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48
69. 범죄자 파티
엔조이 파티는 2회차 수행자 중 하위권에 위치한 파티지만, 그래도 모두가 익스퍼트 초급 이상으로 기사 수준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최은우만이 아니라, 이태영과 사치코를 포함해 2회차 최상위권 수행자 5명이었다.
최은우의 경우 익스퍼트 상급 수준의 무력을 지닌 마검사였고, 이태영과 사치코 또한 익스퍼트 상급과 5서클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전력만 따지면 산전수전 다 겪은 1회차 수행자에 준하는 수준이다.
-쾅쾅!
“큭!”
그런 이들을 엔조이 파티가 당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좁은 집안에서 오러로 검에 걸리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며 공격을 퍼붓던 엔조이 파티는 각자 10합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제압되었다.
같은 회차 수행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수준의 격차였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바닥을 뒹구는 엔조이 파티원들을 보며 조소를 흘린 최은우는 지훈이 건네준 비싸기 그지없는 미스릴 수갑을 꺼내 들었다.
“죽이지 않는 건가?”
엔조이 파티 리더의 물음에 최은우는 그들의 운명에 대해 친절히 알려 주었다.
“회장님께서 너흴 생포해 눈앞으로 끌고 오라 하셨다.”
그에 엔조이 파티원들은 하나같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훈은 아군일 땐 한없이 든든한 리더지만 적으로 돌리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지금까지 벌여온 일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뮤대륙에서 행해지는 처벌.
자신들의 죄는 뮤대륙에 국한된 것이지 지구에서 죗값을 물을 근거가 없다.
그것은 일전에 조지훈이 직접 증명한 일이다.
“보아하니, 뮤대륙에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미안해서 어쩌냐?”
“무슨 말이지?”
“회장님께선 너흴 지구에서도 처벌할 생각이시던데.”
그에 엔조이 파티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소리쳤다.
“스스로가 왕이라 착각하는 거 아냐? 법은 어디에 팔아먹고 그걸 자기가 정해!”
“지도 중국인 학살해 놓고 어물쩍 넘어갔으면서!”
당황한 그들의 모습에 옆에서 잠자코 있던 최은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약을 판매하고 암살을 사주한 녀석들을 제거한 거랑, 죄 없는 사람들을 강간하고 살인한 거랑 같아?”
그리고 옆에서 잠자코 있던 태영과 사치코가 한마디씩 했다.
“범죄자 새끼들이 법 찾는 거 보면 웃기다니까.”
“그럼 너희가 스승님보다 강해지던가. 바보들.”
엔조이 파티는 이를 갈며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지훈의 지시를 받은 이들은 미스릴 수갑을 들이밀며 비웃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웃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연맹의 척결대가 엔조이 파티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납치되어 포박된 7명의 여성 중 2명의 여인이 쉽게 포박을 풀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엔조이 파티도 언제 추적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만큼 항상 만약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 순간 누가 피해자들 속에 공범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척결대가 방심한 순간.
-타앙! 탕!
한국인 남성에겐 너무도 익숙한 날카로운 충격음과 함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속도의 무언가가 최은우와 태영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무슨?”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당황하는 척결대.
그와 반대로 엔조이 파티는 유쾌하단 표정으로 다시 검을 움켜쥐었다.
-티! 팅!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지훈의 측근들이다.
지훈이 자신들의 측근에게 예상치 못한 변수를 대비시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척결대 앞에 자동적으로 방어막이 생성되며 날아든 공격을 막아냈다.
“쉴드!”
최은우와 사치코가 놀란 나머지 중복으로 방어마법을 펼치고, 원거리 공격 보정 스킬이 있는 태영이 급히 단검 두 자루를 자신을 공격한 여성들에게 투척했다.
“꺅!”
한 여성은 단검에 머리가 꿰뚫리며 절명하고, 나머지는 어깨에 단검이 틀어박혀 무기를 떨궜다.
더불어 반격을 노리던 엔조이 파티원들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척결 대원들은 엔조이 파티원들의 다리가 아작나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급히 수갑을 채웠다.
“대, 대체.”
“오토 쉴드 아티팩트다. 비록 일회용이긴 하지만,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지.”
포인트샵에서 파는 오토쉴드 링과 달리 그것은 케일론 왕립 마탑에서 만들어진 일회용 아티팩트였다.
엘릭서와 함께 여벌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장비.
지훈의 측근이기에 누릴 수 있는 지원 중 하나였다.
“으, 은우 씨 이걸.”
그사이 이들을 공격했던 장비를 척결대의 여성 창수가 수습하여 내밀었다.
당혹스러움이 배어 있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그 물건을 바라본 은우와 태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그것은 바로 권총이었다.
더구나 지구의 것을 본떠서 만들어진 뮤대륙 제 물건이 아닌, 영어 각인이 또렷한 지구의 물건이었다.
“어? 최은우! 큐어!”
그때, 태영이 급히 은우를 부르고 뭔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수갑이 채워진 엔조이 길드원들이 얼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미친!”
암살길드도 아니고 자살이라니.
이건 큐어 마법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들이 지금 죽음으로써 지구에서 깨어난다면, 잠을 자고 있는 자신들은 당장 이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다.
즉, 도주의 시간을 줄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지구에서 이들을 놓치게 된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지구의 총기가 발견된 이상 이건 일부 수행자들의 일탈 수준으로 볼 수가 없었다.
결국, 최은우 아끼고 아끼던 보물을 사용했다.
“엘릭서.”
어차피 이제 곧 대기실에 입장할 시간이 다가오는 만큼, 한동안 몸을 사린다는 생각에 딱 하나 가진 엘릭서를 강간범을 살리기 위해 사용해 버렸다.
“어?”
최은우가 죽어가는 엔조이 길드원 중에 살린 인물은 바로 그들의 리더였다.
죽다 살아난 인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최은우는 그를 짓밟으며 마디 마디의 뼈를 조각냈다.
***
나는 눈앞에 놓인 권총 두 자루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소형권총으로 유명한 발터PPK.
뮤대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잡혀 온 엔조이 길드 생존자의 심문은 어떻게 되고 있어?”
내 물음에 김선아와 함께 회의실에 자리를 잡은 클로이가 답했다.
“아직 이렇다 할 정보를 얻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렇게 끈기 있게 심문을 버틸 거라곤…….”
“신사적일 필요 없어. 그냥 죽여도 된다는 생각으로 고문해 봐.”
“알겠습니다.”
권총을 뮤대륙으로 반입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공용 아공간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전에 미군이 안개를 이용해 겁 없이 뮤대륙에 입장했던 것처럼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넘기는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건 그들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겁니다. 배후가 있을 거예요.”
클로이의 옆자리에 앉아 얌전히 차를 들이켜던 김선아가 핵심을 짚었다.
나도 같은 생각인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용 아공간은 1회차 수행자들만 갖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안개가 클리어되고 사라질 때 중심에 대량의 전기를 방출해야 한다.
그럼 지름 1미터 정도의 구멍이 드러나며, 구멍이 유지 되는 10초 남짓한 시간에 물건이나, 사람을 뮤대륙으로 넘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안개를 활용하는 방법엔 큰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구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전에 뮤대륙에서 웨이브 발생 포인트를 발견해 몬스터를 제거하면 좋지만, 알아챌 가능성보다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 지금은 금지된 방법이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안개를 이용한 방법 역시 엔조이 길드원들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사람이 우연히 안개에 휩쓸려 뮤대륙으로 보내지는 경우도 있고, 지난번 마트가 뮤대륙으로 날아든 것처럼 이상 현상과 함께 총이 넘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은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또한 ‘직감 스킬’의 효과라 해야 할까?
나는 이 사건이 우연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야 합니다.”
“네, 저도 동의합니다. 자칫 연맹 내부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철저하게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당연히 모든 수행자가 선인은 아닐 것이다.
나도 그리 선인은 아니니.
분명 수행자들 사이에도 악인은 있을 테고, 그게 나와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인물일 수도 있다.
“일단 공용 아공간을 가진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나는 우선 진실의 눈을 이용해 가까운 인물들부터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공용 아공간을 가진 사람들과의 면담이 끝이 나면 그다음엔 범죄경력이 있는 수행자들을 불러들이고, 그래도 발견이 되지 않으면 모든 수행자를 불러들여 한 명 한 명씩 면담해 볼 생각이다.
***
콜롬비아의 2회차 수행자였던 안토니오는 나름 촉망받던 마법사였다.
같은 회차 중 마검사로 유명한 최은우와 연맹 회장의 제자인 사치코 정도는 아니어도 굉장히 빠르게 성장해 나가던 마법사였으며 3서클 역시 뮤대륙 입장하고 90일 만에 달성해냈다.
하지만 그의 성장에 제동을 거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마는데, 그것은 바로 약간의 방심으로 퀘스트에 실패하면서 다시는 뮤대륙에 갈 수 없는 낙오자가 된 것이다.
낙오자란 표현이 너무하다는 의견이 많아 지금은 ‘선행자’란 호칭으로 불리고 있으나, 어떻게 불리건 자신이 낙오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수행자에서 낙오자가 되니 모든 게 바뀌었다.
연맹 지부에선 큰 차별을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해도 수행자들이 은근히 낙오자를 무시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으며, 무엇보다 간 쓸개 모두 내어줄 것처럼 행동하던 정부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나마 3서클로 정규 마법사의 힘을 지닌 자신은 괜찮은 편이지만, 낙오자들과 한데 엮여 패배자 취급받는 것에 크나큰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래도 안토니오는 노력했다.
지구에서 자신의 힘으로 마법의 경지를 높이려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그런데 낙오자가 되면서 체질이 바뀐 것인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던 마법의 이해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안토니오는 더 이상 수련을 하지 않게 되었고, 하루하루를 연맹과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때였다.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게 된 안토니오에게 불을 지피는 사람이 다가온 것이.
그는 자신을 ‘이반’이라 소개했다.
이반은 콜롬비아에서 악명높은 카르텔(마피아)의 젊은 보스였는데, 그가 뮤대륙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서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일반적으로 카르텔이 수행자에게 함부로 접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낙오자라 해도 수행자에 대한 정보 통제는 제법 철저한 편이었으니.
그런데 알고 보니 안토니오의 보안 담당자이자 감시책이던 요원이 카르텔에 매수된 사람이었다.
콜롬비아 카르텔은 국가 요소요소에 자신들의 사람을 심어 놓았는데, 그중 한 명이 안토니오의 담당자였던 것이다.
당연히 안토니오는 카르텔을 끌어들여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무시하고 또 무시를 했지만, 이반은 어딜 가나 나타났다.
이반은 악명 높은 카르텔치곤 매우 신사적이었으며, 결코 협박 같은 무식한 짓은 벌이지 않았다.
결국, 안토니오는 조금씩 이반의 계획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어느 순간 자신이 수련을 해도 소득이 없는 것이 이곳이 뮤대륙이 아닌 지구여서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귀를 열고 나니, 안토니오가 이반의 손을 잡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안토니오는 카르텔을 뮤대륙에 끌어들이는 최악의 우를 범하게 되었다.
미드랜드 남부 프리시아 왕국.
설마 했지만, 진짜 뮤대륙으로 넘어오는 데 성공한 안토니오.
그는 뮤대륙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수행자들을 통해 지시를 보내오는 이반이 점점 무리한 것을 요구하더니, 결국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안토니오는 자신과 함께 뮤대륙으로 넘어온 이반의 부하를 향해 윽박을 내질렀다.
“젠장, 내가 그래서 괜한 뻘짓 하지 말자고 했잖아. 브라질 새끼들이 쓸데없이 설쳐대서 전부 까발려지게 생겼다고! 여기서 죽으면 이제 완전히 끝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