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45
67. 강화와 대비 (1)
‘거인의 묘지라.’
던전의 이름만 들어선 언데드 계열로 판단된다.
호주 킹스 캐니언에 위치한 던전의 입구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동굴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들어가야 할 정도로 좁았는데, 멀리서 넓은 공간이 보여 블링크로 이동했다.
넓은 공간이라고 해봐야 작은 냇가가 있는 5평 남직한 공터였다.
입구에서 들어온 햇빛이 냇가에 반사되어 그나마 시야가 확보되었는데, 그 앞으론 빛 하나 없는 암흑천지여서 라이트 마법을 써야 했다.
사고 가속은 레벨 1수준으로 맞춰 놓고, 마력 탐색을 수시로 사용했다.
지도 기능은 던전에 들어오면 성능이 대폭 하향돼서 몬스터 위치 파악은 탐색 스킬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뭐, 굳이 탐색 스킬이 아니더라도 이젠 기감과 직감이 만렙이 되면서 웬만한 적의 접근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뭐지?”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던전의 규모가 큰 건지, 꽤 이동했음에도 탐색에 걸리는 몬스터가 없었다.
혹시 이 던전의 몬스터들은 마력탐색에 잡히지 않는 특수종일까 싶어 긴장감을 유지한 채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몬스터 한 마리가 드디어 마력탐색에 걸렸고, 그 이후부터 탐색에 걸리는 몬스터가 한두 마리씩 증가했다.
“몬스터가 왜 이렇게 적어?”
던전의 등급이 최상급인 것에 비해 몬스터의 수가 너무 적었다.
애초에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상상했는데….
혹시 한 마리 한 마리가 월등히 강한 던전인 걸까?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첫 번째 몬스터와 조우했다.
[거인 전사]
그건 검투사와 같은 복장에 라운드 쉴드와 그라디우스로 무장한 7~8미터 크기의 거인이었다.
던전의 이름 때문에 등장 몬스터를 언데드 계열로 예상했지만, 꿈틀거리는 혈관과 우람한 근육은 살아있는 생물의 것이었다.
거인의 눈동자에선 기이한 녹색의 빛이 뿜어졌는데, 기분 나쁘게 웃음을 흘리며 입을 벌리자 새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뮤대륙의 거인이란 존재는 전부 저런 걸까?
아무리 봐도 이종족이라기보다 이성 없는 몬스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거인이 거친 포효를 내지르자 무형의 충격파가 사방을 뒤덮었었다.
[거인의 포효가 전신을 압박합니다. 신체 능력이 30% 하향됩니다.]
[저주 내성이 피어 효과를 상쇄합니다. 신체 능력이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아무래도 녀석의 피어엔 디버프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창을 뽑아 들었다.
어쩐지 다른 던전의 일반 몬스터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거인은 미친놈처럼 킥킥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고, 내가 전투 자세를 취하자 힘찬 도약과 함께 미사일처럼 날아왔다.
거인이 딛고 있던 바닥은 산산조각이 나서 깊은 발자국을 만들고, 육중한 근육덩어리가 방패를 앞세워 날아드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리는 모습이었다.
-쿠웅!
“뭐지 저 병신?”
하지만 우리가 있는 공간의 넓이가 녀석이 마구 날뛸 정도로 여유 있는 건 아닌지라, 거인은 천장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그리고 녀석이 자세가 흐트러지며 추락하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창에 모든 힘을 담아 던졌고, 6클래스의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레이저 캐논을 함께 사용했다.
최상급 익스퍼트의 기운과 스킬, 마법 보조가 더해진 창은 마치 유성과도 같았다.
맹렬한 기세로 나아가는 창에 이어 직경 1m정도의 흰색 광선이 뒤따랐다.
-크아아악!
내가 던진 창을 막기 위해 녀석은 방패를 앞세웠지만.
창은 마치 두부 속에 파고드는 것처럼 아무런 막힘없이 방패를 뚫고 들어가 거인을 관통했다.
최상급 보상카드에서 얻은 투과란 스킬의 효과였다.
그리고 투창뿐만 아니라 레이저 캐논 역시 투과 효과가 더해져, 방패와 갑옷으로 숨겨진 거인의 본체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
‘효과 좋은데?’
투과는 굉장히 효과적인 스킬이지만, 마법과 오러 등을 이용한 방어엔 무용지물이란 것이 단점이다.
거인이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내지르고, 나는 그것을 지켜봐 줄 의리가 없는지라 창을 재소환하고 마법을 연사하여 거인을 공격했다.
하지만 녀석은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녹색의 빛으로 방패와 갑옷 감쌌고, 공격들은 예전처럼 쉽게 관통하지 못했다.
그러나 투과가 없다고 내 공격이 약한 것은 아니다.
6클래스와 최상급 익스퍼트의 공격을 어찌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녀석은 방패를 앞세워 터프하게 다가왔지만, 난사에 가까운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바닥에 쓰러졌다.
엄청난 포스에 비해 전투는 의외로 간단히 끝이 났다.
하지만 내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는데.
‘이건 이 던전에서 제일 초급 몬스터잖아.’
내가 공격을 쏟아부은 거인은 보스 몬스터가 아니다.
던전 초반의 일반 몬스터가 이렇게 단단한데 보스 몬스터는 어느 수준이란 말인가?
때문에 표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최상급 던전이 아니네.’
현재 마력 탐색에 잡힌 몬스터의 수는 약 70여 마리.
처음엔 적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결코 적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다음부턴 몬스터가 두 마리 이상씩 붙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던전의 규모가 예상보다 큰 것으로 판단되어 몬스터가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상급 던전과 달리 인간적인 숫자지만, 몬스터의 질은 차원이 달랐다.
*
용산 수행자 연맹 본부.
“왜 그렇게 긴장해?”
정우의 물음에 태영은 당연한 걸 왜 묻냐고 답했다.
“TV에서만 보던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는데, 긴장 안 하게 생겼어?”
그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마검사 은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태영은 동갑이지만, 지훈에겐 항상 회장님 또는 스승님이라며 깍듯하게 대하고 정우와 인식이에겐 말을 편하게 했다.
“회장, 부회장이 자리를 비우면 너희가 한국 연맹 본부의 대표야. 대통령을 마주해도 위축될 필요 없어.”
“원준 형님이 있잖아?”
“장원준 씨는 정부 소속이잖아. 연맹 일까지 신경 쓰긴 힘들어.”
수행자 연맹 본부는 지금 손님을 맞을 준비로 바쁜 상태다.
더구나 찾아오는 손님들이 한둘이 아니고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해줄 인물들인지라, 대표로 맞이해줄 인물이 필요했다.
지훈과 선아가 있다면 당연히 그 둘이 맞이했겠지만, 두 사람 모두 던전을 돌고 있는 상태여서 2회차 수행자 중 서열 1위를 놓고 다투는 이태영과 최은우가 대표로 맞이하기로 했다.
“그냥 너나, 인식이가 하지.”
“우린 3회차 수행자야. 지훈이 친구란 이유만으로 거들먹거릴 수 있는 짬밥이 아니잖아.”
수행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뭐니 뭐니해도 무력.
연맹에선 무력이 일종의 서열이나 마찬가지인데, 인식과 정우가 2회차 하위권 수행자들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해도 2회차 상위권인 두 사람과의 격차는 상당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그래도 어느 정도 질서는 필요하지. 내가 옆에서 보조해줄 테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후, 알았어.”
그리고 잠시 후 연맹 본부 휴게실 쪽이 어수선하다 싶더니, 이들이 위치한 대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2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많이 기다렸지?”
가장 앞서 회의실에 들어온 사람은 인식, 그 뒤로 주아를 포함한 걸그룹 아이윌이 따랐다.
이어서 어딘가 긴장한 듯 보이는 잘생긴 4명의 남성과 서양인 남녀가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4회차 수행자 지정권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회의실에 들어선 서양인들은 TV가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인.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과 어느 나라의 거리를 거닐어도 꼭 한 번씩은 듣게 되는 노래의 주인공들, 연예인 이상의 인지도를 지닌 축구 스타까지.
세계적인 인지도만 따지면 K팝 가수들과 비교할 수 없는 면면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수백억 이상의 재산가들도 적지 않아 한국의 연예인들이 더욱 위축되어 보였다.
하지만 가끔 본인들도 잊는 모양인데, 아시아에서 K팝 그룹의 인지도는 팝가수나 헐리웃 배우 못지않고 인기는 월등했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수행자 연맹 소속으로 여러분을 맞이하게 된 이태영이라 합니다.”
긴장감을 표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태영은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고, 이어 은우와 정우, 인식 순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형식상 4회차 지정권을 배정받은 유명인들에게도 자기소개를 부탁했는데.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던 한국 아이돌들과 달리, 바톤을 이어받은 여성 팝가수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연맹의 회장이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그에 지훈의 열렬한 신봉자인 태영과 은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태영은 표정을 풀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회장님께선 바쁘십니다. 오늘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를 쓰고 계시거든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하며, 여러분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재밌네, 세계 평화 말이죠?”
뭐가 문제인 걸까?
조소를 흘린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에리나 메깅입니다.”
마치 전부 날 알지 않냐는 태도.
그녀의 통역을 담당한 국정원 직원조차 입꼬리를 씰룩였다.
덕분에 실소를 흘린 태영이 정우를 바라보고, 정우도 좋을 대로 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에리나씨께선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무슨 뜻이죠.”
“이 자리가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인데. 우리가 당신의 눈치를 봐야 할 입장이 아니 거든요.”
에리나의 얼굴에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태영은 가볍게 말을 이었다.
“기회를 주는 건 우리 회장님이니, 주제 파악하세요.”
탑스타가 되고 이런 대접은 처음 받아 볼 것이다.
신랄한 반응에 에리나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많냐는 표정으로 통역하는 국정원 직원을 바라보았다.
국정원 직원이 자신은 제대로 통역을 했다며 능글맞게 답했다.
에리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신경질적으로 회의실을 벗어났다.
일반적으로 보통 이러면 관계자들은 못 이기는 척 그녀를 붙잡았지만, 에리나을 붙잡은 것은 태영이 아닌 검은 정장의 국정원 직원들이었다.
“뭐, 뭐야?”
그런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을 동행한 NSA 요원들이 잠자코 바라만 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국정원 직원의 물음에 태영은 볼 것도 없다며 손을 휘휘 저었다.
“있어 봤자 문제만 만들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태영의 선고에 현재 크게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미국의 팝가수 에리나 메깅이 짐짝처럼 질질 끌려나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에리나의 모습은 회의실의 문이 닫히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주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는데, 태영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말을 이었다.
“사전에 모두 이야기를 전달받으셨죠? 이제 와서 저런 태도를 고수해봤자 득 될 게 전혀 없습니다. 이건 우리만을 위한 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수행자인 주아를 비롯한 아이윌 멤버들과 단체 생활이 익숙한 스포츠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팝가수와 헐리웃 배우들은 강압적인 태도에 미간을 좁혔으나, 에리나처럼 상황파악을 못 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럼 자기소개를 이어갈까요?”
한 명이 모범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이후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야기를 이어갔을까?
“정우님.”
무전으로 무언가를 전달받은 국정원 직원이 급히 정우를 찾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전달받은 정우는 마침 잘 되었다며 태영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여러분은 운이 좋습니다.”
“네?”
뜬금없는 태영의 이야기에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모두를 당황 시켰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안개가 발생했다는군요. 뮤대륙에 진입하기 전에 몬스터를 구경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
-콰아앙!
녹색 안광을 뿌리는 거인 광전사들을 뚫고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던 나는 중간 보스로 보이는 거인을 발견했다.
따로 보스룸이 있진 않았지만, 넓은 공동 중심에 전사 10마리를 대동한 ‘거인 전사 카르타’가 고고하게 나를 맞이했는데, 그것이 중간 보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무려 마스터급.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미친!”
거인 전사 10마리와 마스터급 중간 보스 카르타가 얽히니 공동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떻게든 일반 전사 10마리를 모두 정리하긴 했지만, 역시 카르타를 상대로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전투력 면에선 녀석이 테라시아 공작보단 아래라 생각한다.
하지만 카르타는 압도적인 질량과 힘을 갖고 있어서 무기를 맞대면서 싸울 수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또한 녹색의 기운을 이용한 방어력이 어찌나 높은지, 6서클의 마법도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크게 밀리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유효타가 없었다.
-콰아아앙!
신장 10미터가 넘는 녀석이 휘두르는 그라디우스는 사고가속을 한다고 해도 쉽게 피할 수가 없었다.
녀석의 스피드는 사고 가속으로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지만, 공격의 면적이 너무 넓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나는 제대로 근접전도 벌이지 못하고 블링크로 이리저리 피하며 큰 효과 없는 마법을 난사해야 했다.
도쿄에서 거대 철거인을 상대했을 때처럼 이런 식으로도 언젠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껏 마스터급의 무력을 손에 넣었다고 자부하던 입장에선 내키지 않았다.
‘미래시를 써보자.’
잔몹을 상대로 미래시를 연습해봤지만 이렇게 강한 상대에겐 사용해본 적이 없다.
나는 영 아니다 싶으면 도망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꺼져 있던 미래시 스킬을 활성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