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39
64. 대정전의 진실(2)
서울 강북구 수유 사거리.
언제나처럼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효율 나쁜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던 남성은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자 의아함을 표하며 전조등을 켰다.
“뭐야?”
그런데 이상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잘 달리던 도로의 신호등이 모조리 꺼지는 것이 아닌가.
당혹스런 상황에 미간을 찌푸린 그는 비상등을 켜며 천천히 차를 멈춰 세웠다.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끼이이익!
-콰아앙!
신호가 있든 없든 제 갈 길을 가던 차들을 교차로에 들어서던 5톤 트럭이 덮쳤으니.
그 트럭의 짐칸에는 벽돌이 한가득 실려 있었는데, 강한 충돌에 벽돌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날아갔다.
-콰직!
“아 X발! 깜짝이야!”
직접 충돌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트리플 악셀을 하며 날아든 벽돌이 보닛을 찌그러뜨리고는 그대로 전면유리를 깨뜨렸다.
트럭에 치인 것에 비하면 양반이긴 해도 사고는 사고였으니 남성은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며 차에서 내렸다.
-퉁! 퉁!
그리고 그때였다.
무언가 쇼트되는 듯한 소음과 함께 주변 빌딩들의 불빛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곧 사방이 완전한 어둠에 물들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
운전하면서 왜 이렇게 어둡나 했더니, 가로등의 불빛이 이미 나간 상태였다.
다행히 비상전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빌딩 한 채에 불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주변을 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정전?’
정전이란 것을 경험해본 게 언제였던가.
아주 어릴 때나 몇 번 경험 해봤지, 근래 겪기 힘든 일이었다.
“어? 휴대폰이…….”
뒤에 있던 여성 운전자의 혼잣말에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고, 아무 이상 없이 작동되는 휴대폰을 보며 의아함을 표하다가, 이내 통신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설마 기지국에도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이래선 정전이 언제 복구되는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끼이익! 쾅!
핸드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접촉사고가 또 다시 발생하고, 이 사단이 언제 해결되나 걱정하며 주변을 살피던 그는 멀리 북한산 방향 중턱에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또 뭐래.’
붉은 빛과 푸른 빛, 때로는 녹색 빛이 반짝였다.
어서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데.
어쩐지 흘러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어떻게 알고 출동한 건지 경찰들과 보험사 렉카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여기 크게 다친 것 같아요!”
교차로에서 사고차량을 살피던 사람들이 경찰들을 향해 외쳤다.
그에 경찰들이 무전을 하니, 오래 걸리지 않아 구급 차량들이 나타났다.
휴대폰은 먹통인데, 무전은 아무 이상이 없다니.
무전기도 개별적인 통신망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재난을 대비한 보조전력이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다.
경찰의 신속한 대처에 아수라장이 된 교차로의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무슨 일인 벌어진 거죠?”
남자는 비교적 한가해 보이는 경찰에게 다가가 현 상황을 물었다.
“전국적으로 원인 모를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덕분에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죠. 지금 잠깐 사이 발견된 교통사고만 수천 건에 달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엘리베이터에 갇힌 승객도 굉장히 많을 거예요. 상부에선 현 상황을 재난재해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허.”
실제로 이 순간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한 곳은 차도 쪽이 아닌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현대에선 공기처럼 당연하다 생각했던 전기.
그것이 일방적으로 사라지니 재난이라고밖에 칭할 수 없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
전투 상황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스킬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사랑해 마지않는 사고 가속.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장비 옵션이 더해지면서 레벨이 30에 달하는 자동회복 스킬이다.
자동회복이 있기에 사고 가속을 사용해도 부작용이 적었으며, 부상은 물론, 상당한 마력 회복에 지치지 않는 체력을 선물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마치 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몇 시간이 넘도록 처음과 같은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정신적 피로라는 것이 있어서 무한히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겨우 몇 시간 싸운다고 해서 정신적 피로를 호소할 만큼 나약하지 않다.
-푸확!
지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던 수행자들이 질렀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수행자들의 안전을 살피며 싸웠지만, 몬스터를 빠르게 처치하면 그 다음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전력으로 움직였다.
마법은 되도록 폭음이 적은 관통계열과 보조용으로 사용했으며 사고 가속에 블링크를 사용하니 동시에 여러 곳에 나타나 공격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 되었다.
덕분에 상당수의 몬스터가 검은 문에서 나오자마자 내 검에 처리가 되었고 허공에 생성된 문에서 비행 몬스터가 나올 경우 창을 날려 떨어뜨렸다.
비록 한 손으로 모든 하늘을 가릴 수는 없듯, 놓치는 몬스터들이 있기 나름이지만, 아직까지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3시간 동안 한 틈도 쉬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으며, 이는 1회차 수행자인 김선아와 장원준 보다도 몇 차원 높은 살상능력으로 드러났다.
2~3회차 수행자들은 파티를 이뤄 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런 가이드라인과 도움 없이 단독으로 생존해야 했던 1회차 수행자와 달리 이들에게 파티플레이는 기본이었다.
“주아야!”
“네!”
탱커와 창을 사용하는 딜러.
둘이 하나의 몸처럼 안정적으로 전투를 이어가는 인식이와 주아는 웬만한 2회차 수행자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호흡을 자랑했다.
그리고 한손검+경량방패를 사용하는 표준형 검사인 정우는 마법사와 파티를 맺은 상태였는데, 의외로 터프하게 공격 일변도의 전투를 이어갔다.
물론 1회차 수행자들도 단체를 이루면서 파티플레이를 하긴 했지만, 2~3회차 수행자들처럼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김선아와 장원준은 단독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겨우 25명밖에 살아남지 않은 1회차 수행자들은 모두가 역전의 용사들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1회차 수해자들이 2회차 상위권 수행자들에게 결코 뒤를 내주지 않는 게 이런 성향 때문인 것이 아닐까?
“죄, 죄송합니다. 조금 쉬겠습니다.”
인식이와 정우는 이미 세 차례 쉬었다가 들어온 상태고, 공용 아공간을 통해 물약빨로 버텨오던 장원준이 김선아보다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갔다.
김선아는 나를 따라 자동회복에 스킬업 포인트를 투자해서 얼마전에 만렙을 찍었다.
입고 있는 갑옷 상하의 옵션까지 더하면 레벨이 16인 만큼, 나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히 뛰어난 전투 지속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방패관련 스킬을 지니고 있어서 단단한 방어능력을 보여주었다.
흰색 갑옷이 더해진 덕분인지, 그녀의 전투는 발키리를 연상시켰다.
“끝나가나 봅니다!”
그렇게 내 활약과 한국 수행자들의 노고가 더해져 몬스터의 등장 속도가 서서히 더뎌지고.
-크아아아아!
뮤대륙 카카오 섬 토벌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싸이클롭스가 등장하며 더 이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네가 보스냐?”
싸이클롭스는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라 해도 쉬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력한 몬스터.
-쿠웅!
하지만 아무리 고전했다고 한들 뮤대륙 시간으로 150일 전에 쓰러뜨렸던 몬스터에게 패할 일은 없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외눈박이 거인이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고 몬스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을 확신한 수행자들이 하나같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듣기로 다른 나라들은 군인과 수행자들이 함께 싸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수행자가 앞장서고 군인들은 우리가 흘린 몬스터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모두 수행자의 손에 처리되는 바람에 북한산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는 경우는 없었지만 말이다.
[서울 지역 몬스터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서울지역 기여도를 표기합니다.]
-1. 조지훈: 71.81%
-2. 김선아: 5.62%
-3. 장원준: 3.74%
-4. 최은우: 2.49%
-5. 이태영: 1.82%
-6. 성진형: 1.01%
-7. 김민정: 0.73%
-8. 박정태: 0.58%
…….
-19. 김정우: 0.16%
-20. 김인식: 0.14%
-21. 최주아: 0.12%
…….
-75. 문정훈: 0.01%
2회차 수행자까진 몇 번이고 함께 싸워본 경험이 있지만, 3회차 수행자들은 내가 강하다는 것만 알고 있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제대로 존재감을 각인시켜 준 것 같다.
“네가 나보다 450배 활약했네.”
“나보다는 500배야.”
정우와 인식이는 내가 벌인 일들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감탄사를 흘리는 정도로 끝났지만, 주아를 비롯한 3회차 수행자들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상합니다. 어째 차이가 좁혀지긴커녕 점점 더 벌어지는 느낌이죠?”
2회차 수행자 중 유일하게 1회차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는 마검사 최은우의 반응에 아직도 나를 스승 취급하는 태영도 공감했다.
실없는 그들의 반응에 실소를 흘리며 전장이 된 북한산 일대를 살폈다.
웨이브로 사살된 몬스터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곳곳에 붉은 피와 파란 피가 연못을 이루고 있었으며, 걸음을 옮기면 끈적한 진흙이 발을 붙잡았다.
내가 수시로 땅을 뒤집으며 동료들이 전투 중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를 했지만, 5천이 넘는 몬스터들의 피를 뒤집어쓴지라 나중엔 땅 전체가 진흙탕처럼 변했다.
결국, 중간중간 땅을 말려 수분을 날리는 걸로 수행자들을 도왔다.
“몇 마리 정돈 샘플로 살려 둘 걸 그랬나?”
곳곳에 몬스터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수행자들이 도축 스킬을 사용해서 내장과 살, 뼈 등이 함께 쌓여 있었다.
끔찍한 살풍경이지만 수행자들에겐 워낙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누구도 거북해하지 않았다.
“헉!”
하지만 보통 사람들 입장에선 이야기가 다른다.
전투 종료 알림에 한달음에 달려왔던, 군 관계자와 국정원 요원들은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깄는 몬스터들의 사체는 모두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한번 연구해 보도록 하죠.”
이번에 등장한 몬스터 중 가장 약한 게 오크고 드레이크와 싸이클롭스 등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고급 몬스터도 적지 않았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국정원 직원에게 다른 나라의 상황을 물으니, 모두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요국가들은 위성통신으로 연결된 상태였기에 정전이 됐다고 서로의 정보가 차단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웨이브가 발생한 국가들은 대부분 높은 군사력을 자랑하는 국가들인 만큼 군인들로 잘 방어해내고 있다고 한다.
비록 뒤로 갈수록 총기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몬스터가 많아지면서 몇 차례 방어 라인이 뒤로 밀리긴 했지만, 아직까지 도시에 접근을 시킨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럼 다른 나라를 지원 가겠습니다.”
“네?”
내 말에 국정원뿐 아니라 지쳐있던 한국 수행자들까지 기겁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주어진다잖아요? 군대에 사살돼서 증발하는 기여도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는 게 이득 아닐까요?”
“하지만 전부 지쳤습니다.”
당황한 1회차 수행자 장원준이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내 눈엔 자신이 지친 것을 숨기기 위한 핑계로 보였다.
나는 걱정말라며 국정원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분들은 어디에 계시죠?”
이미 이런 상황을 염두하고 대비해놓았다.
“후방 방어 라인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행자들을 클리어 마법으로 깨끗이 만들어 주고는 다 함께 국정원 직원을 따라 이동했다.
“추기경님,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그곳엔 제한된 구역에서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성직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신성력을 사용하실 수 있나요?”
“네, 예상대로 이곳에선 사용이 가능하더군요.”
내가 이러면 되지 않냐는 표정으로 수행자들을 바라보자 모두들 질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검은 문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인데 괜찮을까요?”
“메시지로 종료를 알렸겠다. 뒤는 군대에 맡겨도 되겠죠.”
장원준은 어지간히 쉬고 싶은 모양이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무아지경으로 싸우면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끝내 한국의 수행자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나를 따라 자카르타로 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