈은 생각지도 않는데 오대수는 그를 라이벌로 여겼다.
“그래서 결론은?”
[물론 밀릴 이유가 없지. 아니, 이길 자신이 있다. 내 능력은 아슬아슬하게 소드 마스터에 한발 걸친 수준이 아니니.]
“오오!”
[그리고 마검사라는 게 그럴싸해 보여도 그다지 효율이 좋다곤 볼 수도 없어. 검을 휘두르면서 동시에 마법을 캐스팅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마스터(7서클급)와 하이 마스터(8서클 급)의 중간.
그것이 오대수에게 달라붙은 데이아스의 전투력이었다.
“지구에서도 온전히 네 힘을 사용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직접 겪어봐야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신체이기에 네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되는군.]
오대수는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만한 힘이 있다고 해도 뮤대륙에서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대놓고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대수는 걱정을 가득 안고 지구로의 복귀를 기다렸다.
“데이아스?”
[큭! 좋아. 아주 좋아.]
뮤대륙에서 5일을 머물고 돌아온 현실에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곳이 수행자들의 세상인가?]
그렇게 오대수는 악마종을 지구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럼,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단 뜻이군.”
연맹과 세계 정부의 노력 끝에 패러사이트를 모두 정리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패러사이트 퀸보다 강력한 악마종이 지구에 발을 들였다.
* * *
8월 6일.
이제 수행자를 위협할 것도 없고, 국가에서 발 벗고 나서 보호하니 굳이 예전처럼 연맹 본부 출근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그래서 3회차부터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을 주고 연맹 본부에 참석하게 하고 있는데, 오늘이 4회차 수행자들이 처음으로 지구의 연맹지부나 본부를 찾는 날이었다.
“오대수씨가 안 왔군요.”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의 김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대놓고 수상하게 행동하다니.”
나라면 괜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되려 평범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오대수는 그런 발상 따윈 없는 것 같다.
김선아가 말했다.
“이 이상 질질 끌어봐야 득 될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직접 추궁을 하시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강압적으로 대처해야겠습니다.”
아직 정확한 사태파악이 안 됐지만, 수상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상대가 연맹의 수행자란 이유로 더는 편의를 봐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오대수의 강제 출석을 부탁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만약을 대비해 오대수의 신변을 확보할 수 있게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모든 게 오해에서 비롯되어 내가 과민 반응을 보인 거면 좋겠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죄, 죄송합니다. 현장 요원들과 연락이 두절 됐습니다. 현재 타겟의 위치를 재파악하고 있습니다.]
이건 뭐…….
단순한 기우 정도로 여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있던 장소가 어디죠?”
[노원구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회장실의 문을 열며 외쳤다.
“봉봉아!”
내 외침에 봉봉이가 왜 부르냐며 개 두 마리를 끌고 나타났다.
이젠 제법 여자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봉봉이.
그래 봤자 이제 곧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생 수준이지만, 길 가다 보면 연예 기획사에서 명함을 건네올 정도의 미모를 갖추고 있다.
“아빠랑 같이 산책가자.”
내 이야기에 봉봉이는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선아와 소환형 사역마인 청아가 뒤를 따랐다.
* * *
의정부에 위치한 2금융 은행.
동네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대출보단 예금과 적금 업무가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는 곳에 셔터가 내려가 있다.
영업시간이기에 셔터가 내려가 있으면 의문을 표할 법도 하지만, 주민들은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마지 은행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꺅!”
은행 금고에서 여직원을 희롱하던 오대수는 흥이 식었다는 표정으로 직원을 걷어찼다.
“재밌네, 솔직히 영화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던 게 힘을 갖고도 가난하게 사는 영웅들이었어.”
[사람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일종의 세뇌인 셈이지. 그런데 정작 힘을 가진 이 세계의 지도계층은 정의로울까? 배를 곪으며 정의를 운운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게 어딨겠어.]
“맞아. 힘이 있으면 누리고 살아야지.”
[그러고 보면 연맹이란 조직도 참 어리석어. 그놈의 도리가 뭔지.]
데이아스와 오대수는 제법 죽이 잘 맞았다.
오대수는 자신의 행위의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충실한 만족감을 드러냈는데, 이는 데이아스의 정신 조작 같은 것이 아니었다.
데이아스는 오대수가 가진 본능에 부채질했을 뿐이다.
“정의롭기만 한 슈퍼히어로의 유행은 끝났어. 가끔은 부도덕한 짓을 하더라도 강력한 힘을 가진 빌런과 다크히어로가 주목받지.”
[그게 더 멋지기도 하고?]
“그럼.”
검은 그림자 속에 금고의 내용물을 모두 털어 넣은 오대수는 알몸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몸을 덜덜 떠는 여성에게 다시 다가갔고, 그녀는 살려달라며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무서웠어?”
오대수는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보며 물었다.
그에 여직원은 괜찮다며 고개를 도리질했으나, 그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아직 내 위엄이 부족한가 보네?”
그러면서 오대수는 주먹을 들어 올렸고, 그의 손속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기억해낸 그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거 보소, 완전 쓰레기 새끼 아냐?”
언제부터 거깄었는지, 은행 입구에 서 있는 남성이 한껏 인상을 쓴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지훈?”
어째서 그가 여깄는 거지?
오대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날 감시하던 요원들을 정리해서 그런 건가? 아니, 그것치곤 지나치게 빠른데?”
의문을 표하는 오대수의 모습에 지훈은 상대를 지정해 공간이동 시키는 리콜 마법으로 은행 여직원을 구했다.
“악마에게 힘을 얻어 한다는 짓이 고작 은행털이에 성추행이냐? 대체 얼마나 조무래기인 거야?”
이어서 은행 안으로 들어온 김선아, 봉봉이, 마리오네트가 한마디씩 했다.
“인간쓰레기.”
“여자의 적.”
“거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훈이 줄줄이 달고 온 미녀들의 매도에 오대수의 입꼬리가 심하게 씰룩였지만, 이내 그가 악마의 존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경계심을 표했다.
[신수다. 저 녹색 머리 꼬마는 인간이 아니야.]
그에 오대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정말 완전히 주인공 포지션이구만.”
그러면서 김선아를 바라보았는데, 첫눈에 반한 여성이 유부남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내 히죽 웃음을 흘렸는데.
“주인공처럼 보이는 녀석이 알고 보니 엑스트라였다는 스토리도 있지. 어차피 너를 처리해야 내 행동에 자유가 있을 테니, 잘됐어.”
지훈은 그의 이야기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이 새끼 중2병 중증이네.”
* * *
[회장님, 주변 주민 통제 끝났습니다.]
나는 귀에 착용하고 있던 이어폰으로 들려온 국정원 담당자의 보고에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안개 장막.’
지훈을 중심으로 안개 발생하며 주변을 잠식해나갔다.
봉봉이와 은행 여직원은 그 전에 내보낸 상태여서, 안개 안에는 나와 김선아, 청아, 오대수만이 남았다.
“이건?”
안개를 처음 보는 오대수는 이상 현상에 주변을 경계했다.
이왕이면 패러사이트 때처럼 자연적으로 안개가 펼쳐지면서 퀘스트가 나타나면 더욱 좋았겠지만, 상대가 수행자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김선아, 마리오네트는 동시에 장비를 소환하여 착용했고, 화려한 착용 이펙트 덕에 애니메이션의 변신 장면을 연상케 했다.
덕분에 오대수는 적임에도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얌전히 항복해라.”
내 권고에 오대수는 검은색의 기운을 뭉쳐 검과 갑옷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니면 나를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녀석의 강함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손끝을 저릿하게 만드는 감각.
내가 무모하게 테라시아 후작의 앞을 막아섰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 테라시아 후작 같은 강자가 둘이 있어도 쉬이 승리를 장담 못 할 상대.
하지만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적이 나보다 강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나는 여명의 봉화를 필두로 각종 버프를 사용했고, 김선아도 내가 갖지 못한 여러 종류의 버프를 더해 주었다.
“이왕이면 원거리 공격 위주로 싸우면서 최대한 몸을 사리세요.”
“네.”
참고로 우리 셋은 모두 사고 가속 스킬을 갖고 있다.
김선아는 이번에 포인트샵에서 제노사이드와 유도탄을 포함해 검사의 전형적인 약점인 원거리 공격력을 보완했으며, 청아는 마법 세팅을 시킨 상황이다.
두 사람이 사고 가속 속에서 회피와 방어에 열중하며 원거리 공격을 사용한다면 마스터급 상대라 해도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덤벼.”
나는 오대수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뒤져!”
마치 강자의 여유처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오대수는 검은 검을 들이밀며 매섭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10번이나 중첩된 6서클의 레이저 캐논을 선물해주었다.
[중첩 공격 / 액티브 / LV- / 히든(A)]
-스킬이나 마법을 중첩시켜 위력을 증폭시킨다.
-최대 10번까지 중첩 가능하며, 동일 스킬과 동일 마법만 중첩할 수 있다.
10번의 중첩을 거친 레이저 캐논에 증폭 스킬이 더해지고, 오리하르콘 무기를 포함한 각종 장비빨이 더해지니, 웬만한 7서클 마법을 상회하는 공격력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