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55화 (155/247)

# 15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55

72. 하늘 위의 하늘 (1)

뮤대륙의 대공이란 직책은 지구와 조금 다르다.

지구에서 대공은 공작 상위의 명예 작위란 느낌이 강한 반면, 뮤대륙에선 모국의 허가 아래 ‘칭왕’을 할 수 있는 속국의 군주를 뜻했다.

때문에 대공은 자신의 영토에서 ‘공왕 전하’(폐하는 독립국 군주)라 불리며, 독립적으로 부하들에게 귀족의 작위를 하사할 수도 있다.

물론, 공왕은 속국의 군주기 때문에 권력은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자작위까지밖에 하사할 순 없지만, 영주를 임명할 수 있어 일반적인 귀족과 차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공왕에게 하사받은 작위는 모국(케일론 왕국)에서도 통용되는 공식 작위다.

세금은 조공형태로 내야 하지만, 보유할 수 있는 병력 숫자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재 미드랜드엔 대공령이 하나도 없는데, 신하에게 지나치게 큰 권한을 준다 하여 폐지되다시피 한 제도다.

중부의 인구 대국인 크로스비 왕국의 왕가가 대공국 공왕가 출신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상황이다.

“폐하가?”

이제 나도 완전히 뮤대륙 생활이 몸에 익어서 국왕을 지칭할 땐 절로 폐하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에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해온 클로이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지훈님에게 대공의 지위를 하사하고 남부지역의 관리를 이양할 생각이라더군요.”

의외다.

요즘 케일론 왕국으로 이민 온 수행자들이 나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급격한 세력 확장에 귀족들의 견제가 심하다고 들었다.

재상 크로이센 공작파와 마탑주 엠브리오 공작파가 힘을 합쳐, 견제를 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설마 국왕이 이런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신하의 세력이 커졌다고 해서 그에 맞는 권력을 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새삼 그의 배포를 느낄 수 있는 선택이었다.

미하엘 국왕이 일전에 대공의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이렇게 견제가 심한 와중에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도 큰 결단이 필요했다.

‘국왕이 성군인진 아직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사람 성향은 잘 파악하는 것 같다.’

나도 바보가 아닌지라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정돈 추측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나를 견제하는 선택을 했다면, 아마 편히 왕좌에 앉아 있긴 힘들 것이다.

국왕이 언제고 나를 적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 안에 심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에 따른 대처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내가 6서클+최상급 익스퍼트로 마스터급의 무력을 지닌 마검사이긴 해도 한 국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개인의 무력 외에도 금력과 권력, 세력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그 수준은 왕실이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정도다.

심하면 나라가 둘로 쪼개지거나 왕좌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노릇.

때문에, 이 조치는 매우 현명한 결단이라 볼 수 있다.

‘국왕 입장에서 현 상황을 유지하며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국왕은 내게 힘을 실어주는 선택을 했고, 덕분에 그에게 빚을 진 것 같은 형태가 되었다.

적성국에 대한 국경 방어는 돈 많은 내가 재산으로 해결하고, 국내 정치권을 견제할 수 있는 거대세력을 시야에 둠으로써 왕실의 안위를 도모한다.

더불어 뮤대륙에서 수행자의 이미지가 안 좋은 와중에 자신을 믿어준 국왕을 배신하게 된다면 수행자란 존재 자체가 미드랜드의 공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

통 큰 배팅으로 보이지만 여러 계산이 깔린 선택이었다.

‘분명한 것은 내 입장에선 나쁠 게 하나도 없다는 거다.’

더구나 대공이 되면 엄청난 양의 포인트가 주어질 게 뻔하다.

“대공령은 이곳 남부가 되겠지?”

“그럴 겁니다.”

케일론 왕국에서 가장 많은 영지가 밀집된 지역은 서부이며 가장 많은 대귀족이 몰려 있는 곳은 중부와 북부다.

그에 비해 남부는 대귀족도 거의 없는 데다가 영지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는 결코 남부가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미개척지와 산악지형, 금지가 많아서 그런 것인데, 실제 케일론 왕국의 남부는 서부나 북부 이상으로 거대했다.

면적만 따지면 한반도의 4배 수준.

온전히 개발을 해낸다면 100명이 넘는 영주를 새로이 임명할 수 있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에서 케일론 전도를 꺼내 살폈다.

지도 기능은 한계가 있어서 국가 전체를 살필 순 없다.

[트리엔탈 대산맥]

[제니아 대산맥]

[간트 협곡]

[체르시아 대습지]

[아르가스 우림]

[사자의 땅]

여러 불모지가 눈에 띄는데, 왕국 내에 미개척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몬스터 때문이다.

지구와 달리, 뮤대륙 미드랜드 국가들은 대부분 영토 내에 적지 않은 미개척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미개척지를 청소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그곳을 건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한 땅이 많다는 점과 투자 대비 이익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 땅들이 전부 내 것이 된다면 얌전히 방치할 생각이 없다.

아무리 이익이 적다고 해도 내 영토에 손길이 닿지 않는 땅이 있다는 것은 꺼림칙했으니.

“나름 재밌겠는데.”

지금까지는 군사 보유 제한 등 힘을 키우는 데 걸리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그 문제가 모두 해소되면서, 내 능력껏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영토 개척과 군사력 증강.

덤으로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발전을 주도할 수 있으니, 수행자들에게도 좋은 버팀목이 될 것이다.

“아마 오늘 중으로 왕성에서 대공 임명 건으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수행자뿐 아니라, 클로이와 그녀의 뱃속에 있는 내 아이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너희 부부 맞니?”

그때, 잠자코 계시던 어머니가 뜬금없는 질문은 던졌다.

나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을 지었고, 그에 어머니는 내게 꿀밤을 날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부부간의 대화야? 완전히 직장 상사를 대하는 태도지.”

클로이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나는 뺨을 긁적이며 답했다.

“클로이가 이게 편하다고 해서.”

어머니는 내 답변이 마음에 안 드는지, 이번엔 옆구리를 꼬집으며 말했다.

“그럼 익숙해질 때까지 고치도록 노력해야지!”

분명 맞는 말씀이다.

나는 클로이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노력해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이 되어 왕의 칭호를 손에 넣더라도 어머니에게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날.

클로이의 말대로 왕실에서 대공 임명 관련해서 연락이 왔고, 10일 뒤에 대대적인 임명식이 진행될 예정임을 알려 주었다.

* * *

케일론 왕국 베르트 공작령 외곽의 하린 마을.

4회차 수행자인 오대수는 마을 입구를 서성이며 누군가의 복귀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는 마을을 향해 걸어오는 여성 세 명을 발견할 수 있었고, 반갑게 마중을 나갔다.

“선아씨!”

그런 그의 앞을 두 명의 여성이 막아섰는데, 어찌나 체구가 좋은지 키가 남성인 오대수보다 컸다.

“죽고 싶은 거냐? 어딜 감히.”

오대수가 목메어 기다리던 여성은 바로 수행자 연맹의 부회장인 김선아였다.

그를 막아선 여인들은 그런 김선아의 호위 기사였는데, 얼마 전까지 베르트 공작가에 소속되어 있던 실력자들이다.

서슬 퍼런 기사들의 기세에도 오대수는 개의치 않고 다가갔다.

화가 난 기사들이 검을 뽑으려 하자 김선아가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예, 주군.”

이번에 수행자들의 국적 제약이 없어지자 김선아는 뒤도 보지 않고 로엘제국에서 케일론 왕국으로 이민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훈의 제안에 어쩔 수 없이 베르트 공작령의 기사작위를 내려놓고 왕국에서 단승 남작위를 획득해 귀족이 되었다.

“절 기다리신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습니까?”

하린 마을은 그녀가 베르트 공작령에 자리를 잡으면서 선택한 퀘스트 거점.

그리고 오대수는 김선아와 달리 처음부터 하린 마을에서 시작하게 된 신규 수행자였다.

“혹시 검을 배울 수 있을까요? 선아 씨께서 대단히 강하시다고 들어서요.”

그녀가 연맹의 부회장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 훤히 눈에 보였다.

김선아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죄송하지만 바쁘군요. 지금 단계에선 연맹에서 지정해 준 용병에게 무기술의 기본을 배우며 퀘스트를 수행하는 데만 열중하시면 됩니다.”

“저, 진짜 제대로 배우면 금방 강해질 자신이 있거든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 걸까?

자신감은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긴 하나, 이성에게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인물이 뮤대륙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서 거슬렸다.

덕분에 김선아와 두 여기사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어디서 싸움 좀 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정말 자신이 있습니다. 함께 다니는 용병도 성장속도가 빠르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요. 제게 가능성을 보일 기회를 주십시오.”

수행자 연맹도 자체적인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금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연맹에선 신규 수행자들의 안전과 호위를 위해 용병들을 붙여주고 있다.

대부분 용병들은 연맹의 회장이 베르트 공작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에 수행자들의 기분을 해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입에 발린 말이 아부인 줄 모르고 종종 자신들이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수행자들이 있었다.

김선아는 오대수가 그런 경우라 생각했다.

물론 착각의 늪에 빠져도 이렇게 부회장에게 들이대는 생각 없는 인물은 없었지만 말이다.

김선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그동안 배운 것 좀 보도록 하죠.”

마음같아선 꺼지라며 무시하고 싶지만, 미우나 고우나 그도 연맹의 수행자였다.

차라리 기를 꺾어 놓는 것이 추후 생존을 위해 좋을 터.

오대수는 김선아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연맹에서 기본으로 지급한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검은요?”

“처음엔 회피만 할 테니 그냥 덤비세요.”

완전히 위에서 내려보는 시선.

그러나 오대수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히죽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오대수의 전투 자세는 그럴싸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상대가 지훈처럼 상식을 벗어난 인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던 김선아의 표정은 처참히 일그러졌는데.

겉멋만 잔뜩 든 자세만으로 그의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흡!”

오대수가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러 왔다.

-후웅!

김선아는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사선 베기를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피하기만 하겠단 마음을 바꿔 가볍게 그의 다리를 걸었다.

-우당탕탕!

덕분에 오대수는 요란하게 바닥을 뒹굴었고, 김선아는 당황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용병분이 회장님의 눈치가 보여 아부를 심하게 한 모양이군요.”

오대수는 얼굴을 붉힌 채 황급히 일어났다.

“시, 실수였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시 덤비십시오.”

귀찮다는 듯 짧게 혀를 찬 김선아는 손을 까딱였고,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후웅!

나름 머리를 굴려 횡베기를 해왔지만, 김선아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것으로 공격으로 피했다.

이어서 오대수의 발을 밟으며 어깨로 퉁 밀자, ‘쿵’ 소리를 내며 여지없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자신이 왜 당한 걸까?

오대수는 바보처럼 눈만 껌뻑였다.

상대는 복잡한 기술도 엄청난 순발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기를 부리듯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김선아는 더는 볼 것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이 뮤대륙 20일 차라는 걸 염두에 둬도 그 실력은 동기 중에서도 하위권입니다. 아무런 특별함이 없는 데 왜 그렇게 자만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자신은 특별하다는 착각에 겉멋만 든 멍청이’ 이것이 그에 대한 김선아의 평가였다.

“제가요?”

가감 없는 김선아의 평가에 오대수는 믿을 수 없단 반응을 보였고, 김선아는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만화를 너무 많이 보신 모양입니다.”

“…….”

“분명히 말하는 데 당신은 주인공 같은 게 아닙니다. 주제 파악하세요.”

그리고 김선아는 마을 안 수행자 연맹 지부로 향했다.

* * *

“이 세계 진입 루트 떴다!”

그건 처음 뮤대륙에 진입하고 오대수가 내뱉은 대사였다.

그는 다른 수행자들과 달리 순순히 이상 현상을 받아들이고 퀘스트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많은 수행자들이 그렇듯, 오대수는 머지않아 고블린과 마주하는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때 화려한 장비로 도배한 여성이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다.

그녀는 바로 4회차 수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 김선아였다.

난데없이 판타지 세상에 진입을 하고 몬스터에게 죽음의 위기를 겪을 때, 남자라면 누구나가 예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미녀가 나타나 구해준다.

이 모든 상황이 만화 또는 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그에 오대수는 생각했다.

‘이건 운명이다.’

‘아직 나는 초보자에 불과하지만, 남들과 다른 성장을 거듭할 것이며, 그녀가 내 성장을 위한 중요한 키 역할을 해줄 것이다.’

‘또한 앞으로 시작하게 될 모험 속의 히로인이 바로 그녀다.’

쓸데없는 망상.

하지만 이런 생각에 부채질하듯 많은 사람들이 오대수를 떠받들었으며, 함께 사냥을 다니는 용병은 연신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때문에 오대수는 자연스레 김선아에게 접근을 시도했고.

‘지금이 뮤대륙 20일 차라는 걸 염두에 둬도 그 실력은 동기 중에서도 하위권입니다.’

‘아무런 특별함이 없는 데 왜 그렇게 자만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주인공 같은 게 아닙니다. 주제 파악하세요.’

그 결과는 처참했다.

그는 김선아의 말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함께 다니던 용병을 닦달하여 사실대로 말하게 했다.

‘솔직히 실력이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듣기로 베르트 공작님께선 이미 20일 만에 창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며 오크들을 쓸고 다니셨다는군요.’

‘그땐 신입 수행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었고,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뤄야 했죠. 아무래도 그분과 비교하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선아님이 베르트 공작님의 둘째 부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그분께 접근하는 것은 관두시는 것이 신변에 좋을 겁니다.’

그때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된 오대수는 한참 동안 바보처럼 헛웃음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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