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38
64. 대정전의 진실(1)
대정전을 대비해 수행자들도 정부에서 지정한 주요 거점에서 대기할 예정이다.
수행자들이 움직이게 되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는 뜻이니 그냥 침목 도모의 시간으로 끝났으면 한다.
참고로 수행자들의 가족들은 모두 우리 집 지하 벙커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 또한 예행연습의 일종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재앙을 대비해 모두가 협력을 해서 다행이다.’
처음엔 믿을 수 없다며 수행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적으로 배척하려 했던 국가들도 점점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 현상에 고집을 피우지 못했다.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 수행자를 배척한 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정한 것이지 신이 정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무장 세력들을 일소한 것이 일종의 경고 역할을 해주면서 지금은 제법 협조를 잘 해주고 있는 상태다.
가뜩이나 D-DAY로 인해 주요국가들의 정부가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상태인데, 만약 그들이 이 이상 뻘 짓을 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얻어터지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연맹을 만든 게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연맹을 통해 정부와 유기적인 협력을 취하고 있는 지금과 달리, 국가와 수행자의 관계가 적대적이었다면, 재앙은 더욱 큰 파급력을 발휘하게 됐을 테니.
“이거야 원. 던전을 힘들게 클리어하고도 내일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현재 우리가 있는 장소는 중국 헤이룽장 성 무단장시 남부에 위치한 이름 모를 산.
분명 현지인들이 부르는 이름이 있겠지만, 우리가 굳이 산 이름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처리한 던전은 상급의 난이도를 가진 소규모 미궁이었다.
등장 몬스터는 미궁의 단골 몬스터인 미노타우르스와 라미아, 코카트리스였는데, 의외로 드랍템이 후해서 싸울 맛이 나는 곳이었다.
더구나 마지막 MVP보상까지 굉장히 좋은 악세서리가 나와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험한 산세 너머로 태양이 저무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김선아에게 말했다.
“그럼 돌아가죠.”
“네.”
언제까지 이곳에서 여유를 즐길 수는 없는 노릇.
이제 그만 내일에 대비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중국 공산당 관계자에게 인사를 건넨 우린 휴대용 텔레포트를 이용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
일반적으로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이 갑자기 정지되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발전소가 무사하다고 해도 재가동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신문에선 마치 정상 운영이 되고 있었던 것처럼 다음날이 되자 원자로가 안정적으로 가동상태를 이어갔다고 한다.
덕분에 모든 것이 금세 원상 복구되었다나?
정확한 것은 겪어봐야 할 일이지만, 한 장소도 아니고, 전 세계 원자로가 형편 좋게 정지 후 즉시 가동한 것을 보면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신문에는 전자장비가 먹통이 되었다는 기사는 없지만, 우리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만큼 뭐든 속단할 수는 없었다.
용산 국방부 본부에 만들어진 대책 사령부.
부산스런 분위기 속에 누구도 쉬이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가 있었다.
바로 대통령,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주한미군 사령관 등이 자리 잡고 회의실이었는데, 대통령 옆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던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많은 준비를 해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국방부는 우리 수행자들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20여 대의 헬기를 준비한 상태다.
더불어 지방으로 이동할 경우를 대비해 김포공항에 4대의 여객기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전자장비가 불능에 빠지면 소용없는 이동수단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대비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자정 이후 우리 수행자는 잠에 빠지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전이 시작되는 것은 저녁 8시 이후부터.
예정대로라면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4시간이 전부였다.
“이건 앞으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수행자들의 심야 활동이 제한 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제약이니까요.”
국방부 장관의 이야기에 나를 비롯해 뒤에 서 있던 김선아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이 사태를 초래하신 분(신)께서 개선사항으로 참고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과연 신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D-DAY를 대비해 꼭 개선해주었으면 하는 사항이다.
‘현재 시각 오후 7시 20분.’
곧 원자력 발전소가 멈추는 시간이 다가오니, 대통령이 한 번 더 상황을 체크 했다.
“기술자들은 모두 제대로 배치된 거 맞겠지?”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담당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대통령은 쉬이 믿음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저녁 7시 30분이 되었을 때였다.
“허…….”
눈앞에 뜬금없이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
[이벤트 발생]
그리고 이어진 내용에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벌떡 일어나고 김선아는 미간을 좁혔다.
[전 세계 10개 도시 외곽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웨이브가 진행되는 동안 보조 시스템(지도, 신분증)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는 10개 도시를 연결하는 임시 텔레포트가 지도기능에 활성화됩니다.]
[웨이브가 발생한 동안 수행자의 전투 기여도를 평가하여 순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합니다.]
나와 김선아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대통령을 비롯한 군부 주요 인사들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웨이브가 발생한 동안 뮤대륙 입장이 일시 보류됩니다.]
[현대 무기를 사용하여 몬스터를 사살할 경우 기여도가 증가하지 않습니다.]
[웨이브가 발생한 동안 핵분열 장비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웨이브가 발생한 동안 TNT 100kg 이상 대량 살상 병기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알고 보니 대정전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진짜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할 10개 도시는 뉴욕, 서울, 도쿄, 런던, 베를린, 모스크바, 시드니, 상하이, 뉴델리, 자카르타입니다.]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 지점은 지도에 표기됩니다.]
그리고 게임 UI처럼 메시지와 별개로 시야 위쪽에 무언가가 표기되었는데.
-웨이브 발생 30분 전-
나는 그 문구를 보며 소리쳤다.
“북한산입니다! 30분 후, 북한산에서 몬스터가 몰려나올 겁니다!”
***
우리나라의 웨이브 발생 포인트만 유독 서울과 가까웠다.
아니, 북한산이면 그냥 도심 한가운데라 봐야 한다.
다른 국가들은 그래도 몇 겹에 걸쳐 방어라인을 구축할 여유 공간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방 어디로든 몬스터가 향해도 전부 도심이었다.
나와 수행자들이 웨이브 포인트에 대기하고, 군인들이 북한산 전체를 포위했다.
급히 병력을 동원하다 보니, 일반 보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규모 군인의 출동 사태를 훈련으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연이어 총격이 발생한다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음을 숨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미 원자력 발전소는 가동이 멈춘 상태다.
아직은 도시가 제 기능을 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더운 7월 말.
전력 소비량이 많아 국가 전체가 암흑으로 물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웨이브 발생 1분 전-
나와 김선아는 장비 전체가 소환 가능한 공용장비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않다.
하지만 방검복을 입고 다니던 때와 달리 지금의 수행자들은 첨단 소재로 만들어진 방어구와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스릴 같은 특수 금속을 사용한 장비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지구에서 만들어진 장비가 뮤대륙의 것보다 좋은 게 당연했다.
그래서 장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웨이브 발생 10초 전-
난전을 대비해 오리하르콘 장검을 소지한 나는 웨이브 포인트를 바라보았고, 다른 수행자들도 카운트가 시작된 것을 지켜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웨이브 발생-
-우우웅!
그리고 시작된 이상 현상.
문수사라 불리는 작은 절 곳곳에 검은 구멍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점점 확장하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문이 완성되었다.
-키아아아악!
검은 구멍에서부터 들려온 것은 오크와 트롤 등 익숙한 몬스터들의 포효소리.
그리고 몬스터들이 구멍을 나서는 순간.
문수사를 포함해 북한산 곳곳을 밝히던 가로등이 꺼져버렸다.
[정전입니다.]
곧 예비 발전기를 통해 불이 들어오겠지만, 무전을 통해 들려온 보고는 마치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그렇게 수행자와 몬스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아까 그 사람들 뭡니까?”
수도방위 사령부 예하 보병부대의 병장이 소대장에게 물었다.
“뭐가.”
“아까, 그 이상한 사람들이요. 검은색 갑옷에 검이나 창 들고 있던 사람들.”
그에 주변에 있던 분대원들도 궁금하단 표정으로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대장은 이들의 궁금증에 경계나 똑바로 서라는 핀잔으로 답을 대신했다.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간부들의 모습은 병사들에게까지 전염되었지만, 말년이라 겁이 없는 병장은 집요하게 소대장에게 물었다.
“그러지 말고요. 대량의 실탄과 수류탄이 딱 봐도 훈련 상황이 아닌데, 뭔질 알아야 당황하지 않고 제대로 대처할 거 아닙니까? 더구나 갑작스런 정전도 너무 인위적이잖아요.”
확실히 맞는 말.
그러나 소대장은 끝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자세히 모른다는 건 대충 안다는 거죠?”
“시끄러워, 똑바로 경계나 서.”
그에 병장은 속으로 혀를 차며 전방을 살폈고.
곧 믿을 수 없는 관경을 목격했다.
“어? 어! 저, 저거 뭡니까?”
모두의 시선이 병장을 손끝을 따라 이동하고, 어둠 속에서 유독 반짝이는 새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이 평범한 새가 아님을 알 수 있었는데.
녀석이 난데없이 절이 있는 산기슭을 향해 불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5연대 사격 준비.
그리고 떨어진 사격준비 명령.
소대장을 비롯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의무 복무 중인 어린 병사들은 급히 소총을 고쳐잡았다.
“소대장님!”
“닥쳐! 나도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니까!”
-키에에엑!
자신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 걸까?
하늘을 날고 불을 내뿜던 그 무언가가 이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헉.”
그것이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덩치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군인들 뒤로 배치된 조명에 의해 정확한 실루엣이 잡히고.
“드래곤?”
그것이 영화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던 서양의 용과 같다는 것을 알아채곤 기겁했다.
-사격 대기.
“쏘지 마. 아직 사격 명령 안 내려왔어.”
병사들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것을 본 소대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자신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괴물로 인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걱!
그 드래곤의 등 위로 검은 사람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푸른빛이 번쩍였고 집채만 한 드래곤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쿵! 쿠웅!
“으아악!”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드래곤이 아닌 드레이크였으나, 일반인이 뮤대륙의 몬스터에 대해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지훈에 의해 순식간에 머리가 분리된 드레이크는 재수 없게도 군인들의 코앞까지 굴러떨어져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위치에서 멈춰 섰다.
참수를 당하면 일시적으로 의식이 있다고 하는데, 드레이크도 그런 것일까?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의 눈동자가 깜빡이는 것을 보며 병사들은 하나같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대체 뭐냐고요!”
병장의 외침에 바지가 젖은 소대장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잘 모른다니까!”
-3소대 정숙해라.
그렇게 이들은 거대한 몬스터의 사체를 앞에 두고 지독한 피비린내를 맡으며 경계를 이어가야 했다.
‘아까 그 이상한 사람들이 죽인 건가?’
드레이크의 등 뒤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사람을 보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가 한 번쯤은 꿈꿔본 만화같은 상황.
하지만 직접 겪으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우웩!”
결국, 역겨운 냄새를 못 참은 소대장이 거하게 토악질을 했다.