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54
71. 4회차 수행자(2)
4회차 수행자가 입장했다.
지난 회차 때 그랬던 것처럼 기존 수행자들과 다수의 용병이 동원되어 신규 수행자들을 안전하게 마을로 이동시켰다.
이번에 나는 총 31장의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했다.
그중 21장은 수행자들의 얼굴 마담이 되어줄 세계적인 스타들에게 사용했으며 나머지 10장은 실험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아틀란티스의 용인족과 사역마인 봉봉도 뮤대륙을 오갈 수 있을까 싶어 사용했는데, 애석하게도 둘 다 실패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20대인 수행자에 연령제한이 있나 싶어, 기존 수행자 가족 중 미성년자와 40대 중년인의 지원을 받아 사용했더니, 이 경우엔 문제없이 수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6장 중 4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격투기 선수에게 사용했으며, 2장은 우리 부모님에게 사용했다.
누군가는 그런 식으로 지정권을 사용하면 수행자의 전력이 감소 되느니 뭐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할 만큼 지위가 낮지 않았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4회차 수행자가 입장하면서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할 경우 기존입장 인원인 1,000명을 보존한 상태에서 추가 입장하게 됩니다.]
[이번 4회차 입장 인원 1,089명입니다.]
즉, 앞으로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할 때 괜한 눈치 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덕분에 내가 부모님에게 사용한 것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 못했다.
그런데 내가 지니고 있던 것 외에 수행자 지정권이 58장이나 추가로 사용이 되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의 지정권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 캐묻지 않고 방치했는데, 그 수가 의외로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5회차 수행자 입장권을 대량으로 사는 건데, 겨우 10장만 사버렸다.
적절한 조치긴 하지만, 이왕이면 이런 공지는 사전에 알려줬으면 좋겠다.
“아이고, 클로이양은 언제봐도 예쁘다니까?”
“가, 감사합니다.”
“왜 그렇게 말투가 딱딱해요. 군인 같네.”
나는 어머니에게 쩔쩔매는 클로이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난번에 수행자 지정권을 사양하셨던 부모님이 수행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바로 클로이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가 다른 세계에서 결혼한 데다가 아이까지 생겼다는 이야기에 뮤대륙 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마음은 한결 더 가벼워졌다.
만에 하나 지구에서 부모님께 이변이 생겨도 함께 뮤대륙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엔 신규 수행자 중 단 한 명도 희생이 발생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철저하게 대비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D-DAY란 지구의 위기 상황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긴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
뭐, 내 개인적인 상황과 별개로 뮤대륙의 미드랜드는 난리가 났지만 말이다.
“영주님, 로엘 제국에서 테라시아 후작님이 방문하였습니다.”
“스승님이?”
테라시아 후작이 들으면 난리를 칠만한 호칭이지만, 몇 번이고 목이 베였음에도 나는 그가 별로 싫지 않았다.
아무래도 능력향상의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데다가, 묘하게 괴롭히는 맛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클로이가 어울리지 않게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재밌게 구경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사를 따라 응접실로 향했는데, 영주성 행정관이 멀리서 나를 급히 달려왔다.
“영주님, 위스워드 제국 외무대신 블레어 후작님이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난리구만.”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양대 제국의 고위 귀족이라 해도 예고 없이 찾아와 만남을 청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수행자라 바쁘단 핑계로 공식적인 외부의 방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똥줄이 탄 인물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로엘 제국의 테라시아 후작께서 선객인 만큼 먼저 만나고 찾아가도록 하지. 포장할 필요 없이 사실대로 전달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제국의 고위 귀족들인 만큼 어쩔 수 없이 만나러 가는 거지, 어중간한 국력을 가진 국가였다면 없는 척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응접실에 도착한 나는 내전 때 몇 번이고 무기를 마주했던 테라시아 후작을 마주보며 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건 후작 본인도 마찬가지인지, 고생했던 것에 비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선 그다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둘 다 싸우다가 정이든 건지도 모르겠다.
“그사이 강해진 건가?”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6서클이 되었거든요.”
“그럼 익스퍼트 최상급에 6서클인 건가? 이제 무기를 맞대면 죽음을 각오해야겠군.”
미래시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그를 상대로 필승할 자신이 있었다.
“뒤에 있는 여기사도 상당하군.”
테라시아 후작의 이야기에 뒤를 바라보니, 청아가 성기사처럼 깔끔한 흰색 갑옷을 입은 채 버티고 있었다.
녀석은 마리오네트지만 마스터인 테라시아 후작에겐 평범한 기사로 보인 모양이다.
“그런데 둘의 기운이 굉장히 흡사한데.”
마리오네트를 못 알아 봤다고 해서 감이 죽은 것은 아니다.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얼버무렸다.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몰라서 묻냐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자세를 바르게 고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수행자들의 리더인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말씀하시지요.”
“부디 수행자들의 이탈을 막아주지 않겠는가? 이대로 가다간 미드랜드의 파워 밸런스가 붕괴되고 말 거야.”
로엘 제국의 테라시아 후작도 그렇고 위스워드 제국에 블레어 후작도 그렇고, 이렇게 급히 나를 찾은 이유가 바로 수행자들의 이탈 때문이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하면 4회차 수행자가 입장하면서 공지가 떠올랐는데, 그 중 하나가 수행자 지정권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다른 하나가 이것이었다.
[수행자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퀘스트 지역 고정이 해제됩니다.]
[앞으로 수행자가 옮긴 국적에 따라 퀘스트 수행장소 또한 옮기게 됩니다.]
수행자들이 국가 제재에도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던 이유는 퀘스트 지역이 처음 시작했던 국가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적을 옮겼다가 혹시라도 해당 국가에서 입국을 거부하면 퀘스트 진행에 애를 먹게 되는 만큼 국가의 제재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이 눈치 좋게 이를 해제한 것이다.
덕분에 쌓인 게 많던 수행자들, 특히 고위 수행자들이 뒤도 보지 않고 내가 있는 케일론 왕국으로 국적을 옮겼다.
베르트 공작파가 활약해 준 덕분에 제재 계획이 늦춰졌던 케일론 왕국으로 수행자들의 이탈 러쉬가 이어진 것이다.
이미 작위가 있는 나와 태영을 제외한 1회차 수행자 24명, 2회차 수행자 2명이 단승 남작위를 받으면서 케일론 왕국의 귀족이 되었다.
당연히 이탈은 작위를 받을 수 있는 고위 수행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2회차 3회차 수행자의 이탈도 상당했으니.
당장 전력으로만 따지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일지 모르지만, 수행자들은 상식을 초월한 성장 속도를 갖고 있는 만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국가에서 수행자를 독점이라도 했다간, 끔직한 재앙이 일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덕분에 뒤늦게 자신들이 수행자를 너무 업신여겼다는 실수를 깨달은 국가들이 우왕좌왕 대고 있었다.
“언제고 이런 사달 일어날 걸 예상 못 했답니까?”
나는 테라시아 후작 개인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기득권층 전체를 싸잡아 물었다.
처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만큼 대화가 잘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날 선 내 반응에 테라시아 후작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수행자 차별 제도는 폐지했습니까?”
그가 아무런 대답을 못 하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저보고 동료들에게 좋지 않은 대우를 받으라고 권하란 겁니까?”
“지, 지금 당장은 시행된 제도를 바꾸기란 쉽지 않지. 하지만 반드시 철폐시키도록 하겠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수행자들의 이탈을 막고 싶다면, 본인들의 노력을 보여주셔야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테라시아 후작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분명 황제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일 테니.
“일단 기존 제도를 폐지해야 이탈 러쉬가 멈출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꼭 그래야겠나? 자네가 다른 수행자들을 동료로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은 부하들이 아닌가. 명령으로 잠깐만 불편을 감수하도록 잘 말해주면…….”
“죄송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군요.”
테라시아 후작은 뭔가 한마디 하려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지. 아쉬운 건 우리지, 자네들이 아니니까.”
그나마 테라시아 후작은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긴말 없이 ‘실례했다’며 영주성을 나섰고, 나는 살짝 미안함을 느끼며 위스워드 제국의 외무대신 블레어 후작과 마주했다.
하지만 어째 무관인 테라시아 후작보다 문관인 블레어 후작과 말이 더욱 통하지 않았다.
결국, 블레어 후작에게 축객령을 내린 나는 이후 찾아오는 귀족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연맹 차원에서 각국 내무부로 공문을 발송했는데, ‘연맹은 수행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으로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라는 짧은 문구를 보냈다.
덕분에 자신들은 변할 생각이 없으면서 이익만 취하고 싶어하던 국가들이 하나둘 수행자 차별 제도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한때 수행자를 제재했던 국가란 프레임이 씌워진 상태였기에 쉽게 이탈이 해소되지 않았다.
* * *
미하엘 왕자가 국왕이 되고 나서 그 또한 어쩔 수 없단 태도로 수행자들을 제재하려 했다.
비록 그가 지훈과 손을 잡긴 했지만, 구 기득권 세력인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훈이 정치 밸런스를 위해 자신의 파벌을 만들고 그 파벌이 다른 공작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규모가 되면서 쉽게 수행자들을 제재하자고 나서기가 힘들었다.
지훈의 세력이 수행자들의 권리 보호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의 의견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수행자들을 국가에 옭아매던 제한이 사라지면서 케일론 왕국으로 몰려들었다.
익스퍼트 상급 수준의 수행자 26명이 새롭게 작위를 받으며 왕국에 똬리를 틀고, 거의 1000명에 가까운 기사급 인원이 케일론에 몰려들었다.
수행자의 수가 총 2500여 명이었으니, 거의 4할이 케일론 왕국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고, 예기치 않은 군사력 강화로 이어졌다.
덕분에 케일론 왕국의 기득권들은 마음을 고쳐먹어 수행자들의 이민을 환영했다.
그런데 처음에 좋아 보이기만 하던 이 상황이 여러 문제점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폐하, 수행자들이 베르트 공작령을 활동 거점으로 삼으면서 해당 지역에 지나치게 높은 군사력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또한 단승 남작위를 받은 수행자들이 개인 사병과 기사들을 보유한 채 베르트 공작령에 똬리를 틀면서 군사력 증강에 한몫 거들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지훈이 수행자들의 리더인 만큼, 일반 수행자들은 케일론 왕국 내에서 거점을 선택함에 있어 거의 무조건 베르트 공작령으로 향했고, 그 결과 바라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사급 수행자만 1천여 명.
이는 보병 5만에 해당하는 전력이다.
또한, 기존 4만 명의 사병과 400명의 기사를 보유하고 있던 공작가의 상황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위기심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훈의 병력이 무장 상태가 좀 좋은가.
당장 내전을 일으켜도 상대가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
신하들의 호소를 가만히 듣고 있는 케일론 왕국의 국왕이 물었다.
“그럼 경들은 이 일을 어찌 해결하면 좋겠는가?”
“그…….”
하지만 신나게 지훈을 물어뜯던 내무대신과 법무대신은 문제점만 고할뿐 답을 갖고 오지 않았다.
혀를 찬 국왕은 두 눈을 감고 지훈을 떠올렸다.
그는 비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최대한 일을 간결하게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데도 돌이켜 보면 항상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더불어 아주 이기적인 사람인데, 나쁘게 말해 이기적인 것이지 좋게 말하면 손해를 싫어한단 뜻이었다.
‘여기서 괜히 베르트 공작을 제재하려고 해봐야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될 뿐이다.’
현재 둘의 관계가 나쁘지 않은데,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어쩔 수 없지.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이어서 생각을 정리한 국왕이 말했다.
“베르트 공작을 대공으로 임명하겠다. 왕국의 남부를 대공국으로 지정하여 적성국인 슈엔다르크 왕국으로부터 본토를 지키게 할 것이다.”
“폐, 폐하?”
지훈의 성향을 생각하면 남들이 그를 배척하라 부채질을 할 때, 믿음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국왕이었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다시금 내전의 기운이 감도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