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50
70. 폭군(1)
테리는 단호한 내 반응에 당황했으나,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물러났다.
나는 연맹의 회장이다.
내겐 수행자들을 보호할 권리가 있으며, 현 상황은 개인을 넘어 연맹의 체제를 흔드는 위기라 평할 수 있다.
적어도 다른 나라들의 부패 때문에 스스로 피해를 감수할 성격이 아닌지라, 이 이상 앞을 가로막는다면 아직 내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밖에 되지 않았다.
“국정원과 NSA는 마약 유통 경로를 철저히 조사해 주세요.”
국정원은 그렇다 쳐도 NSA는 미국의 정보기관임에도 마치 상사처럼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친한 형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친한 형들이란,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을 뜻한다.
내가 워낙 들쑤셔 놔서 그런지, 이미 주요 국가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전화를 걸어 올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는지, 미국과 한국에선 바로 힘을 빌려주겠다고 나섰으며, 뒤이어 러시아와 중국, 일본도 참여를 결정했다.
유럽 연합군인 나토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테지만, 아마 내 요청을 묵살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범인이 확실치 않음에도 선동과 강압으로 대량의 군대를 남미에 파견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미리 알려지면 카르텔에게 도망칠 시간을 줄 수 있는 만큼, 해당국가에는 비밀로 하고 작전 시작 직전에 알릴 생각이다.
아마 그들 입장에선 재앙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카르텔과 관련된 국가 정부들은 신뢰도가 떨어졌다.
‘걸리기만 해라.’
나는 연맹을 건드린 어리석은 적을 떠올리며 조소를 흘렸다.
***
카르텔의 보스 이반은 멕시코 수행자가 전해온 메시지를 받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0105120421]
당연히 메시지는 몇 단계에 걸쳐 전달되었다.
메시지 내용만 보면 이게 뭔가 싶겠지만, 이건 자신들끼리 정한 간단한 암호였다.
메시지는 총 01, 05, 12, 04, 21 다섯 개로 나눌 수 있는데, 간단히 메시지를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01: 뮤대륙인들을 상대로 한 장사가 순조롭다.
두 번째 05: 수행자들을 상대한 장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세 번째 12: 뮤대륙에서 연맹이 수색을 시작했다.
네 번째 04: 아직 위치가 노출되지 않아 위험하지 않다.
다섯 번째 21: 앞으로 현재 연락책을 통한 보고가 힘드니 일본 루트를 이용하겠다.
아무리 첩보 작전을 벌인다고 해도 연맹에서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면, 수행자를 상대로 한 장사와 보고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브라질 녀석들의 실수가 크군.”
최악의 경우 뮤대륙과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반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판매책이었던 브라질의 2회차 수행자로부터 수행자 지정권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이반은 4회차 수행자로 뮤대륙을 오갈 수 있게 된 만큼, 잠깐 연락이 끊긴다고 끝이 아니었다.
“뭐 상관없겠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것이 마약이니.”
이반은 수행자들의 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본인이 나서서 지정권까지 받아냈고, 수행자들에게 마약을 뿌리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마약 중독은 수행자들의 회복능력으로도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동회복 스킬 때문에 육체적 손상은 없겠지만, 마약을 통해 맛보았던 쾌락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재차 손을 대는 것이다.
덕분에 수행자들도 충분히 마약에 중독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행자들은 매일 피를 보며 살기에 정신적으로 파고들 요소가 많았다.
그렇게 중독된 수행자들을 카르텔에 끌어들이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비록 수행자 연맹과의 관계는 뒤틀리겠지만, 남미에서 카르텔의 힘은 국가에 비견되는 만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모든 걸 내던지고 지하에 숨으면 되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잠시 후.
“보, 보스!”
이반은 자신의 판단이 안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CISEN(멕시코 정보부)에서 미국이 남미 카르텔 소탕 작전에 나선다는 보고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이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미국과 투닥거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언제나처럼 국가에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어진 일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 정부도 소탕 작전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뭐?”
이반은 황당함을 표해야 했다.
자신들과의 전쟁은 국가 내전을 뜻한다.
설마 이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하다니.
자신이야 잠시 음지에 숨으면 되는 일이지만, 이 일로 국가는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상처는 민간인들에게 돌아갈 테니, 이반 입장에선 갑작스런 전개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작전에 캐나다도 참여했으며 러시아와 한국, 중국, 일본 등도 대거 특수부대를 파견했다고 합니다. 잘하면 NATO까지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군요.”
“…….”
말을 잃게 만드는 보고.
그때 서야 이반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연맹이 부추긴 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연맹과 주요 국가들의 관계가 끈끈한 모양이다.
솔직히 납득이 힘들 정도.
수행자 연맹의 회장인 지훈이 그동안 벌인 일에 대해선 이반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는 과대 포장된 이야기라 판단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반은 이마를 짚었다.
“우리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잖아. 그런데 이렇게 대대적인 군사활동을 벌인다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욕이 절로 치밀어 올랐다.
분명 유효한 수단이긴 하지만, 의심만으로 국가를 뒤집어엎는다는 판단은 어떻게 하는 건지 지훈의 뇌 구조가 궁금한 이반이었다.
“미친놈이 분명해.”
마약상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이반은 지훈이 제정신이 아닌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이번에 일어난 대대적인 군사활동은 이슬람 무장 세력을 처리할 때처럼, 카르텔이 국제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고 남미를 핍박하는 악당임이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전 세계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개중엔 요즘 따라 국제 사회가 지나치게 단합이 잘 되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으나, 악명 높은 마약상의 처리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미국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직접 멕시코 카르텔 소탕 작전에 참가했다.
-쿵!
“끄악!”
멕시코의 마약왕으로 유명한 인물이 내 창에 배가 꿰어 벽에 꽂혔다.
나는 꼬치마냥 힘없이 벽에 매달려 덜렁거리는 히스패닉계 남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입니까?”
“뭐, 뭐가?”
“우리 수행자들에게 마약을 팔라고 지시한 인간이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진실의 눈을 통해 붉은 기운이 풍기지 않자, 뺨을 긁적여야 했다.
“아님 말고요.”
창을 뽑은 나는 그의 배를 치료해 주었는데, 어딘가 억울한 표정을 짓던 그는 아직 용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내려다보는 내 시선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지시는 하지 않았어도, 팔긴 한 거죠?”
내 물음에 그는 조심스레 답했다.
“수행자라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서두를 뗌과 동시에 붉은 기운이 솟아나자, 나는 다시 창으로 그의 배를 꿰서 벽에 꽂았다.
“컥!”
“수행자가 뭔지 알잖아요? 이 상황이 돼서도 거짓말을 하고 싶습니까?”
그에 멕시코의 마약왕이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두 손을 빌었다.
이런 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미군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다시 그를 내려주곤 상처를 치료했다.
“직접 지시를 내리진 않았어도 마약을 팔긴 했군요.”
“네, 맞습니다.”
그제야 순순히 부는 마약왕의 모습에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로써 수행자에게 마약을 퍼트린 게 카르텔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범인의 수색은 쉽지 않았는데, 비록 그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카르텔의 보스였지만, 그림자에 숨은 상위 조직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상위 조직에 관해 물었지만,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것이 많이 없어서 미간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러니까, 그 콜롬비아에 거점을 둔 카르텔이 멕시코와 남미 전역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 조직의 중추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요?”
“애석하게도.”
“용케 그런 인간들을 따랐군요.”
“제가 이 조직의 보스가 되기 전부터 이어져 온 구조라서.”
애초에 용의주도한 녀석들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격적인 카르텔 소탕 작전이 시작되고도 실체가 쉽게 잡히지 않는 것은 대단하다 느껴졌다.
나는 미군에게 녀석을 끌고 가라 지시했고, 군인들은 빠릿빠릿하게 내 명령을 따랐다.
“생각보다 일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내게 다가온 NSA 직원의 말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보였다.
아마 이 일을 사주한 녀석은 이미 지하에 숨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 카르텔을 정리하기 위해 투입된 군대의 규모를 생각하면 결국 잡힐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군대에 숨어 있는 카르텔의 프락치들도 말잘 듣는 순한 양이 되었겠는가.
공항과 국경을 폐쇄하고 전 국토를 탐색한다는 명목으로 들쑤시고 다니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마, 내가 이렇게까지 무식한 방법을 취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긴 하니, 내분을 부추겨 볼까요?”
“네?”
너무 몸으로 때우기만 하는 건 취향이 아니지.
이쯤에서 수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연합군이 카르텔 토벌 목적으로 남미 전역에 투입되고 이틀이 지났다.
이반은 지하에 숨어 있음에도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멕시코와 브라질의 세력이 무너지고 보스들이 잡혀갔단 소식에 이마를 짚어야 했다.
“내가 너무 상식적으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이건 보스의 탓이 아닙니다.”
세상엔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존재들이 있다.
지금 이반에겐 지훈이 그런 상대였는데, ‘아니면 말고’ 식으로 투입한 전력에 산산 조각나는 조직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원인 제공은 자신이 했다.
그런데 이건 너무 비이성적이지 않은가.
아무리 자신들이 불법적인 일을 행해 왔다지만, 법이라는 것은 절차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훈은 민중의 지지를 앞세워 규칙을 깨부수는 현세의 폭군 그 자체였다.
“보, 보스 급히 보고 드릴 것이….”
더구나 지훈의 폭정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보스에게 100억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습니다.”
“그 개새끼가!”
카르텔 정보팀의 팀장이 건네온 수배지를 본 이반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현재 이반의 정체는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수배지엔 몽타주나 신상정보가 실려 있지 않았다.
[시날로아 카르텔과 아르토 카르텔의 배후인 총괄 조직의 보스]
수배지에 담긴 이반의 정보는 겨우 이것으로 끝.
누가 봐도 이반의 측근에게 눈치껏 배신하란 뜻이었다.
현상금은 직접 잡아 오거나 체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며, 동료가 있을 경우 현상금은 인원수대로 분배.
카르텔 소속원의 경우 죄를 묻지 않는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수배지 끝자락에 이런 문구가 실려 있었는데.
[언제까지 침몰하는 배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인가.]
[너희가 이런 꼴을 겪는 것도 보스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다.]
완전히 내분을 부추기는 노골적인 문구였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런 바보같은 내용에 속을 놈은 없습니다.”
“그래, 고맙다.”
이반과 측근들의 신뢰도는 굳건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 신뢰에 의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자신을 바라볼 뿐인 부하의 시선에 어딘가 꿍꿍이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고, 그나마 안전하다 생각했던 보금자리가 불편해졌다.
‘조지훈 개자식.’
이반은 다시금 속으로 욕지거리는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