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52
70. 폭군(3)
지훈은 이반을 내던지듯 책상에 내려찍었다.
그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반을 내려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시체가 된 암살자들로 인해 피비린내가 나는 회의실에서 냉소를 흘리는 지훈의 모습은 악명 높은 카르텔조차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진정하란 말은……. 먹히지 않겠지?”
이반의 물음에 지훈은 대답 대신 마법을 사용했다.
인크리스트 페인.
고통을 더욱 잘 느끼게 해주는 고문에 최적화된 마법이었다.
지훈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손으로 이반의 팔을 쓰다듬었다.
“크윽!”
마법으로 통각이 증폭되어 고통이 엄청날 텐데, 카르텔 보스로서의 자존심인지 이반은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그러나 버틴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훈은 태연하게 이반을 고문하며 물었다.
“뮤대륙에 버티고 있는 부하들에 대한 정보를 묻고 싶습니다.”
이반은 엿 먹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어차피 계획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만큼, 뮤대륙에서 바캉스 중인 부하들을 신경 써줄 이유가 없다.
지금은 부하들의 신변을 재료로 협상을 시도해야 할 때라 생각했다.
“아, 알려 주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훈은 뻔한 수작에 넘어가 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고문을 안 당하겠죠.”
그러면서 지훈은 아예 그의 팔을 태워버렸다.
“끄아아악!”
그때야 이반은 비명을 내질렀고,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지훈은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이반을 태우고 치료하길 반복했다.
덕분에 회의실은 연기와 고기 타는 냄새로 가득했고, 지훈을 끌어들인 카르텔의 일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질린 표정으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산 채로 불에 타는 고통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고통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데다가 점점 고문의 면적이 커지니, 아무리 정신을 단단하게 무장한 이반이라 해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만.”
지훈이 어떤 인물인지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몸소 체험한 이반은 모든 걸 내려놓아야 했다.
그에 불꽃이 사라지고 피부가 타서 벗겨진 혐오스러운 양손이 드러났다.
지훈은 다시 그의 팔을 치료해 주며 물었다.
“이제 서로 눈치 싸움 벌이지 않아도 되는 거겠죠?”
이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 이상 계산적인 카르텔의 보스가 아니었다.
* * *
뮤대륙 프리시아 왕국.
안토니오와 미겔을 포함한 카르텔은 벌써 며칠째 지구와 연락이 닿지 않아 꽤나 예민해진 상황이다.
“우리 쪽에서 새로운 수행자들과 접촉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까지 마약 거래를 해온 수행자들을 어떻게 알고 색출한 건지 연맹에서 카르텔과 연이 닿은 수행자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쉽게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원이 사방에 깔렸으며, 감시역으로 연맹에서 고용된 용병을 달고 다녀서 접근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접점이 있던 수행자 말고 새로운 루트를 뚫자고 제안했으나, 그 이야기를 듣는 미겔은 그다지 내켜 하지 않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잠시 기척을 죽이고 숨어 있는 것이 상책입니다. 조급하게 나서다가 꼬리가 잡히는 수가 있거든요.”
이성적인 판단.
하지만 신중한 미겔과 달리 안토니오는 사실확인을 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다.
“며칠 전에 카르텔 소탕 작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잖아. 굳이 연락책을 구하지 않아도 지구의 상황이 어떤지만 물어봐도 되지.”
마지막으로 들었던 지구의 소식은 대규모의 연합군이 카르텔 소탕 작전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안절부절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미겔을 비롯해 콜롬비아에서 파견된 카르텔들은 자신들의 보스에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으면서도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다.
그러나 미겔은 완강했다.
“아무 일이 없으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책을 구해서 소식을 전해올 겁니다. 우리 쪽에서 나설 필요 없어요.”
“그러다가 영영 연락이 안 오면?”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 안토니오를 노려본 미겔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땐, 우리끼리 뮤대륙에서 살아가는 거죠.”
안토니오도 그를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치게 신중한 느낌이 있지만, 연맹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자신들을 탐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요즘 프리시아 왕국의 정보길드가 여기저기 헤집고 다녀서 장사도 쉽지 않았으니.
“그냥 믿으세요. 보스가 쉽게 당할 리 없습니다.”
안토니오는 이제 슬슬 이들과의 관계를 털고 자립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란 생각에 지켜보기로 마음먹었으나 다음 날 왜 그때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게 된다.
-쿠당탕탕!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마약을 유통하고, 대부분의 거래는 노예를 앞세웠다.
덕분에 프리시아 정보 길드도 이들의 실체를 잡지 못했는데.
카르텔의 뮤대륙 지점이라 할 수 있는 비밀 저택에 수행자 연맹의 척결대가 들이닥친 것이다.
“눈알 굴리면 죽는다. 손을 허리춤에 가져가도 죽는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순순히 투항해.”
김선아의 살벌한 이야기에 안토니오는 재빨리 바닥에 엎드린 채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녀를 잘 모르는 카르텔은 상대를 겉모습으로 판단하며 쏜살같이 권총을 뽑아 총을 발포했다.
-팅!
그러나 총알은 김선아가 휘두른 검에 방향이 바뀌며 천장에 틀어박히고.
“컥!”
채찍처럼 늘어난 오러가 총을 쏜 카르텔을 두 동강 냈다.
총알을 검으로 튕기다니.
수행자란 존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미겔을 비롯한 카르텔은 반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스릴 수갑에 포박이 되며 자신의 운명을 묻는 안토니오의 모습에 김선아는 가볍게 답했다.
“모든 것은 회장님께서 결정하실 사안이다.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안토니오는 고개를 떨궜다.
“너희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카르텔을 건들고 맘 편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살아남은 카르텔 조직원의 외침에 수행자들은 실소를 흘렸다.
“이미 모든 카르텔이 붕괴했어. 이반도 잡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고.”
이어진 김선아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평소라면 엄포라며 소리쳤겠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반이란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건드려선 안 되는 사람을 건드린 건 너희지.”
안토니오는 깊이 후회했다.
낙오자라 해도 그는 3서클의 정규 마법사다.
지구에서 평범하게 살았다면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는 거였는데.
지금에 와선 무엇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 * *
71. 4회차 수행자
현실 시간으로 7일, 뮤대륙 시간으로 35일.
그건 지구와 뮤대륙에서 카르텔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카르텔의 보스인 이반은 제거되었으며, 이반을 체포하는데 협력한 조직원은 거액의 현상금을 받았음에도 괌이라는 제한된 구역을 벗어나지 못해 술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뮤대륙의 카르텔은 길게 볼 것 없이 모두 처형했으며, 연맹을 배신한 안토니오는 서클이 파괴된 채 감옥에서 썩고 있다.
마약에 중독된 수행자들은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심적으로 마약을 찾는 버릇을 없애기 위해 다 같이 손잡고 클리닉을 다니고 있다.
이들은 굳이 처벌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카르텔 정리에 신경 쓰는 사이 김선아와 히로시는 계속해서 상급 던전을 클리어하며 능력 강화에 힘을 썼고, 제법 준수한 장비와 스킬들을 얻으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이 강해졌다.
물론,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둘 다 전투교범을 활용한 던전 클리어가 이어지다 보니, 오러의 성장세도 꽤나 빨랐다.
클로이는 임신 5개월 차에 가까워지면서 제법 배가 나왔다.
더 이상 그녀는 정보부에 나서지 않고 영주성에서 부하들을 부리고 있지만, 내가 쉬라고 해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아 걱정이다.
케일론 왕국 정치판에선 내 세력임을 자처하는 귀족들의 수가 점점 많아져, 중립을 지키던 그리드 후작까지 베르트 공작파에 참여했다.
덕분에 나는 정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다른 두 공작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거대 세력을 갖게 되었다.
정보 길드는 내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아무래도 사용에 이점이 많고, 대륙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도 머지않았다는 내가 자금지원까지 해주니, 베르트 공작파는 그야말로 날개를 단 듯 승승장구.
뜻하지 않게 케일론 왕국에서 수행자들에 대한 제재가 쉬이 이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익스퍼트 상급이 된 태영이 단승 남작위를 받았으며, 5서클을 목전에 둔 사치코도 단승 남작위를 예약한 상태다.
덕분에 타국에서 활동하는 1회차 수행자들이 은근슬쩍 부러움을 내비쳤다.
그렇게 바쁘게 지냈던 만큼 빠르게 2020년 7월이 끝이 나고, D-DAY의 달인 8월이자, 4회차 수행자들이 입장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그전에 기존 수행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가 남아 있었으니.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안녕하세요.”
그건 바로 포인트 샵을 이용할 수 있는 대기실 입장의 기회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자판기 행렬이 길게 늘어선 새하얀 공간.
이미 수차례 보아왔던 장면이지만, 3회차 수행자가 더해지면서 거의 1,400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여 있다 보니,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안부를 묻던 수행자들이 나를 보고 하나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는데, 서양에선 고개 숙여 인사하는 문화가 없음에도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행동을 취했다.
“시간제한이 있으니 전 신경 쓰지 말고 포인트 샵부터 이용하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고, 모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표정이 밝다.
대기실의 풍경만 보면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만 모아 놓은 것 같다.
하지만 모두 내색은 하지 않아도 이번 달 18일에 발생하는 D-DAY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젠 정말 며칠 안 남은 상황이니.
“응?”
오늘은 예정대로 김선아와 히로시에게 포인트를 일정 부분 투자할 생각이다.
마음 같아선 친구들에게 포인트를 모아 주고 싶지만, 녀석들은 전력으로 따지면 1회차 수행자에 비할 수준이 아닌지라, 생존확률을 높여줄 수단만 마련해 줄 예정이다.
이 인파 속에서 언제 김선아와 히로시를 찾나 싶었는데, 히로시가 공중 도약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관종짓을 하는 바람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 진짜 카르디아 건틀렛이네요?”
내 물음에 슬쩍 얼굴을 붉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랏빛 이펙트가 현란한 카르디아의 건틀렛.
상급 던전 보물상자에서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고급장비였다.
요즘 바빠서 김선아를 볼 일이 없다 보니, 나와 같은 건틀렛을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실제로 보긴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김선아를 위에서부터 아래를 훑어봤는데, 장비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구비 된 상태였다.
아마도 그녀는 액세서리와 스킬 위주로 구매하면 될 것 같고, 히로시는 내게 이것저것 물려받아서 겉모습은 그럴싸했지만, 대부분의 장비를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가죠.”
우린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아 멀리 이동했다.
그리고 각자 자판기 앞에서 포인트를 정산했는데.
[포인트 환산 중입니다…….]
[잔여 포인트: 1,522,400]
말을 잃게 만드는 숫자가 떠올랐다.
‘미쳤네.’
지난달 보유 포인트 포인트가 37만.
그것만 해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더욱 황당한 숫자가 떠올랐다.
나는 예상보다도 월등히 많은 포인트에 놀라 내역을 확인했다.
자잘한 내용은 넘기더라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백작위 획득 50,000
-백작위 최초 보너스 50,000
-변경백 지위 획득 50,000
-변경백 최초 보너스 50,000
-후작위 획득 100,000
-후작위 최초 보너스 100,000
-공작위 획득 200,000
-공작위 최초 보너스 200,000
-명성 363,840
애초에 백작위와 공작위가 되면서 손에 넣은 게 60만 포인트.
그런데 후작위는 받은 적도 없는 데, 받은 것으로 체크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백작에서 공작으로 건너뛰긴 했지만, 시스템은 이게 후작위를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마치 게임에서 한 번에 레벨 2가 올랐다고 레벨 1개 치의 보상만 주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명성’은 왕국 제일 상단의 주인이자, 전쟁영웅으로 칭송되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것들만 따져도 포인트가 120만이 넘으니, 150만에 달하는 포인트가 납득이 됐다.
‘대공 또는 국왕이나 황제가 되면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줄지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